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김남진의 “사회적 풍경”에 부쳐-이성훈
김남진의 “사회적 풍경”에 부쳐

이성훈(경성대학교 철학과 및 대학원 문화기획행정이론학과 교수)  

I. 그림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

  사실 스스로 덫에 걸린 거였다. 김남진 작가가 자기 개인전(나중에 초대전으로 바뀌었다)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할 때,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데 거절은커녕 한술 더 떠서 그와의 어떤 동지의식마저 공유했을 뿐더러, 함께 카셀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보러 다니기까지 했으니, 코를 꿰여도 단단히 꿰인 셈이다. 
독일여행 중에 김남진은 자신이 수학했던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까지 나를 데리고 갔다. 그때 학교 앞 어느 개인화랑에서 보았던 바셀리츠의 60호 정도 되는 그림과 
K20인가 K21에서 전시 중이던 어떤 일본 사진작가의 사진전은 카셀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가 줄 수 없었던 어떤 자극, 어떤 사유의 단초를 내게 불러냈다. 
가슴 한 켠에는 여전히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고민을 안은 채. 
  
 사실 나는 글을 쓰기가 싫다. 써봤자 거의 읽지 않거나, 읽더라도 건성으로 읽거나, 열심히 읽더라도 내게 반응이 돌아오지 않기도 하거니와, 
마감일이 정해져 있는 글쓰기는 어김없이 내게 어떤 정신적 소화불량을 유발하고 해야 할 숙제를 계속 미뤄서 어떡할 거냐는, 면하면 좋을 법한 가책을 불러내니까 말이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써야 했고, 쓰기 위해 나는 작가에게 이런 장치를 제안했다. 작업하는 모습을 최소한 세 번은 보여 달라고. 
미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은 고되고도 고되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고통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거미가 거미줄을 술술 뽑아내듯 글을 수월하게 생산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글쓰기가 힘든 것은 그림그리기의 그것에 결코 못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것을 능가한다. 어쨌거나 연주회를 듣지 않고 연주평을 쓸 수 없듯이,
평소의 작품제작모습을 보지 않고서 어찌 전시평을 제대로 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김남진의 집에서 정확하게 두 번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첫날은 작업 모습을 본 후 새벽 늦게까지 술잔을 주고받으며 일종의 도원결의 같은 걸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를 위해 글을 써주는 것을 어떻게 하면 모면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세 번째 저녁식사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너무나도 성실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그의 작업 모습을 보러가기도 전에 그는 이미 전시할 작품들을 완성해놓았던 것이다. 
나는 그가 저녁끼니 한 번을 아끼기 위해 작업속도를 높였다는 혐의를 품고 있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저녁 먹으러 간 게 아니지 않은가.  

  김남진은 성실한 사람이다. 특히 그의 성실함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향할 때 더욱 견고해진다. 
그의 작업장에서 나는 작은 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 부스러기들을 눈으로 목도했고 손으로 만져봤고 발로 밟아봤다. 
그는 이젤에다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이른바 회화작가가 아니다. 그는 커다란 나무판을 전기드릴로 긁어내고 파낸 다음에 그 위에 생긴 요철에다가 안료를 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이런 힘든 작업을 택한 개인적 이유도 있을 것이고 미술사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드릴작업은 이중의 육체적 노동을 요한다. 
정교하게 깎여 나오기를 거부하는 단단한 나무판은 편평한 캔버스에 그냥 붓질을 하는 작업에 비해 조형적 섬세함의 완성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며, 
작가가 지향하려는 가시적 조형세계에 도달하기가 훨씬 어렵고도 더디게 된다. (따라서 작가는 본인이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간에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조형세계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우리가 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관객에게 눈에 보이는 어떤 조형세계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유로 해석해낸 어떤 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시, 정교한 조형세계의 가시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고, 
가시적 특성이 촉매로 작용해서 그에 의해 해석된 어떤 정신적 세계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남진이 자신의 작품에다  “사회적 풍경”이라고 하는 제목을 부친 이유가 아닐까.) 

  이리하여, 그의 손에 쥐어진 전기드릴의 끝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정교하지 않게 모습을 드러낸다. 
2003년의 신전 시리즈에서 2004년의 성운 시리즈, 2005년의 원시림, 2006년 마천루 시리즈와 2006부산비엔날레에 전시된 정치적 풍경, 그리고 이번 초대전에 전시되는 사회적 풍경에 이르기까지 
김남진은 지치지도 않고 마치 이 실험의 가능성을 끝까지 파내기라고 하겠다는 듯이 작업실의 바닥을 나무부스러기로 쌓아가고 있다. 이번 초대전에 전시될 작품들은 소재로 보면 
중국의 푸동지역, 크루즈, 마천루, 키즈랜드, 비행 등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성된다. 
  
 푸동의 하늘을 날고 있는 연들을 뒷짐 지거나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올려다보고 있는 중국 인민군의 뒷모습, 같은 푸동 지역의 솟아오른 고층빌딩과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잿빛 하늘, 
저 멀리 해변에 늘어선 마천루를 배경으로 바다를 가로질러 가거나 떠있는 다양한 모습의 거대 유람선들, 뾰족한 성당 꼭대기 같은 모습으로 클로즈업 된 마천루, 
푸동과 한국 각지에 있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들, 이 모두를 작가는 “사회적 풍경”이라 부른다. 왜 이런 모습들이 사회적 풍경이라는 하나의 타이틀로 묶이는 것일까?
  
