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이미지에 투영된 시공, 공명하는 존재로서의 이미지 -홍경한
이미지에 투영된 시공, 공명하는 존재로서의 이미지 
-작가 이영준의 근작을 중심으로 

글ㅣ홍경한(미술평론가)

1. 물리적 관점에서 현존성에 뿌리를 둔 인간이 ‘시간여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사가 일방통행 식 진행형으로만 존재하는 순연의 법칙, 피고 지는 자연의 이치, 오름에 따른 내림이라는 순차적 섭리를 거스르는 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시간여행’은 단지 이상일 뿐이다. 특히 모든 질량에는 그에 합당한 에너지가 존재하고 물체가 운동 에너지를 얻으면 질량이 증가하며, 따라서 시간을 이동할 만큼의 질량을 움직이기 위해선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과학적 이론만 봐도 그것은 이뤄질 수 없는 몽상에 다름 아니다. 적어도 현재로선 그렇다.
하지만 지적인 체계를 지닌 인간은 오랜 시간 끊임없이 넘볼 수 없는 곳에 시선을 고정시켜 왔다. 견고하게 직조된 현실의 거푸집을 이탈해 다양한 물리적 포박(捕縛)으로부터 해방되려 애썼고, 그것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마저 주저하지 않았다. 그 근간(根幹)이 된 것이 바로 상상과 사유, 관념이었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가장 앞서 고개를 내민 것은 언제나 예술가들이었다. 그곳에서 예술가들은 시간이나 공간, 현실과 초현실의 구애를 받지 않은 채 시공의 터널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다. 미래를 선회하고 과거로 돌아가 삶의 일부를 재생하곤 했으며, 역사를 녹여 내고 현세를 대입하며 아직 보지 못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궁극과 기억의 단층을 횡단하곤 했다. 이처럼 예술가들에게 있어 시공이란 극복 불가능한 대상이 아닌, 과거를 어미로 한 현재의 시원이며 그들의 예술작품들은 미래를 담보하는 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2. 예술가들은 실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상상(想像)과, 구성 ․ 판단 ․ 추리 따위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이성 작용인 사유(思惟)에 누구보다 심도 있게 탐닉했고, 사유가 사람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표상 ․ 개념 또는 의식내용을 가리키는 관념(觀念)과 교배할 때 어떤 현상이 더 이상 실제적 경험에 국한되는 것을 배척하도록 만든다는 점을 인지했다. 여기서 잉태된 알고리즘(algorithm)이 시간의 축적과 문명의 힘을 받을 경우 인간의 욕망을 구체화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는 결국 예술가들의 상상과 사유, 관념이 결과적으로 또 다른 세계를 켜는 스위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영준의 작업 역시 동일한 궤를 그린다. 
작가 이영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화두(畵頭)는 ‘시간여행(Time travel)’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시간에 대한 탐미이며 상징을 축으로 타인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울리는 회상의 공명(resonance)이다. 현세(現世)를 기반으로 한 존재성에 대한 자문이며, 청동기, 고대 신라, 백제, 조선 등의 시대를 오가고 현실과 종교를 직렬 및 병렬식으로 타고 넘으면서 근원의 기억들을 주관적으로 재구성해 되레 현존성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여정(旅程)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여행(Time travel)’이라는 명확한 주제의식 아래 펼쳐지는 이 여정은 이미지의 징검다리라는 프로세스를 거치며 완성된다. 그 이미지들은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시간여행’이라는 주제와 조형성 사이의 결합을 더욱 밀착시키는 요인이면서, 또한 그의 작품이 다른 무엇과는 또 다른 개성적 요소로 부족함이 없는 증좌(證左)로 남는다. 물론 이 증좌들은 공명을 완성하는 분자이고, 하나하나가 다른 세계로 통하는 개별적인 문(門)이자 브리지(bridge)가 된다. 이어 그 모든 것들은 흥미롭게도 타자의 동참을 이끄는 자연스러운 나침반이 된다. 

3. 그가 그려가는 도상들은 형식면에서 다분히 현실을 직접적이고 진실하게 제시하는 리얼리즘(realism)에 입각해 있으면서도 초현실(sur-real)과 맞닿아 있다. 이 접점(接點)은 포괄적으론 시간과 공간에 작게 뚫린 일종의 웜홀(wormhole)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층위를 달리하는 시공간과 동일 시공을 잇는 좁은 통로로 '시간여행자'들이 다가설 수로 있도록 돕는 기능을 맡고 있는 셈이다.  
통로에 이르면 우린 '시간여행자'를 실어 나르는 명료한 수단과 만날 수 있다. 그건 바로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인 '증기기관차'이다. 이영준의 그림 속 '증기기관차'는 시간여행의 시각적 매개체이자 동시에 심행의 구동체(驅動體)이다. 이것은 의미론적으로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초현실이라는 두 차원을 연결 짓는 실질적 고리이며, 현재라는 줄기와 과거라는 뿌리를 꿰는 기둥과 같다. 
