ARTIST Criticism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이미지의 변증법_김병헌(독립큐레이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이미지의 변증법
(A Journey to find 'I' - the Dialectic of the Images)
김병헌(독립큐레이터)

이두환 작가의 작품들을 볼 때,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참 재미있게 그린 유화네!’, ‘동물들이 사람처럼 옷도 입고 안경도 쓰고...뭔지는 모르지만 깔끔하게 현대적으로 그려진 것 같아!’ 등등. 실제로 그의 그림들을 보면,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채와 화면 구성을 통해 그림 속 형상들이 재미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Princess>(2018)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작품은 거의 정사각형의 화면에 우리에게 익숙한 개인 불테리어의 얼굴이, 17세기 바로크 회화인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의 인물과 비슷하게, 초상화처럼 그려져 있다. 또한 이 화면 속 주인공은, 비록 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을 중심으로 감싸듯이 목 레이스를 화면 가득 원형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유럽 귀족의 화려한 의상을 착용하고 있음을, 따라서 귀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밝은 푸른색이 칠해져 있는 배경은 배경의 기능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앙증맞게 그려진 개 발자국과 좌우에 그려진 자그마한 해와 달의 이미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주인공이 영원히 사랑스러운 귀한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이두환의 작품은 얼핏 보기에 어른들을 위한 세련되고 풍자적인 그림으로, 그것도 서양의 대표적인 회화인 유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은 유화도 아니고 단순한 풍자화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의 그림을 그저 유희로만 보기에는 여러 부분에서 진중한 표현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먼저 그의 그림은 매우 꼼꼼하며 따라서 즉흥적이거나 재미로 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Princess>라는 제목에 성별도 불분명한 개를 그려 넣었으며, 왜 이 개는 공주가 쓰는 관이 아닌 중절모를 쓴 것일까? 해와 달은 왜 함께 여기에 그렸으며 곳곳에 그려진 발자국은 무엇일까? 등등.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작업들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업들은 어떤 것들에 관한 것인가?
이 문제의 실마리를 풀려면, 간단하게나마 그의 초기 작업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초기의 수묵작업들을 보면 인물들을 위주로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작업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 작품 속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어떤 아픔 또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왜곡되고 과장되게 일그러진 인물들의 표정이나 암울한 색채는 그의 초기 작업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적으로 우울하지 않게 보이는, 예를 들면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는, 작품조차도 반창고에 새겨진 하트모양으로 인하여 내면적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작품에서 보이는 슬픔, 우울함, 상처, 방황 등은 2008년도의 <J양의 초상>에서 더욱 내면화되어 인물의 얼굴에서 사라져 버린다. 즉 이 작품에서는 눈 주위가 붕대로 가려지고 입과 코가 사라진 채 (오직 머리 스타일과 제목으로만 유추할 수 있는) 여성의 윤곽과 안경만이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초기작에서 <J양의 초상>을 거쳐 2012년 무렵의 작품에 이르러서 그의 작품은 현저히 변화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2012년도 작품인 <개를 좋아하는 L양>에서 이전의 얼굴 없는 여성은 눈만 붕대로 가려진 채 형형색색의 가발을 쓴 개로 변화되면서, 매우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와 보다 세련된 형태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더욱 더 전개되어 비둘기, 토끼, 카멜레온, 불독 등 다양한 동물들로 대체된다. 그러면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두환 작가의 작업은 누군가가 지적했던 바대로 이방인처럼 살아온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했던 자신을 여러 가지 면에서 정립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J양의 초상>을 기점으로 더욱 내면화 되었던 것이며, 이것은 다시 2012년 무렵에 이르러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일 터이다. 
이것은 헤겔(G. W. F. Hegel, 1770-1831)이 제시했던 ‘즉자(an sich)’, ‘대자(für sich)’ 그리고 ‘즉자대자(an und für sich)’란 용어와 연결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매우 난해한 말이기는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즉자적 존재란 독립적으로 있는, 다른 것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있는 존재를 말한다. 즉 다른 것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고서 오로지 그 자체로 있는 것으로서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밀착되어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두환 작가 역시 그 자체로만 볼 경우 이와 같은 즉자적 존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나아가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대자적 존재이다. 이 단계에서 그는 자신, 즉 ‘나’라는 존재를 직관하고 표상하며 사유함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이나 한계 등을 절감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나, 본래 자기 자신으로서의 나를 자각하려면 이 둘의 지양(止揚, aufhebung)을 통한 즉자대자적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이두환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왜곡되고 일그러진 모습이 타자를 통한 자신에 대한 사유의 결과라고 한다면, 2008년을 거쳐 2012년 무렵의 동물들의 모습은 즉자대자적 상태를 모색하는 과정 중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는 소위, 정, 반, 합의 상태가 작품으로 나타난다. <개를 좋아하는 L양>에서 눈을 가린 채 가발은 쓴 개의 형상은 타자와 나의 그리고 이전의 그림과 <J양의 초상>이 지양되고 있는 모습이며, <Princess> 역시 이러한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개는 성별을 확인할 수 없는 채, 양과 음을 대표하는 해와 달이 패턴화된 발자국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에 더하여 그의 그림은 유화가 아닌 동양의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유화처럼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모자를 넘어서 식물과 일상사물에까지 파고들면서 끊임없는 긍정과 부정, 그리고 부정의 부정을 통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現代人의 表象에 대한 考察 (현대인의 표상에 대한 고찰)
現代人의 表象에 대한 考察 (현대인의 표상에 대한 고찰)

