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내 삶의 기록이다

나는 미대를 졸업하고 이내 결혼을 하였다 두 아이를 낳고 한동안 그림을 그릴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가고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다시 붓을 잡았다 

나는 한지 위에 한국화 그림을 그린다 그림 소재를 꽃으로 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에서 피어나는 예쁜 꽃을 소재로 정밀묘사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곤 생각의 변화로 단 한송이만 그렸다 꽃 한송이가 예쁘게 피어났다

꽃 한송이는 바로 나를 표현한 것이다 매일매일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담담하게 표현하였다 색도 강하지 않아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렇게 20년간 그렸다

그런데 최근 나 혼자만이 아니라 가족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얼굴은 다르지만 함께 살고 있다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림은 나를 닮았다 튀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냥 담담하게 표현했다 기교를 많이 부리지도 않았다 나의 신앙생활도 그랬다 

나는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일 때가 있었다 그때 책을 읽었다 심리학책, 스님이 쓰신책, 신부님이 쓰신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 심리학에서는 나를 찾아가는 방향을 제시하였고, 스님의 책은 나를 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신부님의 책은 나를 주님께 인도하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나의 신앙과 가족은 하나이고, 그림도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았다 기도를 통해서 가정을 꾸려 나갔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를 찾아나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행복을 깨닫게 되었고,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나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꽃을 통해서 나와 가족과, 이웃과 소통하는 모습을 그렸다 현대인 각자는 다른 얼굴, 다른 삶,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인생의 진정한 보물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삶이 조화로울 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 나의 삶, 나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 2023. 대구 가톨릭 주보 (글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