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2018-01-12 상상력과 꿈꾸기의 DNA를 가진 작가-이재언
상상력과 꿈꾸기의 DNA를 가진 작가

    얼마 전 조각가 민성호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그의 대형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2007년 카라라 체류중 잠시 귀국하여 개인전을 가졌을 때 보았던 ‘날아가다’의 연속물이었다. 그로테스크한 변형과 트랜스포머 같은 이중적인 이미지,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이고 심각하면서도 캐릭터 모형 같은 가벼움과 코믹함이 살짝 묻어 있는 특이함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설정이 비현실적인 것이면서도 얼굴의 표정만큼은 속도감만큼의 상기된 상태이다. 근원을 모를 자아의 불안이라는 행간을 살짝 읽을 수 있다. 언뜻 작가 자신의 얼굴인 것도 같은 느낌의 얼굴들이 대부분 그런 표정들이었다. 작업노트에서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일련의 흔적’이라고 밝히고도 있지만, ‘얼굴은 실재하는 허구’라는 명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얼굴은 성인의 얼굴인데, 몸통은 이제 막 자아의 정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영아기 유아의 모습이다. 이런 작가의 얼굴 시리즈는 자아의 자율성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밝히려 했던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거울 단계 이론’을 연상시키고 있다. 거울 단계 이론에 의하면, 거울에 비친 자기의 이미지는 단지 신체가 현실적 공간에 반영된 것으로, 그것은 그림자이며, 그것은 자기의 실재 혹은 내면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주체에 대해 언제나 타자로만 머물며 이상화되기 쉽다는 것이다. 결국 거울 단계는 행복한 단계이기는 하지만, 허구적인 단계이며, 타자를 통해서만 자아가 구성되는 단계이다. 따라서 그 원형은 언제나 자기 소외적인 것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자아에 대한 불안의 근본 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의도된 결과인지 확인한 바 없지만 작품들이 아주 흡사한 맥락이다.
    이후 작가의 작품은 ‘집’ 시리즈를 선보였다. 조그맣고 아담한 집에서 뿜어낸 연기가 바람에 휩쓸려 옆으로 날리고 있는(땅에 닿는) 모습의 작품들이다. 기이하고 심각한 작품만 선보였던 작가가 서정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선보인 것이 어딘지 생뚱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반전과도 같은 이중적 코드가 내장되어 있다. 구름 같은 연기의 끄트머리에 귀의 형상이 숨어(변형되어) 있는 것이다. 꿈을 꾸는 귀, 어디선가 흘러온 선율을 듣는 귀, 진실을 듣는 귀이다. 이제 무한한 상상의 바다 위에서 그것의 기호적, 상징적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가 즐겨 구사하는 어법은 언제나 다중적이다. 때로는 그러한 다중 코드가 조금은 편하게 교감하기보다는 긴장하여 독해에 집중해야 하는 점도 있지만, 작가의 거칠 것 없는 번득이는 감각은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여도 좋다. 길들여지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적인 세계는 찰나의 교감보다는 점수(漸修)하듯 두고두고 음미할 때마다 신선한 묘미가 솟는 것이다. 작가의 조각은 ‘낯설게 하기’ (Dépaysement)의 조합이기에 다듬어진 것에만 익숙한 감각에는 뜸 들이는 과정을 조금 필요로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에서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친다.  
    작가가 그토록 다중적인 코드의 작품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무의식적 배후가 있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의식 너머의 상상력에서 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인류의 상상력은 대개 무엇과 무엇의 결합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그러한 합성물은 무수히 등장한다. 켄타우로스(반인반마), 키메라(사자/염소/뱀), 라미아(여자상반신/뱀 하반신), 미노타우로스(황소 머리 남자)......등 수많은 혼성종들을 만들어낸 상상의 원형 혹은 DNA는 지금도 활발히 작용한다. 가장 최근에 컴퓨터와 전화기를 합성시켜 ‘똑똑한 전화기’를 만든 스티브 잡스도 그 DNA가 두드러졌던 사람이다. 민성호 작가도 유독 꿈꾸기와 상상력이 두드러지는 사람인 것이다. 뭇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DNA 말이다.
                                 
                                                      이      재      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