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스테이트먼트(Statement) :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

스테이트먼트(Statement) :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

 

낯설지 않은 소재를 바탕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감상자와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제 작품에 등장하는 바우는 제가 기르던 개입니다. 

어느 날, 바우를 잃어버리고 나서 슬픔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그리움에 관한 주제로 작업을 하던 중, 바우의 캐릭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이 사는 일상의 모습과 희노애락, 꿈과 희망 등을 의인화된 바우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의 의도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일단 대하기 편하고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고 다방면의 사고가 가능한 작품들을 제작함으로서 감상자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는 단계의 예술 형태를 지향합니다. 또한,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서 마치 한편의 시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학창시절 시를 공부하면서 배웠던 직설과 함축, 은유와 역설 등을 그대로 작업에 응용하고 있습니다. 

 

가시적으로는  Pop 적인 그림을 연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사회현상과 이슈, 유명인(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신화 속 인물) 등을 제 작업의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삶의 경험들과 이야기들, 그리고 문화적인 기호와 상징들은 저의 상상력을 고양시키고 자극하는 훌륭한 매개체입니다. 실험적 성향이 짙은 1회, 2회의 개인전을 거쳐 3번째 개인전부터는 강아지 바우의 캐릭터를 활용한 연작으로 인생 전반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설만이 진실인 인생 - 글 이선영 미술평론가

역설만이 진실인 인생 

- 글 이선영 미술평론가 

 

 

 청동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각 작품의 주인공은 불테리어 종의 개 ‘바우’이다. 엽기적일 만큼 익살맞게 생긴 그 품종의 개는 그 자체가 약간 만화처럼 생겨서 별다른 변형없이도 캐릭터로서 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의 취향에 맞는 품종개량 및 선택이 거듭되다 보면 인간 주변에는 온갖 종류 의 살아있는 인형들이 존재하게 된다. 인간 대자연의 대결을 넘어서, 인간들 간의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주변 동물의 역할은 커진다.

반려동물은 자연을 넘어서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작품 속 주인공 이름도 만화 [바우와우]의 캐릭터와 많이 닮아서 바우라고 지었다고 한다. 인간 과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 더구나 그 사랑스런 반려견을 잃어버린 상황이라면, 작품 소재의 1순위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예술이 재현하는 것이 잃어버린 시공간이라면, 개 뿐 아니라 개와 함께 했던 시간들 역시 작품화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개가 주인공으로 전경화 되어 있는 빅터조의 작품들은 예술이 사랑이자 기억, 그리고 상처이자 치유라는 것을 일깨운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하나의 전체, 이 전체성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플라톤)이라는 사랑에 대한 고전적 원 리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분열과 갈등을 화해시키려는 정신분석학의 목적과도 겹쳐진다. 이상, 승 화, 억압, 합일, 합리화 등등의 개념은 서로 반대되어 보이는 두 사상, 즉 태양빛 가득한 플라톤과 어둠 속의 프로이트를 동일한 계열의 세계관으로 연결시킨다. 작가는 상실의 어둠 속에서 바우와 함께 했던 햇살 가득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작업실의 말썽꾼이었던 바우의 얼굴에는‘늘 온갖 문장부호들 과 글씨들이 보였고, 머리 위에는 늘 말풍선과 전구가 떠있었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빅터조의 작품 속 바우의 눈매는 매우 인간적이다. 인간처럼 정면을 바라보고 그래서 인간적인 얼굴 표정이 가능하다. 하얀 부분이 많은 피모는 털이 없는 분홍빛 피부의 인간을 연상시킨다. 인간에 대한 과학을 자부하는 정신분석학이 인간만의 특징으로 꼽는 것은 ‘추상적인 사고, 가치의 수용, 예술적 창조성, 생물학적인 생존을 넘어서는 목표 설정’ 등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처럼 직립하고 가장(假將)하고 놀이하는 모습은 인간적이다. 정신분석학은 주체도 대상도 아닌, 허구도 현실도 아닌 중간영역을 설정하여 놀이하고 학습하는 것은 인간의 특징으로 지적한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바 우는 그 중간 영역에서 예술작품으로 환생한다. 바우는 스파이더맨(2014)이나 세일러문(2014), 체게바라(2013), 자유의 여신상(2014) 등으로 분장한다. 캐릭터는 또 다른 캐릭터로 변모하는 것이다.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은 파생을 거듭할 수 있다. 바우는 여러 인간 유형의 역할을 맡아서 또다른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투견 목걸이하고 붉은 색 권투 글러브를 낀 비장한 표정의 바우는 작품 [남자이기 때문에!](2013)에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가혹한 게임에 임해야 하 는 불행한 남성적 정체성을 풍자한다. 작품 [카톡~](2014)에서 원래의 개가 그렇듯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몸을 배배꼬고 웃음 을 흘리는 암캐는 유혹자의 역할을 자임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남성은 강해야 하고 여성은 그런 남성의 선택받기 위해 예뻐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대중문화를 동종 어 법으로 풍자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를 질곡에 빠뜨리는 그러한 현실은 만화처럼 단순화되는 순간에야 빈약하면서도 폭력적인 이분법의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품 [멍!](2012)에서는 불테리어의 생김새에 일조하는 한쪽 눈의 검은 얼룩이 계란으로 달래야 하는 시퍼런 멍처럼 변모한다. 입가와 이마에는 개체의 상태를 알려주는 문장과 기호가 떠 있다. 

