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기억풀이, 캔버스에 피어난 삶의 단면들-홍경한
기억풀이, 캔버스에 피어난 삶의 단면들 

홍경한 (미술평론가)

거의 텅 빈 화면에 무표정한 남자가 서 있거나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화폭 너머를 흘깃거린다. 남녀 간에 느낄 수 있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심리상태를 작가 특유의 동화적인 시선으로 풀어 놓는가싶더니 어느 한편에는 기억의 편린을 군더더기 없는 이미지로 치환한 작품들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 도시민들에게 흔한 어딘가 외롭고 쓸쓸한 여운들, 비교적 무덤덤하나 다양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인물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은 곧 나의 모습, 우리의 초상으로 공유된다.  
작가 신철의 작품은 따뜻하면서도 외롭다.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봤음직한 유년 시절의 사랑과 이별, 고독과 그리움 등이 살포시 묻어나고 향기로운 감성이 화면에 부유한다. 때론 소박함과 해학, 알 수 없는 정감 등이 물씬하지만 어느 땐 연민의 감정마저 배어있다. 그의 지속된 주제인 <기억풀이> 연작에는 그야말로 인간 내면을 시처럼 담아낸 서정미와 형용할 수 없는 고독을 비롯한 인간의 생을 관통하는 여운이 실타래처럼 놓여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단조로우나 속 깊은 색과 내용을 담보한 작품들이 많아진 근래 들어 더욱 도드라진다. 실제로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형상은 예전보다 상당히 단순화되었고 장황한 서술은 확연히 줄었다. 자연과 사람을 그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시공을 초월해 인간의 향수와 기억을 더듬으며 꼭 필요한 핵심적인 상징들만이 주변의 여백을 머금은 채 화면에 안착되고 있어 회화적 원숙미가 더해졌음을 증명한다. 이는 그토록 덜어내려 했던 번잡한 상징의 홍수에서 완연히 벗어나 많은 것을 덜어내고 있음을 가리킨다. 
또 다른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의 접점에서 이뤄짐을 인지하게 된다. 이 부분은 신철 그림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이기도 한데, 예전의 작품들이 비교적 장식적인 장치 아래 구체적인 형상성을 획득한 후 개별적인 기호들이 화자의 심상을 옮기는 전이적 도구로서 존재했다면 현재의 그림들은 분명 그 어떠한 것들이 시초의 모습을 드러내는 선에서 멈춰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86년 이후 수많은 작품전을 치르는 동안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창조라는 본연의 발화점을 찾기 위해 끝없이 연구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철의 근작들은 설명이 배제되고 간략화 되었음에도 지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언의 아우라(aura)가 그 이상의 내레이션을 함유하고 있다. 굳이 이것저것을 논하지 않아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강조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는 신철의 회화가 새로운 생성지평을 열어가고 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현재를 기반으로 한 일상성을 모티프로 삶의 근원에 대한 자의적 물음의 도정에 있음을 읽게 하는 단초가 된다. 
특이한 것은 그의 화력이 세월에 덧칠될수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흔적들은 더욱 농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론 시간의 흐름과 세태에 따른 자아의 고착, 물질, 명예, 이념이 강한 신념으로 구축되면서 동일한 관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반면, 그의 그림들에선 오히려 순수한 감성이 배가되는 흔적이 짙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모더니즘 회화의 미학, 즉 비움으로서 채운다는 개념이 가득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억풀이, 캔버스에 피어난 삶의 단면들 - 홍경한 미술평론가

기억풀이, 캔버스에 피어난 삶의 단면들

거의 텅 빈 화면에 무표정한 남자가 서 있거나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화폭 너머를 흘깃거린다.

남녀 간에 느낄 수 있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심리상태를 작가 특유의 동화적인 시선으로 풀어 놓는가싶더니 어느 한편에는 기억의 편린을 군더더기 없는 이미지로 치환한 작품들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 도시민들에게 흔한 어딘가 외롭고 쓸쓸한 여운들, 비교적 무덤덤하나 다양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인물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은 곧 나의 모습, 우리의 초상으로 공유된다.  
작가 신철의 작품은 따뜻하면서도 외롭다.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봤음직한 유년 시절의 사랑과 이별, 고독과 그리움 등이 살포시 묻어나고 향기로운 감성이 화면에 부유한다. 때론 소박함과 해학, 알 수 없는 정감 등이 물씬하지만 어느 땐 연민의 감정마저 배어있다.

