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고 사색하는 경건한 화폭 – 김정숙의 <커뮤니케이션> - 김종근 미술평론가 | |
침묵하고 사색하는 경건한 화폭 – 김정숙의 <커뮤니케이션> 또 다른 작품에는 캔버스 공간에 끈으로 촘촘하게 엮은 붉은 색의 화폭이 있고 그 이웃해서는 색면 형태의 도드라진 삼각형 ,사각형이 있다. 무엇보다 독특하고 심플한 그러면서도 균일한 패턴과 형식의 추상성이 확연하게 다가온다. 그 점에서 로버트 모건의 생각은 옳았다. 김정숙도 그러한 흐름 안에서 <소통>의 세계에 동의하고 동행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묵시적인 김정숙의 인상적인 메시지는 결국 그림이란 그것을 보는 사람과 교감함으로써 존재하며, 거기에 예술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제시한다. 작가는 내면의 소리 ,그 울림을 색채로 형태로 이 현상을 구체화시키고 싶어했다. 여기에 회화는 그에게 최고의 소통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 표면을 꿰뚫어보는 능력으로 ‘진정한 자연’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선선하는 것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마크 로스코의 화폭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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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를 전달하는 김정숙의 회화-로버트 C. 모건 | |
자연의 소리를 전달하는 김정숙의 회화 로버트 C. 모건 (Robert C. Morgan) 김정숙 작가의 최근작은 동양과 서양의 회화 전통을 모두 따르고 있다. 그는 뽕나무와 느릅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 위에 한국적인 붓질을 사용한다. 특유의 질감과 강도를 가진 한지의 표면 위에 먹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고, 그것을 캔버스 위에 팽팽하게 당겨놓음으로써 표면의 느낌을 강화시킨다. 작가 특유의 붓질과 종이 위에 번지는 느낌은 예술대학에서 사사 받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색과 형태들은 명확하게 1950년대 뉴욕의 추상표현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색면 추상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연상시킨다. 김정숙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연, 그리고 이에 관련된 소리가 그의 작품 세계의 근본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작품은 이 현상을 구체화시키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의 작가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발표된 그녀의 최근작 두 점(#12와 #13)은 이와 관련한 대조적인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소리 #12>는 한지에 흡수된 물감의 농도를 강조한다. 이는 도덕경(道德經)에 등장하는 '밝음은 어둠을 통해 인식되고 어둠은 밝음을 통해 인식된다'는 주의(主義)를 반영한다. <자연의 소리 #13>의 붓질에는 이와 같은 ‘밝음’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이는 작가 내면의 감성의 연장이다. 이 작품에서 감상자는 ‘어둠’보다는 ‘밝음’에 보다 가까워지게 된다. 각각의 작품은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핵심적인 내용의 변형이다. <자연의 소리>에서 김정숙이 지시하는 것들은 나무, 식물, 구름, 동물, 수풀, 산, 그리고 사람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그는 고향의 풍경에 매료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특정 풍경이나 물체를 드러내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다. 되려 그들은 마음의 상태, 기분, 혹은 존재의 방식을 나타내는 추상 작품들이다. #9에서 #11 작품은 우선 먹으로 칠해진 후,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사각형을 그렸다. 붓질의 가벼움과 아크릴 물감의 불투명성은 대조적인데, 역시 도덕경에 제시된 역설과 관련이 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 있고 드러난 것 또한 숨겨져 있다'는 도덕경의 내용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는 원래 자연에서 발견된 원리다. 자연의 방식과 계절의 변화에 보다 주의를 기울일 때, 인간의 본성은 가장 발달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 안에 일어나던, 일년 안에 일어나던 간에 계절과 자연의 소리는 항상 널리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때에도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김정숙의 작품들은 자연의 본질에 주목하여 이를 표현의 소재와 방향으로 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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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서의 자연-김복영 | |