그림이 아닌 조각이기에 따로 말풍선을 띄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개체의 상황을 설명하는 사물들에 기호들을 새겨 넣는다. 바우는 카톡(2014)부터 국제결혼(2015)까지, 그리고 애견인으로서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보신탕 문화(2015)까지 전 방위적인 풍자에 개발에 땀이 날 정도로 바쁜 몸이다. 빅터조 의 작품은 만화나 인터넷에서 인기 코너인 동물관련 유머 란의 게시물처럼 경쾌한 부분이 있지만, 그 시작이 커다란 상실로부터였음 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 자신이나 인간에 대한 비유 인한, 인간의 비극적 실존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인생에 관한한 역설만이 진실인 듯싶다. 캐릭터 화 된 바 우는 모체로부터 멀어진 최초의 상실 이래 작가의 잃어버린 부분의 하나이며, 그것이 예술작품으로 재현된 것은 일종의 소망 성취이다.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캐릭터 바우는 작가의 지각적 동일성(per\-ceptual identity)이 담긴 환각적 재창조이다. 빅터조의 작품에서 눈앞에 실감나게 현전하는 잃어버린 대상은 예술이 ‘쾌락원리와 현실원리를 화해’(프로이트)시킨다는 점을 알려주는 예다. 제이 그린버그 & 스테판 밋첼은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에서, 지각적 동일성을 보다 이전의 만족스런 상황이 현실이나 환상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바우는 다름 아닌 작가가 동일시하는 중요한 타자인 것이다. 동물이나 동물성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기 위해 오래 전에 떠나왔다고 간주되는 그 타자였다. 인간 안의 동물성은 억압되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으며 무의식과 몸에 내장된 채 언제나 회귀될 기회를 노린다. 산업이나 문화에서 생명공학이나 시뮬레이션 기술의 발달은 다시금 동물과 인간을 근접시킨다. 빅터조의 작품에 가장 선명한 타자의 이미지는 동물이다. [정신분석학 적 대상관계이론]에 의하면, 여러 학파의 정신분석학자들은 타자 에 대한 이미지를 ‘내적 대상, 환상적 타자(illusory others), 내사 (introjects), 인격화(personification), 그리고 표상적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등으로 다양하게 불러왔다. 동물은 타자지만, 그러한 타자가 다가오는 것은 또 다른 타자들과의 갈등에 따른 보상, 또는 도피의 성격이 적지 않다.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타자들은 생존과 적응이라는 운명의 고단함을 알려준다. 정신분석학은 정체성이 타자와의 동일성과 이질성 모두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정신분석학은 건강하든 병리적이든 정신적 삶 은 관계적 끈들로 복잡하게 짜여 있음을 강조한다. 이 관계의 연결망을 구성하는 것은 현실과 상상 속에 존재하는 타자와 자기 사이 의 만남이라고 지적된다. 빅터조의 작품에 등장하는 개는 투사적 동일시의 예이다. 그것은 상실--실제로 사랑하는 개를 잃어버렸다는 것뿐 아니라, 그로 대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상실--이라는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타자를 자신의 일부로 경험하는 것이다. 투사와 동일시를 함께하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심리적 과정은 자기 이미지를 대상 이미지와 닮게 하는 동시에, 대상 이미지를 자기 이미지와 닮게 한다. 타자인 바우에게 투사된 자아는 자기애의 대상으로 표상화 되는 것이다.  

