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좋은 작가의 길 (제8회 개인전)-우제길

좋은 작가의 길  (제8회 개인전)
                                                              우제길(서양화가)


 대부분의 작가들은 스스로 어려운 작업 과정을 선택하며 자기만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 낸다. 어렵고 힘든 작업 끝에 이루어지는 결과이기에 값진 자기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다. 작가 류현자의 경우가 그러하다.
 작가 류현자의 작업은 이렇다. 지인들의 한국화 작업실 등에서 구한 폐 한지들이 밑 작업의 재료가 된다. 많은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고뇌가 배어있는 폐지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퍽 의미 있는 일이였다고 한다. 그 폐 한지들을 물에 불린 후 풀로 재 반죽하여 밑그림을 그려놓은 화판에 손으로 꾹꾹 눌러 입체감을 내가면서 그 과정에 풀비와 붓이 동원되는 등 작가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을 것이다. 1cm정도의 두께가 되는 동안 작가는 수 없이 많은 대화들을 속삭이며 혼을 부어넣듯 손놀림을 계속하게 된다. 붙여진 밑 작업은 그 두께 때문에 건조 시키는 시간도 꽤 많이 소요되는데 성급한 나머지 햇볕에 말리면 한지의 강한 내구성 때문에 화판이 그냥 뒤틀리게 된다. 지금까지의 고생결과를 잃고 마는 것이다.
 이상은 작가의 작업과정 일부분이다. 한 점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길고 험한 고난의 시간이 지루하게 이어짐을 그냥 가늠케 한다. 작가다운 그녀만의 장인정신을 확실히 엿 볼 수가 있다.
 네모 산수라는 독특한 표현에서 줄곧 작품을 해오던 작가는 돌연 탈출을 시도했다. 바로 버선을 주제로 그만의 한국적인 소재를 찾아 4년째 해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대동갤러리 전시에서 주로 버선을 주제로 「사모곡(思母曲)」이라는 타이틀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위한 작업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먼저 작가의 어머니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우연찮게 이웃에 살면서 간혹 작가의 어머니를 뵐 수가 있었다. 고운 얼굴에 늘 낭자머리로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으셨다. 음식 만드는 솜씨 또한 남다르시다. 그 어머니를 생각하는 딸은 효성스런 많은 생각들로 만리장성 같은 긴 이야기들을 쌓아 왔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머니께 못 다한 사연들이 쌓이고 쌓여서 작업으로 다시 탄생된 것이리라. 어머니라는 이미지와 겹쳐지는 버선의 형태를 이용하여 다시 한 번 자신만의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사모곡으로 재해석해 낸 것이다. 한지의 선택만으로도 작가는 자기 몫을 톡톡히 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그것은 국립예술대학에서 잘 익힌 기초를 가졌음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서 이젠 차츰 잊혀가고 신겨지지 않는 채 외면 받고 있는  버선은 참으로 아쉬움이 많다. 버선 대신 서양식의 스타킹으로 바꿔버린 지 오래이다. 우리들의 버선은 한국적인 선과 아름답고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운 배치, 배합은 버선만의 독창적인 조형성이며 매우 친근하면서도 한국적인 소재이다. 작가는 수 없이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자기만의 새로운 버선을 만들어 우리들 앞에 당당히 서있는 것이다.  
 
 그녀는 1964년 첫 창립을 해 오늘날까지 이 지역 현대미술발전에 커다란 핵으로 발전해온 (사)현대미술 에뽀끄회 모임에 5년 전 회원이 되었다. 7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어깨를 함께 하며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는 스스로 작품에 자신감을 가졌기에 회원이 되기를 자청했음에 만족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세계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다른 회원보다 독특한 작업을 던져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 스스로 치열한 싸움과 좋은 작가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회원으로서의 자기 몫을 잘 감당해주었다. 그녀의 인간성과 작가다운 면모를 가깝게 만날 수가 있었다.   
 
