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2021 서울아트쇼 보도자료


 

동화(同化)된다는 것_ 차수임의 자연이야기

동화(同化)된다는 것_ 차수임의 자연이야기

 

 

 

어느 날,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계절의 변화를 문득 느낍니다. 봄을 채 느끼기도 전에 이유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봅니다. 봄이지나 여름이 오는, 여름의 기운 느끼는 지점에서 젖어있는 나뭇잎을 발견합니다. 낙엽이 아니라 나뭇잎입니다. 수분을 머금은 채 떨어진 이파리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편안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봄을 지나 여름의 볕을 잔뜩 머금은 리듬이 있습니다. <자연_사랑스러운 여름>입니다. 

 

자연에 동화되는 삶을 살고자하는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는 일  입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자연의 모습과 닮은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있음으로 해서 일어나는 자연의 이야기입니다. 

 

<자연>시리즈 작품의 시작이 여기에 있습니다. 눈으로 확인되는 색이나 모양보다는 몸으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에서 감성을 찾아냅니다. 생명의 순환이라는 회귀의 것보다는 지금의 가치와 지금에 느껴지는 감각에 치중합니다. 자연은 드러내어 표현하고자하는 내면이나 지난 시간과 추억에 대한 결과입니다.  자연은 자연 그자체로서 작품의 개념과 함께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엇에 걸려있는 자연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흔적과 감정과 감성이 켜켜이 쌓이면서 자연의 시리즈가 구성됩니다. 이것은 차수임 스스로가 추구하는 자연 동화와 관련된 서정적 표현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사람의 욕심이나 욕망에 희생당하거나 강요당하는 자연의 무엇은 사람이 붙여준 꽃말이 되고, 인간이 명명한 이름이 되는 것에 질문을 더합니다. 세상을 살아온 자신의 삶만큼의 자연이 아니라 이미 살아왔던 먼 옛날부터의 질문입니다. 차수임의 그림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특정의 대상을 찾기보다는 있는 자연에서 알아가는, 알아지는 마음의 모양입니다. 스스로 찾아내지 못한 감흥이나 감정에 대한 자유로운 이야기입니다. 

 

자연이 사람의 삶의 무엇도 관여하지 않지만 언제나 관여를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생존이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화가 차수임은 자연에서 답을 찾아나갑니다. 집착하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어느 비탈진 기슭의 야생화와 맞닿아있습니다. 이름을 얻지 못하였지만 자연의 일부로 의연한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자연의 사물을 재현하거나 그곳에서 익혀지는 조형감각보다는 자연의 일부로서 그냥 있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녀에 있어 그림이란 자연과 동화되는 일이며, 자연의 모습 자체를 그려보고자 하는 예술적 욕망의 과정입니다.    

 

작품<자연_장미>가 있습니다. ‘붉다’라는 장미의 색보다 장미라는 꽃 자체에 의미를 더 합니다. 자연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감성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자연의 일부에서 발견되거나 연상되는 상황을 묘사하기보다는 자연 자체와 동화되어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기본 모태입니다. ‘봄’, ‘숲’, ‘자유’ 등과 같은 작품의 명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자연의 모양을 그리는 풍경이나 정물은 화가의 입장에 따라 색이 변하고 모양이 변하여도 무엇을 그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에서 일어나는 감흥이나 자연 자체에 대한 이미지를 구성할 때는 개인의 경험과 개인의 마음에 준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묘사(描寫)를 하거나 모사(模寫)것이 아닌 이상 개인의 창의적 감성에 준하여야 합니다. 차수임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긴 모양보다는 그저 그렇게 생겨난 내면의 의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작품들은 주관적 범위에 있지만 차수임의 주관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과의 동화를 희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021년 5월 

 

박정수(미술평론, 정수아트센터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