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박숙희의 회화는 한 장의 소설이다-김광우
평론
박숙희의 회화는 한 장의 소설이다. 단숨에 읽는 이야기다. 줄거리가 색상으로 화면을 수놓는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도 있지만 관람자가 줄거리를 엮어가며 읽어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소설가의 회화라서 이야기가 주된 모티프다.
그림은 말 없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이것은 기원전 5,6세기 그리스의 시모니데스가 문학과 회화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말이다. 문학과 회화는 오랫동안 자매예술 혹은 쌍둥이예술로 불리었으며, 문학을 제2의 회화라고도 했다. 명말의 동기창(董其昌)은 문인이 그린 그림을 문인화라 했다.
박숙희의 회화는 문인화에 속한다. 회화를 이야기로 풀어가기 때문이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2014년 1월 첫 전시회를 열면서 화가로 데뷔한 그녀의 회화는 소설쓰기의 연장이다. 의식의 흐름을 언어 대신 색으로 구성한 것이다. 회화는 소설쓰기와 달라서 언어 대신 색을 선택해야 한다. 색이 지닌 상징성이 회화의 기존 언어이고 새로운 색상의 배열이 창작의 언어가 된다.
회화는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수많은 회화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시가 뭐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숙희 회화의 특징은 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표현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그녀 역시 <지금까지 그린 수십 점의 그림들은 나에게도 낯설다. 내 것이면서 내 것 같지 않은 나의 그림은 내 속에 내재되어 있던 그 무엇이 아니라 나를 빌려 표현된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한하고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외부세계가 내 속으로 흘러 들어와 어떤 그림으로 다시 표현되어 나갈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세계를 향해 항상 열려 있는 그녀의 내면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그림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질 것이고 통합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도 기대된다.
박숙희는 <이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알 수 없듯이 나의 그림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또한 나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회화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나 스케치를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메모나 스케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당장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캔버스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
박숙희는, 그림을 그리는 화살이라는 뜻의 활 돈(弴)을 필명으로 쓰고 있다. 그녀의 화살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볼 일이다.—김광우(미술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