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 조성구 작가노트_회귀(回歸) ― 긴여정 |
회귀(回歸) ― 긴여정 하천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바다로 떠난후 3,4년자란 뒤에 알을 낳기 위하여 다시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되돌아오는 고단한 긴여정을 뜻한다. 상징적으로 연어인데 일생에 한번만 부화를 하고 회기 하는 과정에서 먹이를 먹지않고 속을 비운다고 하는데, 이유는 몸속의 알들을 나쁜 세균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 이라고 한다.힘든 여정에서 긁히고 부러지면서 도착한 고향 하천에서 마지막 힘을 쏟아 산란을하고 얼마후면 더이상 쓸 수 없는 심신을 흐르는 강물살에 몸을 맡기어 이리저리 흐느적 거리다 당연하듯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삶의 마지막은 무엇일까. 소멸이 아닐까. 소멸은 사라진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처음의 시작인 생성의 출발점일 것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여 각자의 존재를 영원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가지만 모든 생명들이 영원할 수는 없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 속에서 생성은 없고 소멸만 반복된다면 결국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과연 인간은 영원한 삶을 지속할수 있는 유일한 자연의 한 부분일까. 생명은 본능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스스로 개체수를 줄이기도 하고, 마지막 온힘을 다해 생명의 씨앗을 퍼트리기도 한다고 한다. 인류의 영원한 존재의 가능성 또한 생성과 소멸의 무한 반복일 것이다. 하지만 기우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미혼,이혼,독신주의,출산기피 등등 출산률 감소로 인한 노인층의 증가는 결국 소멸의 반복만이 되풀이 될것이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무한경쟁 반복의 긴여정에서 그끝은 무엇이고 어디일까. 과연 돌아갈 곳은 있을까. 긴여정의 끝은 어머니의 품과같은 ‘고향’ 일 것이다. 2019,2,24 파티움 아트 갤러리 전시준비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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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6 | 작가노트_나는 이제 다시 돌 앞에 서있다. |
작가노트 나는 이제 다시 돌 앞에 서있다. 언젠가 운주사를 물어물어 찿아가 여기저기 널 부러져 있는 불(佛)들의 형상을 보면서 그들의 생김생김에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소박함 다듬어지지 않은, 못생기고 바보같은 꾸미지 않은 형상들은 너무도 자연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하고 있는 돌 작업들은 그때 경주에서, 운주사에서 첫 개인전에서의 철조 작업들이 섞여서 탕약을 짜듯 꽉 짜는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개인전 작가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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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 조성구 작가노트 |
작가의 작품을 표현 하는데에 있어서 재료의 선택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처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철,돌, 동,나무등의 재료를 사용하는데 각각의 재료들은 기본적으로 고도의 기술연마가 필요하다. 각각의 재료를 다루는 방법,공구,기법등을 준비하고 숙련하는데 오랜 시간을 작업해야 자연스럽고 자기만의 느낌을 표현 할 수 있을 겄이다. 철은 용서가 가능하다 라고 생각하는데 붙이고, 잘라내고, 갈아내면서 얼마든지 즉흥적인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실수해도 복구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돌은 용서하기엔 너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떨어져 나간 돌은 붙일 수 없다, 붙인다 해도 그건 한몸이 아닌 분리 된것이기 때문이다. 떨어져 나가는 방향도 알아야 하고,울림도 알아야 다른 부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화강석 중에서 상주석은 분홍빛을 띄고 입자가 거칠고 굵어 정질을 하면 떨어져 나간 표면에서의 투박한 느낌이, 내마음을 그대로 표현 한것같아 즐겨 다룬다. 현무암 작업은 철 작업 방식과 돌 작업이 함께 병행하는 작업방식이며, 현무암과 색유리를 동시에 녹여 융합시키는 기법으로 작업하는 것이다. 기법적으로 치우치다 보니 본질이 흐려짐을 깨닳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문제는 무었을 표현해야 하는가가 우선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잠시 내려놓고 나를 돌아 보는 시간은 작업을 풀어가는 중요한 단서일 것이다. -네번째 개인전 작가노트- |
ARTIST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