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최승애 평론, PUFF- 행복의 기포_김하림

최승애 평론

‘PUFF- 행복의 기포’

 

초기 테라코타 작업에서부터 이드거니 부풀어진 형태는 최승애에게 작품을 출발시키는 근원적 형상이자 바탕이다. 과거 도조로부터 발전한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작품 사이는 양감 있는 형상적 유사성과 일관적 스토리텔링으로 연속성을 가지나 미숫가루에서 스파클링 와인으로 옮겨간 듯이 오감이 감지하는 미감에는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다. 신작이 가진, 흙에서는 느낄 수 없는, 버블의 가벼움을 입은 금속 옷이 전하는 서정은 시각과 촉각을 배반하는 반전이며 상반되는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함으로 비롯되는 모호함과 호기심은 안티모니(antinomy,二律背反)가 주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상이한 충돌적 동침, 재질의 반전을 꾀하는 조각 작품들 속에 최승애의 작품이 가진 정체성이란 뒤틀리지 않은 정직한 아늑함이라고 본다. 제프쿤스의 ‘Balloon Dog’을 비롯하여 금속의 현란한 미감을 가진 현대작품들 이면에는 보이는 것과는 다른 냉조(冷嘲)적 사유가 깔려있다. 그러나 최승애의 온화한 심상에서 비롯된 작품에는 냉소적 이면이 없이 관계에서 비롯되는 상생과 조화를 이야기한다.

탑처럼 쌓이거나 접힌 쿠션 유니트들이 품은 의미를 미시적(微視的) 접근으로 보면 하나하나가 행복의 셀(cell)이며 기포(氣泡)이다. 작품 원본을 직접 수작업으로 형태를 잡고 디테일을 깎아내어 구현하는 작가는 컴퓨터와 기계가 구현한 형상과 다르게 구사비진(求似非眞- 달라도 안 되고, 똑같아도 안 된다)의 미학을 형상으로 실현하고 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사탕들이 달콤함 속에 미묘하게 향미가 다르듯이 색감과 형태가 조금씩 다른 쿠션들은 미세하게 다른 행복, 추억, 관계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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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력적 판다지, 유영의 시간

삶은 멈춰있지 않고 어디론가 흐른다. 작가는 이러한 삶의 여정을 무중력의 행복감이 느껴지도록 푹신한 쿠션, 풍만한 하트, 소파 등 인생의 무게를 완충해줄 사물을 통해 표현한다. 작품을 이룬 금속의 재질은 실질적으론 물리적 견고함과 무게를 가지지만 심상의 필터로 바라보면 부유하던 버블이 지면에 살포시 안착하듯 탈중력의 경쾌함이 느껴져 그의 작품에 손을 대면 두둥실 떠오르게 될 것 같은 착시를 안겨준다.

최근 신작에서 볼 수 있는 부조 형식의 반으로 접힌 쿠션은 중앙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골에 인해 해석은 보는 이들의 심상에 따라 쿠션에 머무르지 않고 입술, 엉덩이 등 육감적인 신체의 일부 또는 꽃잎, 포춘 쿠키 등 다방면의 연상으로 뻗어나간다.

팔색조의 이미지를 품은 작품을 바라보고, 상상하는 찰나(刹那)는 현실을 탈피하는 순간이며 동공을 통에 본능 속 안식을 찾는 순간일 수도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매 순간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다치고, 밀려드는 노동으로 지치고, 스스로가 만든 우울함에 가라앉는다. 시각예술이 잠시나마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 준다면 그 존재의 목적성에 얼마나 큰 영예로움인가 생각된다. 부족함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에게 자궁을 모사한 인큐베이터가 생명을 감싸주듯이 매일 다치는 영혼들에게 유기적 부드러움을 가진 작품은 탈중력의 판타지로서 꿈결을 유영하는 힐링의 시간, 행복의 시간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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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바타, 꿈꾸는 여성, 대체 힐링의 상징

최승애 작품 안에는 휴식하는 여성상이 있다. 인물은 작가의 아바타로서 조형작품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주된 형상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유도하는 해설자(체험자)이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사색하는 모습을 통해 행복과 쉼의 미립이 트이게 해주어 억지가 없다. 때론 소년과 강아지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작가는 영민함이 있는 소녀보다는 개구쟁이로서 철이 덜 든 소년과 시골에 흔히 볼 수 있는 얼룩 강아지를 storyteller로 묘사한다.