 이번 작품전에 陶版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한지 작업에 멈추지 아니하고 새로운 세계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본 것이다. 이 또한 가마와 불 그리고 요변으로 인한 실패확률이 70%를 오가는 체험을 하면서 작가의 또 다른 의욕을 제시한 것이다. 두 번 굽기를 통하여 얻어지는 결과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더욱 새로운 것에 도전한 것이다. 山淸土, 靑瓷土, 組合土, 白土 등이 한지와 잠시 바뀌는 작업에서 작가만이 느끼는 희열을 맛보았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하여 가마 그리고 흙들과 몸부림했던 결과를 지켜볼 수 있었다. 지금의 작업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시도로 한걸음 딛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류현자의 프로다운 작가정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좋은 작가의 길을 택한 작가로서 언제나 새로움에 도전할 수 있는 그녀에게 많은 기대를 가져본다.   

버선 형태의 조형성과 현대성(제 7회 개인전)-장석원

 

버선 형태의 조형성과 현대성(제 7회 개인전)
장석원(미술평론가)

작년 겨울부터 버선의 조형적 형태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한국화가 류현자는 그동안 지속해온 작업 방식에 리드미컬한 변화를 불어넣고 있다. 폐한지를 녹여 새롭게 마티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닥이 든 질긴 순지를 정교하게 붙이고 채색을 가미하는 방식은 같지만, 줄곧 중시해오던 네모산수로부터 버선 형태로 조형적 중심이 옮겨지면서 그녀의 예술적 감성은 활짝 개화되고 있다. 버선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를 묻자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생각이 나고 자연스럽게 여성적 테마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버선이었다”고 답한다. 부연하기를 버선 안에는 가장 한국적인 조형 형태가 여러모로 숨겨져 있어서 원하는 조형적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여자란 무엇인가? 나이가 들면서 여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하고 또 여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버선 작업은 추상성과 평면성을 갖추면서 한지 고유의 재료감을 중시한다. 형태는 중첩되고 높고 낮은 하이어라키를 드러내며 짜임새 있는 컴포지션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평면 개념은 모더니즘 회화가 추구해온 순수 가치이고 그녀의 경우 한국화라는 틀 위에서 밀도 있게 적용시키고 있다. 최근 그녀가 의식하고 있는 여성성도 순수 회화가 갖기 쉬운 결벽성 위에 가미되는 문화적 취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용케도 그녀다운 요소를 짚어 예술적 감성의 작품성을 배태시킨다. 한 작가가 작업을 지속하면서 10년, 20년 세월을 산다는 것은 그 삶 자체가 점점 예술과 동화되는 시간대의 층이 두터워진다는 것이고 결국 삶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지속적인 작업은 점차 그녀를 궁극적인 단계에로 나아가게끔 밀어주고 있다.
네모산수라는 독특한 이름의 추상적 산수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던 그녀가 버선이라는 형태를 빌려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코드를 사용하게 된 것은 전통적 틀보다는 현대적인 예술적 실현을 중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갈수록 국제화되는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보다 보편적인 언어와 뚜렷한 정체성을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국적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예술성은 어디 있는 것일까? 네모산수 역시 그녀의 작가적 면모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독창성을 띠고 있었다. 산수를 부감적 시선으로 내려다 봤을 때 오는 조형성을 네모 형태로 추상화시킨 것이다. 그녀의 독자적인 조형성의 근거를 여기에 두고 버선 형태로 옮겨 가면서 다양해졌지만, 이 두 개의 요소는 같은 화면상에서 자주 콤비를 이루며 나타난다. 구획과 리듬, 산과 바람처럼 그것들을 서로 어울리며 하나를 이룬다.
현충일 기념으로 대동문화 플랜으로 완도 소안에서 항일기념탑을 본 그녀는 초록색 바탕에 붉은 기념탑이 강하게 대조를 이루는 작업을 했다. 색채는 선명하고 강하며 심플하다. 시골섬마을에서 펼쳐졌던 항일운동의 깊은 인상이 보색 대비의 강렬한 작업으로 귀결되었다. 또 함평 김철 기념관에서 봤던 단심송(斷心松)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대지를 연상시키는 산 위에 외롭게 서있는 소나무를 그려내게 하였다. 항일 운동으로 밖을 떠도는 지아비의 짐을 덜어주기 위하여 스스로 소나무에 목을 매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녀의 작업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여성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서 더 나아가 사람은 무엇을 중시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가치관에 접촉되고 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하나의 질문에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었다. 그러나 예술이 예술 하나의 질문에만 매달려 답을 찾는 것보다 예술 바깥의 중요한 질문과 접촉하는 것도 예술 자체에 대한 관심과 마찬가지로 흥미롭다.  

