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상징하는 화려한 조형언어의 조합 현실의 소재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재현적인 그림은 화가의 주관적인 시각을 담기 어렵다. 하지만 소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우에도 추상적인 이미지의 도입이나 화면 구성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렇듯이 비현실적인 공간개념을 통해 실제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인 체험이 가능하게 된다. 화가의 의식세계 및 감정세계를 그림 속에 투영시킬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고선희는 최근 견고한 기하학적인 이미지 위에 사실적인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작업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를 형식화함으로써 모색의 단계를 지나 이미 개별적인 조형어법으로 굳혀가는 상황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새로운 형식미에 완벽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오랜 동안 이와 유사한 형식의 작업을 해온 결과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성적인 화면 구조에 익숙해 있기에 소재 및 내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인 적응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축제>라는 명제로 일관하는 그의 최근 작품은 모란, 양귀비, 아이리스와 같은 꽃잎이 큰 꽃들을 소재로 채택하고 있다. 이들 꽃은 그 자체로 풍성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꽃잎이 크다보니 색채 또한 짐짓 화려하다는 인상이다. 실제로 이들 꽃이 화면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꽃의 이미지가 화면을 지배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배경에 다른 이미지를 덧붙이지 않더라도 시각적인 즐거움이 크다. 그런데다 최근 작업에 실현된 색채이미지는 이전보다 한층 맑고 밝다. 꽃잎 하나하나가 투명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색채의 순도 및 명도가 높다. 이처럼 맑은 색채이미지는 단순히 색채의 순도 및 명도만을 높인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흰색 혼합에 의해 의도적으로 명도를 높인 결과인 것이다. 무채색인 흰색과 유채색을 혼합할 경우 색채의 순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탁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순색보다도 명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의 경우 흰색 혼합인데도 탁하기는커녕 순색보다도 더 맑고 밝다. 무채색 혼합방식을 이용하면서도 빛이 반사하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아예 흰색으로 처리함으로써 투명도를 높이고 있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채색기법은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 명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고자 했을 때 이용하는 방법인데, 그의 작품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햇살과 같이 강렬한 빛이 반사하는 부분은 사물의 색채가 증발하게 된다. 이 부분이 다름 아닌 하이라이트로서 극히 적은 면적을 차지하게 마련이지만 시각적으로는 가장 첨예한 인상을 준다. 모양이 큰 꽃을 소재로 하는 그의 경우 하이라이트 부분을 실제보다 넓게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백모란의 경우 거의 절반에 미칠 만큼 흰색으로 처리하는 하이라이트 부분이 넓다. 이는 자못 의도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백모란은 희게 보일 뿐, 무채색이 아닌 고유의 색깔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흰색을 그대로 사용한다. 어차피 백모란은 희다는 인식으로 인해 흰색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백모란이 가지고 있는 하얀 색깔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결과가 된다. 꽃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색태보다도 더 순결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빛에 의해 투명하게 비치는 시각적인 효과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꽃잎이 넓고 큰 꽃을 소재로 채택함으로써 그에 어울리는 기하학적인 구성의 평면을 도입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주로 무채색의 평면적인 이미지는 꽃과 조화를 모색하면서 꽃의 발색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꽃이 유난히 맑고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색채 자체의 발색과 더불어 배경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실제보다 더 밝고 맑게 보이는데 기인한다. 이는 극적인 색채대비를 겨냥한 배색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꽃이 지닌 자연스러운 곡선에 대비되는 기하학적인 평면은 차갑게 느껴짐으로써 오히려 꽃의 존재감을 상승시킨다. 그러고 보면 어두운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배경으로 인해 따스하고 부드러운 꽃의 존재를 더욱 강화시키는 시각적인 효과를 얻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넝쿨식물의 더듬이 모양과 색동의 띠라든가 삼각형 및 사각형으로 구성된 삼원색 중심의 원색적인 연속무늬, 조각보 이미지, 그리고 흰색 물감으로 표정을 부여한 질감 등을 덧붙임으로써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들 보조적인 이미지들은 꽃과 더불어 한층 화려하고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더듬이 모양은 밤하늘에서 현란한 꽃 모양으로 발화하는 불꽃놀이를 상징한다. 또한 색동의 띠라든가 삼원색 중심의 연속무늬들은 마치 작은 꽃과 같은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꽃이 자연미를 상징한다면 평면적인 원색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들 추상적인 이미지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의 편에 선다. 따라서 자연미와 인위적인 미, 그리고 사실과 추상의 대립 및 조화라는 조형적인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무채색의 평면구성이나 원색적인 이미지의 조합에 대응하는 또 다른 표현기법을 덧붙인다. 자연스러운 나이프 터치에 의한 흰색의 질감을 도입함으로써 따분함을 상쇄시킨다. 다시 말해 원색적인 이미지와 무채색이 대립하는 듯싶은 상황에서 흰색으로 표현되는 질감은 이질적이면서도 화면 전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대립적인 이미지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협화음을 조율하는데 기능하는 조형의 기술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의 최근 작업은 치밀한 설계도처럼 정연한 조형적인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다 돌연 키다리 기린이 등장하는데, 이는 <축제>라는 명제에 부합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기린은 우주운행 질서의 가장 중심이 되는 신으로 사후세계의 수호자, 천년을 살고 상생을 미워하며 해를 끼치지 않는 덕의 화신’으로 숭상되어 왔다. 즉 조용한 성격과 우아한 자태를 지닌 기린은 맑은 기운을 발산하는 동물로서 어느 면에서 철학자적인 면모에 가깝다. 따라서 그는 지상의 동물 가운데 키가 가장 큰 존재이기도 한 기린은 높은 곳을 향한, 일테면 꿈과 이상 그리고 동경에 대한 욕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존재로 상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윤기가 나는 갈색의 얼룩점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꽃과 더불어 우아한 손님으로 초대되는 것이리라. 그는 최근 작업에서 상반되는 이미지의 대비라는 조형어법을 구사한다. 다시 말해 사실과 추상, 원색과 무채색, 단색조의 색채이미지와 마티엘, 빛과 어둠, 꽃과 동물, 전통적인 문양과 현대적인 이미지 등 이원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음양오행을 우주의 기본질서로 보는 동양사상과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주의 운행이나 자연계의 모든 물상의 존재방식은 다름 아닌 음과 양의 조화에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처럼 상반된 소재 및 이미지를 적절히 배치하고 안배하여 시각적으로 풍성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축제>라는 명제가 말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축제는 생의 환희 그 절정으로 치닫기 위해 고안된 정신 및 감정의 해방창구의 역할을 한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절대적인 자유의 감정이 허용되는, 일테면 고조된 감정이 분출하는 시간이다. 개개인의 감정을 하나로 통합하는 축제는 인간사회를 하나로 묶는 일종의 화합의 마당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축제야말로 가장 극적인 아름다움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고양된 감정으로 보는 세상이야말로 오로지 아름다움뿐이겠기에 말이다. 그의 작업은 삶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에서 비롯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신비함에 놀라는 것은 예술가만이 아니다. 다만 예술가는 명민한 미적 감수성으로 하찮은 존재에서도 아름다움 및 그 가치를 발견하고 그를 예술작품으로 변환함으로써 실제와는 또 다른 미적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한다. 축제에서 느끼는 삶의 환희를 회화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그의 작업은 새삼 이 세상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 신항섭(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