완전한 균형과 조형미를 추구하는 주형태에 곁들여지는 아바타들은 화사첨족((畫蛇添足)과 공감의 줄다리기에서 순진하고 어딘가 어리숙한 모습으로 차가운 세련됨을 녹여준다. 즉 함치르르 금속의 날카로움을 중화하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친근함을 봉죽들어주는 매개적 요소로서는 충분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구름 위에서 젊은 날의 데생각을 추억하는 여인, 애잔한 노스텔지어, 종횡무진 놀다 엄마 품에 쓰러진 소년, 종일 주인을 쫓아다니다 잠든 강아지.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캐릭터들로 인해 체온이 느껴지는 최승애의 작품은 완결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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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오너먼트, 공간의 아름다운 개입

공공미술로서 최승애의 작품은 화려한 색상으로 빛나며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하고 현대인의 감성과 욕망을 자극한다. 작품이 가진 긍정의 심상뿐만 아니라 외관이 가진 순수한 미적인 요소, 빛나는 오너먼트(ornament)의 특성은 구조적인 형상에 더해지는 상호보완의 요체(要諦)로서 자연, 인공구조물, 사람의 관계 사이에 아름답게 개입한다. 변치 않는 금속의 광채는 고매한 예술로서 알레고리보다는 사람들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한다.

물론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 유희의 산물이거나 장식물에 머무르지는 않지만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아름다운 첫인상의 잔상에 지나친 철학의 무게를 지우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행복의 상징물’로서 순수하게 환희를 선사하는 작품은 공공의 장소로 나오면서 차갑고 이지적인 현대건축에 심장이 뛰는 활력을 선사하며, 수직 수평이 강한 인공 구조에 유기적 부드러움으로 공간을 희석하는 순기능적 개입을 한다. 또한, 메마르고 단절된 관계 속에 어부바를 하듯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형상은 심리적인 위안과 치유를 유도하기도 한다.

 

최승애의 조형작품은 바흐(Bach)의 악곡에서 오나먼트로서 음을 이어주고, 채워서 음의 화려함을 더하는 꾸밈음 트릴(trill)이나 모르덴트(mordant)처럼 삶의 공간이란 케이크에 달콤한 프로스팅(frosting)을 더해주는 것이다.

 

- 김하림

 

최승애 작가 작품세계

작품 설명

 

작품의 소재는 하트와 쿠션이며 이를 단순 조형화하여 힘든 세상살이에 위로와 치유의 마음을 담은 작품으로 제작해 오고있다.

스텐 금속을 사용하여 캔디도장으로 마감처리하여서 최대한 정화된 차분함이 느껴지도록 표현하고 ,소곤소곤 마음이 담긴 감정을 조용하게 전달해 가는 작품이 되도록 표현하고자 한다.

<Harmony>,<어부바>등 작품에 나타나는 형태는 쿠션을 반으로 접혔을 때의 형상이 입술모양이기도 하고 하트모양으로도 보여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쿠션 소재는 왜 택했을까?

편하게 쉴 수 있는 포근하고 조용한 휴식 자체가 가장 큰 위로이자 따뜻한 배려 일 수 있다. 쿠션은 그런 치유 의미를 담은 상징적 소재이다.

 

*최근 스텐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

아날로그적인 느리고 서정적인 치유감성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 현대적인 스텐 재료를 통해 모던하고 담백하게 표출되길 의도하고 있다.

최승애 평론, 탈중력적 판다지, 유영의 시간_김하림

최승애 평론 

 

탈중력적 판다지, 유영의 시간

 

삶은 멈춰있지 않고 어디론가 흐른다. 작가는 이러한 삶의 여정을 무중력의 행복감이 느껴지도록 푹신한 쿠션, 풍만한 하트, 소파 등 인생의 무게를 완충해줄 사물을 통해 표현한다. 작품을 이룬 금속의 재질은 실질적으론 물리적 견고함과 무게를 가지지만 심상의 필터로 바라보면 부유하던 버블이 지면에 살포시 안착하듯 탈중력의 경쾌함이 느껴져 그의 작품에 손을 대면 두둥실 떠오르게 될 것 같은 착시를 안겨준다. 

 

 반으로 접힌 쿠션은 중앙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골에 인해 해석은 보는 이들의 심상에 따라 쿠션에 머무르지 않고 입술, 엉덩이 등 육감적인 신체의 일부 또는 꽃잎, 포춘 쿠키 등 다방면의 연상으로 뻗어나간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매 순간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다치고, 밀려드는 노동으로 지치고, 스스로가 만든 우울함에 가라앉는다. 시각예술이 잠시나마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 준다면 그 존재의 목적성에 얼마나 큰 영예로움인가 생각된다. 부족함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에게 자궁을 모사한 인큐베이터가 생명을 감싸주듯이 매일 다치는 영혼들에게 유기적 부드러움을 가진 작품은 탈중력의 판타지로서 꿈결을 유영하는 힐링의 시간, 행복의 시간으로 다가간다.

 또한, 메마르고 단절된 관계 속에 어부바를 하듯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형상은 심리적인 위안과 치유를 유도하기도 한다.

 

- 김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