신화로서의 자연 :김정숙의 근작들 1 근 5년 여만에 다시 보는 김정숙의 근작들은 자연의 인상을 유년 시절의 한 토막의 기억이나 추억의 그림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의 그림들은 그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산과 내, 무엇보다는, 시골의 정경을 짙게 담고 있는가 하면, 흡사 우리 옛 여인들이 색실을 엮고 천에 수를 놓아 그림을 그렸던 ‘자수(刺繡)’그림을 생각나게 한다. 근작들은, 그래서, 영락없이 우리의 옛 선인들의 향수어린 그림을 현대 회화로 되살려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예컨대, <<대지의 노래>>의 경우, 꽃을 비롯한 여러 식물들과 참새⋅오리⋅사슴같은 전통 애완동물들이 도식화되고 편화(便畵)된, 완만한 익스태글리오의 표정을 띠고 화면의 평면과 호흡을 나눈다. 가운데를 넓은 마당같이 비워두고 가상 자리를 따라 도열된 사슴과 나무가 사전의 어휘처럼 배치되고, 삼각⋅사각의 패턴이 이들의 사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조각보의 무늬에서 보는 바느질 실밥과 천의 섬유질이 그대로 느껴진다. 모노크롬한 저채도 암버톤의 분위기는 <원시적 향수―대지의 노래>>로 이어지면서, 근경의 사슴과 오리, 나무가 중경의 이름 없는 꽃들하며, 이 모두가 원경의 대지에서 느낄 수 있는 황혼의 멜랑콜리를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색>>, <<들판에 서서 바람소리를 듣는다>>, <<메아리>>같은, 꽃과 새를 다룬 작품들 역시 웃드락으로 리리프처리한 익스태글리오를 클로즈업시켜 화면의 일면을 클로즈업하는 한편, 잔여의 화면을 다운시킴으로써 변화를 살리는 화법을 시도하였다. 이 계보의 근작들은 거반 파렛나이프에 의한 핑크와 오커의 색조를 바탕으로 하는 난색계의 모노크롬양식을 드러낸다. 2 그의 근작들에는 종래와는 다른 많은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간결한 패턴과 리리프양식의 대범성을 앞세워, 그 너머에 많은 설화를 내재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설화의 세계이자 신화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원시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마음 밑 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바로 원시적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라는 자답을 내놓는다. 이러한 의문과 자답은 그가 추구하는 자연이란 과학에서 말하는 자연이 아니라, 신화에서 말하는 자연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인과율이 지배하는 개념적 자연이 아니라 담론을 말하고 이를 설화로 채우는 신화적 자연이라 할 수 있다. 근작들에서 그가 제시하는 자연은, 우리의 옛 여인들이 자수로 그림을 그리던 시절, 애환을 노래하던 그림들을 패러디해서 이야기하려는 데 특징이 있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무의식의 들녘에서 피고 지는 꽃이자, 울며 어미를 기다리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꽃과 새를 노래하며 그린다. 근자의 그림에서 황혼의 들녘과 한낮의 평화가 함께 있고, 속삭이는 밀어와 침묵을 향한 고독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3 근작들은 이전에 즐겨 다루었던 서정적 표현을 크게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자연의 인상을 다루되 서정적 감흥을 통해서 소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층에 간직된 갈망과 울림을 그려 보이려는 의지를 앞세워, 자연의 직접적 감회를 우회적으로 표출해 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인상파와 야수파에서 볼 수 있는 색채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무의식에 내재된 원형의 세계와 실존적 자태가 조우하는 분위기를 드러낸다. 장식적 분위기를 드러내면서도 장식성자체를 목표로 그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의 근작들은, 보다 더는, 자신의 잠재의식 속의 설화를 다루면서, 옛 여인들의 정한어린 이미지를 빌려 오늘의 삶을 이어가는 여인들의 세계를 각인시키고자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작품세계가 어디를 보아도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주제와 양식을 띠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역사적으로 말해, 한국의 여성 작가가 여성만의 세계를 구사하고자 했던 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할 자료가 적지 않다. 이점을 이해한다면, 김정숙의 그림들 역시 하나의 계보사적 맥락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여성적 전통은 설화와 신화로서의 자연을 여성 고유의 시각으로 그리고자 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김정숙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과학기술 시대의 경직된 인간상을 떠나 우리가 아직도 찾지 않으면 안될 미지의 세계가, 아니 신화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한 세계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데 동의하게 될 것이다. 05, 10 김복영(미술 평론가⋅홍익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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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und of Nature_아트뮤제 | |