그리고 기 언급한 이미지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에 오버랩 된 채 질서 있게 등장하는 다양한 토기와 청동기, 석탑, 훈민정음, 목어, 새, 나비와 같은 이미지들은 그 뿌리와 줄기 위에서 자라난 잎사귀와 같다. 증기기관차는 이들을 레일(rail) 삼아 다른 차원의 시공을 달리는 실용으로써의 기관차로 존재한다. 그러나 개념상 이 기관차는 작품 전반의 서사를 책임지고 있는 이영준 자아의 조타(操舵)로 존립(存立)한다. 우리가 물리적으론 다가설 수 없는 시공으로 인도하는 초월적 성격을 지닌 관조적 매개물임에 틀림없지만, 작가가 새로 쓰는 역사, 신화의 세계에 동승해 무한한 상상의 유희를 고찰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된 아이콘(icon)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는 것이다. 

4. <코렐라인-비밀의 문>이나 <나니아 연대기>에서처럼 상상의 씬(scene)을 연결해 과거 혹은 미래가 현재와 맞닿게 했던 영화들을 봐도 그렇고,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의 공상화나, 보다 넓게 충동적이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서정적인 카프리치오(capriccio) 경향의 회화들을 보면 역대 예술가들의 관심이 작금의 반영을 넘어 어디로 지향해 왔는지 읽을 수 있다. 또한 이성을 초월한 ‘우연적 사고의 진술(truth of an accidental thinking)’을 알레고리(allegory)와 심벌(symbol)로 담았던 시적인 이미지스트 마그리트(Rene Magritte)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에서 역시 그들이 어떻게 관념과 상상을 단순히 머릿속에 가둬두지 않고 현실적으로 치환시키려 노력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시대적 상황에 따라 목적(종교적 맥락, 미술사적 맥락, 현실적 맥락 등)이 달랐을 뿐 인간의 사고(思考)는 오늘이라는 규정에 제한적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차원에서 이영준의 작업도 동일한 맥락을 유지하고 있음을 눈치 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사물의 전치(轉置)’, '낯선 만남을 통한 새로운 구성' 등에서 유사함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강렬하게 찌르는 듯한 푼크툼(Punctum)과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보다 직접적이고 화자 중심의 서술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작가의 시선자체이며 자아가 투영된 기관차를 통해 스스로 시간여행자들을 이끌고, 자신만의 무대 위에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함으로써 미장센(Mise-en-Scene)이 강하다는 점에서도 구분의 이유는 명확해진다. 
작가는 지금까지 오랜 세월동안 캔버스를 하나의 타임슬립(Time slip)의 장소로 지정해 그 장소에서 잊혀 가는 것, 이어가는 것, 이어가야할 것 등을 되돌아 시간과 공간을 조절하고 오가며 소통해 왔다. 그곳에서 새로운 이미지들을 거둬 올렸으며 그 표상(또는 재현)으로서의 이미지가 지닌 특성과 그 범주에 있던 의미, 시대성을 자신의 작업 화두로 끌어 들였다. 그리고 우린 그의 이러한 다층적 의도가 내재된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이영준 개인이 만들어낸 역사와 신화를 대입시키는 은유적 공간을 목도(目睹)할 수 있는 기회이다. 선사시대 고인돌에서부터 고신라시대(古新羅時代 )고배(高杯) 모양의 뿔잔받침, 신라말 동화사 금당암 서3층 석탑, 백제의 궁리 5층 석탑, 조선시대 상감모란문취 철사병(粉靑沙器 象嵌牡丹文吹 鐵砂甁) 등은 물론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보게끔 하는 훈민정음에 이르기까지 조상의 지혜와 손때가 묻은 유과 흔적을 통한 한 예술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흡입할 수 있는 지점을 인지할 수 있는 계기로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그가 선택한 유물과 특유의 문양, 색감, 배열적인 이미지들로 사유의 기념비들을 새롭게 창출하거나 시대를 고찰하고 그림으로 채록하며 시간의 행로를 걷는 조타수가 된 작가의 존재성(물화된 기관차 등)에 대한 개인적인 자문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이것이 우리가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의 정체요,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들이 그의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시간을 포획하는 덫 -김영호
시간을 포획하는 덫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우리는 대개 기차여행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철길 위를 달리는 시선이 기차의 속도를 앞질러 미지 세계로의 접속을 꿈꾸던 시간의 기억이다. 아니면 철로(鐵路)라는 틀의 제약과 규범으로부터 일탈해 자유로운 영역을 비행해 보고 싶은 충동도 가져 보았을 것이다. 이영준의 그림은 이렇듯 기차여행의 시간에 꿈꾸고 욕망하던 우리들의 기억을 창작의 근간으로 삼으면서 남다른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증기 기관차와 종이비행기 그리고 고대 유물 등의 소재뿐만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시간 여행’이라는 테마는 이러한 조형세계의 배경을 대변하고 있다. 