우화를 통한 인간사회의 표현- 조경훈

우화를 통한 인간사회의 표현

- 조경훈

 

 나는 미술, 조각이라는 장르에 풍자·해학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감상자들이 조각 작품을 관람하며 한 편의 짧은 소극, 반전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극화된 연출을 보여줌으로서 상처받은 현대인들에게 웃음을 주고, 다소 우울할 수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희망과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코믹한 요소에 집중하고 있으며 의인화된 반려견의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모습을 통해, 살면서 마주할 수 있는 웃지 못 할 상황을 회피하기보다 그것을 오히려 전환점으로 활용하여 딛고 나아갈 수 있는 심리적 치유에 중점을 둔다.

 

시대적 문제에 대한 인식

 인류가 발전할수록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생활은 더 편리해졌지만 기계화된 세상 속에서 인간은 부속품처럼 변해가고, 일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결핍과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본주의사회는 인간 사회의 서열을 만들어내고 매스컴(mass communication)을 통하여 접하게 되는 기사들은 가진 자들의 횡포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억울함으로 흔히 대변되며 대리만족의 표상인 일부 유명인들의 가십거리로 매스컴은 늘 소란스럽다. 특히, 사회적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청년들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국가를 재건한 기성세대들로부터 늘 나약하고 탐탁지 않은 미생적인 존재로 치부되면서 자연스럽게 콤플렉스(complex)와 트라우마(traumat)를 경험하게 된다. 성취 욕구는 높아졌지만 성취감은 오히려 낮아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많은 청년들은 입지를 잃었다. 그래도 이전 세대들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부의 축척과 신분 상승이 가능했다면 현대의 청년들은 흔히들 금수저, 흙수저를 논하며 타고난 배경 없이는 자수성가하거나 신분 상승이 어려운 시대에 처하여 노력해도 안 되는 벽에 부딪혀 스스로를 비관하고 사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다 보니 삶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해버리는 이른바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에 이어 N포 세대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자연스럽게 콤플렉스를 겪게 되고 알 수 없는 우울증(melancholy)과 패배감을 느끼며 물질 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에 의해 갑을 관계가 나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신체적으로는 일명 현대병에 시달린다.   

해학과 풍자를 통한 세상 바라보기

 예로부터 예술인들은 이러한 정치, 경제 논리 등의 사회적 모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해학과 풍자를 가미한 작업들을 쏟아내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였고, 이러한 접근들은 예술을 단순히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우리 사회를 재조명하고 선동할 수 있는 요소들을 세상에 제시해왔다. 특히, 한국인들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것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 회심의 미소 즉, 해학미로서 전환하는 길을 택해왔다. 

 풍자와 해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웃음이다. 웃음의 가장 큰 혜택은 바로 화해적 기능인데, 웃음을 통한 소통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며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두 개인이나 집단을 치유 또는 화해시키는 기능을 하기에 충분하다. 풍자와 해학은 치유의 기능을 동반한다. 단순히 감상자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에게 그 상황의 모순을 역으로 이용하여 위로와 즐거움을 주고 작가와 감상자가 동반 치유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풍자와 해학은 사회 문제를 완화하고 해소할 수 있는 예술의 한 수단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작은 반려견을 잃어버린 후의 단순한 상실감 때문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기억 속의 바우는 언제나 신선한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었고, 자연스레 접할 수 있었던 우화적 특성은 심각한 주제로도 관람자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윤활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의인화된 동물을 작업의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서 개성을 잃지 않고 독보적인 특성을 가진 동물의 의인화 작업을 선보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직설과 함축, 은유와 역설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본인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심도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향후 과제로 삼을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공공의 영역에서도 무난히 사용되어지기를 바란다. 

