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눈도 귀도 맑아지는 물속의 화엄華嚴 -신병은
그림이 보이는 에세이


눈도 귀도 맑아지는 물속의 화엄華嚴  
신병은(시인)


 1. 맑고 행복한 세상과의 소통

 본질과 현상에 대해 생각한다.
 본질과 현상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본질은 안쪽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의 결과라면 현상은 그 질문에 대한 시간적인 경과이며 겉모습이다.
 '안'과 '바깥', 현상 속에 본질이 있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고, 희망이 있기에 절망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사는 방법과 모습을 살피면서 그 속에 담긴 생명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 통찰이다. 
 그래서 통찰은 삶의 가장 적법한 소통이다.

 이형모의 통찰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통찰은 세계의 원형을 끊임없는 탐색하는 자기 질문이고 소통이다. 그것도 물속을 유영하면서 물속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과 소통하고, 그 속에 있는 풍경을 통해 유토피아적 삶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물속의 맑고 행복한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의 물속 세상은 가 보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는 풍경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물속 풍경을 통해 바깥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맑은 삶에 대한 의미체험을 갖게 해준다.
   
 신비롭고 장엄한 물속의 화엄華嚴, 
 물 속 풍경을 통해 또 다른 삶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는 작가 이형모, 
 그가 실제 물 속에서 보고 느낀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쳐놓은 화두가 있다면 그가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상징에 닿아있고 어떤 상상력으로 전개되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감각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바다는 더욱 생명력 넘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각적인 심상뿐만이 아니라, 청각적 심상까지 환기시켜준다.
 그리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물 밖 세상의 상처와 아픔을 맑게 씻어 정화시켜주는 것이다.   
 
 바다가 넉넉함과 포용의 모성母性을 상징하며, 삶의 본향에 이르는 통로라는 제의적 의미를 빌지 않더래도 대자연의 질서 안에서 인간의 삶과 유기적 관계를 유지해온 바다는 세상의 모든 삶의 모습이 다 모여 있는 공간이며, 우리가 아는 모든 삶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현실이다.

 격동과 정적이 있는가 하면 흐름과 멈춤도 있고, 삶과 죽음이 있고, 혼돈과 질서, 평화와 다툼이 있는 양면적 모습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예견하고 있는 진행형의 바다이며, 숱하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 길 속에는 우리의 가장 순수한 본능적 실존을 반추하게 하는 현실이 있다. 
 그럼에도 작가 이형모의 바다 속은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고 신비하다. 
 마치 산사와 같은 정적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비워지고 경건해지는 신비로운 울림이 있다. 
 그 속에도 길이 있고, 영롱한 생명의 흐름이 있고, 변화무쌍한 빛의 향연이 있고, 물고기와 해초의 맑고 고운 언어가 있으며, 평화가 있고 사랑의 이야기가 있으며 푸른 숲이 있는 삶의 공간 그 자체다. 
 그가 수중 깊이 열어놓은 물길은 인간과 자연이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삶을 공유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가 물 속에 열어놓은 길의 여정은 육상에서의 모든 법이 바다와 인간의 마음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며, 함께 자연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통로이자 울림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사물의 해체나 불확실한 상황설정이 필요 없다. 일상의 세계를 떠나 초월로 향하게 하는 의지도 없다. 그저 야생의 바다의 색과 모습을 그의 시선 안에서 당차게 담아냄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수중 세계를 스스로 유영하하게 하며, 포장되지 않은 본래적 모습으로 새로운 삶의 환희를 누리게 한다. 그의 바다가 인위적 논리에 대한 거부이며 자연적 순정과 질서에 대한 갈망이자, 삶의 존엄, 동화적 삶의 가능성, 사랑과 평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며 방법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2. 자유와 평화의 원형 상징

 물속의 세계는 그저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때묻지 않은 또 다른 삶의 전형이며, 그것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원형이라는 상징으로 의미를 확대하기에 이른다.
 안과 밖의 경계가 두꺼워 침묵 속에 안주하는 요즘, 오랫동안 닫혀있던 바다의 창을 열고 물길을 열어놓고 그는 지금 바다의 깊은 심연을 툭툭 건드려 깨운다. 
 파닥거리는 해명, 무한천공 한 획의 수평선을 그어두고 물 밖에서 물 안으로 길을 낸다. 그리고는 물 밖도 물 안도 그의 그림 안에서 함께 공존하며 서로 소통한다. 거북도 노래미도 돌돔도 불가사리도 산호도 하나같이 서로 정겹게 소통하는 공간이다.

