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오현영의 바코드 퓨전 신 풍경화_김종근(미술평론가)
오현영의 바코드 퓨전 신 풍경화

새로운 미술의 역사는 언제나 모든 예술가의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작가정신에서 출발했다. 이것이 곧 현대미술의 궤적이며 흐름이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작가들의 존재 가치 그리고 의미가 있다. 이런 도전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세계를 찾아 나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 끈질긴 창조적인 목마름의 자세야말로 예술가들에게 있어 최고의 덕목이라고 부른다. 오현영 작가의 20여 년 작업에 흐름을 보면 그 미덕에 대한 인상이 더욱 굳건해지고 강렬함을 느낀다. 놀라운 것은 70대를 앞둔 현재에도 오현영 작가가 어쩌면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작품에 혁신적인 기법과 형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오현영 작가는 디자인에서 출발하여 회화작업으로 오기까지 다양한 표현과 기법의 변화를 시도 해왔다. 2004년 서울과 뉴욕의 첫 개인전을 필두로 작업 활동이 그 서막이다. 당시 작업은 숙련된 석판화 작업으로 내용은 가족과 생활을 모티브로 한 형상적인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작품들을 보면 그녀의 머릿속에 대가족을 꾸려나가는 생활상들이 그려진다. 그 때의 작가 노트에“ 일상의 것들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와 삶. 그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을 표출하고자 했다”라는 기록이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주제 자체가 5남매를 둔 가족 이야기와 아이들의 생활, 그 풍경들을 회화적이며 조형적인 요소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한 작품들이었다.
이후 작가는 2005년부터 영수증을 활용한 작업을 이용하여 화면을 구성하고 조립하는 독특한 구성법을 전개했다. 2011년의 작품전은 그러한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로 원숙하게 변모했다. 이 작업들은 영수증이 나열되어 도시의 건물 풍경을 연출하는 이색적인 실크스크린의 연결 작업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화의 양식에 만족하지 않고 더 새로운 화풍을 찾아 나섰다. 본격적으로 전통적인 산수화를 화폭으로 끌어들여 그만의 신 산수화 화풍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전통적인 옛것으로 신선하고, 참신한 인상의 산수화 양식을 창출하려는 과감한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그 전통적인 모델을 오현영 작가는 조선 시대 후기 진경산수 속에서 그 뿌리를 찾았다. 특히 겸재 정선이나 김홍도가 그렸던 금강산의 이미지를 그만의 필선과 구성, 화면의 결합으로 신산수화 패턴 형식을 만들었다. 
이처럼 오현영 작업의 독창성은 금강산이나 거대한 도시의 건물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그만의 특유한 산수화 양식을 만들어 펼쳐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자와 형상, 기호를 붙이듯이 콜라주 작품으로 확장 시켰다. 형태적 이미지는 빌리되 기법으로는 문명사회의 시각적 기호들을 전통 회화에 양념을 친 이른바 퓨전회화인 것이다. 작가가 전통적 산수화풍에 이처럼 현대적 기호와 상징 이미지를 사용하는 바탕에는 유명화가들의 산수를 넘어 문명사회에 대한 그만의 시각적 기록과 해석에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작업 노트에 모든 새로운 “바코드는 모든 가치가 기계화되고 코드화된 현대문명을 상징한다. 나의 그림은 그러한 환경 속에 알게 모르게 젖어 들며 각박해져 가는 나 자신과의 투쟁의 결과이고, 과거 자연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삶을 살았던 선조들에 대한 동경을 반영한 것이다. ....인간 본연의 낭만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구현”하고 싶다는 열정이 매우 강렬한 것임을 확인 시켜준다. 그런 의미에서 오현영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휴머니즘으로의 회귀와 복구를 위한 이상적 도구임이 확실해진다. 산수화풍의 풍경 속에 등장하는 간판과 마크들은 바코드와 함께 21세기 산업사회의 특징과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이는 작가가 그려낸 현대 사회의 풍경과 전통의 산수화의 대비 속에서 현대 사회의 풍속도를 증명하려는 속내를 이상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풍경의 극명한 대비를 오현영은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오현영의 이런 산수화 기법은 각종 상품에 찍힌 바코드를 모아, 확대한후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찍어 완성한 것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하고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참신한 바코드의 신산수화 어쩌면 오현영 작업은 현대미술의 풍경 속에 인간성의 복원을 외치고 그것을 미술의 언어로 산수화에 접목한 유일한 풍경화가로 기억될 것이다. 마치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산수화 구조의 풍경 속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산수화의 역사에서 자연을 이렇게 표현한 작가는 없었다”라는 최광진 평론가의 지적처럼 오현영 작가는 모던한 산수화풍의 풍경에 텍스트 문자와 형태를 가미한 독특하고 실험적인 한국의 첫 번째 퓨전 작가로 평가 될 것이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
코드화된 사회에서 탈주를 꿈꾸는 <디지털 십장생도>_최광진(미술평론가)
코드화된 사회에서 탈주를 꿈꾸는 <디지털 십장생도> 

모든 국가와 사회는 근본적으로 안정과 질서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각종 법과 규범을 만들어 순종을 강요한다. 특히 현대로 올수록 더 거대해진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법령과 규범들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권력이 교묘하게 개입되어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대해진 현대사회에서 ‘코드화’는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다. 
