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이질적 요소의 병합을 통한 변증법적 확산_하계훈(단국대학교 교수)
이질적 요소의 병합을 통한 변증법적 확산

하계훈(단국대학교 교수)

돌과 철을 주재료로 작업해 온 김창기의 작품들은 현대성 혹은 동시대성이라는 개념에 잘 부합한다. 작가는 조각의 정통 어법에 충실히 기초를 둠으로써 기본적인 조형훈련을 받아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활동하는 시대의 조형적 사유와 확장된 공간 개념에 대한 담론을 유도하는 작품으로 표현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김창기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조각과 소조, 시각과 촉각, 채움과 비움, 현실과 상상과 같은 대립적 항목에 대한 사유를 유도함으로써 현대 조각개념의 변증법적 발전과 확산을 추구하고 있다.

김창기가 선택하는 재료는 자신의 주변과 활동의 궤적 안에서 발견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주로 돌과 철을 사용하는 작가는 돌의 사용에 있어서 자연의 모습 그대로의 재료들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작품의 일부로 편입되도록 유도한다.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대리석을 다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온 작가가 매끄럽고 세련된 대리석과 달리 인공적 변형을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돌들을 하나로 조합함으로써 태어나는 작품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가 태생적으로 몸속에 지니고 있는 자신의 유전자와 그로부터 형성된 자기정체성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대리석은 그리 흔한 재료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고궁 건축으로부터 서민들이 사용하는 맷돌에 이르기까지 울퉁불퉁한 재질의 돌들이 우리 생활의 주변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석재였다. 작가로서의 조형훈련을 위하여 먼 곳을 돌아 고향으로 귀환한 김창기가 이러한 돌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게다가 작품 활동과 함께 숙성된 작가의 의식과 사유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 주변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도 시간의 흐름에서 자연스런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김창기가 사용하는 재료로서의 돌이 자연을 상징한다면 그가 사용하는 또 하나의 재료인 철은 자연의 대척점으로서의 ‘인공적인 것’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을 극복하고 지배한 역사의 대표적인 물질로서의 철은 전쟁을 위한 무기의 재료였으며 근대사회의 산업혁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유용하게 발명된 각종 기계와 장치들의 주된 재료였다. 다시 말해서 철은 자연을 극복하고 점령하면서 인간의 인공적 편익을 추구하는데 앞장섰던 대표적인 재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김창기는 이러한 철을 철사 형태로 작품에 도입하여 용접과 연마 과정을 거쳐 오브제로 형성하며 특히 자연의 석재와 결합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대립적 결합을 시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과 철로 이루어진 작품에는 돌이 주는 조각적 중량감과 철로 구성된 매스가 전달하는 볼륨감,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질감과 공간감 등의 대조적인 요소가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출발하여 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재료의 연마와 부식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면서 이질적인 두 용소가 동질화되가는 과정 등을 담게 된다.
이처럼 김창기의 작업은 창작 과정에서부터 작업의 종료, 그리고 제작이 완료된 이후의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작품의 변화를 모두 포함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김창기의 작품에서 완성과 종료의 순간은 과정과 진행의 현상에 의해 유보되고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품을 ‘순환’의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창기의 작품 제 가운데 상당부분이 ‘흐르는 돌’이라는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순환하고 흐르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의 흐름을 반복하는 것이다. 

재료를 깎거나 붙여가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조각은 원래 미학적 가치의 발현에 앞서서 실용적인 요구에서 출발하였다. 회화가 2차원적인 평면에 선과 색 등의 조형요소를 가지고 조형적 재현을 하는 것이라면 조각은 회화와 달리 3차원의 입체 공간에서 필요로 하는 재현성을 수행하는 것을 본래의 목적으로 하였으며, 특히 건축과의 연관성 안에서 공간조형의 대표적인 장르로 발전하여 왔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조각활동의 결과물 가운데 상당수는 인물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미학적 감상의 대상이기보다는 종교적 경배와 영웅적 행위를 기억하는 물적 증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과거의 조각 작품들은 초인간적 위엄성을 자아내는 인물을 안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작품 그 자체만큼이나 인물상을 배치하는 장소성이 중요한 조형요소가 되어왔다. 재료면에 있어서도 조각은 기념비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재료를 멀리서 구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조각이 놓이게 되는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져온 희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을 조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곧 해당 인물의 생애의 업적과 연관시켜 위엄성을 강조되기도 하였다.

