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1-31 작가노트-Life and Artistic Vision
Life and Artistic Vision 
  

1982년 경남 통영에서 수산업을 하는 이종영씨와 송림수 여사의 9형 제중 첫째로 태어났다. 1930년대의 소년기에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남달리 손재주가 많다는 부모님의 칭찬과 더불어 연 만들기, 소병풍 그림을 그려 왔다. 잡지나 연습장엔 온통 꽃과 식물 등을 그려 가면서 나는 조그만 최남단의 섬 통영을 나의 생활터전으로 시작하였다. 통영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교사임용고시에 합격, 모교인 산양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여 오다가,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 군복무중 이 지역에서 유명한 서승찬(작고)화백의 화실을 다니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였고 군제대후 당시 거제 장승포초등학교에서 교사직으로 근무하였다.    

거제초등학교에서 10년간 근무하면서 나는 미술에 대한 애착과 기능을 인지하게 되었고 경남교육감의 미술연구원으로 추천받아 중고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이러한 와중에서 급성간염과 폐결핵을 앓게 되어 고향인 통영초등학교로 전근했다. 교육위원회에서는 그 동안 나의 공로를 인정 6개월이란 긴 시간을 주어 요양을 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간의 교육자로서 헌신적 노력을 인정받아(1960년) 국가 최고의 내 각수반상을 수상했고 통영고등학교로 옮긴 후 퇴직을 하였다. 나는 통 영의 특산물인 전통공예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전칠기(진남 공예사)를 설 립, 7년간을 운영해 기업가로서도 성공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는 그림의 끼를 주체하지 못해 작품제작을 계속 해왔고 1970년에 대한민국 국전에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위해 서울로 이주하였다.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내가 국전에 도전장을 낸 것은 당시 한국의 미술은 국전에서 수상을 못하면 화가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풍토였기 때문이다. 1970년 이후에도 계속 대한민국 국전에 입선과 특선을 했고, 연 3회 특선의 기쁨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낙선의 고배를 들고선 붓을 꺽는 갈등을 격기도 했다. 1976년 에 다시 특선을 받으면서 작업에 탄력이 생겼다. 1978년에는 대한민국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수상작품이 전시기간에 도난을 당해 화제의 작품 작가로 알려지기도 했다. 1980년에는 화가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로 초대되면서 한국화단에서 나의 작업을 인정받았다. 작업을 하는 중에 나는 대상과 깊은 대화를 하면서 대상물의 쓰임과 역사관, 재질감, 그리고 지난 세월의 환기를 다시 되새기면서 역할에서 화면에 접근한다. 여기에는 잘 다듬어진 이조백자나 분청사기, 고가구 등을 대유시키는데 이것은 철저한 한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고자 하는 정신의 시작이다. 오천년의 문화유산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였기에 남달리 토기와 목기, 백자 등을 화면에서 디테일한 묘법으로 작업 해왔다. 특히, 사물의 외형적 대상성에 접근하기보다는 민족의 혼을 찾 고자 하였고 하나의 작품은 시대문화를 이끌어 간다는 중요한 사명감으로 작업을 해왔다. 1960년~1978년, 초기에는 리얼리즘에 심취했으나 1980년대부터는 자연의 형상성과 이지적 사고에서 화면의 형식성 을 개척하여왔다. 아름다운 고향의 향가나 해안을 감도는 산자락, 노년 기형의 완만한 구릉은 나의 작업의 스승이었다. 내면의 재질이나 구체성보다는 대상의 외형적 조형성을 가미, 자연을 상징화시킨 작업으로 표출하여 왔다. 특히 통영바다 해안의 서정이 나의 작업의 분기점을 이루는데 힘이 되었으며, 1990년 서울갤러리 전시는 새로운 화법을 구축 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 후 1992년 유럽 여행기간에 파리에서 피사로 3세와 만났고 1995년 한국일보사 초대로 피사로 3세와 합동전을 가진 것은 나를 보다 한국적 인 것에 대한 열망을 갖게 했다. 1995년 이후 나는 작품에 우리 민족의 애환과 삶의 현장을 동양미학의 갈필의 준법으로 선과 면을 대비 시켰고, 표현주의적 사고로 사물을 단순화시켜 작업을 해왔다. 특히 이러한 작업들은 그동안 작업해온 화법의 진화 과정이다.  

나의 작업에 단일테마로 주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강산들은 동 양의 인본주의와 합리주의에 의한 조형 활동이다. 견고히 다져지는 밀 도성은 시공을 초월한 색감으로, 잊혀져가는 한국자연의 서정과 평화를 갈망하는 민족 회화를 담고자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