오현영의 근작은 갈수록 삭막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십장생도>를 통해 잃어버린 인간의 꿈과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전통 회화에서 <십장생도>는 해, 구름, 산, 물,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복숭아, 불노초(영지) 등 주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영생의 비법을 터득한 신선처럼 오래 살기 위해서 동식물과 자연에서 이와 관련된 소재를 통해 장생을 소망한 것이다. 
오현영의 작품에도 어김없이 전통 <십장생도>에 나오는 해와 구름이 등장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것이 QR코드로 이루어져 있다. 컴퓨터가 만든 흑백 격자무늬 패턴으로 된 QR코드는 오늘날 코로나 펜데믹 이후 일상화된 디지털 기호다. 직선과 제한된 숫자로 구성된 1차원적 바코드와 달리 QR코드는 2차원의 면에 픽셀로 더 정교하게 정보를 판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빛의 투과와 반사의 원리를 이용하여 실재를 디지털 기호로 코드화한 것이다. 그리고 도교의 전통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는 오현영의 작품에서 디지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되어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트코인으로 장수의 상징인 복숭아를 대체함으로써 그녀는 모든 가치가 돈으로 평가하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의 왜곡된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이처럼 오현영의 신작 <디지털 십장생도>는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욕망을 관조하고, 불로장생을 꿈꾸던 선조들의 순진한 욕망으로부터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로 변질된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의 씁쓸한 욕망을 응시하게 한다. 그녀는 현대인의 욕망이 담긴 이러한 이미지들을 유희의 도구로 삼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재코드화 함으로써 코드화되기 이전의 아날로그적 낭만을 꿈꾸고 있다. 
- 최광진(미술평론가)
코드화된 사회와 탈코드화 된 자연을 매개하는 ‘바코드 산수화’_최광진(미술평론가)
코드화된 사회와 탈코드화 된 자연을 매개하는 ‘바코드 산수화’
- 최광진(미술평론가)

동양에서 산수화는 원래 번잡한 속세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군자의 심성을 기르는 인격 수양의 방편이었다. 동양인들은 자연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간주하고 조화롭고 변화무쌍한 자연을 따라 욕심과 집착을 비우고자 했다. 그래서 그처럼 생동하는 자연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산수화로 그려서 일상에서도 자연을 항상 느끼고자 했다. 이것은 인간을 자연보다 우월하게 생각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표현한 서양의 풍경화와 상반된 특징이다. 
오현영의 작품은 이러한 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성이 반영된 매우 독톡한 산수화다. 그 독특함은 산이나 바위, 흙 등을 표현하는 전통 산수화의 준법(皴法: texture stroke)을 바코드로 대체한 데서 기인한다. 상품을 굵기가 다른 수직 막대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광학적으로 판독할 수 있도록 한 바코드는 이제 현대인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문화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는 물건을 기계적으로 계량화하여 상품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이로써 과거 시장에서 물건을 교환하거나 사고팔며 오갔던 인정마저 계량화된 듯하다. 