 

류현자 작품전에 붙여 (제 1회 개인전)-정금희

류현자 작품전에 붙여 (제 1회 개인전)

                                                    정금희 (미술사학박사, 미술평론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는 지향점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것 하나는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그 행복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알콩 달콩 쌓아가는 소박한 것일 수도 있고, 숨 가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재능을 한껏 발휘하며 인정받는 것일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살면서 부딪치는 난관이나 삶의 황폐함은 어디서나 복병처럼 나타나기 마련. 그렇게 삶의 매듭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연을 찾는다. 자연만큼, 자연안네서 만큼 우리들의 닫힌 마음을 풀어내고 위안을 받는 대상이 또 있을까.
  한국화가 류현자의 경우도 그러한 것 같다. 그는 일찍이 ‘자연’에 주목했다. 한국화를 전공한 화가들이 대개 그렇듯이 산수를 가까이 하는 것은 필연적이었겠지만 그는 산수를 단지 화폭에 담아내는 하나의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 자신만의 회화적 여로의 동반으로 삼은 것 같다. 지난 94년 대학원 논문의 주제도 그 자신의 관심사였던 자연데 관한, 즉 ‘우리나라 산수화에 나타난 자연주의 사상의 연구-조선시대 산수화를 중심으로’로 삼았으니 말이다. 그는 대자연의 진경(眞景)과 마음의 신운(神韻)을 산수의 형상을 통해 드러낸 우리나라 산수화에 대한 탐색을 오랜 학업의 연구과제로 삼을 만큼 산수화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 온 것이다.
  그의 이번 작품전은 첫 번째 개인전이다. 그동안 꾸준히 여러 그룹전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일관된 경향의 작품을 발표해 왔지만 그만의 본격적인 작품세계를 한데 모아서 작품전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번 개인전에서 그만의 자연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산이 있되 산의 형상을 실사(實寫)하지 않고 산 첩첩 겹겹이 싸이는 봉우리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표현된 산등성이들은 뭉툭한 질감이 느껴지는데, 그 기법은 한지를 잘게 다져 물에 불린 다음, 다시 곱게 이겨서 부조와 같은 효과를 낸 뒤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색채를 입히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통해 표현된 산의 마티에르는 정말 거친 돌산의 느낌을 준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만져서 까칠까칠한 돌의 질감을 느끼고 싶은 충동을 준다. 산은 다시금 그가 사용한 색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한국화의 주된 색인 적, 황, 록, 청은 기본이고 새벽의 미명을 알리는 짙은 청 보랏빛에서 부터 연두빛과 황토빛으로 따스하고 평화로운 빛을 여는 개명을 나타내기도 하고, 열정의 암적색을 통해 미술에 대한 진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그는 그가 부릴 수 있는 색이란 색은 다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색을 통해 그가 화가로서 어떻게 예술의 행로를 잡아 나아갈 것인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선이 굵은 편이다. 자연은 그에게 있어 단단한 수직과 엷은 은파처럼 점점 넓게 펼쳐지는 수평의 단조로운 구성이다 그런 단조로움은 정돈된 그의 미적 세계와 맞물려 보는 이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저 산 너머엔 또 저 산 너머엔... 하는 식으로, 혹은 저 물결 너머엔 또 저 물결 너머엔... 하는 식으로 마치 우리가 자연의 품에 안겨 드넓은 세상을 꿈꾸듯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여 이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작품 가운데는 작가 특유의 여성적인 섬세한 감수성이 있어 문득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른 봄, 산과 달이 시처럼 떠오르는 화면에 산 저편 환하게 피어있는 목련꽃이나 세필로 묘사한 수선화는 그가 대법하게 구성한 자연과는 달리 또 다른 그리움을 안겨준다. 어느 그림에선가는 살짝 버선발을 드러낸 신윤복의 미인도를 그대로 모사한 인물화를 수줍게 그려 그가 인물화에도 만만치 않은 필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렇듯 그가 일관되게 자연을 재구성한 작품을 보여주면서 소개하고 있는 꽃그림은 그의 이면의 이력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아름다운 달이 없어도 그 꽃봉오리 하나로 봄밤을 환하게 밝히는 그의 목련꽃을 보노라니 봄이 멀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어느 해 봄밤 몇 날을 헤매었을까. 꽃등처럼 환하게 떠오르는 목련꽃을 그리기 위하여 그는 수많은 봄밤 기분 좋은 바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의 예술세계가 목련꽃처럼 환하고 밝게 빛나기를 기원한다.

