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몽환적인 이미지 신미의 ‘번짐’기법-from 화가 이영박
몽환적인 이미지 신미의 ‘번짐’기법-from 화가 이영박

>>‘생명의 빛’ 연작… 시·지각 너머 존재하는 세계 눈뜨게

마침내 작은 새 한 마리가 후두둑 깃을 폈다. 첫 비상(飛上)의 화려한 날갯짓이다. 그 처음의 느낌, 떨림을 지켜 본 꽃잎은 이슬에 젖어 있다. 서로의 후원자였던 새, 꽃과 버들의 화류(花柳). 이들이 빚은 참다움의 시간 위에 장미는 이 지상 더없는 귀한 매혹의 시선으로 ‘그대’를 응시한다. 바로 ‘당신’의 모두를 들어 올리고야마는 절정의 몸짓을 생생히 느끼게 하면서.

그렇게 묘사된 화면. 맛이 짙은 색채는 차라리 진하다 못해 검은 피존 블러드(pigeon-blood) 루비를 닮아 속살은 투명한 채 붉다. 이 치명적인 유혹, 순결한 희생의 빛깔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대지에 탄생시킨 바로 그 꽃, 장미다.

강렬한 색감의 꽃들이 은은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사실과 추상을 넘나들며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거듭난 농축된 장미 꽃무리. “나의 꽃들이 누구에게라도 향기로운 시가 되기를, 그리고 무지개가 지나간 에메랄드빛 깊은 호수처럼 스스로 존재성을 껴안을 수 있기를”이라고 작가는 노트에 적고 있다.    

바람에 떠다니는 풍선처럼 비현실적인 공간을 부유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환상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이영박 작가의 장미. 막 비 그쳐 촉촉이 젖은 듯, 여인의 고혹적인 뒤태 살결같이 하얀 달빛이 핑크색 장미에 범람토록 강렬히 쏟아지고 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노래인가. 그 가엾은 첫사랑의 비애를 다스리려 아이리스와 수선화에겐 없는 가시가 돋았다.

그의 캔버스에는 달콤한 꿈과 낭만이 있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는 환상적 심리를 자극하는 환영이 자리한다. 유성물감의 특성을 응용하는 독특한 번짐 기법. 기존의 묘사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미묘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그의 작업은 세부적인 표현에서는 장미의 사실적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형태 묘사 중심의 작업이다. 그러함으로써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를 가진 번짐 기법은 장미꽃을 사실적인 공간으로부터 격리시킨다. 현실공간으로부터 유리된 그의 조형공간에서 장미는 거대하게 확대되는가 하면 몽환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신항섭 미술평론가)


>>장미 가시의 몽환은 한 시인의 ‘울림통’

찬찬히 뜯어보면 점이나 선, 색채, 어느 것 하나 오직 아름다움으로 귀결한다. 그림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조형세계 그 본질의 추구와 한 치도 소홀하지 않음이 갖는 흡인력. 시선을 뗄 수 없고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마법의 꽃잎처럼.

 “누구나의 마음에 싹 틔우고 잎이 돋고 꽃으로 만개해 마음 세세한 표정 보듬어 주는 힘이 되고프다”고 쓴 그의 바람은 어쩌면 누구나가 소망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니던가. “마음으로부터의 울림이자 감동이 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그가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진실만이 그런 표현을 가능케 한다. 무언가 형언키 어려운 무거운 덩어리가 가슴에 들어와 앉는 듯한 뭉클함.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그러하기에 문득문득 삶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이성의 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는 이상세계로 풀이된다.

“그가 창조해 낸 새로운 형태의 장미는 우리의 꿈과 희망 그리고 욕망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줌으로써 시·지각 너머에 존재하는 심미적인 세계에 대한 개안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신항섭 미술평론가)

그리하여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을 말끔하게 닦아내 진정하게 아름다운 삶의 빛을 권유하고 있다. 하여 장미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언제 내가 사랑을 말한 적이 있었나, 사랑만이 남았을 뿐이더라! 그대 마음결 불꽃처럼 일어 하루하루 뜨겁게 삶이 확장되시라.’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
서양화가 이영박, 연륜에서 우러나는 윤기의 생명성을 생각한다
[인터뷰]서양화가 이영박 “연륜에서 우러나는 윤기의 생명성을 생각한다”

“가냘픈 꽃송이지만 계절을 알리고 마음을 다독이고 슬픔과 환희의 동반자로서 제 각각의 향기를 머금은 그러한 생의 찬미를 표현해 내고 싶다.” 서울 명륜동 성균관(成均館) 인근에서 인터뷰 한 이영박 화백의 일성이다.

