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아름다운 사색의 작가-아트뮤제
아름다운 사색의 작가, 남궁순의 작품을 보노라면 마치 인간의 이성과 감정 사이를 줄타기하며 균형을 이루어 온 낭만파 음악을 보는 듯하다.  20여년 동안 청년기의 감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흐트러짐없이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음에 놀랄 뿐이다. 새로운 미술화풍이 물밀듯 세상을 뒤엎고 있고 세월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보편성이 타협을 유혹할만도 하지만 작가는 오로지 자신의 감성이 시키는 붓질에만 몰두했던 것같다.
어떤 소재든간에 남궁순이 일단 캔버스에 표현하는 것은 모두가 클래식의 선율이 흐르는 한적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픈 충동을 갖게 한다. 
선과 색으로 변주된 백조의 호수 - 이진모/극작가 평론

선과 색으로 변주된 백조의 호수

 

캔버스에 지크프리트왕자를 향원하는 수 많은 오뎃트가 저마다 특유의 날개짓으로 푸드득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차이코프스키의 감미로운 선율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선과 색으로 변주되어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면화 된 공간에서 단순한 선과 색으로 창출해내는 명암과 원근의 조화

그 또한 혼돈 속의 균형으로 응축된 새로운 묘사와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정물화에서의 느낌도 다르지가 않았다.

간혹 눈에 뜨이는 풍경화에서도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평범함 속에서의 창의로움에 대한 집념은 무한한 잠재력으로 비상을 꿈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이 일천한 심미안의 내 주관과 감상에 불과 할지는 모르겠으나 한 개인의 감상이나

주관이 냉철한 객관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감안할 때 감히 이렇게 토로 할 수 있을 법하다.

고교시절 내가 성장했던 소읍에 라인강변의 로렐라이언덕과 같은 동산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 동산을 이름하여 청라언덕이라고 불렀다.

떡갈나무와 아카시아 숲으로 뒤덮힌 그곳에 마치 새둥지같은 여고교정이 있었고,

교정에서는 늘 피아노소리와 여고생들의 맑은 합창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봄의 교향악이 올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여드름이 덕지덕지한 남학생들은 마치 열병을 앓듯 청라언덕부근을 배회했다.

교정으로 이어지는 언덕아래 하얀 돌계단이 햇빛에 빛나고 있었고 흰 블라우스에 감색 후레서 스커트의 여고생들은

백조처럼 재잘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했다. 교정후원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목련으로 뒤덮힌 연못에는 밤마다 고니며 해오라기, 두루미 등이 날라와 오페라를 연출했다.

 

여고교정에는 음악교사를 짝사랑하다가 자살한 예쁜 여고생 유령이 밤마다 출몰한다는 섬뜩한 전설이 횡행했지만

우리들은 오히려 그 여고생 유령을 만나기 위해 밤을 세우곤 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연못 안에서 여고생들처럼 재잘거리고 구구대는 고니떼와 물오리떼 뿐이었다.

지난해 우연히 고향에 들렀다가 청라언덕에 올라가 보았더니 교정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었고

연못은 어린이 놀이터로 메워져 고니떼 대신 아이들이 떠들썩하니 놀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가곡 「옛동산에 올라」가 절감되는 허전한 현실이었다.

그 고느떼와 해오라기, 두루미들은 모두 다 어디로 날라가 버렸을까?

필경, 어느 여류화가의 이미지 속에서 끊임없이 비상을 꿈꾸며 푸드득 거리고 있지나 않을까?!

그러다 어느날 텅빈 캔버스만 남기고 모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 그림의 완성을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남궁순 여사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백학이나 두루미의 이미지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대체적으로 과묵하리만치 말이 없다. 아니, 말이 없는게 아니라 말을 아끼는 눈치다.

말이 없는 대신 움직임은 놀라우리 만큼 민첩하다. 그러한 말의 절제가 캔버스에 내밀하고도 풍요한

화두로 만발하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캔버스를 통해 주제를 과장하거나 쉽게 노출시키지도 않는다.

그녀의 묘사와 표현은 언제나 옷깃을 여미는 우아한 여인처럼 내밀하고 겸손하다.

그녀는 언젠가 모리속이 투명해지는 날, 마치 백조가 서둘러 날개짓을 하며 솟아 오르는 것처럼

자신의 그림들을 완성할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전시회를 열 것이다. 나는 그 전시회에 달려갈 것이고 그림 속에서 끝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창의로움의 세계로 힘차게 비상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것이다.

 

-이진모/극작가 평론 (선과 색으로 변주된 백조의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