 먼저 말하건대, 이건 그냥 풍경이 아니다. 풍경의 범주에 들 만한 것으로는 크루즈의 배경이 되는 마천루 사이에 문득문득 서있는 키 큰 나무들밖에 없다. 
그래서 김남진의 작품들은 아직도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여느 풍경화처럼 유치하지 않다. 그런데 유치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삶의 켜가 배어있지 않고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성이 발육부전의 상태로 굳어버린 상황을 말한다. 
김남진의 그림은 그 투박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것 때문에 유치한 풍경화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을 뿐더러, 그림 안에 인간의 모습이 전혀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얼굴이 있는 전면이 아니라 얼굴을 볼 수 없는 뒷모습만 나타나고 있다는 그 놀랄 만한 인간의 부재로 인해서 우리가 의례 풍경에서 받아들이곤 하는 천편일률적인 첫인상과 기대심리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이 첫인상은 정확하다는 정확하지 않은 확신만 불러낼 뿐 정작 인식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는 것이다. 김남진의 그림은 첫인상에 쉽게 걸려들 만한 만만한 그림이 아닌 것이다. 
그의 작품은 만만치 않은 분석과 독해를 요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지치지도 않고, 싫증을 내지도 않으면서 이같은 드릴작업을 하게 만들고, 이에 어떻게 보면 생뚱맞기도 한 “사회적 풍경”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한 것일까? 
유달리 일에 집착하는 작가의 성격상 이것을 게으름 탓으로 돌릴 수는 전혀 없다. 창조력의 고갈로도 설명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작가는 신이 아니기에 미술작품의 생산에다가 창조라고 하는 신학적인 용어를 적용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말고도 사실 작가가 이런 유형의 작업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다 퍼내어지지 않은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집착은 심리적 고착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데올로기적 주체효과 때문일까, 혹은 유토피아적 열망이나 어떤 예술이론이 그를 불러내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것이 모더니즘과는 무관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김남진의 그림은 탈역사적이다. 하긴 한바탕 모더니즘의 전투를 강렬하게 치르고 난 다음이므로, 
이런 그림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 대한 글은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를 벗어나야만 한다.
  
 어쨌거나 작품의 일관성은 그의 그림이 센티멘털한 풍경화일 것이라고 하는 우리의 예단을 거부한다. 더군다나 이런 작업방식에 대해 작가 자신이 자부심을 품고 있으며,
더 나아가 나름의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해석은 다른 층을, 그러니까 눈에 그대로 보이는 표면을 떠나서 눈에 드러나지 않는 심층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작가의 그림 이론이 작품의 가시적이고 지각적인 층위만을 아우를 때, 당대의 회화가 이미 그 지각불가능성의 원리에 입각해 이론적 모색으로 변모했다고 하는, 
작가의 그림 이론과 모순되는 정세를 감안하면, 우리는 그의 그림을 숨겨지고 은폐된, 그러나 그 흔적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의 지표나 상징으로 읽어야 하는 이론적 필연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II. 드릴로 널빤지를 파내기, 드릴로 미술사를 긁어내기

전기드릴로 딱딱한 나무판에 요철을 만들어낸 다음 여기에 안료를 거듭해서 칠하고 최종적으로 작품이 걸릴 전시장의 조명각도와 럭스(lux)에 그림의 최종 모습을 내맡기는 김남진은 
여러모로 특이한 작가다. 이때 특이하다는 것은 한편으로 현대미술의 역사에 대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전제로 할 때 나올 수 있는 인상인데, 
그건 곧 ‘회화의 죽음’이라고 하는 화두에 대한 서구작가들과 한국작가들의 반응차이와 관련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회화의 죽음은 회화작품이 미술의 장면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회화라고 하는 장르가 미술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누려왔던 
헤게모니적 지위가 다른 매체들의 도전을 겪으면서 뒤흔들린 것을 의미한다. 미술사의 오랜 기간 동안 미술의 역사적 사명은 회화 매체를 통해서만 수행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해왔다.
이를테면 회화에게 다른 매체들보다 더 큰 역사적 위임이 주어졌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회화의 이러한 역사적 헤게모니가 서구의 경우에는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비평관이 적응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흔들리게 된다. 이제 회화는 더 이상 미술사 발전의 주된 운반체가 아니며,
미술계를 정의하는 매체들과 실천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해졌다. 회화가 지배하던 역사의 한 단계가 끝에 도달했으며, 
이런 의미에서 여태까지 미술사의 울타리 밖에 놓여있던 여러 가지 미술실천들, 대지미술이나 바디아트, 혹은 오브젝트 아트, 그리고 공예라고 하는 낙인이 찍힌 무수한 미술들,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컴퓨터 아트, 그 밖의 다양한 혼합매체들이 위세가 많이 꺾인 회화와 함께 미술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김남진의 이런 드릴그림 역시 회화의 죽음에까지 이른 이러한 현대미술사의 진척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마냥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회화의 사형집행서가 주기적으로 발부, 재발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실제로 집행하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사형대 위에 세워진 회화가 결국 장수를 누린 셈이 되었다. 
오랫동안 『옥토버』지 편집장을 지냈던 더글라스 크림프는 결국 사진이 회화에 대한 사형집행을 마무리했다고 생각하며, 
아울러 그 스스로 다양한 사진작가들을 동원한 전시기획을 통해 회화의 죽음을 촉진하기도 했다. 

