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2-01 작가노트-나의 작품의 진로
나의 작품의 진로
과거,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충주에서 교직생활을 할 때 대전공모전에 출품 한 적이 있었다.
시골이기에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공간이나 재료구입 문제 등 무척 힘이 들었던 시기였다.
물론 차도 없었던 시기이었기에 어렵게 작업하여 출품하였는데 보기 좋게 낙선을 했다. 그때 나는 대전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4시간에 걸쳐 시골하숙집까지 창 밖만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결심하였다. “기필코 해내리라” 새로운, 남들이 전혀 생각지 못하는 특별한 작품을 하고자-, 다짐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질리도록 밀도 있는 작품을 할까하는 생각도 했다.
몇 일간 고민하고 실험하며 습작을 하던 끝에 전축 부서진 나무판을 주워 나무 무늬가 있는 판에 무늬를 살리며 그려보던 중 무늬목이 생각나 화판에 무늬를 붙여 작품을 하기 시작했다. 모래도 붙여보고 돌도 그려보고 보잘것없는 나뭇가지나 자물쇠, 옛것, 못, 등을 본래의 존재 적 가치보다는 더욱 값진 의미 있는 것처럼 부각시켜보려 노력도 해보았다. 약4년 정도 그러한 작품을 계속하며 2 중적 화면을 구사하기도 했고 그러한 작품을 가지고 개인전도 해보았지만 왠지 나의 마음한구석에는 에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며 개인전을 끝으로 새로운 작품을 해보고자 피스 작업도 하고 순수하게 서정적인 작업도 해보았다 또한 보기 좋은 자연의 일부분을 묘사해보기도 하였다. 그러한 것들 역시 맘에 들지 않았다. 새로운 것, 무언가 좋은 것, 괜찮은 것만을 생각하던 중에 편한 것을 해보자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기분이 좋은 것들, 재미있는 것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조금은 알았다. 2번째 개인전은 첫 번째 개인전 이후 고민한 것들을 보여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래
 앞으로의 작업은 자연의 일부분, 그것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다른 이 들은 의미 없이 보아 넘길 지라도, 일상 속에 일부분일지라도 그러한 것들을 내가본 새로움의 시각에서 새로운 화면구성 즉 상징적 의미의 내용과 사실적이지만 나의 주관적 자연의 형태를 합성하여 보여지는 작품을 구상해 보고자 한다. 
 나의 체질은 추상성보다는 구상적이며 밀도 있는 작업이 맞는 것 같다. 한꺼번에 완성되어 지는 것 보다 조금씩, 조금씩 시간 나는 대로 작업할 수 있는 것이 교사의 직업을 가진 나로선 알맞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게으르기 때문에 하루종일 작품에 매달려 끝장을 보는 것보다 시간 있을 때마다 작업에 임하는 것이 좋다. 여러 가지 작품의 스타일을 많이 해보았지만 “이것이 나의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잠시였을 뿐 곧 지루하고 싫증을 느끼곤 하였다. 나의 체질과 작업의 형식은 그런 데로 이루어진다 해도 내용적인 면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너무 의식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보이려고 하는 것이 가식적인 것인지 내 자신에 믿음과 의지가 부족함을 느낀다 작품의 완성도에서는 자신감이 없어진다. 더 고민하고 더 노력해야 무언가 잡힐 것인지...... 현재의 작업방향은 자연에서 모티브를 찾고 그 자연의 사소한 부분, 부분 즉 사소한 것들에 생명력을 넣어 시각적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의 자연보다는 그늘에 가려 잘 보여지지 않는 것들, 들판에서 손바닥만한 한 부분의 보여지는 것들, 잡초 속에 핀 이름 모를 꽃과 같은 것들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서 당당함을 그것들에 대한 어울림(들러리)들을 거칠음(마티에르)으로서의 형식(창틀, 기하형 등과 같은 것)속에 정교하고도 우아미 와 숭고미의 조화를 표현하고자 함이다                        1999. 6. 26.                김 기 택

2018-02-01 작가노트-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2. 운동(運動)을 읽고   
                                                          김 기 택