 

류현자, 금강경 반야심경으로 그린 '사모곡'
류현자, 금강경 반야심경으로 그린 '사모곡'

류현자의 어머니의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사모곡을 보고 읽을 수 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한 글자 한 글자 사경(寫經)한 류현자의 ‘사모곡- 그 숲에 들다’ 전이 6일~8월 19일까지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류현자의 18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회에는 어릴 적 이른 새벽이면 냉기 감도는 컴컴한 부엌의 부뚜막에 정갈한 냉수 한 사발을 떠놓으시던 엄마의 모습과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한 어머니의 소박한 의식을 사경으로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녀는 “나이를 먹으니 잠이 없어져 새벽이 길다.’라는 시를 새벽이면 서툰 솜씨로 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한자 씩 한 자씩 꾹꾹 눌러 쓰시던 모습이 또 눈에 들어와 가슴에 콕 박혔다. ”고 쓰고 있다.

또 여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엄마를 닮아간다고 한다. 평소에도 네 자매 중 유독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 왔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많이 닮은 것 같다. 자식을 위한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이 마치 인생의 목표인 양 살아오신 엄마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고 썼다.

이번 ‘사모곡’ 시리즈는 어머님이 가지고 있던 그 순수한 의식 속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각박한 현재의 삶 속에서 어머니가 가진, 어머니에 대한, 어머니를 위한 깊은 사랑과 소중함을 금강경과 반야심경에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다.

류현자는 전남대 예술대학 및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광주, 서울,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18회 가졌고 200회가 넘는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꾸준한 창착활동을 펼치고 있다.
'버선'으로 펼쳐낸 '사모곡'
'버선'으로 펼쳐낸 '사모곡'


‘버선’을 주된 소재로 2008년부터 ‘사모곡’ 연작을 계속해 온 중견 한국화가 류현자 개인전이 광주 롯데갤러리 창작지원공모 선정작가 초대전으로 문을 열었다. 벌써 아홉 번째 개인전인데, 5월 25일 시작해서 6월 4일까지 광주전을 갖고, 바로 이어 6월 6일부터 11일까지는 서울 인사아트센터로 옮겨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작품들은 작년과 올해 제작한 최근작들로, ‘버선’의 상징적 의미와 오방색을 결합한 조형미를 결합시켜낸 채색화들이다. 이들 조형언어는 일정한 패턴을 갖는 시각적 구성양식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작가의 내면세계나 정신적 바탕에 깔려 있는 천성적 자기규범과 내적 질서가 화면형식을 빌어 담겨져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제로 삼은 ‘사모곡’은 무명초처럼 질기고 고단한 삶을 헤쳐 온 모친에 대한 애틋한 연민과 그리움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디어 오신 이 땅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소재”로서 ‘버선’은 일종의 마음의 고향에 관한 상징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버선형태를 이루는 여러 곡선들이 갖는 한국문화의 특성과 조형적 매력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여러 유형의 곡선과 직선이 결합되어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하고, 때로는 강인해 보이기도 하면서 이합집산(離合集散)으로 중첩되고 확장되며 화폭마다 각기 다른 운율(韻律)을 만들어낸다.


특히 일반 한국화와 달리 두텁고 투박한 질감의 버선형태 면구성과 선명한 원색들이 돋보이는데, 여러 번 덧바른 호분의 흰 바탕으로 화면의 무한한 깊이와 공간감을 열어두고, 그 하얀 화면에 번잡스러움이나 잔상을 없앤 고요하게 침잠된 비어있는 공간과, 종이죽으로 일정 두께를 올려 부분 부분 작은 면들을 채워내면서 거칠고 투박한 촉각적 효과의 면들을 대비시켜내었다.