 어쨌건 이제 우리는 회화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것, 현 단계의 미술은 다양한 매체들의 연접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현대미술계는 역사적으로 지각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국현대미술계에서는 회화의 헤게모니가 여전히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물감냄새를 사랑하는 예술가들을 “후각의 예술가”라고 경멸적으로 부른 마르셀 뒤샹 같은 작가가 아직은 한국미술계에 등장하지 않았다.
적어도 뒤샹 정도로 미술사의 물꼬를 다르게 틀 만한 파괴력이나 영향력을 갖춘 작가는 말이다. 이젤화를 거부하고 드릴작업을 해오고 있는 김남진이 그와 같은 자격을 온전하게 부여잡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이젤화를 멀리 해왔고, 드디어 몇 년 전부터는 종래의 회화적 사고로는 용납할 수 없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지불식간에 회화의 죽음을 한국미술계 내에서 재촉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먼저, 드릴로 편평한 나무판을 후벼 파내서 삼차원적인 요철을 만들어 내는 그의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고로, 모더니즘 시기에 회화의 헤게모니를 보장해준 매체에의 충실, 한 매체의 아우타르키, 곧 평면성에 반기를 들고 있다. 
다른 한편, 김남진은 전통적인 이젤화가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풍경을 드러내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이젤화 자체가 아예 그 매체적 가능성을 이미 소진해버렸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전자의 해석에 따르면, 김남진의 작업은 팝이나 미니멀리즘과 같은 네오아방가르드 계보로 이어지고, 
후자의 파악에 의하면 이보다 앞선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정신을 좇아가고 있는 걸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해석되건 그의 작업이 회화가 미술사의 유일무이한 추진체요 가장 큰 역사적 위임을 받은 매체라고 하는 종래의 회화관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대다수 작가들은 미술사와 무관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극소수의 작가들만이, 스스로 알고 하건 모르고 하건 간에 미술사에 어떤 족적을 남기는 귀중한 작업을 한다.
나는 김남진을 그러한 미술사적 작업을 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그는 나무판을 전기드릴로 헤집고 파내면서 동시에 한국의 낙후한 미술사적 실천을 긁어내고 있는 것이다. 


III. 예술가의 자연발생적 철학과 “사회적 풍경”

  한국의 대다수 전업작가들이 오늘도 수없이 생산, 전시하고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유치하기도 하고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앞에서 이미 유치한 그림이라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이미 말했지만 다시 한 번 더 언급하도록 하자. 앞에서 유치한 그림이란 삶의 켜가 배어있지 않고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는, 
그런 의미에서 작가 개인의 역사성이 발육부전의 상태로 굳어버린 그림을 말한다고 했다. 그림을 작가 개인의 삶의 발로로 볼 때, 여기에다가 그 삶이라는 게 세상과 역사를 향해 있지 않는 
이른바 도인(술꾼과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의 내면세계에 국한될 때, 어떤 면으로 보건 간에 유치한 그림들이,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둘 여지가 많은 그림들이 그려지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그림이란 미술사의 흐름에 역행해서 그리는 그림, 미술의 역사에도 변화와 발전이 있어왔다는 엄연한 사실에 맹목적인 그림을 말한다. 
그림의 사명이란 다름 아닌 눈을 감각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그림들은 안성맞춤의 노리갯감이 된다. 

 그러나 그림의 의미가 감각적 즐거움 위나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적어도 감각의 영역은 떠났음을 아는 사람에게 그림은 진지한 지적 도전의 대상이다. 
오늘날의 그림은 그림이 지각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것들을 결에 반해서 읽어내야 하는 도전의 장소이다. 그리고 김남진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층위의 비평과 독해를 요구한다. 
이건, 왜 그가 자신의 이번 작품들에게 사회적 풍경이라고 하는 타이틀을 부여하고 있는가를 풀어내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작품을 놓고 자연적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로 
그냥 첫눈에 사회적 풍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는 이런 감상태도는 그러나 작품이 지향하는 사회적 풍경의 층위 중 가시적인 표층에만 가닿을 뿐이다. 
사실 지금 여기서는 장황하게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와 관련이 없다. 
더욱이, 그 작가의 의도라고 하는 게 마치 신의 섭리 같은 것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더더욱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 사이에 등호를 집어넣을 수 없다.
  
 이제는 차라리 진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러 논의들 덕분에 우리는 작품의 중요성이 작가의 의도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김남진의 작품과 김남진을 체계적으로 분리해낼 수가 있고, 작품의 이해와 파악에 작가의 의도가 침윤해서 영향을 끼치는 데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작품을 작가의 의도에, 혹은 작가의 인간됨됨이에 접속할 때 작품에 대한 이해보다는 곡해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은 우리가 항상 되돌아가 걸리는 덫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을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에는 불가피하게 통속화하려고 하는 충동이 존재한다. 사실 작품해석의 자연적 발생이 왜 생겨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해석은 아직 이해의 권역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기에 무지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비추는 창과도 같은 것이되 그러나 그것은 단수가 아니다. 작품의 해석에 일방로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해석은 작품에 대한 완벽한 대용물의 구실을 하는 데 실패한다. 다만 해석은 원 작품과의 대면의 필연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할 뿐이다. 
이 글 역시 작가의 그림을 직접 대면할 것을 요구하는 하나의 권유에 불과하다.
  
