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섬들의 기억과 이미지, 혹은 이미지의 기억들-이익주
섬들의 기억과 이미지, 혹은 이미지의 기억들
- 이은경의 작품에 대하여
           
이익주
(파리 1대학 미학, 예술학 박사)

불어에는 insularité 라는 단어가 있다. 섬(島)의 형용사인 insulaire 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이 단어는 그 어느 언어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표현이다. Insularité는 섬(島) 적인 것, 섬성(島性)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섬을 넘어서 풍경이나 대상, 사물에 깃든 섬(島) 적인 특성을 의미한다. 즉, 고립을 상징하는 섬의 이미지가 또 다른 열림과 상상의 이미지로 도래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섬성(島性)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섬성(島性)은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인간 속에서 섬의 이미지는 때로는 삶의 기쁨과 추억 같은 열림의 이미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 이은경은 바로 이러한 섬성(島性)을 작품 속에서 드러낸다. 특히 항상 섬이 보이는 그녀의 고향 여수, 그곳에서의 실재적인 기억이 그녀 안의 섬성(島性)과 함께 만날 때 비로소 그녀의 회화 이미지가 탄생한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섬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작품 속에는 태고의 섬성(島性)으로써의 기억들이 담겨 있다. 
우리는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억은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혀 있다가, 어떤 사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다시 우리의 현재로 솟아오르곤 한다. 굳이 베르그손의 철학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기억은 인간 존재의 근저이며, 늘 순간의 감각들을 점유한다. 바로 이은경의 작품은 그녀를 사로잡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연관된(특히, 섬과 관련된) 자연과 사물들에 대한 기억의 이미지들이다. 그녀의 문인화에서는 항상 현재로 솟아오르는 기억의 상처들과 표면적인 서정성이 맞물려 있다. 서양화에서 느낄 수 없는 동양적 선과 그 먹의 번짐은 현실의 수면 위로 퍼지는 그녀의 기억 속 이미지들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그 이미지들은 그녀의 독백이자, 언어(문자)로서 다시 말하면, 시-이미지로서의 시를 통해 때때로 그녀 작품 속의 텅 빈 여백들을 메운다. 아름다운 한글 체로 쓰인 그녀의 시는 단지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시가 아니다. 이는 그녀의 작품 속에 남아있는 여백과 기억의 공간을 채우고, 그림 속의 이미지들과 경쟁하며,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다. 그녀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나 물고기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배회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다시 새롭게 자리잡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잊을 법한 기억의 대상들이 그림의 이미지로써 등장할 때, 기억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 먹으로 이루어진 동양적 선의 미학과 서정성 그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은경의 문인화는 고양이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섬성(島性)의 이미지와 그 기억에 대한 그녀의 섬세한 감각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이며, 자신의 기억 속에 숨겨진 상처에 대한 치유의 한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치유의 과정의 결과물로서 이은경의 작품들은 단지 과거의 기억을 통한 현재의 이미지로서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깊은 깨달음을 향한 잠재적 이미지로 더욱 나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