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소천 김천두 화백

예로부터 시().().()에 고루 능한 사람을 가리켜 3()이라 했다. 말이 그렇지 이 세 가지를 두루 잘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과거 문인 사대부 중심의 사회에서는 시, , 화를 모르고서는 행세하기가 어려웠다. 말하자면 시, , 화는 문인 사대부들의 필수적인 덕목이었던 까닭이다. 시대가 변해 오늘날에는 이 세 가지를 겸비한 예술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 , 화 두루 뛰어난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 세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문인화가들조차 만나기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소천(小天) 김천두 (金千斗)는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문인화가이다. 글씨와 그림을 함께 하는 화가들은 더러 있으나 시()까지 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산수화나 문인화에서 화제(畵題)는 그림 못지 않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그림의 내용을 함축하면서 그림의 전체적인 조형성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산수 문인화에서 화제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조형적으로 크게 다른 느낌을 전한다. 반드시 화제가 있어야만 그림으로 완결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화제는 산수 문인화의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그의 작품은 산수 문인화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화제를 담는다. 화제는 고시(古詩)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작시(自作詩)도 적지 않다. 시를 읽다가 화흥(畵興)을 일으켜 화필을 잡는 일도 있거니와 그림을 그리다가 시작(詩作)에 이끌리는 일도 있어서 시와 그림을 동시적으로 행하고 있는 셈이다. 뿐더러 글씨는 한자 습득과정에서 필연적인지라 조형적인 감각이 남다른 그였기에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해서에서 좋은 글씨를 쓰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글씨를 보면 서예가로서도 충분히 입지를 구축하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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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산수화는 산과 물과 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남화풍의 소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첫인상으로는 소치(小癡)를 기점으로 하는 운림산방의 화맥(畵脈)의 한 지류임을 직감할 수 있다. 실제로 남농(南農) 화실에서 공부한 시기가 있고 보면 온당한 시각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그림은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형태가 명확해서 전체적인 인상이 선명하다. 이는 묵을 진하게 쓴 탓도 있지만 필치에 힘을 실음으로써 형태를 명확히 찾아들어간 데 연유한다. 아울러 글씨를 썼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서도의 그 엄격성과 명확성이 그림의 필획에도 그대로 옮겨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필획의 성격은 자연히 형사에서 견고한 형태를 지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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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산수에서 특이한 필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필선의 모양과 관계있는데, 마치 크고 작은 바위가 많고 물살이 빨라 그 흐름의 변화가 무쌍한 계류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필선이 시선을 잡는다. 달리 표현하면 어떤 진동에 의해 파생적으로 그려지는 꼬불꼬불한 형세의 필선이다. 이러한 모양의 필선은 바위의 주름, 즉 준과 나무의 형용에 주로 쓰인다. 끝이 갈라진 붓으로 준을 치는 그 모양새가 고졸하기 그질 없다. 어리숙하고 모자란 듯하여 위태롭게 느껴질 만큼 그 형태가 풀어져 있다. 전체적인 인상이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필선은 그처럼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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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에서 보여주는 그 힘차고 자유로우며 세련된 필획은 간곳없이 별안간 어리숙한 모양으로 바뀌면서 고졸한 붓놀림에 의해 떠오르는 절지화는 음미 할만하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소천은 일찌기 의제문화에서 남화를 수업하였으나 세상에서 말하는 출세의 길로 순탄하게 빠지지는 못하였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화업을 계속하였으나 곧 만족치 못하고 귀국후엔 출창 한학에 열중하였다. 화업의 길은 곧 한학의 길이라 신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한자를 출세의 수단으로 배웠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동양의 심오한 교양이 형식화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말은 물론 우리들의 동양화단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어서 주목 된다. 동양화가 단순히 출세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가에서 소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공통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문이 동양정신의 심오한 진리를 밝히는 그릇이어야 하듯이 동양화 또한 그 진리를 밝히는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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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글씨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림이 되고 있다. 덩어리를 깨면 글씨의 파편이고, 그 파편들을 모으면 그림이 된다. 그러나 그 글씨 의 파편(기본획선)들이 지극히 생동하므로 해서 우리는 눈앞에 전개되는 산수에서 매우 박진감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글씨에 달함이 없이는 결코 그와 같은 묘법의 미학을 성취할 수가 없으리라. 소천의 풍부한 한학정신의 소산이지만, 풍요한 것은 힘(생동감)이 있다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남화는 물론 동야화로서는 이미 자격이 상실된다. 서구의 추상표현주의가 동양의 서도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결국 이 힘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산수이면서도 그러나 힘을 무한히 발산하고 있는 산수화,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동양정신이 아니겠는가. 소천의 그림에는 바로 우리가 바라는 그 힘이 꿈틀대고 있다.

미술평론가 박용숙

소천 김천두 화백2
유일하게 시, 서, 화에 고루 능하신 소천 김천두 선생님의 작품을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01.16~01.22까지 전시한다. 소천 선생님은 남종 문인화에 대하여 남다른 이해를 보여주는 작품을 하고 계시며 지금까지 많은 전시와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문인화는 남종화에 속하며 사물을 常形(상형) 하는 것이 아니고, 常理(상리) 해야 하는 것으로 一筆揮之(일필휘지)하듯 一回性(일회성)의 표현방법으로 그리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문인화는 주로 많은 士大夫(사대부) 등 선비들이 취미로 각자의 主觀(주관)대로 觀念(관념)의 세계를 양식에 구애됨 없이 그렸던 것이다. 그래서 소천 선생님이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 評價(평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內面(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한, 精神修養(정신수양)을 위한 것에 두었기 때문에 소천 선생님의 그림에서는 사실성보다는 선생님의 心性(심성)이 더 반영된 것 같다.      

소천 김천두 선생의 초대전에 앞서 우연하게 선생님의 자료를 조사하다 위의 한시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생님 고향마을인 관산읍 송촌 마을 뒷편에 위치한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지은 시라고 한다. 철없을 땐 어렵기만 했던 한시 구절이 이제는 선생님의 시 구절을 보면서 고향의 편안함을 느낀다. 세월은 흘렀건만 여전히 반겨주는 노송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반겨 주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노령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이 시 구절처럼 우리 화단을 묵묵히 지키며 창작 활동에 정진하고 계신 선생님께 겸허한 마음마저 든다.

村後老松(고향 마을 뒤에 있는 소나무)
落落長松閱機(낙낙장송열기)
靑靑銳葉貴蒼天(청청예엽귀창천)
鬱鬱繁枝能弊日(울울번지능폐일)
堂堂高節鎭村(당당고절진촌)

落落長松(낙낙장송) 몇 年(년)이나 되었는고
靑靑(청청)한 銳葉(예엽) 이 蒼天(창천)을 관통했네
울창히 뻗은 가지 능히 해를 가리고
당당한 高節(고절)은 마을을 편안케 하는 구나
 
- 윤경희 (자인제노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