 작가의 의도가 작품해석의 주도동기가 아닌 것은 작가의 의도라는 것 역시 사회적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가의 의도 역시, 그런 게 있거나 중요한 것이라면, 
고독한 내면의 발로나 어떤 창작의지의 작용이 아니라, 이번의 작품군 사회적 풍경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처한 미술사적, 현실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김남진의 작업유형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아마도 심리적 고착에서 비롯되거나, 아니면 어떤 이데올로기적 주체효과 때문에, 
혹은 유토피아적 열망이나 어떤 예술이론에 힘입어 불러내어진 것인지 모른다고 했는데, 이게 바로 그런 의미이다. 
물론 메를로 퐁티의 말처럼, 작가가 품었던 어떤 생각은 그의 작품과 더불어 시작되므로 이 두 가지의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 
작품의 삶이 미술가의 삶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의 삶이 그의 작품의 삶을 따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 그의 작품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 두 가지가 관련된다는 것 또한 확실하다. 진실은 이 작품이 만들어지려면 이러한 삶이 필요했다는 것이다.”(메를로 퐁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작품들의 표면적 연속성과 일관성 속에 어떤 침묵을, 
강요되었으되 필연적으로 흔적을 드러내는 어떤 은폐와 간극을 읽어내어야 한다. 그 침묵으로부터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흔적들이 있는데, 이렇게 해서 경험이 형태를 입고, 사건이 그림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복합적 요소들을 그때그때의 감흥이나 정취에 따라 거의 동일한 회화어법으로 그려낸다. 
미술작품도 역시 일종의 생산물이라 할 때, 작가는 이런 관념들을 원재료로 하고 여기에 물감과 붓 등의 생산수단을 동원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을 생산해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에다가 대부분의 작가는 마치 일기장을 채우듯 자신의 관념과 작품에 친절한 타이틀을 붙여준다. 특정 형태의 그림과 작가의 내면세계를 얼핏 보여주는 일기장의 한 구절 같은 타이틀이 서로 결합해 
그의 그림들을 구태여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자명성과 투명성의 관람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작가가 이런 관념들에 대해 애정의 관계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그러니까 긍정적 포섭의 관계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자기 자신을 이런 긍정적 포섭의 관계를 통해 어떤 형상을 스스로 결정해서 그리는 주체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 역시 이러한 긍정적 관계에 입각해서 그의 그림들을 ‘본다’. 이렇게 보는 눈에게 그의 그림들은 말 그대로 투명하고 아름답다. 순수한 그림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순수한 눈들이 있다는 듯이 말이다. 
순수한 그림을 보는 순수한 눈은 작품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라고 하는 은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전복되고 폭로되어야 할 예술이데올로기가 불러내는 인식-재인식의 끝없는 순환구조라고 하는 점을 알고 있다. 
   
 우리의 해석은 다른 층을, 그러니까 눈에 그대로 보이는 표면을 떠나서 눈에 드러나지 않는 심층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작가의 그림이 작품의 가시적이고 지각적인 층위만을 아우를 때, 당대의 회화가 이미 그 지각불가능성의 원리에 입각해 이론적 모색으로 변모했다고 하는, 
작가의 그림 이론과 모순되는 정세를 감안하면, 우리는 그의 그림을 숨겨지고 은폐된, 그러나 그 흔적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의 지표나 상징으로 읽어야 하는 이론적 필연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림을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딱지로부터 구원해내어야 한다. 미술사가 말해주듯, 그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름답지 않다. 
달리 말해, 아우슈비츠가 아니라도 그림은 이제 서정시가 아니다. 그림은 언제나 문제로서 우리에게 던져져, 그냥 볼 것이 아니라 읽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제 그림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며, 지각의 대상이기를 그만 두었다. 때로 그림은 정신의 트라우마를 은폐하고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고, 숨겨진 마음의 지층들을 복잡하게 담고 있는 고고학적 작업장이기도 하며, 
의미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상징적 투쟁의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김남진의 그림을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로 본다면, 우리 눈에 드러나는 그대로의 풍경화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작품으로서의 그의 그림에게 줄 수 있는 천박한 겉치레 찬사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순진하고 맹목적인 작가다. 
폴 고갱은 한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김남진의 그림을 포함하여 많은 좋은 그림들은 단순히 눈으로 그냥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행간의 침묵으로 하여금 말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다시, 김남진의 사회적 풍경의 심층은 어디인가? 몇 달 전에 이태호 작가의 억새 개인전에 관해 글을 쓴 것이 있는데, 그 글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 김남진의 이번 작품들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예술가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전문적인 철학자와 다른 점은 그것이 자연발생적이고, 전문적인 개념들로 가다듬어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철학을 상황과 정세에 대한 입장취하기로 이해할 때, 철학자는 각자의 관심영역에 따라 전문적인 철학개념들을 가지고 다양한 전선에 개입한다면, 
일반인 역시 각자의 삶의 전선에서 나름의 지식이나 이데올로기를 갖고서 현실에 관여하며, 그런 중에 부지불식간에, 개입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자연발생적 철학을 표명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번의 대화를 통해 나는 김남진이 관념론자이며 나아가 인간주의자라는 걸 확인했다. 그의 예술관이 낭만주의적 예술관을 아직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한 듯하다. 
하긴 관념론적, 인간주의적, 낭만주의적 인생관이나 예술관은 대다수의 예술가에게 체화되어 있으므로, 김남진이 이로부터 제외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어떻게 체화된 것일까? 
바로 학교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무사유의 관성을 통해, 사회적 뿌리가 잘린 채 수입되어 왔던 그 무수한 이론들과 예술사조들의 맹목적 답습을 통해, 
특히, 사유와 분석을 통해 사회현상에 대한 더 깊은 진실에 도달하면 할수록 손해보고 따돌림 당하고 배척당하는 우리 한국사회의 병리적 의식상태를 통해 체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한 학습효과가 결국 어떤 영역에서건 모난 돌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한국인의 심성구조와 보수적 삶의 태도를 성장시켰을 터인데, 
이것은 예술계에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예술가 역시 자연발생적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어떻게 보면, 예술작품이란 작가가 부지불식간에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연발생적 철학과 
그가 처해있는 예술전통 및 사회상태의 뒤범벅으로부터 쥐어짜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술은, 더 정확하게 말해, 어떤 예술은 자신을 잉태한 작가의 자연발생적 철학을 비웃거나 경멸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도 한다. 마치 발작과 그의 소설과의 관계처럼, 아니면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 사이가 그런 것처럼, 
아니면 고흐와 그의 그림 사이의 관계나 모차르트와 그의 몇몇 음악 사이의 관계처럼 말이다. 이 말이 어떤 예술작품은 필연적으로 상품이나 문화산업과 영원한 적대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작품이 좋거나 값비싼 상품이 되는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작품은 다양한 존재론적 층위와 두께를 가지고 있으며, 
다만 사람들이 상품이나 문화산업과 무관한 그것의 어떤 층위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바로 이데올로기적 독법 때문에 그러하다. 
예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독법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형식주의 독법과 인간주의 독법이다. 먼저, 형식주의 독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지적해보자. 
김남진의 작품이 표현주의적이라거나 동양화적 여백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요컨대, 그의 작품의 의미가 특정한 가시적 형식이나 양식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미각이 지배하는 음식이나 운동감각이 지배하는 서커스 따위로 환원하는 것과 같다. 김남진의 작품을 포함하여 모든 현대작품은 이미 시지각과 형식의 영역을 넘어서 버렸다. 
  