 90년대 초 화단에서는 처음으로 수중화 개인전을 연후 지금까지 바다 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지상과는 달리 심해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검은 색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불빛을 비추었을 때는 환상적인 새로운 세계로 재생된다고 한다. 수중에서만 가능한 이러한 색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해 그는 유화를 주로 사용한다. 흡사 사진매체를 활용한 것처럼 수중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 그의 그림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그림은 환상적이고 몽유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환상적인 몽유도원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성급한 면이 보인다. 
 오랜 기간을 수중을 탐색하다 보니 이동식 카메라같은 작가의 시선에 비친 물 속의 풍경은 신비롭고 환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의 조형어법이 수중체험과 상상의 통합에서 결과된 새로운 공간탐색이기에 그는 다분히 사실적 생명력을 갖는다.  

 “수중에서는 두 가지의 빛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연광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의 눈에서 발사되는 빛이다. 작품 속에 나타낸 빛은 자연광과 인공광의 합성으로 조화된 것으로 수중에서의 인공광은 작가의 의도대로 구사되며 숨어있는 색을 발견하는 수단이 된다”

  자연광에 기초하여 분석된 시각적 색채의 감동과 더불어 찾아드는 명상적 감수성에 대한 공감은 그의 조형언어가 평화와 자유라는 환상적 분위기로 굴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때 다르고 사리 때 다른 바다는 예측할 수 없이 변화무쌍한 우리 삶의 현장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동굴, 열대어, 산호, 말미잘, 거북, 바위들을 통해 표현된 동화같은 맑은 삶의 이야기가 굴절되어 있다. 그 속에는 생의 영롱한 숨결이 숨쉬고 있어 훼손되지 않은 세계와의 만남이 가능할뿐더러 속된 삶의 허물을 벗고 맑고 고운 영혼을 만날 수 있는 여백이 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꽃피는 물 속의 여백, 
 그 속에서 우리는 잠시동안이나마 마음을 비운 채 물의 깊이마다 져며있는 삶의 처음을 만날 수 있다.   


3. 은유의 기억으로 사색된 바다 

 물속 공간의 실용을 비워 꿈의 정원을 가꾸려는 작가의 자의식이 차지하는 여백은 맑고 투명할 수밖에 없다. 그가 한결같이 탐색해온 물속 풍경은 자연의 숨결이 배어있는 또 다른 삶의 현장이자 형형색색의 물꽃과 물의 숲이 어우러진 작자의 집이며 정원이다. 
 그 곳에서 훼손되지 않은 존재의 정체성, 삶의 근원적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사색하고 있다.
 가시적이건 불가시적이건, 현상적이던 몽상적이던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원시의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상상의 통합으로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는 바다로 보였기 때문이. 빛에 따라 달라지는 해저 세계를 탐색하는 그가 근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상과 수중세계의 연결이다. 이를 통해 현실과 상상이 한자리에서 화해롭게 만나는 새로운 미학적 형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지상의 풍광과 수중의 풍광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공간이라는 인식하에 일상적 삶의 카테고리로부터 현대인의 정신적 답답함을 해소해 주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생생한 체험과 상상이 어우러진 수중 관조는 보이지 않는 심연의 바다도 아름답게 현시되어 그의 작품 안에 들게 된다. 
 단순히 수중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유리알처럼 맑은 삶이 투영된 희망의 메시지, 잠시나마 가슴 답답한 현실을 떠나 진정한 피안으로 향하게 해준다. 
 물 속 깊은 바다의 유영은 현실 속에 묻혀있던 영원한 그리움의 재생이며, 넉넉하게 껴안아 주는 포용의 제시이며, 차마 시선 안에 담아 둘 수 없어 가슴으로 보덤어낸 투명하고 맑은 삶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바다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숱한 이야기가 담긴 우리 삶의 현장이며 심해의 곳곳마다 펼쳐진 푸른 정원이다. 

 우리들이 그동안 잃어버렸거나 숨겨진 순수한 삶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한결같이 물 속을 유영하고 있는 작가 이형모. 
 그는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바다의 정서와 사상을 은유의 기억으로 탁본해 낸다. 
 문명의 이기로 훼손된 현대인들의 가슴 한켠에 해저 깊숙히 유영하는 신선한 감동을 안겨 줄 것이 분명하다. 물 속 깊이 숨겨져 있는 보석처럼 맑고 고운 우리 삶의 현장과 환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그의 바다, 우리에게 현실에 찌든 생각의 둘레를 벗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눈도 귀도 맑아지는 그의 바다에 흠뻑 젖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