오현영의 산수화는 각종 상품에 찍힌 바코드를 모으고 확대하여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것이다. 오직 숫자와 수직선만이 존재하는 바코드는 생동감 있고 변화무쌍한 자연을 표현하기에는 제약이 많은 조형 언어다. 게다가 캔버스에 바코드를 찍을 때 사용하는 실크스크린 기법 역시 회화적인 표현을 하기에 부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부적절한 선택이 오현영 작품을 신선하고 현대적인 산수화로 만들고 있다. 수많은 바코드가 집적되어 그럴듯한 자연으로 만드는 작업 과정은 메마른 사막에 오아시스를 건설하는 것처럼, 절실하고 힘든 작업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녀는 모든 것이 양적으로 계량화되고 인정마저 코드화된 삭막한 현대 사회를 반영하고,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을 꿈꾼다. 이것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삭막하게 코드화되는 사회와 탈코드화된 자연을 매개하는 작업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근작들은 수년간 이어오는 바코드 기법을 회화적으로 더 자유롭게 구사함으로써 바코드 양식이 한층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표작 <바코드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를 자신의 바코드 양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금강산의 산악미를 대표하는 만물상은 깎아지른 절벽과 하늘을 찌를 듯한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겸재 정선을 비롯하여 많은 진경산수 화가들이 이곳을 그렸고, 김규진은 1920년 회정당 벽화의 제작을 의뢰받고 만물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8m가 넘는 대작으로 완성했다. 이 작품을 참조하여 1년 가까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오현영의 작품은 실제 크기대로 가로가 8m나 되는 초대형 작품이다. 여기에는 만물상의 첩첩이 포개진 웅장한 봉우리들과 단풍든 가을의 울창한 숲이 특유의 바코드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원본에 있는 운무와 안개는 현대식 빌딩으로 변해 있고, 밑부분에 흐르는 온정천의 푸른 물도 모두 바코드로 이루어져 있다. 
수천 년의 걸쳐 내려오는 산수화의 역사에서 자연을 이렇게 표현한 작가는 없었다. 바코드는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자연을 표현한다는 건 상상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오현영의 작품은 이처럼 보잘것없는 것을 미적인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우리의 상식을 깨는 쾌감이 있다. 이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바코드 산수화는 디지털 시대에 인간마저 기계적으로 코드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아름다운 산수화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학적이다. 과거 신선이나 고상한 선비들의 수양 처였던 자연에 자본주의의 산물인 바코드와 동네 마트에서 계산한 영수증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중요한 무언가를 사유하게 된다. 

현대 도시에 중첩된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풍경_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현대 도시에 중첩된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풍경
-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오현영 작가는 전통적 산수화를 작업에 차용하여 현대적 산수화 형식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특히 조선 후기 진경산수 경향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진경산수 특유의 화면구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점은 작가가 그 형태적 이미지는 차용하여 작업하되 그것을 기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한국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준법(皴法)을 사용하는 것 대신 이와 유사한 여러 가지 현대 사회의 시각적 기표들을 등장시켜 변용하여 사용함으로써 전통 회화 형식의 유사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전통적 건축물 대신 현란한 간판이 드러나 있는 현대 도시의 건축물을 등장시키고 있는 점에서도 확연히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전통적 산수화 구도 내에 이처럼 현대적 기표와 이미지를 사용하게 된 것은 정선과 같은 이들이 실경산수를 넘어 진경산수를 추구했던 것처럼 현대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리얼리즘 너머 자신만의 어떤 시각 혹은 사유방식을 보여주고자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진경(眞景)이란 본디 실경(實景)을 뜻하지만 이는 단순히 실제 경치뿐만 아니라 일종의 선경(仙景)이라 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에 대한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오현영 작가는 현대사회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형에서 보이는 것 너머의 실체를 그려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현대사회를 지시하는 기표를 사용하는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네온 사인과 같은 상업주의 간판으로 포장된 건축물뿐만 아니라 바코드와 영수증과 같은 자본주의의 상징적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현대 사회의 풍경을 과거 전통의 산수화와 극명하게 대비시킬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도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구조 위에 중첩시킴으로써 이 시대의 풍경을 자신의 시각으로 구현해 내고자 한 작가적 시각과 관점을 제시해주고 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과거 진경산수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었다면 오현영 작가의 산수는 현대 도시에서 보이는 자연 즉 자본에 중첩되어 있는 풍경을 통해 자본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코드처럼 정형화된 규칙에 따른 코드화 된 관계이며 동시에 자본에 대한 욕망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에 진경산수의 그것처럼 자연과의 흐름 가운데 연결되어 읽을 수 있었던 인간 본연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오현영 작가의 작업은 현대 사회의 풍경 속에서 인간의 존재적 위치를 자각하고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묵시록처럼 무거운 톤(tone)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산수화 구조의 풍경 속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