 이데올로기적 독법의 문제로 돌아가서, 나는 김남진의 작품을 작가 자신의 해석이나 소망과는 다르게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남진은 이번의 드릴작업 그림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그간 자신의 작품활동을 추동해왔던 인간주의 이데올로기에 역습을 가하고 있다. 
이건 그가 이번 전시작품들 모두에 “사회적 풍경”이라고 하는 큰 타이틀을 부여하면서도 정작 작품 속에는 사회적 풍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인간과 특히 인간의 얼굴을 전혀 그리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고로 인간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요 무대는 바로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인간주의가 왜 나쁘다는 걸까? 이러한 의아함은 하나의 상식과 다른 하나의 무지에서 비롯되는데, 하나는 인간주의를 인도주의와 같은 것으로,
인간에 대한 배려와 같은 것으로 보는 상식이고(이 두 가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인간주의가 현상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의 소산이라는 것에 대한 바로 그 무지이다. 관념론의 입장에서 인간은 이미 언제나 인간이다. 왜냐하면 관념론자는 인간의 본성이 각 개인에게 이미 실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념론은 또한 개인은 각자에 대해 모나드라고 주장한다. 
개인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뜻이거니와 관념론이 파악하는 개인은 다른 개인을 포함한 외부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창문이 없는 꽉 막힌 모나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이러한 모순이 바로 인간주의 이데올로기에 내장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주의 이데올로기는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우리의 눈을 가로막는 
일종의 안대 같은 걸로 기능한다. 나아가 인간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신이 안대를 씌어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자율적인 존재로, 안대 없이 자신의 맨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주체로 오인하도록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의 좋은 예가 바로 요즈음 우리의 유권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막투표행태다. 어떠한 이데올로기건 간에 그것에 걸려 넘어간 사람들은 현상의 유지라고 하는 구체적이고도 물질적인 효과를 생산해내는 바, 
좋은 이론과 좋은 예술은 바로 이것을 드러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예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론들 역시 동등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김남진의 사회적 풍경은 바로 이러한 인간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시각적 부정이고, 그림을 달리 봐야 한다는 강한 권유다. 
우리는 그의 그림들에서 눈에 드러나고 있는 구체적 형상들에 주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의 그림들 모두에 지배적으로 깔려있는 어떤 사회적 분위기와 기운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이 있긴 하되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놀이기구가 돌아가고 있으되 그걸 타고 놀아야 할 아이들은 종적을 감춰버린 화면의 정적 같은 분위기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렇게 존재하게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메커니즘에 대한 거의 불가능한 묘사로 이어진다. 