  

‘바우’가 춘천에 왔다_조경훈

조경훈

 

‘바우’가 춘천에 왔다

 

  현대조각의 미학적 경건주의, 어느 순간부터 탈색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느낌이다. 여러 가지 배경과 요인이 있겠지만, 대중의 시각을 존중하고 대중적 기호나 취향에 부응하지 못하는 예술의 고립화나 혹은 권위화에 대한 반성이 폭넓게 펼쳐지고 있는 전향적 미학이라는 배경에 기인할 것이다. 예술작품의 신비주의적 베일을 걷어내고자 하는 과제는 비단 현대조각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문화 전반에 걸쳐 예술작품이 지나치게 현학적인 고급 취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경계하는 현상은 동시대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대중의 예술적 취향이나 미의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로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파고들기 좋은 쉽고 단순하며 흥겨운 요소들로 패턴화시킨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음악의 경우 트로트가 미디어 없이도 그렇게 열풍을 일으켰겠는가. 시각문화의 경우 미디어나 포털이 웹툰을 살포하듯 연재하고 있는 현상도 비슷하다. 미디어는 시각 및 영상이든 음악이든 상업성과 결부하여 중독성 강한 컨텐츠들을 미끼로도 쓰고 그것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러한 문화현상들을 워홀 같은 아티스트들은 중성적 스탠스를 취하며 현상들을 재현해 재미를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팝문화가 청년세대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주류 문화로 발돋움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최근 있었던 몇 차례 아트페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형이 바로 이러한 팝 양식의 작업들이었으며, 대다수의 컬렉터들 역시 30대 전후의 벤처사업가, 전문직, 연예인들이었다 한다. 

  조경훈의 조각작업은 이러한 정황을 참조하여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청년세대의 미의식과 취향은 곧 작가의 핵심적인 사안이다. 이러한 청년세대의 표현에서는 기성세대의 취미에 대한 모종의 반항적 속성을 은연중 드러낸다. 작가의 작업은 긴 설명이 없어도 한눈에 커툰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응용되고 있음이 보인다. 자신의 반려견 ‘바우’를 춘천 도심 무대에 미장센, 즉 무대에 올리듯 의인화된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드디어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걸친 여행객 차림의 사랑스러운 ‘바우’가 춘천에 도착한 것이다. 춘천시민들에게 반가운 표정으로 환하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물론 작가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이입한 것이다.

  ‘바우’라는 이름도 그렇거니와 천진난만함과 발랄함이 넘치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낭만 강아지인가. 패턴일 수 있지만 멍든 듯한 한쪽 눈이 저절로 윙크하는 모습으로서 익살맞은 설정 같기도 하다. 색 역시 회화적인 감각의 채색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의 단순 명료한 그래픽 같은 도색을 한다. 낙천적이고 진취적인 열정의 캐릭터가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 아울러 긍정의 에너지까지 선사한다. 엄숙하고 근엄한 고전적 조각에만 익숙했던 세대에겐 낯선 캐릭터지만 청년이나 아동들에게는 교감이 가능한 것으로, 도시의 분위기 또한 대단히 밝고 활기찬 모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작가의 작업은 시멘트 재료를 가지고 직접 소조적으로 붙여나간 것이다. 어쩌면 고급 감성과는 거리가 먼 흔한 재료라는 점에서 어울리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시멘트의 품질이 좋아져 고강도의 조형적 사역이 한결 수월해졌다. 시멘트 직조의 경우 형태는 최대한 볼륨을 풍부하게 가져가고 동세를 최소화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작가 작업은 서사를 띤 장면에 충실하기 위해 동세를 살려야 한다. 형태상 돌출이 많다는 점과 인체 다리 부분의 안정성이 취약하다는 측면에서 모델링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결국은 작품의 심봉은 숫제 철조에 버금가는 정교하고 견고한 골조를 갖추어야 한다. 요컨대 작가의 작업은 작품 속에 또 하나의 작품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또 작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