이영준의 그림은 일인칭의 서술구조를 지닌다. 그는 그림 속의 기관차를 ‘물화(物化)된 자아’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기관차와 화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태도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나’로 의인화된 기관차는 공간과 시간의 이동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로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시간의 거리 혹은 공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관객의 의식을 시공간의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상징적 도구로 다루어질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물화된 자아의 서술구조를 통해 작가는 현재에서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테마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있다. 관객은 상상의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 증기 기관차로 전환된 화가가 이끄는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기 위한 채비를 갖추게 된다. 
이영준의 그림은 오버랩 기법을 도입하여 혼합과 중첩된 화면을 구성한다. 기차의 차창너머로 빠르게 스쳐 지나치는 풍경이 어느덧 과거와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지듯 그의 그림은 다양한 이미지가 서로 교차하거나 섞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가령 종이비행기를 기관차 이미지와 대비시킴으로서 시간의 이동을 둘러싼 서술성을 강화하고, 입체파 화가들처럼 탈것 이미지를 다양하게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서 새로운 공간성을 북돋운다. 이러한 시공간 이동을 위한 실험은 증기 기관차의 형상 이외에도 고대 유물 이미지를 등장시킴으로서 폭을 넓혀 나간다. 목어나 패면(貝面), 신라 토기와 토우 그리고 청동유물 등은 증기 기관차와 한데 어우러지면서 시간으로의 여행 상황을 만들어 낸다. 
하나의 화면 위에 이질적인 요소들의 만남은 뜻하지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초현실주의 시인 로트레아몽의 싯귀 ‘수술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과 같은 낯선 상황은 현실 저 너머의 환상적 세계로 보는이의 의식을 이끄는 것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서 19세기 초에 발명된 최초의 증기 기관차 ‘페니다렌호’와 우리의 고대 유물을 대질시킴으로서 상징성을 높인다. 관객의 상상에 따라 화폭위의 사물들은 저마다 물리적 결합의 과정을 거치고 때로는 화학적으로 융화된 세계를 만들어 낸다. 초기의 작업에서 사물들은 무대위의 배우들처럼 서술적 메시지를 드러내었으나 최근의 작업에서는 점차 상징과 은유적 의미를 품은 조형적 의미가 강화되고 있다. 이는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초현실적 영역으로부터 화면의 내적 질서와 형식에 관심이 이동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영준이 증기 기관차는 이렇듯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여행한다. 가령 그의 시간여행은 청동기시대나 고대 신라 혹은 목어의 종교 세계를 넘나들면서 태고의 보편적 기억을 환기시킨다. 여행은 작가에 의해 통제된다. 시간의 여행이라는 테마를 위해 초대된 사물들은 화면의 구성과 구도를 위한 규율을 따르고 있다. 토기나 청동기 등은 고증 대상으로서 유물의 박물학적 차원을 넘어 화면위에 복합적인 이미지로 변형되고 의미생산을 위한 형식의 실험을 거쳐 다시 태어난다. 그의 최근 작품에 녹녹히 담겨있는 물감의 마티에르와 선적 요소들은 과거의 유물들 중 토기의 질감과 빗살무늬 그리고 청동기 문양 등 에서 얻은 조형요소들로서 작가만의 개성적인 어법으로 정착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또한 ‘시간여행’이라는 주제와 표현 형식 사이의 일치감을 한층 강화시키는 요인이자 그의 작품에 개성을 담보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영준의 작품에 스며있는 시간성의 개념에 대해서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석사학위 논문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는 시간성의 개념이란 하이데거가 말하는 ‘직관형식으로 파악되는 존재론적 의미의 시간’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가 시도하는 시간의 여행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단절된 마디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연속적인 현상으로 파악되는 주관적 세계를 지시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증기 기관차는 과거와 현재가 단절의 관계가 아닌 공존하고 생산적인 시간성을 나타내는 기호로 읽혀진다. 또한 그가 시도하는 시간여행은 이러한 주관적 시간 체험에 의해 자아의 심리적 경험의 확대를 충족시켜주는 효과를 발생 시키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반월형 석도 그리고 방패형 동구(銅具), 동물문 견갑(肩鉀)에서, 고신라의 신귀형(神龜形) 주전자와 쌍손잡이 항아리 그리고 기마인물형 토기에 이르는 유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소재들은 작가의 시간여행을 위해 초대되고 작가의 의도에 의해 화면위에 재해석된 기호들이다. 조형적 언어로 표현된 이미지들은 무한한 의미생산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의 조형적 표상 방식에 따라 그 방향성은 명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며 나는 이영준의 작업에서 새롭게 펼쳐질 독창적 언술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