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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후기인상주의 네덜란드의 천재화가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남부의 노르트브라반트 주에 있는 브레다와 인접한 쥔더르트에서 출생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신앙심이 깊어 한 때 신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전도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시에가 쓴 밀레의 전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결국 그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880년 고흐는 그의 동생의 제안에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 무렵 빈센트는 짧은 시간 동안 헤이그 미술학교에서 안톤 모브로부터 그림 수업을 받는다. 그 둘은 후에 예술적인 관점의 차이로 헤어졌지만, 헤이그 학교에서의 모브의 영향은 고흐가 빛을 다루는 방식과 그의 산만한 붓자국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브와 비교해 고흐가  대체적으로 어두운 색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 둘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는 1886년 파리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의 동생의 소개로 피사로와 모네, 그리고 고갱등의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물건의 고유한 색을 나타내기보다는 화가 자신이 느낀대로 표현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으로 인해 어두웠던 그의 채색과 그림은 점차 밝고 선명해진다. 그 후 고흐는 프랑스 남쪽의 '아를'에 노란 집을 화가 공동체의 거점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파리에 있는 친구들을 초대한다. 이 초대에 많은 친구들 중 단 한 명, 고갱만이 응했고, 이것은 추후에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흐와 고갱의 싸움이다. 고흐와 고갱은 둘 다 예술적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 같이 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둘은 심하게 다투고 절교하게 된다. 고흐와 고갱의 다툼 사건이 있은 후, 고흐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을 괴롭혀온 환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베어 버렸다. 그 후 고흐는 이따금 광기가 나타나며 이상 행동을 보였고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1890년에는 브뤼셀의 20인전에 그의 유화 6점이 전시되었고, 안나 보흐라는 사람이 이 전시회에 전시되었던 ‘붉은 포도밭’이라는 고흐의 작품을 샀다. 이것은 그의 평생에 팔린 단 하나의 유화 작품이 되었다. 이 때에도 고흐의 간질성 발작이 계속 되었는데, 결국 그는 요양원의 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거처를 옮긴다. 그는 그곳에서 의사의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1890년 7월 27일, 그는 스스로 가슴에 총탄을 쏘고 동생의 품에 안긴 채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격렬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그린 ‘영혼의 화가’ 고흐. 그는 자포니즘의 기수로 일본 화풍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일본 판화의 직접적이고 강렬한 효과와 비슷한 색채법을 고흐의 그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함 속에서 인상주의와 쇠라의 점묘법에서 배운 교훈에 따른 섬세함과 치밀함 역시 나타난다.
 고흐는 자연을 정확히 묘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격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원색의 색과 다양한 붓놀림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인상파와의 교류가 잦았던 사람인만큼 자신이 느낀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자신의 감정표현을 위해서라면 형태의 과장이나 변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작품 세계를 낳았고 미술사에 큰 영향을 주는 화가가 되었다.

반 고흐가 사망한지 100년 뒤인 199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가셰박사의 초상화>가 경매 사상 최고 거리가인 8,250만달러에 낙찰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 <아를의 침실>(1888년), <밤의 카페 테라스>(1888년), <붉은 포도밭>(1888년), <별이 빛나는 밤>(1889년), <아이리스>(1889년), <정물: 꽃병에 꽂힌 열 두 송이 해바라기>(1889년), <수염 없는 예술가의 초상>(1889년), <가셰 박사의 초상>(1890년),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