“미술의 역사는 없다”.
“다만 미술가가 존재했을 뿐이다”.
예술가 한사람 한사람이 있었기에 오늘날 미술의 역사가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예각삼각형 정점에 있는 이는 최고의 정신적 고독한 권력자 일 것이다
그 주변의 액스트라 들은 또한 얼마나 많이 있으며 최고의 정복자를 위한 들러리를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뇌에 빠져 있었을까 어찌 보면 냉정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점에 있는 고독한 예술가는 일반대중들이 하지 못하는 짓거리(미친 짓?, 예술적 행위)를 대신하여주어 일반대중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반대중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정점과 그 주변에 있는 예술가들이 풍요로움을 찿고 , 주변의(일반대중)입맛에 맞추고자 새로움의 추구, 정점을 향한 자신의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셴켸비치(sienkiewicz)의 소설에서 정신적 생활을 수영에 비유한 것처럼, 물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물 속에 빠지듯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예술가들은 옛날부터 권력자들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모든 예술가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훈련이 잘된 개같이 길들여져 왔고(중세 때는 물론이고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 이루기까지 현대에 와서는 평론가, 화랑 주, 부를 축적한 후견인들 등) 예술이란 이름을 빌어 후한대접을 받으며, 물질적으로 풍부한 이들에게만 잘 보이면 부를 득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예술가들 속에서도 미술사는 이끌어져왔으며(올바른 정신을 가진 고독한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앞으로도 이끌어갈 예술가들은 있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정신적 삼각형은 막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움직여 전진과 상승은 계속하게 될 것이다.
시대의 상황이나 변화 속에서 예술가들은 새로운 미술사를 위하여 작은 불씨를 꺼지지 않도록 연구노력하고 미친 짓(정신적 예술행위)을 서슴치 않을 것이다 그 미친 짓 이 잘 훈련된 개 같은 미친 짓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영원히 꺼질 줄 모르는 불꽃과 같이 타오르는 예쁘고 아름다운 미친 짓이 되어야 할 것이며 삼각형의 밑변에 있는 일반대중들로 하여금 존경받는 최고의 정신적 고독한 권력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1998.   5.   16.

2018-02-01 작가노트-존재적 의미로서의 생명감
’98년 4월 18일   김기택
존재적 의미로서의 생명감 

  “작품에 사고적 의미가 없다면 원숭이가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의 작품에 대하여 설명을 하려고 하니 막상 무엇부터 설명해야 하는 망설임은 겉으로 표현 해보지 않아서인지 어떤 공식처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한 작품 한 작품에 표현되어진 내용은 다르겠지만 내가 표현하고져 했던 것은 사소한 것의 부각시킴, 즉 하찮은 것들에의 생명내지는 존재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애착과 그것에 대한 존재적 가치와 그것이 주는 또 다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며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을 대비시킴으로서 표현되어지는 뉘앙스를 연출함이고 가치의 재창조를 통해 생명부여라는 시도로서 표현함이다

  그림이라함은 보여지는 것이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유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개인 감정의 지나친 치우침보다는  빠지지 않도록 감상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하고,  나 개인의 개성과 사고를 중요시하며 내용과 형식의 적절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대미술의 흐름에 나타나는 다다이즘(Dadaism), 미니멀아트(Minimal Art), 옵아트(op Art), 앗상블라쥬(assem blage), 팝아트(pop Art), 등에서 보여지고 의미하는 것들에 대한 접촉과 현실감이 없어서인지 큰 매력을 못 느끼었으며 현대미술의 그 이전 즉 미니멀아트에서 부정하는 감흥과 일류전(illusion)에 대한 향수, 매력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최근의 작품에 표현하고져  하는 것은 나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고 가까운 시각에서 묘사하는 밀도의 답답함에서 해방되고 싶음과 레오나르드다빈치의 모나리자 작품에 나타나는 이중적 미소의 주된 기법인 스푸마토(sfumato)의 표현을 나타내보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너무 일찍 자기만의 작품, 자기 자신의 언어를 젊은 나이에 찾아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나의 작품에서 소재의 변화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 당시의 충동에서이며 나 자신이 나 스스로 어떠한 테두리 안에 있을려고 하는 무의식적 상태에서의 느낌을 인식하면서도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180°전환의 사고를 갖지 못함도 있다. 
나의 작품 화면에 표현되어지는 불필요한 악세서리와 같은 내용들이 많음은 나의 욕심인가?  조화의 필요성인가?  항상 만족하진 못하지만 충실히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