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자연적 생명력과 서정적 교감의 화두-장영준
자연적 생명력과 서정적 교감의 화두
장영준(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

자연이 전해주는 끝없는 생명력과 그 내적인 교감을 통한 정신적 미감의 표출은 어쩌면 동, 서양의 회화예술이 지닌 영원한 화두 일지도 모른다. 한때 인간과 자연이 지닌 진정한 가치와 의미에 주목하였던 미술사의 표현양식들은 점차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동서양 현대미술의 성향에 발맞추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진실 된 감정이 시공을 떠나 미술의 다양한 표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자연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생성 발전하는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부터 독립된 별개의 존재로 알려져 왔다 
작가 임미자는 그동안 자연의 이미지와 정서에 대한 감흥을 꾸준히 그려왔으며 구상과 반 추상으로 변형시킨 두 가지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화단의 중견작가다.  특히 화업의 초기 사실적인 묘사태도에서 출발하여 점차섬세한 색조와 반추상적 표현형식을 통하여 자연의 정서에 주목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마치 서구 자연주의 회화의 서정적 표현에 동양 전통회화의 사유적 미감을 조화시키는 것과 같은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작가는 표현대상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색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여러 번 겹칠 해 쌓아올린 분채와 석채위에 절제된 색조와 부드러운 필치의 선묘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최근에는 여기에 인상파의 점묘양식을 차용함으로써 보다 더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운생동한 자연의 미감을 격조 있게 전달하고자 두터운 질료를 반복하여 덧입히는 발색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작품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진솔한 감정이 심도 있게 전달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수묵화의 묵필법을 익히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산수화, 화조화 장르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영역을 넓혀 온 작가는 최근에는 현대적 추상화풍으로까지 시각을 확장시키고 있다. <가을들녁> <튤립> <청산>
<나리꽃>과 같은 그의 채색산수화, 화조화풍의 작품들은 이런 작가의 성향을 잘 파악해 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특히, 채색산수화 작품 중 <꽃과 나비>는 사실적 구도위에 점묘법을 응용한 작가의 이런 현대적 표현경향이 잘 드러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또한, 꽃과 나비 튤립 꽃과 같은 작품소재는 오랫동안 동·서양 미술사의 회화적, 음악적, 문학적 표현 소재로 애용되어 온 상징적 존재로서 작가는 이런 꽃그림을 통해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회화적 감성을 그만의 스토리로 엮어 내고 있는 것이다 .
지금까지 작가가 보여준 작품 내용을 볼 때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몇 가지 조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주요 모티브가 산과 꽃, 나비와 같은 자연의 서정적 요소를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고  
두 번째는 대상의 표현 양식이 구상적이고 사실적인 형식에서 형상을 간략하게 단순화시키는 한편 색채의 간결한 마무리를 통해 표현되는 반추상적 경향의 조형시각에까지 변화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반복된 밑칠 작업의 두터운 재질감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색조의 깊이감과 한국적 정체성을 들 수 있는데 특히, 필선의 섬세한 윤곽을 토대로 간결한 형태 구성과 은은한 색감의 조화를 꾀하는 첫 번째 경향의 작품들은 사물의 형태를 덧칠기법과 안료의 중첩된 재질감을 통해 표현된 전형적인 전통 채색화풍이면서도 작가 특유의 현대적 조형감각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호프먼이 서구 여류작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의 작품을 논하면서 “자연의 힘으로부터 그녀의 그림이 생성된다고” 말 한 바 있듯이 작가 또한 꽃이나 나비, 산 등의 자연의 이미지들에서 느껴지는 서정적 정서의 감흥과 에너지를 화면에 표현하고자 노력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평소 작가는 “나는 작품을 그리는데 있어 동양회화의 가장 큰 정신적 특성인 사의성(寫意性)을 배경으로 다양한 질감과 필법, 자유로운 선묘와 색채의 사용, 여러 번 겹칠 한 색 층을 뚫고 드러나는 은은한 색감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동양의 정신적 배경 속에 서구 모더니즘의 조형표현을 접목시켜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현대 한국화로 발전시켜 보고자 한 것이다.” 라고 말하곤 하였다.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는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자율성을 지닌 독립된 존재가 되었을 때 진정한 추상이다.” 라고 말한 바 있으며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인간의 내적 필연성, 정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추상의 도래는 필연적이며 이는 동양적 사고와 상당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 고 보았다. 
사실 동양철학의 정신적 미의 개념과 서양철학의 추상적 미의 개념이 차이점을 보인다 할지라도 표현적 측면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존재로부터 생성되는 까닭에 현대미술의 입장에서 보면 큰 차이가 없다.  작가가 동양 전통회화의 정신적 핵심인 ‘사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90년대 그의 작업들이 사물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사실적 회화경향에서 시작되었다면 2000년 이후에는 이런 흔적들이 사라지고  단순화 된 배경위에 사물의 이미지를 간략하게 강조하는 감각적 기법이 사용되는 조형의 흐름을 보여준다. 
평소 그는 작업의 근원적 시각을 자연의 서정성에 두고 있으며, 특히 한국적 정서와 향토적 미감, 우리 전통적인 표현양식과 서구현대회화에 모두 관심을 가져 왔다고 말 한 바 있다. 작품 <꽃과 나비> 연작 시리즈는 그의 이러한 선천적 색채감각과 표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사물의 이미지를 전통회화와 현대회화의 연결선상에서 재해석하려는 향후 그의 작업방향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2-3년 전부터 많이 사용하는 방해말과 같은 매체에 대한 실험과 표현기법은 자연에 대한 작가의 또 다른 해석방법으로 화면에 꽃과 사물의 이미지를 더욱 정감 넘치고 생생한 느낌으로 살아 숨 쉬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표현의 주된 소재인 꽃과 나비의 형상들이 은유적으로 해석된 일상적 형상들이지만 그 대상들은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자연의 성스러운 생명의 이미지라는 점을 조형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까닭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우리는 예술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한 수단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라고 얘기 하였듯이 창작된 작품들이 인간의 정서적 순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 한 때 장자의 도교 철학에 관심을 두기도 했던 작가의 작업세계는 그런 이유에서 작업의 근원이 동, 서양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생명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