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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

- 네덜란드 화가. 빛의 미술가


출생 1606년 7월 15일

사망 1669년 10월 4일

출신지 네덜란드  

경력 1647년 에칭 작품 ‘얀 시크스 상’, 소묘 ‘레넹 시의 서문’ 제작


1625년 제작 연도를 넣은 최초의 작품 '성 스테판의 순교' 제작

1606년 7월 15일, 렘브란트는 레이덴 시의 외곽에서 방앗간을 운영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레이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모님은 렘브란트가 라틴어를 배우도록 레이덴 대학 인문학부에 보낸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타고난 재능 때문에 학교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부모님은 렘브란트의 고집대로 학교를 그만 두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나온 그는 인기있는 화가인 야곱 이삭 반스바넨뷔르흐 공방에 들어가 삼 년 동안 그림을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렘브란트의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언제나 아낌없는 후원을 주었다. 그 예로 렘브란트의 공방 생활이 끝나자 아버지는 그를 더 넓은 세상인 암스테르담으로 유학을 보냈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 가서 라스트만에게 역사화를 배웠다. 역사화는 성서나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이지 않는 인물들을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운 주제였다. 이렇게 어려운 역사화였지만 박식한 라스트만 덕분에 렘브란트는 역사화가가 갖춰야할 식견을 갖추게 되었다. 

1623년. 반년동안 라스트만에게 그림을 배운 뒤, 렘브란트는 그의 고향인 레이덴으로 돌아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625년에 그는 방 한 칸을 얀 리벤스와 공동 작업실로 쓰고 드디어 화가로 독립했다. 또한 제자들까지 받았는데 그 때가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렘브란트가 화가로 독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작업장은 활기를 띠었다.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칭찬했고, 명망 높은 인문학자나 고위관직자들까지 그의 그림에 존경을 표했다. 1631년에는 그림 상인 핸드리크 오일렌부르크가 아예 렘브란트에게 작업실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암스테르담의 귀족들과 돈이 많은 시민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며 상당한 돈을 벌었다. 이렇게 암스테르담은 렘브란트에게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가져다주는 행운의 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렘브란트는 오일렌부르크의 조카딸인 아름다운 사스키아를 소개 받았다. 그 후 그는 사스키아와 결혼을 하고 작업실도 새로 얻어 작업을 계속했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최고 화가로 명성을 떨친 전성기와는 반대로 외롭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그가 낳은 세 명의 자식은 모두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렘브란트가 사랑했던 사스키아마저 넷째 아기를 낳고서 죽었다. 이렇게 렘브란트는 가족들을 떠나보내고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그의 예술이 빛을 발하는 때가 바로 이 시기가 된다. 이때 그린 그림이 렘브란트의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야경>이다. 

몇 해가 흐른 뒤, 렘브란트는 어린 헨드리키를 만났다. 그녀는 사스키아와 쌍둥이처럼 닮아 서 렘브란트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후 1654년, 렘브란트와 헨드리키에의 사이에서 딸이 생겼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혼인도 안한 남녀에게서 아이가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둘은 결혼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해상권 장악문제를 두고 일어났던 전쟁은 네덜란드의 나라 살림을 급격하게 기울게 했다. 렘브란트도 이 영향을 받아 살림살이가 기울었다. 마침내 그에게 파산선고가 내려졌고 그가 아끼던 수집품들과 미술 작품까지 경매에 붙여졌다. 결국 렘브란트와 헨드리키에, 그리고 티투스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한 동네로 이사했다.

렘브란트는 말년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신고전주의의 바람과 느린 작업속도 때문에 예전처럼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 후헨드리키에와 티투스를먼저 떠나보내고 1669년 10월 4일, 그의 나이 63살에 그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 《엠마오의 그리스도 Christ at Emmaus》(1648)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