 마천루가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마치 빅브라더가 세상을 통제하고 감시할 때 있을 법한 종탑이나 사령탑 같은 꼭대기만 클로즈업되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유한계급들의 화려한 일상이 펼쳐져야 할 크루즈 역시 인간의 체취와 흔적이 죄다 휘발된 유령선 같은 모습으로 우연의 바다에 부유하고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막연하기 짝이 없는 존중심의 발로가 아니라 그러한 음산한 사회적 풍경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어떤 지각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분투노력이다. 
김남진의 사회적 풍경은 그의 화면을 채우고 있는 가시적 형상들 속에 그려져 있는 게 아니라 그 형상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 
하늘에 떠있는 연/놀이기구/유람선/마천루와 인간 사이의 필연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려질 수 없는 관계, 
강선학이 이태호의 억새그림을 두고 부재 아닌 부재라 불렀던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암시적으로만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알튀세가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를 두고 추상화가가 아니라 추상의 화가라 불렀듯이, 김남진은, 아니 적어도 이번 전시회의 김남진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그런 점에서 그리기가 불가능한 사회적 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추상의 화가다. (이번 전시회의 김남진에 국한시킨 것은, 

 내가 두 번째로 그의 작업 모습을 보러갔을 때 그가 다음 전시를 위해 작업하는 것이라며 보여준 것이 인간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바로 지적하지 않았지만, 
나는 인간의 얼굴로 되돌아가는 것은 일종의 예술적 퇴행이라 생각한다. 하긴 우리 모두 부단히 이데올로기를 경계하지만 항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필경 이 추상적 관계는 사회적 관계이고 더 깊이 말하자면, 어느 누구에게도 호출되지 않고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하는, 그러나 우리 모두를 보이지 않는 중에 통제하고 조종하고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이다. 
때로 어떤 그림은 이것을 드러내 보여준다. 잘 팔리는 그림들 중 소수가 좋은 그림이라면, 인간들 간의 추상적인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은 극소수일망정 모두가 좋은 그림이다. 
나는 이태호의 억새그림과 마찬가지로 김남진의 이번 “사회적 풍경”을 이 반열에 올려놓고 싶다는 강렬한 이론적 욕망을 느낀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자연발생적 철학을 거스르며 어떤 (좋은) 예술이 출현하는 것은 예술의 역사에서 흔하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의미의 비틀림이라 부를 만한 것 때문에 작가의 인간됨됨이와 작품의 위대함 사이에 간극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환상곡 C단조를 들을 때마다 이러한 의미의 비틀림을, 
예술가의 자연발생적 철학에 대한 의미의 변증법의 역습을 확인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김남진의 이번 전시작품을 눈에 드러나는 가시적 형상에 어긋나게 읽어야 한다. 
그들 역시 이를테면 대위법적 독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IV. 미술시장과 김남진? 
 
 현재 한국미술계가 미술시장의 활황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미술품펀드가 출시되자마자 매진되고, 경매장이 열렸다 하면 최고가가 경신되며, 
인터넷 미술품시장도 오프라인시장의 위세를 위협하며 고속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명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위작시비가 끊이지 않고 불거지고 있다. 
미술시장의 활황세가 미술에게 축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 한국의 미술작가들. 김남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의 활황세 덕분에 그들의 삶의 주름이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그건 당연히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버는 인간사의 일반법칙이 미술판에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한편으로는 요즈음의 미술시장의 활황장세 덕분에 김남진도 경제적 혜택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멀리 역사를 내다보는 작업태도를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긴 이번의 투기판 같은 미술시장의 활황장세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미술시장의 활황이 가져다줄 폐해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미술사학과 미술이론, 그리고 미술비평이 동반상승하지 않는 미술시장만의 활황은 한국미술계에 결코 사소하지 않은 폐해를 가져다줄 것이다. 

 한국 미술계의 경우 완고한 반지성주의 전통과 최근에 불어 닥친 미술시장의 활황으로 미술을 제대로, 그러니까 감각의 영역을 떠나 역사적, 이론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더욱 요원해져버렸다. 
예술을 정신의 소산으로 보는 헤겔의 관점 역시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미술사학계 및 미술비평계에서도 외면당하고 있으며, 오로지 시장에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으로, 
부동산 시장이나 주식시장과 경제적으로만 경쟁하는 전도양양한 하나의 품목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위작시비 역시 해당 작품의 미술사적 위상을 놓고 벌어지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건 오로지 작품의 경제적 가치하고만 관련될 뿐이며, 미술작품을 상품으로만 이해하는 그간의 관성적 미술이해방식을 더욱 굳히고 있다.
달아오르는 미술시장 역시 미술을 상품과 재화로만 받아들이는 추세에 부채질을 하면서, 미술을 헤겔이 말하듯 정신의 소산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비웃고 있다. 
미술의 이러한 이론적, 역사적 왜곡과 위축은 미술평론가들이 대규모로 미술시장에 투항하면서 상품가치만을 유일한 잣대 삼아 조잡하기 짝이 없는 평론을 써댐에 따라, 
아울러 일반 관객들로 하여금 미술을 정신과 예술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단지 재산증식의 유력한 수단으로만 보게 만듦으로써, 가속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해서 미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층위들이 단 하나의 요소로,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형식과 양식으로만 환원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보여주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는 데도 말이다.    