 미술작품에서 보여지는 해석대상에 대해 독일 하노버 태생의 에르빈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도상해석학 연구’ 논문에서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로 일차적인 또는 자연스러운 주제로서 사실의미, 표현의미로서 예술적 모티프들이 이루는 세계, 둘째로 이차적인 또는 관습적인 주제나 그림, 일화, 알레고리가 이루는 세계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본래의 의미나 의미내용, 상징가치로 이루어지는 세계로 구분하였다. 화가의 성향과 표현의도에 따라서 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이두환의 작품은 에르빈파노프스키의 연구로 보자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로 접근할 수 있다. 즉 다분히 도상해석학적 측면으로 접근해야만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의 본래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작품의 발생환경을 이루는 한 국가, 시대계급, 종교적 교리와 철학적 확신에 관한 근본적인 이해와, 이런 요소들이 한 개인에게 행사하는 영향력, 그리고 어떤 주제가 작품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내는 다양한 관점 뒤에 숨은 기본 원칙들을 밝혀야한다. 이러한 기본 원칙들은 '구성방법들komposition methoden'을 통해, 또는 ‘도상의 의미’를 통해서 투영된다.  
태초 이래로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통해 거듭 진화해왔으며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간의 감정은 항상 존재하며 그것은 모두 양면성을 띄고 있다. 이두환의 작업은 그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그려지는 대상의 현재 상태나 감정을 대상의 외형만으로 표현 하는 것을 넘어서 대상의 심리상태에 따라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근원적인 모습에 다가감으로서 사실적인 외형표현을 배제한 표현방법으로 단일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를 벗어남과 함께 관람자의 공감을 유도하며 소통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즉 현대적 의미의 전신사조傳神寫照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중절모자, 토끼, 나무, 마스크와 눈에 붕대를 감은 사람 등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결합하는 형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만의 세상을 보여 주려 하고 있다. 과연 그는 어떠한 세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그의 작품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6년 전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karma를 주제로 한 일련의 인물화 연작들은 과감한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을 통해 인간의 기작을 표현했었다. 표현 방식으로 나무 화판에 각刻을 하고 색을 칠했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작품들은 일반의 시각으로 보면 형상은 기괴하고 색감은 어둡게 느껴졌었다. karma 연작들에서 작가는 표현의 한계와 작품의 보관성 등 그 나름의 부족함을 느끼고 조금 더 진일보한 작업을 하게 된다. 2008년에 제작한 ‘J양의 초상’이 그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눈에 붕대를 감은 한 여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보면 이 험난한 세상을 보기 싫어 눈을 가리고 싶다는 것처럼, 또는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감추고픈 트라우마를 제 3자로서 이해하며 조형적 치유의 언어표현을 통해 대상을 단순화시켜 드러내고 있었다. 재료와 표현의 양식은 전통 한국화 재료인 장지와 분채를 이용한 채색화였으며 채색을 함에 있어 색의 농도를 연하게 하여 반복적으로 여러 번 겹겹히 올리는 방식을 취하는 지난한 작업들로 인해 색의 명도는 높아지고 색감의 표면은 두꺼워지기 시작하였다. 주제는 무겁지만 색상은 밝은 파스텔 톤으로 표현함으로서 시각적 편안함 속에 감상자로 하여금 단지 표면적으로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는 작품을 표현한 것이다. 