그의 지속된 주제인 <기억풀이> 연작에는 그야말로 인간 내면을 시처럼 담아낸 서정미와 형용할 수 없는 고독을 비롯한 인간의 생을 관통하는 여운이 실타래처럼 놓여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단조로우나 속 깊은 색과 내용을 담보한 작품들이 많아진 근래 들어 더욱 도드라진다. 실제로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형상은 예전보다 상당히 단순화되었고 장황한 서술은 확연히 줄었다.

 

이는 그토록 덜어내려 했던 번잡한 상징의 홍수에서 완연히 벗어나 많은 것을 덜어내고 있음을 가리킨다.
또 다른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의 접점에서 이뤄짐을 인지하게 된다. 이 부분은 신철 그림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이기도 한데, 예전의 작품들이 비교적 장식적인 장치 아래 구체적인 형상성을 획득한 후 개별적인 기호들이 화자의 심상을 옮기는 전이적 도구로서 존재했다면 현재의 그림들은 분명 그 어떠한 것들이 시초의 모습을 드러내는 선에서 멈춰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86년 이후 수많은 작품전을 치르는 동안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창조라는 본연의 발화점을 찾기 위해 끝없이 연구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철의 근작들은 설명이 배제되고 간략화 되었음에도 지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언의 아우라(aura)가 그 이상의 내레이션을 함유하고 있다. 굳이 이것저것을 논하지 않아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강조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는 신철의 회화가 새로운 생성지평을 열어가고 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현재를 기반으로 한 일상성을 모티프로 삶의 근원에 대한 자의적 물음의 도정에 있음을 읽게 하는 단초가 된다.
특이한 것은 그의 화력이 세월에 덧칠될수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흔적들은 더욱 농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론 시간의 흐름과 세태에 따른 자아의 고착, 물질, 명예, 이념이 강한 신념으로 구축되면서 동일한 관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반면, 그의 그림들에선 오히려 순수한 감성이 배가되는 흔적이 짙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모더니즘 회화의 미학, 즉 비움으로서 채운다는 개념이 가득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 홍경한 / 미술평론가 

추억과 그리움의 절창 _ 그 애틋한 청산도의 봄날 - 김종근 미술평론가

추억과 그리움의 절창 _ 그 애틋한 청산도의 봄날

러시아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이 세상 어느 것도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것은 남아 있으며 뿌리 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게 있어 그리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득 문득 정말 이름 모를 어떤 그리움에 사무친다. 그것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는 것이다.
“날씨도 춥고 먹을 것 입을 것 하나 변변치 않고, 낮에는 하늘과 구름뿐이고, 밤이면 벌레소리와 스치는 댓잎 소리뿐이라”고 탄식 했던 다산 정약용의 시구도 그런 유배지에서 보낸 그리움의 마지막 절창이다.
이처럼 신철의 그림 속에는 몇 개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짜여 있는데 그 중 심에 놓여 있는 것이 그리움이며 추억이다.   
작가는 스스로 '그리움이 절실해야 그림이 비로소 사랑을 알아챈다.'고 털어놓으면서 사무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애틋함을 한결같이 노래한다.
그 그리움의 시대적 배경은 1960~70년대의 단발머리 소녀들의 풋풋한 낯설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장소는 바로 완도, 그가 태어난 작은 섬 청산도이다.
거기에 그가 사랑하고 흠모하던 어릴 적 소녀도, 그가 따라 다니며 고무줄을 끊어 놓고 도망치던 그 때의 누나들도 아직 그의 화폭에 겸연쩍게 쭈빗거리며 서 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이런 다소 촌스러운 옷차림의 단발머리 누나, 소녀들이 이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그리움의 원천이며 추억의 가장 강력한 씨앗 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키만큼 큰 꽃 앞에 있거나 , 꽃나무 아래에 엉거주춤 혹은 삐딱하게 서 있다. 가끔 푸른 하늘 위로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떠가고, 흰 매화는 흐드러지고 흘깃 훔쳐보는 소년의 마음이 얼룩져 있다.
뒷편에는 소녀의 키보다 더 큰 꽃들이 나무처럼 자리하고 지천에 붉은 꽃들이 포근한 봄날의 알록달록한 정경 그곳이 이내 청산도임을 말해준다.
꽃길을 건너 바다로 이어지는 모습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그림에서나 꽃, 나무, 소녀. 그리고 마음 설레게 하는 예쁜 소녀들이 불그스레한 표정으로 화가의 화폭 앞에 서서 우리들을 향해 유혹하고 손짓한다.