더하여 그 위에 수없이 덧칠하여 우려낸 오방색을 입히는데, 원래의 다섯 색에서 먹색은 화면효과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대신 녹색과 연두, 주황 같은 색을 더하여 화면에 화사한 생기를 북돋우었다. 이들 오방색에서 노랑은 드러날 듯 말 듯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노랑으로 상징되는 흙 또는 대지(土)는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새 생명을 생장시키는 바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류현자의 ‘사모곡’ 화면들은 색채와 질감의 변화들로 조이고 풀어지면서 다양한 변주(變奏)를 계속한다. 그 대부분의 작업은 작가 자신의 삶의 태도이자 방식으로서 의식적이든 무작위적이든 스스로 설정한 미적 규범과 내재율이 화폭마다 일정하게 적용되어 나타난 것들이다.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혼돈스런 세태와 정신적 분열현상들이 연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 마음의 근간을 자연 본래의 이법에서 찾아 그 본질적 뿌리인 내적 질서를 조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일탈을 꿈꾸고 흐트러지기 쉬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근본자리로 다잡아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지금의 류현자의 작업들은 지극히 절제된 조형언어들이면서 “비우기 위해 먼저 원 없이 채워보는 과정”이라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털어내는 것에 대한 고심”을 이후 작업의 화두(畵頭)로 삼아보겠다 한다. 소재나 개념, 시각적 형식에서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추구하면서 삶이나 작업의 근간(根幹)을 늘 굳건히 다지고, 무시로 흔들리지 않는 이 밑뿌리를 토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조형세계에 일념으로 용맹정진(勇猛精進)해 나가리라고 본다.
근원미로서 조형적 질서와 내재율_조인호(미술사, 광주비엔날레 정책연구실장)
근원미로서 조형적 질서와 내재율_조인호(미술사, 광주비엔날레 정책연구실장)

류현자의 회화작업에는 고전적 질서와 내재율(內在律)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그 내재율은 자연이법(理法)이나 생명의 파장으로 나타나는 가시적 비가시적 세계의 일정한 현상이자, 균형 잡힌 세계의 조화로운 미적 양태(樣態)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는 시각적 조형질서를 이성적으로 구현해내는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미학과는 다른 차원의 근원적 미에 대한 탐구이기도 한데, 류현자 작업에서 나타나는 본연의 미적 성향이기도 하다.    

이전에 수년 동안 몰입했던 ‘네모산수’ 연작도 “작업의 동기는 자연이면서 전통산수나 관념산수보다는 조형적인 작업 쪽에 훨씬 더 마음이 끌렸다”(2011년 작업메모 증) 한다. 세상에 드러난 형상은 무궁무진 각양각색이지만 그 자연생명들의 생멸(生滅)과 운행원리(運行原理)는 일정한 이치와 질서의 순환과정들이다. 이런 드러나 보이지 않는 세상만물의 생명원리를 절제된 단색조의 네모형태 파장들로 함축시켜내었던 것이다. 

이들 ‘네모산수’의 경험은 2008년 이후 ‘버선’을 소재로 한 <사모곡> 연작으로 전환되었고, 따라서 곡선적 요소들과 선명한 오방색 설채(設彩)작업 위주로 크게 달라졌다. 물론, ‘버선’을 주된 소재로 삼은 것은 관념적 옛것에 대한 회고취미(回顧趣味)나 그 현대적 형식미의 탐구에 머물기보다 삶의 근원과 본질적 가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를 변화된 시대감각에 맞게 재해석해내는 조형적 구성형식에 대한 탐구가 우선이었다. 
    