 이두환은 대학시절부터 인물화를 그려왔고, 지금도 작품의 소재는 인물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인간사人間事이다.  그가 10여 년 전에 그린 인물이 다분히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보여지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사의 기작을 전달하려하였다면 현재의 인물들은 드러나지 않는 인물과 사물들의 조합을 통해 그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감상자로 하여금 화가만의 상상의 세계와 유추의 시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작품 ‘아담’과 ‘이브’는 작품명에서 느껴지듯이 인류 최초의 인간들에 대한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에 의해 설정한 가설들을 통하여 여자는 출산의 기쁨과 고통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남자는 힘에 있어 여성보다 우위에 있으며 출산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을,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도록 노동해야하고, 전쟁의 고통을 직접 겪어야만 하는 이중성, 즉 남녀 모두 겪게 되는 감정의 양면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최초의 인간들에 대한 궁금증과 가설에서 시작한 작가의 화두는 다양한 철학, 관습, 인터넷을 통하여 빠르게 전달되고 이동되는 현대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느껴지는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와 이야기 하다보면 소설가 베르나르베르베르Bernard Werber처럼 상상력이 아주 풍부하여 다양한 가설들을 설정해놓고 사유하는 방법을 즐기는 독특한 취미가 있었다. 그러한 상상력과 가설들이 예술가의 창작 소재로서 아주 좋은 소스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모자 안에 갇힌 비둘기나 토끼는 가부장적이면서도 때로 나약한 모습을 감춰야만 하는 현대 남성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전시 준비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그는 동물들과 함께한 인물들을 표현하였다. 등장하는 동물들은 자연 그대로의 동물 상태가 아닌 목적에 의해 길들여진 반려동물들이며 그것은 외로움을 채우려하는 수단으로 표현되고 대상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간접적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안경 속의 눈을 암묵적으로 표현함으로서 현대인의 이중적인 심리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이 참 많다. 회화에서 재료와 표현방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은 현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이두환은 한국 전통 회화방식을 계승하면서도 그 표현 소재를 확장시키면서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거의 대부분 그러 하듯이 자신의 작품에 모두 만족하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이두환 역시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작업하지만 항상 아쉽고, 부족하게만 느껴진다고 한다. 1년 전 전국공모로 치러진 대한민국 한국화 대전 ‘대상’을 수상하여 그 부상으로 이루어지는 초대 전시, 전시 준비의 지난 1년 동안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의 시간들이었다.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화우로서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하여  화가로서 한층 더 성숙하여 세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김병균 (벗, 한국화가)