위엄성은 훼손되지 말아야 하였기에 작품들은 중앙에 높이, 혹은 특정 장소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 굳건한 받침대 위에 놓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조각은 감상의 대상이기보다는 관람자와의 불평등한 관계 속에 일방적인 위엄을 쏟아내거나 교훈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주체였으며 관람자가 친밀하게 다가설 수 없는 타자였다. 김창기의 작품은 이러한 종류의 조각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와 명백하게 대립된다. 작가는 교훈적이거나 시대의 증인으로서 어떠한 사건을 증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창기의 작품은 묘사적일 필요가 없으며 신화적 내러티브를 담아내는 형식의 틀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작품이 인위적으로 지정된 특정 장소에서 높은 받침대 위에 올라앉아 관람자의 시선을 지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김창기의 조각이 이러한 기념비적 조각의 물성과 이데올로기를 조롱하는 것은 재료를 다루는 방법과 태도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작품을 관람자들에게 제시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별화된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작품의 크기에 관계없이 관람자의 시선으로부터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와하고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상태에서 혹은 자연을 가상하는 공간에서 겸손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양 현대 조각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칼 앙드레나 리차드 롱의 작업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김창기의 작품 ‘속에서’ 작품과 어울리고 작가와 의식의 공유를 통해 작품을 감상할 뿐 아니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창기의 조각에 대한 인식과 사유를 잘 나타내 주는 언술이 하나 있었다. 2010년에 열린 김창기의 개인전에서 박석태는 그의 작품에 대해 “공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어 그의 작품의 이론적 담론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그의 조각은 허구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동시에 포괄하며 마침내 우리를 ‘자연/인공’이라는 이항적인 대립 개념을 연상시키는 차원에서 ‘들여다봄/느끼는 것’의 차원까지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으며 김창기의 작품에 대해서 “조형적 완결성보다는 사유와 의식의 흐름을 따르게 하는 과정을 중시하고, 예술을 짓누르는 관념과 정신주의보다는 일상과 삶을 중심으로 새롭게 질문하기에 의미를 둔다면, 그의 미술은 지속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작가의 작업에 대한 정확한 통찰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번안해내지 못하고 박석태의 언술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다. 다만 필자가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작가로서 작품을 마주하면서 촉발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녹여내고 그것이 자연의 순리처럼 관람자들과 공감되게 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허구적 명제나 수식이 필요치 않은 것은 분명하더라도 조형적 완결성에 대한 관심을 전적으로 놓아버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욱 치밀하게 조형적 완성도를 추구할 때 작가는 관람객들과 좀 더 쉬운 조형 언어로 소통하고 공감하며 메시지 전달의 효용성과 작가로서의 존재가치나 창작행위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세계
조각가 김창기의 작품은 섬세하고 예리한 테크닉으로 생명과 자연을 주제로 한다. 
지상에서 꿈틀거리고 숨쉬며 생동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어떤 완성된 표현이 아니라 존재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들 속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그것들이 삶으로 변화되어지는 과정을 얘기한다.


김창기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조각과 소조, 시각과 촉각, 채움과 비움, 현실과 상상과 같은 대립적 항목에 대한 사유를 유도함으로써 현대 조각개념의 변증법적 발전과 확산을 추구하고 있다. 조금은 추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석재(대리석부터 주변의 맷돌까지)란 딱딱한 재료부터 흙작업, FRP 등 손이 가는 모든 재료들을 자신의 작품재료로 활용하며, 그것에 생명력을 넣어주고, 또한 지상 안에서의 존재 가치를 나타낸다.

김창기가 선택하는 재료는 자신의 주변과 활동의 궤적 안에서 발견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주로 돌과 철을 사용하는 작가는 돌의 사용에 있어서 자연의 모습 그대로의 재료들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작품의 일부로 편입되도록 유도한다.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대리석을 다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온 작가가 매끄럽고 세련된 대리석과 달리 인공적 변형을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돌들을 하나로 조합함으로써 태어나는 작품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가 태생적으로 몸속에 지니고 있는 자신의 유전자와 그로부터 형성된 자기정체성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