그 시절로 한번 돌아가 보라고 아니 나의 어린 시절 그리움에 목말라 사무쳐 잠못이룬 코흘리개 시절, 고향 청산도로 오라고 말이다.
나는 한 번도 청산도를 가보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으로 수없이 정겨운 청산도를 방문했다.  
지금도 작가는 늘 떨쳐낼 수 없는 그 풍경 속에 빠져 그 순간들을 떠올리고 바라보며 양평 수류산방의 아틀리에 화폭 앞에서 붓질을 서걱거린다.
그리움에 가슴을 졸이며 ,그리움에 잠을 뒤척이며 갈수 없는 그 행복한 꿈을 꾼다. 봄날, 미치게 푸른 하늘 청산도의 어린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을 말이다.
작가는  이것을 너무나도 도저히 잊지 못해 ‘기억풀이’라 부른다.
어떤 그림을 보아도 그의 화면에는 소녀를 향한 어린 시절의 가슴 떨림과 봄이 오는 끝없는 설렘에 부대끼는 가슴 찡한 정경들을 남도 가락처럼 풀어낸다.
철없던 시절 바닷가 시골 촌 소년이었던 신철 , 그는 정녕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는 입버릇처럼  "착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되뇌었다.
그에게 착한 그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철모르게 굴었던 그 장난기 어린 순수한 10대의 떨칠 수 없는 향수와 그리움, 그것과 함께 뒹굴던 추억들이다.
우리가 작가의 그림 속에서 한없이 순수함과 따뜻함에 마음 쿵쿵거리며 가슴을 흔들었던 찡한 우리들의 초상을 발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언제나 봄기운이 듬뿍 담긴 색채에서 부터 털목도리를 둘러 감고 눈 내리는 소녀가 있는 그 바닷가 정취까지 그 자연의 색채와 빛깔로 풀어내는 기억에 대한 한풀이가 신철 작품의 영혼이다.
여전히 그의 모든 그림에는 그리움과 추억으로 보는 이를 10대로 되돌려 놓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창한 봄날. 꽃이 듬성듬성 핀 거리에 데이트 나온 두 남녀의 모습. 그러나 남자는 등 뒤 손에 꽃다발을 감춰들고 있는 쑥스러운 표정과 순수한 척 하며 도도한 몸짓의 풋 소녀들로 인해 그 마력은 더욱 강력하고 눈에 아른거린다.
분명 신철은 시인이거나, 아직도 순수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철부지 미소년임이 틀림없다.
더러는 아주 유치한 풍경처럼 그런 기억으로 평생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된 어른 시인 말이다.
끝없이 그가 이런 풍경들을 펼쳐내는 한 인간이 가진 지독한 그리움의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는 것은 신철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의 선물이다.
그는 그러한 그림의 주제들을 삶을 축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모습을 더 명증성 있게 보이려 화면을 단순화하고, 과감하게 한 폭의 동양화처럼 여백에 그리움을 심어놓아 고향이 주는 그칠 줄 모르는 행복감을  완성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기억풀이’ 시리즈는 단순히 지나온 과거를 이야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리움 속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하는 중독성 있는 마약 같은 힘을 지닌 즐거운 놀이이다.
두근거리며 동네 어귀를 지나가는 소녀들을 바라보는 그 시절의 그리움에 초상화, 보는 이의 마음을 두드리는 순수함과 따뜻함이 서려있는 착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의 화가로서의 희망이 이루어졌다.

이미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그가 아주 맘씨 여리고 순수한 맘씨 착한 시인임을 기억하고 눈치 채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의 잊고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행복하고 정겨웠던 10대의 소년이 되어 있는 우리들을 만나며 소스라치게 행복해 한다.
그런 점에서 신철의 그림은 그의 예술적 신념대로 충분히 그리움에 대한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화가로서 목적을 이루었다.
그래서 나는 이 환갑이 넘은 흰머리가 희끗한 그 미소년의 향수와 추억과 애틋한 그리움을 마구마구 사랑한다.

- 김종근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