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김애란의 작품세계-신항섭

김애란의 작품세계

-감정의 비등을 유도하는 원색적인 이미지

 

미술평론가 신항섭

 

유채화 작업에서 나이프를 사용하는 것은 질감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질감 표현은 유채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서, 나이프는 마치 벽을 흙을 바르는데 쓰이는 흙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나이프를 사용하면 캔버스 위에 물감을 한 겹 입히는 효과를 나타낸다. 비록 붓을 사용할 때와 같은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은 불가능하지만 물감을 통째로 바르는데 따른 시각적인 이미지는 특별하다. 특히 순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날카로우면서도 매끈한 나이프 자국은 발색을 부추기는 시각적인 효과가 크다.

김애란의 최근 작업은 나이프를 사용하여 이전과 확연히 다른 조형세계를 전개하고 dT. 무엇보다도 색채가 화려해졌다. 이는 순색의 사용 빈도수가 높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로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은 마치 꽃밭을 보는 듯싶은 착각이 들만큼 원색 일색이다. 그러기에 시각적인 인상이 강렬하고 명쾌하다. 애매하고나 모호한 이미지가 없다. 어디를 보아도 명확하고 선명한 이미지의 원색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렇듯이 명료한 인상은 나이프의 사용과 관련이 있다. 나이프를 사용할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순색을 사용하겠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부드러운 털로 만든 붓과 달리 금속성의 나이프로는 혼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색채를 혼합하여 2차색이나 3차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붓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반면에 나이프로는 팔레트에서 혼색을 한다고 해도 미묘한 중간색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나이프를 사용한다는 것은 순색을 사용하겠다는 의도가 전제되는 셈이다.

원색적인 이미지는 대체로 꽃이나 과일 등 소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색깔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 또한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하지만 꽃보다는 대자연 및 도화지와 같은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풍경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대자연이나 도화지 풍경은 부분적으로는 원색적인 색깔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풍경화는 모두 원색적인 색채로 치장하고 있다.

모든 작품이 원색적이라는 것은 실제보다 강조되거나 과장된 표현이다. 달리 말하면 회화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회화적인 표현 즉, 그림으로서의 요건에 합당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원색을 사용한다.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는 자연풍경이나 도화지 풍경에서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색깔과는 사뭇 다르다. 눈에 보이는 사실에 근거하되 그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적인 이상에 따라 현실적인 색깔 대신에 원색을 사용하게 되는 까닭이다.

원색을 사용하는데다 나이프를 사용하다보니 자연히 세부적인 표현은 생략되기 마련이다. 나이프는 붓으로 가능한 섬세한 묘사에 필적하기 어렵다. 금속이라는 경직된 재료인 나이프의 특성상 힘차게 물감을 눌러 붙이기는 수월해도 곱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강하고 힘차며 직설적인 표현, 즉 순색의 물감을 캔버스에 붙이는 식의 표현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거칠고 두터운 질감이 만들어 내는 힘차고 둔탁하면서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나이프 터치는 시각적인 쾌감을 수반한다. 더구나 순색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발색이 화려하며 시각적인 호소력이 강하다. 거기에다 색채배열에서 보색대비를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실제의 꽃보다도 한층 화려하고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렇듯이 이전의 차분하고 냉정하게 느껴지는 사실주의적인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조형세계로 바뀌었다. 이런 폭넓은 변화는 놀라운 일이다. 이제까지의 작업과 절연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고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삶에 대한 그 자신의 관점이 바뀌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욕망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자신을 옭아매던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함으로써 보다 확장된 세계를 경영할 수 있으리라는 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회화적인 관점의 변화 또는 인생관의 변화를 통해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리라.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로 점철하는 최근 작업은 현실적인 색깔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색채배열이 인상적이다. 특히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소재로 한 일련의 대작들은 하늘을 비실제적인 붉은 색으로 표현하는 등 현실적인 색깔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기에 사실적인 그림, 즉 현실적인 색깔을 중시하는 작품과는 완연히 다른 시각적인 체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색채 설정이야말로 회화적인 조형세계의 묘미이자 마술이다. 실제로 만년설에 극명히 대비되는 분홍색, 남색 등 일련의 단색조의 붉은 하늘로 인해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듯싶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유럽풍경이 많은데 고색창연한 중세풍의 건물을 전혀 다른 인상으로 바꾸어놓는다. 물론 유럽건물들 자체가 조형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원색을 사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이 원색의 사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리라. 특히 지중해에 연한 이탈리아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은 원색을 구사하는데 한결 수월한 소재임을 실증한다. 짙푸른 남색의 바다에 대비되는 알록달록한 바닷가 마을풍경은 그의 그림에서 더욱 생생한 원색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물론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의 중세풍 건축물에서 발견하는 미적인 요소와 원색이 결합했을 때도 아주 잘 어울린다.

물론 꽃을 소재로 한 일련의 정물은 원색의 잔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짐짓 화려하다. 순색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발색이 눈부시다. 이들 정물 역시 배경을 강렬한 단색으로 배치함으로써 형형색색의 꽃을 더욱 강렬한 이미지로 탈바꿈시킨다. 일련의 꽃을 소재로 한 정물에서는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뻗친다. 감상자의 눈과 마음을 자극하고 삶에 대한 열정을 부추긴다. 그림과 마주하는 순식간에 감정의 비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꽃이라는 신비스러운 존재에서 느끼는 미적 감정을 뛰어넘는 회화적인 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그의 원색적인 꽃 그림에는 심신을 격동케 하는 마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도여행의 인상기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작품 가운데 인물화는 원색과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인도여성의 전통의상이 사리자체가 원색적이기 때문이리라. 더불어 숲길을 소재로 한 일련의 풍경도 생강의 폭을 좁혀 동일 색 계열로 통일함으로써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렇듯이 그의 최근 작업은 나이프를 사용하는데 따른 시각적인 효과, 즉 질감과 원색적인 이미지를 교직함으로써 보다 풍부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거기에는 생의 욕구를 자극하는 생명의 기운이 팽배하다. 작품을 보는 순간 내부 어딘가에 숨어 있던 잠재된 욕구가 폭발하는 듯싶은 감정의 비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