 한국 미술계가 이런 상황에 처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존의 한국 미술사 연구 및 서술의 안이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미술계에는 낭만주의 예술관으로 대표되는 강고한 반지성주의 전통이 남아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된 한국미술사 기술, 그 중에서도 학제적 접근을 통한 한국미술사 기술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미술사 서술은 여전히 인물중심의 역사 서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한국적 미술작품의 생산자가 곧 한국미술사를 담보한다고 하는, 
즉 위대한 미술가가 위대한 미술사를 보장한다고 하는 근거 없는 관념이 미술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미술사를 서술하는 데 그간의 인문학의 이론적 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미술사 서술로 이어졌다. 
낭만주의의 뿌리는 인간주의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주의적 낭만주의가 예술영역에서 표출되어 나오는 것이 바로 창조성, 천재라고 하는 신화와 유기적 예술작품이라고 하는 신화 두 가지이다. 
일견 예술과 작가 모두에게 유리하게만 작용할 것처럼 보이는 낭만주의가 왜 나쁘다는 것일까? 낭만주의 예술관은 이론적으로는 순진무구하고 정치적으로 보수반동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적으로는 예술의 역사에도 진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막는 눈가리개이다. 나는 한국의 예술계가 낭만주의의 세례를, 그것도 심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 좌우를 막론하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예술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중증 중의 중증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한국의 미술계 및 미술사학계는 미술사학 역시 역사학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문학이라고 하는 큰 우산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혀 눈뜨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런 문제의식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의식을 드러낼 뿐, 이를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정은 1960년대 이전의 서구 미술사학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메타역사학자인 헤이든 화이트는 진짜 역사학을 가르치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자신을 향해 빈정대듯 말한 미술사학자들을 꾸짖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의 미술사학이 “막 유럽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젊은 남녀에게 보여주는 슬라이드 쇼”같은 것이고, 진짜 역사학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 수준 낮은 것으로 이해했다. 
미술사학의 후진성이라고 하는 문제에 관한 한, 문화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훨씬 더 쌀쌀맞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미술사학의 경우를 들어다보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클 것이다. 
아마추어 전통과 한 번도 단절해 본 적이 없는 미술사학은 제멋대로 관조를 찬양하고, 자신의 연구대상의 성스러운 성격을 핑계로 성인전 해석학의 온갖 구실을 찾아낸다. 
작품들이 생산, 유통되는 사회적 조건의 문제하고는 완전히 담을 쌓고는 말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래 서구 미술사학계는 대단한 각성과 변화의 시기를 거쳐 이른바 신미술사학의 등장을 경험하였다.

 미술사 역시 하나의 역사학적 탐구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미술사학은 빈약한 사고능력과 분석능력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는 그동안 미술사학계가 인문학과 무관하게 굴러왔기 때문이다.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역사학은 연대기 이상의 것이며, 역사적 진행과정을 지배하는 일반법칙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학은 이번에 일어난 이런 사건과 다음에 일어난 저런 사건을 그냥 평면적으로, 연대기적으로 연결해 놓은 것과는 다른 것이다. 
역사학은 사건들 사이의 의미심장한 연관성을 추적해서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밝혀내는 일을 한다. 
미술사 역시 무수한 사건들 중에서 선택하기와 질서짓기를 가능케 하는 내러티브의 발견에 의해 비로소 기술된다. 내러티브란 역사라고 하는 이야기를 매듭지어주는 구조, 
즉 이야기구조를 일컬으며, 이런 점에서 푸코가 말한 에피스테메와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미술사를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봐야하지만, 미술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 
즉 지각적으로는 동일하게 보이는 두 미술작품이 미술사적으로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외관상 똑같아 보이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의 구조와 의미가 다르며, 해당 작품의 정체성은 집행되고 진척된 미술사의 국면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이 작업은 미술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늘어놓고 눈에 보이는 지각적 특성들(이른바 형식이나 양식)을 갖고서 시기구분을 하는 일을 뛰어넘은 작업이다. 
미술사학이 하는 일이 이런 것이라 할 때, 우리는 감히, 한국 미술사는 아직 기술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역사를 챙기는 미술사학이 출발점에조차 서 보지 않은 것만큼이나, 짧은 호흡으로 그때그때마다의 전시를 챙기는 미술비평 역시 인상비평이라고 하는 초보적인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심으로는 김남진 작가의 상업적 성공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북돋우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그가 미술사적 자리매김과 상업적 성공이라고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한국미술판을 지배하고 있는 평가기준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는 그레샴의 법칙을 촉진하고 있을 뿐이므로, 
나는 그가 그 기준에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미술사적 실천을 해주었으면 한다. 언젠가는 그의 노력이 미술사적으로건 상업적으로건 보상을 받게 되기를 염원하면서,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새로운 평가기준을 제시해본다. 올바른 미술비평은 미술사라고 하는 큰 맥락 속에 해당 예술가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V. 현대미술을 보는 법

  현대미술은 두 가지 양상을 띠고 있다.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 속에 있는 두 가지 양상이란 과연 무엇일까. 
미술은 자본주의로 진입하면서 “제도적으로” 상품이 되었다. 자본주의로 진입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자본주의 특유의 본성은 손에 닿는 모든 것에게 상품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시장으로 편입된 미술작품들은, 자본주의 시장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작가들이 전에는 없던 새로운 속성, 즉 새로움(novelty)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이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 자리에서 새로움의 추구가 마치 모든 작가들이 추구해야 할 미술의 본질인양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 예술사회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근거 없고 잘못된 주장이라는 말을 구태여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움은 잠재적 구매고객을 향한 새로움이고, 그것도 인상의 층위에서의, 시각적 의미에서의, 따라서 스타일과 형식상에서의 새로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술의 진화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의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미술의 분투가 층위를 달리 해서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위에서 지적한 대로, 미술가들이 시각적 전투장(arena)에서 정해진 룰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면, 모더니스트들이 전투의 장소를 시각성에서 미술의 정의(定義), 
미술을 미술로 만들어주는 것을 겨냥하는 정의와 관련된 사유의 영역으로 이행시킨다. 다른 하나는 모더니즘의 종말기에, 미술이 딱히 시각성, 시각의 영역, 특히 아름다운 형식 위에서만
미술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일깨우는 예술실천이 출현하는데,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이후의 컨템퍼러리 미술이다. 1960년대 전까지만 해도 미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지각에 의존하고, 
그로부터 비로소 미술이 성립된다고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들의 정해진 생각과는 달리, 그리고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듯이, 미술은 시각의 영역을 이미 오래전에 벗어났다.  
미술이 캔버스의 틀 안에만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제 현대미술의 상식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게 미술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술이 눈에 보이는 영역, 
달리 말해, 지각적으로 식별가능한 영역에 국한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현대미술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이런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여러 가지이다. 