관계와 변화, 그리고 내면의 투영(投影)_신훈 (문화재학 박사)
관계와 변화, 그리고 내면의 투영(投影)

인천에서 태어난 이두환 작가는 대학입학을 계기로 광주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시간들은 어느덧 태어난 고향에서 보낸 시간들보다 더 많아졌다. 그가 처음 광주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외지인이자 이방인이었다. 설혹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느끼게 되는 소외감 아닌 소외감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계속되는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이질감 또한 느꼈을 것이며,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 괴리감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주위의 사람들과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다르게 형성되고 표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 

이두환 작가는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삶의 뿌리라기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뿌리이자 작가로서 창작의 근원이 되는 뿌리라고 하는 것이 적확(的確)한 표현일 것이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튼튼한 지반이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관찰과 그러한 과정에서 일어나게 되는 변화를 이해하는 과정 또한 필요했다.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관찰과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환경 및 사람들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두환 작가의 초기 작업은 카르마(karma, 業)를 주제로 한다. 업이란 실체가 없지만 일상을 통하여 선과 악이 쌓이게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결과를 만들어낸다. 원인과 결과라는 작용 안에는 우연도 있고 필연도 있다. 원인과 결과라는 관계에 있어서 결과를 보고 원인을 말하자면 필연적일 수 있으나, 결과가 발생하기 이전 원인 그 자체로서는 발생 당시의 판단과 상황일 뿐 어떤 작용으로서의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선도 악도 아닌 업은 결과를 이끌어 내지 않으며, 이를 불가에서는 무기업((無起業)이라 한다. 어쩌면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논리와 원칙으로는 해답을 구할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카르마라는 주제에 따라 자신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들을 변형 혹은 과장된 형상을 통해 수묵으로 표현한 이두환 작가의 초기 작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외면의 형상을 표현하는 작업으로부터 내면의 자아를 보고자 하는 작업으로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는 형사(形似)가 아닌 사심(寫心)에 치중하고자 함이다. 

사람의 정신이나 내면은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대부분 작가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해 작품으로 표현된다. 이는 마치 형상이 없는 바람과 빛이 흔들리는 풀잎과 반짝이며 흐르는 수면을 통해서 그 존재가 인식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이두환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표현되는 형상들은 감상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통용된 이미지로 차용되어 화면에 재배치된다. 이렇게 재조합된 형상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그 도상이 가지고 있는 함의(含意)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게 된다.  

이두환 작가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타인을 통해 비춰지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과 나 자신에게 비춰지는 타인의 또 다른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은 ‘일탈을 꿈꾸는 L씨’, ‘One week’ ,‘One day’ 연작 등이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은 ‘현대인의 초상’, ‘깨져버린 약속’, ‘이론가의 초상’ 등이다. 그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현대사회의 통념과 예술의 일탈성, 내면과 본성의 변화와 진실, 사회적 자아와 본능적 자아의 관계, 대인관계에서의 소외감과 관계에 대한 외면, 자신의 박약한 의지로 인해 끊임없이 다짐을 반복하는 현대인 등을 형상화하여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양의 화론 가운데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가 제시한 이형사신(以形寫神)론은 형상을 통해 정신을 그린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정신을 전하게 되는 전신(傳神)을 회화비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점으로 삼았다. 이두환 작가는 창작과정에 있어서 이와는 상대적으로 정신에 집중함으로써 형상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때문에 이두환 작가의 작품은 차용된 도상들만 본다면 어렵지 않은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형상과 정신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모순된 통일체이다.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작가와 소통하며 그 형식과 내용의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한다. 이두환 작가의 작품에 표현되는 소재와 대상은 작가의 현재 상태나 의식이 투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는 자화상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작품 속 형상들이 피사체로서 갖게 되는 외형적 한계를 벗어나 감상자와 공명(共鳴)하여 사유의 잔잔한 영역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두환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형상들을 기의(記意)나 기표(記標)로 구분지어 말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또한 암시적인 메타포(metaphor)가 그의 작품을 모두 설명할 수도 없다. 그는 관념 뒤로 숨지 않는다. 은유의 또 다른 방식이며 그것이 그의 당당함이다. 이두환 작가는 전통 적묵법(積墨法)을 변형하여 사용한다. 쌓는 것이 아니라 교차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결이 생겨나고 겹이 만들어 진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많은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복잡다단함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투영해 교차시키는 작업과정은 자신이 느껴온 관계와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변화를 말하는 과정이며 외부 대상과 내면에 대한 사유와 인식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가 위대하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아니라 생존해 가는 과정에 있다. 이는 살아가며 접하게 되는 무수한 대상과 감정들에 대한 평가와 판단보다는 인식해 가는 과정에 더욱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신훈 (문화재학 박사, 원광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