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존재와 생명의 아이콘-김영호
존재와 생명의 아이콘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화가의 길은 삶의 노정과 다르지 않다.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끝없이 변하는 존재들에 대해 말을 거는 것이 삶이라면 그림은 그 삶의 시각적 표현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걸까’ 라는 질문은 화면에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 그 질문이 우주와 시간의 신비스런 비밀과 그 안에 존재하는 생명들로 확대되면 화가는 다양한 이미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다시 화면으로 투영되어 다양한 형상을 잉태시키고 그 형상을 통해 화가는 새로운 길을 걷는다. 

이문표의 화두는 ‘존재’에 대한 성찰로 요약된다. 생명의 근원과 신비로움에 대한 명상이 그가 선택한 주제다. 최근의 작품에 표현된 존재의 모습은 하나의 일관된 조형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물감을 두텁게 올린 바탕에 나비나 새싹 따위의 미물을 등장시켜 배경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때 화면은 하나의 평면이거나 또는 다양한 크기의 작은 면들로 조합된 구조를 지니며 그 내부 어딘가에 그려진 이미지는 간략한 선묘로 처리됨으로서 거친 바탕과 세밀한 형태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역설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이문표의 작품에 등장하는 존재 이미지는 은유적 어법으로 표상된다. 거친 화면에 얹혀진 나비나 새싹 그리고 인물 이미지는 본능과 욕망대로 살다 대지로 소멸될 생명을 암시한다. 또한 크고 작은 사각면으로 구성되거나 장미의 형상으로 커가는 캔버스는 대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성 혹은 생명의 환희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은유법은 이문표의 작업을 특징지우는 요소이자 관객들에게 소멸과 생성의 사이클을 따라 변화하는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이문표의 작품은 주제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 색채가 결코 어둡지 않다. 작가는 그 이유를 자신이 겪었던 경험 때문이라 설명한다. 몇 년 전 교통사고를 계기로 체험한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감사와 환희는 그의 작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표상하는 캔버스 공간은 화려함과 신비의 장소이며 그 안을 살아가는 미물들은 생명현상에 대한 환희의 서정이 동시에 녹아있는 터임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존재에 대한 이문표의 생각이 이 같이 화려와 신비의 색채로 표현되기 까지 몇 단계의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그의 몇 년간의 노정을 살펴보는 것은 그의 최근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7년에 제작된 ‘존재(Existance)' 연작은 배접된 한지에 두터운 마티에르의 군상들을 배치해 놓은 것이었다. 한지라는 유기적 표층의 재질 위에 거칠게 올려진 인물군상은 마치 나무껍질을 붙여놓은 것처럼 강한 물질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결코 화려하거나 즐거운 서정과는 거리가 먼 무겁고 어두운 존재의 일면이 있다. 필자가 이 연작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거기에서 화단의 구태의연과 타협하지 않는 작가의 세계관 즉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의 흔적과 작가로서 소명의식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에 제작된 ‘존재...삶’ 연작은 이문표의 그림이 한 단계 정제된 차원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캔버스의 바탕은 화강암의 표면처럼 균일하게 펼쳐져 있으며 그 요철의 공간에 등장하는 ‘걷는 군상’들은 최소화된 선묘로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자코메티의 조각에서 느껴지는 존재의 고독감이 선묘의 행간을 흐르고 있다. 이전의 인물군상에서 보였던 얼굴 표정이나 허공에 드리워진 구름의 서술적 묘사는 일시에 사라졌지만 그 작품에서 표상되었던 존재를 둘러싼 의미들은 새로운 차원으로 존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실험적 과정에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2009년에 들어서면서 이문표의 작업은 ‘우주(cosmos)와 생명(life)'의 차원으로 변화된다.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들 연작은 생명의 신비로움과 생명현상을 지속하는 자연의 법칙성에 대한 찬미의 태도가 서려있다.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생명에 대한 감사와 생명이기에 인고해야 하는 시간’에 대한 경의의 서정이기도 하다. 이문표가 그려내는 세계는 욕망을 좇아 방황하는 존재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존재의 양태가 삶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또 다른 힘으로 작용할 때 그의 작품은 한발 더 우리 앞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