“성균관 인근을 종종 산책하다보면 오랜 연륜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윤기의 생명성을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다. 언제보아도 말수가 적은 조용한 성격의 화백은 일생 화업의 길만을 걸어오고 있는데 거장(巨匠)의 깊이감에서 우러나오는 아우라가 전해져온다.

고향 창원 우포(牛浦)호수의 기억과 젊은 날 부산에서 작업하던시절의 을숙도 그리고 제주도의 억새에 대한 독창적 해석으로 연작을 발표해 오고 있다. 특히 고삐가 풀어져 헤진 불안한 동공의 염소 한 마리를 통한 현대인의 고독심리를 표현한 ‘아! 어디로’시리즈는 여전히 애호가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영박 작가(A South Korean painter LEE YOUNG PARK,이영박 화백,Artist LEE YOUNG PARK)는 갤러리 상, 2005~2019년까지 단 한번만 제외하고 줄곧 출품, 참여한 한국구상대제전(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상해아트페어(중국뮤린화랑), 1995~1996년 한국화랑미술제(우림화랑), KIAF 등에서 다수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가졌다. 제1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국립현대미술관)을 수상했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출처 : 인사이트코리아(http://www.insightkorea.co.kr)
서양화가 이영박 작가, '너의 심상을 일깨워 봐' 낙동강 갈밭의 속삭임
서양화가 이영박 작가|“너의 심상을 일깨워 봐” 낙동강 갈밭의 속삭임

하필이면 왜 생명을 소진한 갈대와 억새꽃인가. 이들은 찬 서리 내리는 늦가을 쓰러질 듯 일어서는 굳센 의지의 존재감을 일깨운다. 곧 인간 삶에 비유되는 이유이리라.

낙조의 강물은 비취빛처럼 맑았다. 바다를 넘어가는 노을은 연노랑 색깔로 낮밤 경계를 느릿하게 배회했다. 갈대 숲 우묵한 강가에선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여 비릿한 물 냄새가 유적서 발견한 오래된 서적처럼 켜켜이 쌓여져 갔다. 수척한 억새는 야윈 신음처럼 바람이 지날 때마다 공중에서 하나, 둘 말(言)을 꺼내 쥐어주었다. 그는 영토(領土)에서 곧 머나먼 항해를 떠날 사람들에게 안전을 당부하느라 분주했다. 다갈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강변 마른 잎들은 이리저리 뒹굴며 행로를 정하지 못해 더욱 쓸쓸했다. 저녁바람에 실려 빈손으로 돌아온 허기진 갈매기는 퀭한 눈동자 속에 답신을 담고 돌아왔다. ‘애써 답하지 말라. 하룻밤 아니 버려진 사랑이라더냐?’
억새꽃 통증이 어둑한 잿빛 허공에 미련처럼 날렸다.

아, 단장(斷腸)의 고통처럼 이별은 오고 찬바람 냉랭히 훑고 간 은빛 머릿결에 가을이, 가을날이 저물어 갔다.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간다.”<릴케(Rainer Maria Rilke) 詩, 고독>

황토 흙길엔 나란히 걸어간 바다새 발자국이 아직 선명했다. 이리저리 바쁜 몸놀림인 참새의 망중한(忙中閑)에 홀린 피라미는 허망한 추격의 수고를 하고 있었다. 무심히 물고기를 바라보다 서걱대는 억새 숲 언덕 돌아보니 홀로 남겨져버렸네.
사랑도 물처럼 불어나 한 아름 안고 빙그르르 춤추고 싶었던 시절. 멀리멀리 그대와 달아나고픈 밤엔, 가을비 왔었네. 물 위엔 띄어 보낸 작은 새 한 마리 그림. 새처럼 물처럼 따라가지, 묻지 마오. 서로가 반해 울리는 쓸쓸한 가을찬비 속 뜨거운 키스여, 숙명(宿命)의 강이여!

물은, 유랑(流浪)처럼 흘러야 푸르러지는가. 갈잎은 속살까지 수직으로 찢어 신열처럼 생애를 토해내는데 사랑은 가을이 익기 전에 낙엽 되어 너무 애처로워 차라리 눈을 감네. 쓸쓸한 흙먼지 회오리 기웃거리는 이 모퉁이 돌면 부산한 몸짓으로 출렁이는 바다. 오오! 으르렁대는 바람에 곧 비가 내리겠지. 휘날리는 꽃송이 흩어지는 중년의 은빛 메아리….

말간 손등 내밀어 천진한 웃음을 짓던 너를 이제, 잊을 것이다. 그러니 슬퍼마라. 지금은 감사의 계절. 이 가을의 노래는 브람스(Johannes Brahms)의 첼로, 남아있는 자를 위한 레퀴엠(Requiem).

- 출처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