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임영우(任英宇)의 평정(平靜)과 소나무_조영동 서양화가
임영우(任英宇)의 평정(平靜)과 소나무
- 조영동(趙榮東) 서양화가(西洋畵家)

임영우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아늑하고 소박한 곳 공주와 논산길의 갈림사이 산세가 있는 배경을 뒤로한 마을에서 돈독한 부모님의 애정을 받고 자랐다.
임영우와의 관계는 그가 공주 교육대학 재학시절 그의 가정을 방문하여 엄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애국지사이신 아버지와 어질고 유식한 어머니를 알고부터 시작되었고 서양화 구룹인“그릴회”를 통하여 밀도 높게 사제 관계보다는 인간관계로서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그의 성격이 맑고 투명하여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대인관계에서 남다른 애정의 점액성이 진한 것은 그 가정의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덧 그의 연륜이 고희를 넘어 그가 살아오며 터득한 나름대로의 고뇌와 갈등을 풀어 평정에 이르는 생활과 예술에 지향하고 있음은 본인으로서 얻은 결실이라 믿는다. 평정함의 자리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실됨이 사리와 그 이치의 값을 궁극적으로 밝힘이 목적이라면 선은 남에게 덕행으로 베푸는 행동의 실천이며 아름다움을 새롭게 볼 줄아는 영적 빛의 감응이다.
평정이란 늘 변화하는 사물의 진면모를 바라 볼 수 있는 아주 순수한 눈과 대상 사이에서 깨닫는 정관의 균제를 말한다. 그래서 사물의 실상은 보편적 지각을 뛰어 넘어 현상학적 원리를 딛고 본래의 질서와 생성 원리를 직관해 보는 새로운 안목과 자태가 본래의 질서와 생성원리를 직관해 보는 새로운 안목이 조형화 됨을 말한다, 자태가 본래의 모습을 가리워 관념화 되어 있고 어떤 다른 목적으로 포장되어 있는 조잡된 모습을 헤쳐 깨끗하고 참된 “눈”으로 되돌아와 형평을 가름하는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 과정의 “눈”에 의해 잡혀나가는 진행형이다.
평정에 이르는 열반하신 성철 스님의 선심(禪心)이“물은 물이오, 산은 산이라.”했듯 결코 안주된 편안함의 평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산이 산으로 물이 물로 되돌아오는 시각은 너무도 오랜 시간과 거리를 배회하고 귀화하는 무(無)의 자연에 제자리 매김의 통제적 자체를 말함인 것이다.
소나무는 독야청청 낙락장송으로 읊음처럼 그 모진 인고와 번뇌와 흥망성쇠를 거쳐 묵묵히 사계절을 반복하며 지켜가는 우리나라의 정서를 대표하는 나무이다. 추사의 세한도가 보여주는 소나무는 각고의 풍상(風霜)을 견디며 절제된 내적 혼을 몸매로 표현하였다. 이퇴계의 영송시, 윤선도의 송죽에 관한 십장생, 민화의 소나무는 곰 버섯이 피고 용트림하며 장엄하게 서 있으면서도 그 가지마다 흥과 율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 전래의 춤사위이며 몸짓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 적재된 기혼(氣魂)은 잠시도 멋음 없는 변화로 이어짐을 짐작한다.
임영우의 작품에서 소나무만을 고집한 것은 30년을 넘어 40년에 이르고 있다. 1985년도 작품전에서 필자는“(생략) 특히 임영우의 회화 생활은 외진 수업의 매듭이 송진 옹이처럼 맺히고 쩔어 외롭게 저항하면서 이제 청송에 한을 쪽달이 달무리져 울먹이듯 매서운 바람이 서려 있는 가락으로 조형화 되어 있다. (중략) 심한 넋두리를 내세움 없이 차갑게 속으로 챙겨진 서정의 가락이 그의 매찬 눈금처럼 여며진 화면에서 숨겨진 긴장이 누설된다. (생략)”라고 서술 하였다.
이제는 모진풍상을 딛고 따스한 봄기운이 감돌듯 포근함과 어깨를 마주하며 춤을 추는 운집된 소나무 그리고 한가롭게 옛 모습을 지니고 있는 기와집들이 작품에 등장하므로 본인의 삶을 조명하듯 표현하였으며 한국적 정감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항상 찾아나서야 하는 새 날과 새 공간이 새로 뜨는 햇살처럼 존재한다. 이제 임영우는 세상보는 눈이 한층 달라져 그 맑고 투명한 심성으로 평정을 더욱 심화시켜 좋은 그림을 그려 모든 이웃과 세상에 겸허한 자리를 굳히고 있다..

※ 서양화가 조영동 교수님
1933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 나셨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시었고 공주교육대학, 미국휴스턴 미술대학 초청교수,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셨으며 작품으로 국립미술관, 이탈리아 교황청 소장 등 1,000여 점의 작품이 있음. 현재 강릉에서 여생을 보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