The Sound of Nature 김정숙 작가의 독특한 기법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입니다.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모던함이 물씬 풍기는 조형성과 강렬한 원색의 향연이 마치 뉴욕의 리딩 아트를 만난 듯 이국적 세계로 안내합니다. 자연의 소리를 전송하다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김정숙 작가의 최근작은 동양과 서양의 회화 전통을 모두 따르고 있다. 그만의 밑 작업 기법에서 더욱 독특하고 과감한 조형성을 만들어 내는데 그는 뽕나무와 느릅나무껍질로 만든 한지 위에 자르고 묶고 세밀한 당김의 과정을 거친다. 복잡한 밑 작업을 거치면서 이제 작업의 세계에서 해방된 듯 색 작업은 마치 세상에 없는 패턴을 만들 듯 또한 막히고 답답한 현대인의 불안감을 해소하듯 자유롭고 과감하다. 그래서일까 보는 이를 시원하게 한다. 김정숙 작가의 최근작은 동양과 서양의 회화 전통을 모두 따르고 있다. 그는 뽕나무와 느릅나무껍질로 만든 한지 위에 한국적인 붓질을 사용한다. 특유의 질감과 강도를 가진 한지의 표면 위에 먹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고, 그것을 캔버스 위에 팽팽하게 당겨놓음으로써 표면의 느낌을 강화시킨다. 김정숙 작품의 색과 형태들은 명확하게 1950년대 뉴욕의 추상표현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색면 추상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연상시킨다. 김정숙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연, 그리고 이에 관련된 소리가 그의 작품 세계의 근본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작품은 이 현상을 구체화시키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의 작가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의 소리>에서 김정숙이 지시하는 것들은 나무, 식물, 구름, 동물, 수풀, 산, 그리고 사람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그는 고향의 풍경에 매료되어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특정 풍경이나 물체를 드러내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다. 되려 그들은 마음의 상태, 기분, 혹은 존재의 방식을 나타내는 추상 작품들이다. 붓질의 가벼움과 아크릴 물감의 불투명성은 대조적인데, 역시 도덕경에 제시된 역설과 관련이 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 있고 드러난 것 또한 숨겨져 있다'는 도덕경의 내용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는 원래 자연에서 발견된 원리다. 자연의 방식과 계절의 변화에 이보다 주의를 기울일 때, 인간의 본성은 가장 발달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 안에 일어나던, 일 년 안에 일어나든 간에 계절과 자연의 소리는 항상 널리 스며들어있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때에도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김정숙의 작품들은 자연의 본질에 주목하여 이를 표현의 소재와 방향으로 삼고 있다. 김정숙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연, 그리고 이에 관련된 소리가 그의 작품 세계의 근본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작품은 이 현상을 구체화시키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의 작가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의 소리>에서 김정숙이 지시하는 것들은 나무, 식물, 구름, 동물, 수풀, 산, 그리고 사람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그는 고향의 풍경에 매료되어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특정 풍경이나 물체를 드러내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다. 되려 그들은 마음의 상태, 기분, 혹은 존재의 방식을 나타내는 추상 작품들이다. 붓질의 가벼움과 아크릴 물감의 불투명성은 대조적인데, 역시 도덕경에 제시된 역설과 관련이 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 있고 드러난 것 또한 숨겨져 있다'는 도덕경의 내용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이는 원래 자연에서 발견된 원리다. 자연의 방식과 계절의 변화에 이보다 주의를 기울일 때, 인간의 본성은 가장 발달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 안에 일어나던, 일 년 안에 일어나든 간에 계절과 자연의 소리는 항상 널리 스며들어있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때에도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김정숙의 작품들은 자연의 본질에 주목하여 이를 표현의 소재와 방향으로 삼고 있다. |
ARTIST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