‘네모산수’나 ‘사모곡’이나 류현자가 수년 동안 집중하고 있는 이들 조형언어는 일정한 패턴을 갖는 시각적 구성양식을 억지스럽게 만들어내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세계나 정신적 바탕에 깔려 있는 천성적 자기규범과 내적 질서가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나날의 생활 자체가 자연과 더불어 이루어지던 지난날의 전통회화는 자연교감과 감흥을 위주로 얇은 화선지 위에 필묵의 맛을 살려 산수 자연소재를 풀어내었지만, 지금 작가는 문명사회 속에서 수많은 시간과 세월을 지나오면서 자기 안에서 응축되어진 세상 삶과 문화에 관한 감각과 이야기들을 단단하게 짜여진 화판 위에 절제된 형식으로 드러내고 구축시켜내는 과정들에 훨씬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작품에서 보여지 듯 최근 류현자의 작업은 대부분 ‘버선’을 소재로 한 <사모곡> 연작이다. ‘사모곡’이라 함은 무명초처럼 질기고 고단한 삶을 헤쳐 온 모친에 대한 애틋한 연민과 그리움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디어 오신 이 땅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소재”로서 ‘버선’은 일종의 마음의 고향에 관한 상징적 표상인 셈이다. 거기에 버선형태를 이루는 여러 곡선들에서 느껴지는 한국문화의 특징이자 조형적 매력도 오랜 시간을 투여할만한 화제로 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여러 유형의 곡선과 직선이 결합된 ‘버선’의 모양은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하고, 때로는 강인해 보이기도 하면서 이합집산(離合集散)으로 중첩되고 확장되며 화폭마다 각기 다른 운율(韻律)을 만들어낸다. 이들 버선 곡선에서 작가는 첩첩으로 둘러선 한국의 산세,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듯한 기와집 처마선들의 군무(群舞), 고향이기도 한 생명의 품으로서 어머니 가슴선, 장단에 맞춰 너울거리는 전통 춤사위, 어린 아이의 보드라운 엉덩이, 만개하듯 부풀어 올라 두 개로 쪼개 놓은 보름달의 풍만감 등등 많은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발견하고 또한 시각적 형식으로 상징화시켜 함축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단순형태 속에 아무리 많은 상징적 언어들을 담아내더라도 결국은 시각적 이미지가 관건인 만큼 그런 회화적 요소들이 미적으로 돋보일 수 있도록 여러 시도를 거듭하면서 류현자식으로 조율된 화면형식을 일구어낸다. 여러 번 덧바른 호분의 흰 바탕으로 화면의 무한한 깊이와 공간감을 열어두고, 그 하얀 화면에 번잡스러움이나 잔상을 없앤 고요하게 침잠된 비어있는 공간과, 종이죽으로 일정 두께를 올려 부분 부분 작은 면들을 채워내면서 거칠고 투박한 촉각적 효과의 면들을 대비시켜낸다. 더하여 그 위에 수없이 덧칠하여 우려낸 오방색을 입히는데, 원래의 다섯 색에서 먹색은 화면효과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대신 녹색과 연두, 주황 같은 색을 더하여 화면에 화사한 생기를 북돋운다. 이들 오방색에서 노랑은 드러날 듯 말 듯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노랑으로 상징되는 흙 또는 대지(土)는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새 생명을 생장시키는 바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본인의 체질이 토(土)이기도 하지만 화업(畵業)이나 삶에서 지향하는 마음다짐이기도 하다.  

근래 작업들에서는 ‘버선’의 조형적인 구성 속에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사경(寫經)을 곁들이고 있다. 화폭에 따라 다양한 구성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일정한 기하학적 패턴들로 연출되는 화면에 역시 일정한 간격과 열을 지어 써 내려가는 사경으로 서예라는 전통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마음공부로써 작업에 몰입하는 방편으로 삼기도 한다. 물론 색면 위주의 화면구성에서 경전 글귀들이 띠를 이루며 함께 패턴을 이루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글씨의 먹색들이 바탕보다 두드러져 적요(寂寥)를 깨거나 시각적 충돌을 만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경을 접목시키되 화면에서 안착시키는 시각적 조율작업을 과제로 삼고 있기도 하다.    
    
류현자의 ‘사모곡’ 화면들은 색채와 질감의 변화들로 조이고 풀어지면서 다양한 변주(變奏)를 계속한다. 그 대부분의 작업은 작가 자신의 삶의 태도이자 방식으로서 의식적이든 무작위적이든 스스로 설정한 미적 규범과 내재율이 화폭마다 일정하게 적용되어 나타난 것들이다.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혼돈스런 세태와 정신적 분열현상들이 연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 마음의 근간을 자연 본래의 이법에서 찾아 그 본질적 뿌리인 내적 질서를 조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일탈을 꿈꾸고 흐트러지기 쉬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근본자리로 다잡아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지금의 류현자의 작업들은 지극히 절제된 조형언어들이면서 “비우기 위해 먼저 원 없이 채워보는 과정”이라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털어내는 것에 대한 고심”을 이후 작업의 화두(畵頭)로 삼아보려 한다. 소재나 개념, 시각적 형식에서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추구하면서 삶이나 작업의 근간(根幹)을 늘 굳건히 다지고, 무시로 흔들리지 않는 이 밑뿌리를 토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조형세계에 일념으로 용맹정진(勇猛精進)해 나가리라고 본다.  

- 조인호(미술사, 광주비엔날레 정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