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꿈을 먹는 추억 이야기-장준석

구원선의 예술세계

 꿈을 먹는 추억 이야기
                                    장준석(미술평론가, 미술과비평 주간)

예술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생명성을 지니고 있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슬픔과 기쁨 그리움 그리고 아픔 등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그러기에 예술가의 손을 거쳐 태어난 작품들은 작가로부터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남다른 문학성과 음악성을 지니고 시심을 품어 대화를 나누듯 그림을 그리는 구원선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그녀가 198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한 이래로 흐트러짐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열심히 그림만을 그려올 수 있었던 것은 훈훈하고 따스한 마음 때문이다. 
화선지를 중심으로 한 최근작인 <강변 연가>시리즈 역시 화선지처럼 부드러운 작가의 고운 심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림이 한없이 좋아 그림 없이는 살 수 없는 구원선은 이러한 따스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닌 작품들을 하나하나 탄생시킨다.  
 
그녀는 여느 미술교사와는 다른 특별한 끼와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그녀의 작품은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소박하고 구수하며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 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마치 이웃의 아줌마나 아저씨가 편안하고 부담 없이 그려낸 그림처럼 말이다. 따라서 얼른 보기에는 누구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흐르는 손끝에서 나오는 음악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시적 생명력은 흉내 낼 수가 없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 마음에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더 좋은 그림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지역을 두루 다니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미적 감흥을 일깨우면서 작가로서의 힘을 키워나간다.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많은 곳을 다녀야 한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처럼 작가는 자신의 그림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보다 좋은 작품을 위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미적 체험은 작가의 타고난 미적 감각과 하나가 되어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탄생된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체득된 흡수력은 영롱한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들처럼 더욱 빛나는 미적 생명성을 갖게 해준다. 
구원선의 손에서는 조각 난 화병이나 타일, 망가진 바이올린 등의 온갖 잡동사니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하며 다시 태어난다. 
<향기 날려 보내기>, <향기 흩날리기>란 시리즈로 창작된 작품들은 주로 이처럼 다양한 물건들이 조화로운 하나가 되어 회화적으로 형상화 된 경우이다. 
일상에서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작가의 포근하고 따스한 예술적 손길에 의해 사각의 캔버스 안에 한데 모여 감동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음률이 되는 것이다. 
작가의 내면에 머물러 있는 미적인 감각과 감흥들이 은은한 향기를 발하며 우러나와 영롱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구원선의 작업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향기 날려 보내기>보다 조금 뒤에 탄생된, 
사각의 종이 틀 안에 시적 이미지와 영감을 불어넣은 <작은 상자 속의 풍경> 시리즈는 작가 구원선의 또 다른 역량을 보여준다. 
강렬한 색감이 광활한 대지에 작렬할 듯 맴도는 이 일련의 작품들은 정열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바이올린의 언저리를 타고 시의 운율과 음악의 선율이 흐르듯 푸른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여기에는 고향인 부산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이 함께 녹아있는 듯싶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부산의 광활한 바다를 보고 자랐는데, 
초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매일 사오십 분 되는 거리를 걸으면서 바다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기 일쑤였다. 여름엔 작열하는 태양이 검푸른 바다를 집어삼킬 듯 하였고 
겨울에는 백사장 위로 펼쳐진 하얀 설경이 어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그마한 사각형 틀 안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보고 느꼈던 미적 감흥이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사각형 틀 자체가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을 담는 추억의 그릇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구원선의 일련의 작업들은 소중한 추억과 경험으로부터 이루어진 색감이 들려주는 구수한 이야기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화병이나 여러 종류의 그릇 등은 그녀의 소중한 이야기꺼리를 담는 그릇이자 추억을 간직하는 소중한 상자이기도 한 것이다. 공
간에 매달린 둥근 원구에도 그녀만의 마음의 이야기가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항상 현재 진행형인 구원선의 작업은 또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줄곧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안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의 그림 이야기는 소녀 같이 수줍고 다소곳하면서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색을 두텁게 칠한 가운데 가는 실선처럼 긁어내는 작가의 최근작에서는 향긋한 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봄의 이야기를 담은 듯 펼쳐지는 연두색과 녹색, 푸른색은 그녀만의 바다 이야기이자 사랑의 멜로디라 하겠다. 
게다가 부드러운 화선지에 스며드는 물감이 너무도 아름다워 화선지 위에 아름다운 색을 마술사처럼 펼쳐놓게 된 
최근의 <강변 연가> 시리즈는 구원선의 작품세계를 더욱 촉촉하고 담담하게 수놓는다. 
그것은 섬세한 여성의 손으로 빚어진 인절미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며 선명하고 밝은 색들로 이루어져 작품으로의 가치가 높다. 
그녀가 화선지 위에 표현하는 색의 향연은 마치 봄의 향기를 감싸는 것처럼, 또는 조그마한 쪽배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바다로 나아가듯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독특한 화풍으로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그녀의 예술적 직관은 ‘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채우고도 비움의 효과 -김순진
채우고도 비움의 효과 - 구원선 전 

구원선은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다. 그러나 그녀는 미술을 가르치기에 앞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는 방법을 가르치고 유도한다. 
그녀의 시각에는 모든 것이 꿈이고 꽃이며 추억이고 별이다. 그러기에 그녀의 그림을 생각하면 늘 강물이 흐르는 언덕에 모란이 핀 집이 연상된다. 
밤이면 별이 쏟아져 내리는 그런 집은 우리들이 살고 싶은 그런 이데아다. 그러나 구원선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녀의 작업은 언제나 만개한 꽃이다. 
꽃 봉우리가 이제 막 피어나는 여린 꽃이기보다는 활짝 핀 꽃, 다시 말해서 인격완성을 향한 열정을 연상케 하는 그녀의 작업은 언제나 밝은 그녀의 모습처럼 화사하다.
이번 제8회 한국현대미술제에 출품한 작품들을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어두운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강변연가」나 「내마음의 별」 시리즈를 볼 때, 우리는 어느새 화사하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고, 밝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으며, 
꽉 찬 듯하지만 어느 곳엔가 내가 쉴 틈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그림에 발을 묶어, 세우게 된다. 우리는 빈곤 속의 풍요란 말을 자주한다. 
또 여백의 미라는 말도 많이 한다. 동양화에서 벼랑에 늘어진 난초의 잎사귀와 꽃 몇 송이에서 선비의 기백을 느끼는 것이나, 
화폭을 모두 채우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답답함을 없애려는 의도다. 

그런데 구원선의 그림은 「강변연가」시리즈에서처럼 단 한 구석의 여백도 없이 모두 채우면서도 비움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그것도 화려한 칼라, 다시 말해서 레드와 블루와 옐로우, 코발트 등의 몇 가지 색채로서 신부 화사함과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허전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하는 화법, 축제이되 
축제를 준비한 이면의 이야기를 중시하는 구성, 곡선만으로 세상을 견디고 헤쳐 나가려는 터치는 스스로 터득해낸 그녀만의 터치이다. 
꽃잎에서 별자리를 찾는 그녀의 우주적 신비감은 둥근 달을 연상케 하는 그녀의 외모적 신비감에서 비롯되는가보다. 
경희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1995년 한서아트홀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개인전 12회, 한국국제아트페어(코엑스 인도양홀) 출품을 시작으로 
단체전에 120여회 참여하는 등 수없이 많은 활동으로 이제 화단에서 중견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글 김순진(시인, 스토리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