 이를테면,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1964년)가 있다.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 진열장에 있는 브릴로 상자와 지각적으로 식별되지 않으므로, 
<브릴로 상자>의 작품으로서의 지위가 지각적 식별가능성의 원리에, 다시 말해 진열장에 놓인 일상적인 브릴로 상자들과의 지각적 차이에 힘입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미술작품은 지각적 식별가능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정의될 수 있다는 그간의 통념을 일순간에 의문에 부쳐버림으로써, 
미술작품의 존재이유가 비가시적인 영역에 있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따라서 1964년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있었던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전시회는 
관객에게 <브릴로 상자>를 보고 감상하라고 만들어진 전시회가 아니었다. 이 전시회는 작품이 관객의 눈에 보여지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혹은 관객이 그 작품을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그것의 예술로서의 지위를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이 시각영역에서 사유영역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미술사적 사건이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전시회는 그동안 진행되어온 미술사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변환 이래로 모두는 아니지만 어떤 예술은 거의 철학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시각예술가를 거의 시각적 사상가로 불러도 무방할 만한 어떤 것 말이다.
 
 둘째, 보임/보이지 않음의 절대적 이항대립을 뒤흔들어서 상대화하고, 기실은 양자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전제하고 불러들임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해체론이 있다. 
미술작품은 보여져야 한다는 원칙은 미술작품은 보여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대립항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미술사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어떤 작품이 한번 눈으로 쳐다보는 것으로는 
그 의미가 포착되지 않을 때, 이것의 충격효과는 다름 아닌 미술작품은 보이도록 전시되어야 한다는 지배적인 미술이데올로기에 크게 힘입고 있는 것이다. 
 
 셋째, 사진처럼 정확하게 사물이나 과거의 다른 작품들을 재현하고는 있으되, 즉 지각적 식별가능성의 원리에 입각해 있는 것 같으되, 
사실은 재현보다는 해석의 작업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게 옳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실제가 있다. 
이런 작품 역시, 돌려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의 눈을 초대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기실은 미술사에 대한 관객의 비판적 독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이래의 컨템퍼러리 미술은 관객의 눈을 거부하며, 나아가 눈의 거부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미술사적 독해를 요청한다.
  
 모더니즘 이후 미술사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는 아름답지 않은 것도 좋은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예를 들어보자면, 마티스의 <푸른 나부>는 그 어떤 미의 척도를 들이대더라도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다. 
피카소의 작품들 역시 18세기 이래 미술의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학의 척도를 벗어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을 나쁜 작품이라 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상업성에서도 성공을 거뒀지만, 진정한 성공은 바로 미술사적 실천에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술작품이 시각적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미학적 가능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만큼이나 현대미술을 왜곡해서 보는 시각도 없다. 
 
 우리는 한국미술계에서 이 두 가지 전환을 아랑곳 하지 않는 작품들을 많이 보아왔다. 
미술에도 역사와 변화와 있었으며, 미술이 사회, 역사적 진공상태 속에 붙박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한국의 전업작가들이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시장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잠재적 고객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유형의 작품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자기검열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하긴 고객들 대부분이 미술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치를 시대착오적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고객들은 미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작품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고 
눈앞에 그런 작품이 걸려있어도 그렇게 읽어낼 해석능력도 없다. 그들은 예전처럼 눈에 익은 유형의 작품만을 원할 것이며, 미술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왜곡된 미술시장이 달라지지 않는 한, 그리고 미술비평가가 현대작품을 읽어내는 능력을 구비하지 않는 한, 이러한 구매행위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전업작가들이 어떻게 이들의 기대와 습관적 구매행위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작가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작품의 표면에 아름다움을 그려 넣는 작가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 의미를 구현하는 작가는 미술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비평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작품과 아름다운 작품만을 보고자 하는 고객 사이에는 비평가가 들어설 자리도 이유도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구현된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써 해당 작가와 작품에게 미술사적 자리매김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비평가가 할 일로서, 이것은 작가의 자연발생적 철학마저 읽어낼 줄 아는 심층적 독서를 요한다. 
부산화단을 포함한 한국의 미술계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시각적 정당화가 아닌 철학적 정당화를 감당할 비평가의 출현일 것이다. 
  
 나는 적어도 이번 초대전의 김남진은 미술사적 자리매김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는 작가가 되는 데에도 바로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평가기준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김남진은 옆 눈 팔지 않고, 미술시장에 추파를 던지지도 않으면서 꿋꿋하게 미술사적 실천을 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