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4-12-08 Artist statement

Artist statement

 

김성수는 금속의 구축과 접합의 형식을 통해 상실로부터 발현된 내러티브를 형상화하며 스틸퀼팅(Steel Quilting)과 볼팅(Bolting) 기법으로 유희적 환상의 구현에 주목한다. 그는 개인의 상실된 기억을 현재와 중첩시켜 재구성한 ‘공존’의 서사를 기록한다. 김성수는 그의 작업세계에 영향을 준 동물, 동화, 놀이공원, 디오라마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조각을 중심으로 대규모 설치, 미디어, 드로잉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2024-12-08 조각가 김성수 작가노트

김성수 작업소개

 

○ 나는 유년기에 처음으로 만졌던 점토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뭉툭한 덩어리들을 만졌을 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듯하면서도 ‘손바닥의 영역 안에서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라는 느낌은 나자신이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확신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확신은 어설프게 두 손으로 덩어리를 쌓아 올리며 어떤 형상을 만들었을 때 표면에 찍힌 수많은 터치로 인한 지문 자국들로 인해 ‘내가 만들었다’라는 일종의 서명이자 정체성의 증명으로 이어졌다.

 

 ○ 본인의 작품은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하여 당시의 경험과 그리움을 소재로 삼고 이를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킬 때까지 몇 가지의 기법적 변화를 겪으며 그때마다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왔다. 즉,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그에 적합한 소재와 기법의 적용을 통한 조형성을 구현하며, 내용의 확장에 따라 형식적 측면도 함께 변화해온 것이다. 이와 같은 본인의 연작에서 가장 중요한 외형의 특성은 금속판을 절단하여 바느질하듯 용접하고 이어 붙여 작품의 외피를 감싸는 ‘스틸 퀼팅(Steel Quilting)’ 기법을 통해 전체 형상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그 근간이 되는 골격의 구성은 금속재료를 적극 도입하여 발전을 거듭해온 근대 건축 이래로의 텍토닉 구조의 적용에 의한 것이다. 이는 외피의 무게를 견고하게 지탱하기 위해 스틸 프레임의 구축과 스틸 퀼팅의 텍토닉적 구조화로 실현되었다. 《제자리에》 연작과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틸 프레임과 스틸 퀼팅의 텍토닉은, 전체의 구조적 형식과 더불어 용접의 흔적으로서 접합선을 작품의 표면에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본인의 경험에서 해체된 관계와 파편화된 기억을 복구하려는 심리적 발현을 대변하였다. 그리하여 작품의 외피는 본인의 상흔(傷痕)과 예술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단단한 금속판의 갑각화(甲殼化)를 통해 방어적 심리의 기제를 형상화하였다. 여기서 나아가 볼팅(Bolting) 기법의 적용은 유희적 운동성을 가미하여, 유년기에 경험했던 조립식 장난감을 예술적 소재로 발전시키며 관람자의 참여와 개입을 통한 새로운 내러티브의 발생 가능성을 극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 기억과 정서가 사회적 관심으로 확대되었으며, 《탑승자들》 연작부터 본인이 창조한 가상적 세계의 가상 캐릭터들이 본격적으로 작품의 주요 내러티브를 구성하였다. 결국 본인의 작품들은 조각의 영역 안에서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그에 적절한 소재와 기법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며, 개인적 서사를 관객과 공유하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내러티브를 발생시킬 수 있는 열린 작품으로 기능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2018-02-14 작가노트_김성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많지 않다"라는 생땍쥐베리의 말처럼 동심은 인간들이 영원히 그리워하는 삶의 원형질이며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간직한 원석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동심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는 어린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성인들에게도 잃어버린 꿈과 환상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동화속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다지 활동적이지 않았고 혼자 책을 읽고 상상하는 것을 즐겨했던 터라 동화책은 현실과 다른 세계로 가는 출입구였으며 그 안에 나만의 놀이터를 만들고 꿈을 꾸는 것은 하루를 보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성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나는 동화를 읽지만 그 당시에 느꼈던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발달은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관계나 이야기 전개의 당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자꾸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려 한다. 동화는 점점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어른들의 세상에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꿈을 꾸지 못한 파랑새는 날수 없듯이 사람들의 사고 또한 한정된 범위 내에서 축소되고 형식화 되어간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는 내가 10살 때 구상했던 동화의 제목이다. 각각 다른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공존하는 상당히 말도 안 되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당시 느꼈던 생각들... 왜 빨간 모자는 늑대와 같은 편이 될 수 없지? 라는 상상에서 출발을 하여 자신의 주인을 폐위시키고 왕이 된 장화신은 고양이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서커스단을 운영하는 브레멘 음악대를 등장시켜 우스꽝스런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꿈을 꾸는 행위는 모든 행동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각각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의미 있는 꿈의 씨앗을 찾길 바래본다.

 

김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