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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Korean [경향신문] 티모르 지역개발을 위한 그림전 여는 강종열 화백
[경향신문] 티모르 지역개발을 위한 그림전 여는 강종열 화백
여수 | 김후남기자 hoo@kyunghyang.comㅣ경향신문
ㆍ슬픔의 섬, 너무나 아팠다… 화폭에 담은 ‘원색 희망’

‘바다’와 ‘동백꽃’의 화가 강종열 화백(57)은 여수에 산다. 젊은 시절 그는 유명 화랑의 전속 제의를 받고 서울행을 계획했지만 “바다를 그리는 자네가 바다를 떠나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겠나?”라는 친구의 충고에 주저앉았다. 아예 여수 시내 화실 문을 닫고, 여수에서도 바다가 가장 가깝고 잘 보이는 국동 언덕배기로 들어갔다.
 
강 화백의 바다 그림은 여느 바다 그림과 다르다. 표피적 느낌만 가볍게 문질러 놓은 인상파의 바다가 아니라 바다를 생계로 삼는 사람들의 바다, 힘들지만 굴하지 않는 사람들의 꿋꿋한 바다이다.

여수에는 동백꽃이 흔하다. 강 화백의 화실 앞에도 동백나무가 있고 매년 꽃을 피운다. 무심히 보아오던 그 꽃이 어느날 그를 움직였다. 그의 동백꽃 그림은 매년 11월6일이면 서울 삼청동 ‘빨간궁’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질 정도로 유명하다.

‘바다’와 ‘동백꽃’. 어쩌면 평온하다고 할 수 있는 일상적 주제를 깨고 그의 캔버스에 내전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시아의 최빈국 동티모르의 현실이 담기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다. 당시 순천을 방문한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을 만나면서 제3세계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구스마오 대통령을 만난 그해 여름, 강 화백은 동티모르로 날아갔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나라에서 그토록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슬픔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요.” 동티모르에 대한 강 화백의 첫 인상은 여느 열대 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무공해 자연이 주는 싱싱함과 아름다움은 ‘원더풀!’을 외칠 정도였다. 하지만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모습은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팠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윗옷과 신발을 벗고 다니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전쟁통에 부상을 당해 신체 일부가 훼손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신은 있는가 묻고 싶을 정도로 산 자의 모습이 주검보다 처절해 보였어요. 하지만 그들의 순박한 눈동자는 슬픔을 삼킨 채 묵묵히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지요.” 강 화백은 그들의 모습에서 비슷한 고통을 경험한 우리들의 과거, 우리들의 상처가 겹쳐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눈물을 훔치면서 동티모르의 현실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화가로서 늘 품어왔던 색(色)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

“동티모르의 때묻지 않은 원색의 자연과 그 자연을 닮은 사람들을 보면서, 진실을 표현하는 데는 많은 색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강 화백은 동티모르를 그린 작품 대부분에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을 썼다. 진실은 덧칠할 필요가 없는 본질, 원색 그 자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번 동티모르 지역개발을 위한 그림전은 제 자신의 작품 세계와 의식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강 화백은 이번 전시가 한국 화단에 새로운 색과 정서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일반인들에겐 제3세계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강 화백의 그림전은 오는 11일부터 17일까지 정동 경향갤러리에서 펼쳐진다. 강 화백은 이번 전시의 판매수익을 ‘지구촌나눔운동’에 기부할 예정이다.

<여수 | 김후남기자 h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