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향토적 한국미의 독특한 찬미-이구열
향토적 한국미의 독특한 찬미 

이구열 미술평론가  

1930년대 이후 한국의 자연미와 그 변화의 정취를 인상주의적인 밝은 색 채와 신선한 공기의 분위기로 표현하려고 했던 서정적인 시각의 특출한 유채화가 오지호는 자신의 미술관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에세이‘금옥주 의와 색채’중에서) 어떤 미술의 특질은 그 미술이 표출되는 지역의 자연 환경의 특질에 유래되는 것임은 고금을 통하여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체로 미술이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늘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미술, 특히 회화에서 화가의 성장환경과 그 자 연미 현실의 감수성이 바탕을 이루는 남다른 표현 성향의 자연스러움과 정신적 취향, 또는 순수한 조형적 창조 작업으로서의 자유로운 상상력 및 방법의 자율성은 곧 참된 예술가의 요건이다. 추상회화에서 조차도 그 발단은 구체적 상상력과 확실한 조형의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다만 순수회 화 추구에서 자연적 내지 현실적 형상을 필요하게 여겨 배제시키거나 자의적으로 변용시킨 표현은 추상회화로 귀착된다. 어느 경우에도 자연미 현실의 풍부한 체험과 그 감정의 심도는 창조적 회화 실현에 근원적으로 작용한다. 모든 화가의 의지는 결국 그러한 내면에서의 끊임없는 자아투쟁 이자 도전을 뜻한다.   
이한우의 회화 도전 40년의 과정도 앞서와 같은 내면성으로 진행되었다. 그의 미적 감수성을 배양시킨 남해안의 무한히 아름다운 고향지역인 항구 도시 통영 일대의 풍광과 자연미 체험의 깊이는 1980년대 이후의 풍경화 작업에서 선명하게 반영되었다. 그것은 그의 미적 잠재의식의 자연스런 발현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한우의 본격적 화가생활 도전은 그를 의한 정상교육을 받지 못한 독학의 예술의지와 외로운 목표 의식만으로 매우 뒤늦게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 그는 통영의 한 중학교에서 미술 아닌 다른 과목의 평범한 교사였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으로 그림의 재질 을 체내에 키우고 있었다. 마침내 그림에 뜻을 둔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 로 당시 일반적으로 가장 권위시 하던 미술계 진출의 효과적 통로인 정부 주관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입선과 특선을 겨냥하게 되었고, 그것을 결국 관철하는 의지와 노력을 보였다. 그 후 국전에서 1972년부터 무려 6회나 특선에 오르는 각광과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을 기록한 끝에 1980 년에는 영예의 추천작가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화가생애 에서 명백한 성공의 1단계였다.  
앞의 국전 시기의 이한우의 집중적 화면창작은 정물화의 연작이었다. 그 정물화들은 한국의 역사문화와 삶의 내력의 실체들인 고대의 토기 유물과 전용적 생활도구 또는 가구 등을 소재 삼는 것이었다. 남다른 한국미 집착과 관심의 주체성을 일관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그 표현은 소박한 사 실주의 수법과 객관적 묘사의 충실성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창의 적 방법과 조형적 창작성을 지향한 이한우의 변화 있는 표현태도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났다. 그것은 그간의 철저하고 명확한 사실적 묘사의 실내 정물화 수법에 순수한 표현감정을 조화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가령 치밀한 사실적 묘사의 커다란 토기항아리에 꽃잎이 떨어진 해바라기의 마른 꽃대를 꽂아 역사와 생명의 순리를 반추하여 상징 시키려고 한 주제 구성에, 배경은 추상적 비현실의 공간으로 표상하여 특이한 분위기와 신비감 을 조성하려고 한 것 같은 일련의 시도였다. 그 정물화들에는 일반적 소재 인 신선한 여러 상상의 각종 과일과 꽃이 곁들여지기도 하며 화면의 현실감을 생동하고 충만 시켰다. 그 변화 있는 정물화 작업은 새로운 독자적 화 법 추구를 모색하며 시도된 특이한 환상적 형태의 풍경화 연작과 병행되며 1980년대의 작품영향을 나타냈다. 그 풍경화들은 1970년대에 떠나와 서울에 정착한 뒤로 마음에 잠재돼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향수의 충동으로 표현감정을 자극하게 되었던 통영과 다도해 일대의 푸르고 낭만적인 고향바다 그리고, 크고 작은 섬들의 무한한 정취를 환상과 애착의 시각으로 전개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산과 바다, 하늘과 구름, 섬과 수평선과 배, 어촌과 농가, 논밭과 언덕의 숲 등이 낙원의 풍광으로 어우러지는 고향 환경의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과 낭만적 정취를 구체적 풍경의 환상적 변용과 다분히 동심적인 색상미로 최대한 찬미하려고 한 이한우의 그 시기 풍경화 연작은 철저하게 즐거운 표현으로 시종되었다. 그것은 새삼스럽게 절감하게 되었던 고향의 자연 환경 사랑과 찬미의 노래였다. 향토적 서정의 독특한 그 풍경화 작업은 1990년대에 들어 전국적 한국 산하와 한국인의 삶의 환경의 본색 표현으로 연결 및 확대되면서 다시 새로운 변화단계에 진입했다. 그것은 작가의 회화 의식의 창작적 진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예술열정의 분출이었다. 그 작업이 모두 파격적 대작으로 추구된 자체부터가 그 열정을 대변한다.  
한 예술가의 창작적 가치성취는 결국 자신의 본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한우는 1차적 시각의 사실주의에서 주제 대상의 의도적 단순화, 변용, 생략, 추상화, 심의화 등으로 자신의 창조성 구현을 시도하다가 그의 소박한 향토애와 국토애의 자연주의로 귀착하고 있다. 그러한 표현의지와 마음을 그는 이라는 단일 주제로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국토자연과 원초적 삶의 터전인 시골과 산간의 마을, 가옥, 전답과 산수경계의 구체적 본색을 마음속의 개념적 구도로 광대하게 전개하면서 남다른 집중적 애착과 찬미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간략하고 단순화 시킨 검은 윤곽선으로 화면 내용의 산과 언덕, 마을과 농가, 논밭, 곳곳의 수목 등이 명확히 스려진다.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 청색과 자주색, 노랑과 갈색, 담홍과 적갈색 등이 주조를 이루며 향토색을 부각시키게 하는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색조의 조형적 재구성은 소박하면서도 독특하다. 그 표현미는 조선시대의 민화풍을 연상시킨다. 그만큼 한국적인 그림의 창출로 볼 수 있다.  
이한우 회화의 투자성과 특질은 글머리에 인용한 오지호의 말대로 한국의 자연환경의 특질에 밀착된 체험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조형적 창작성의 실현이다. 엄청난 대작으로 끊임없이 연작되고 있는  은 작가 이한우로서는 궁극적 자기세계로의 도달인 셈이다  







한민족의 서정을 나타내는 조형미학의 세계-오광수
한민족의 서정을 나타내는 조형미학의 세계 

오광수 전 현대미술관 관장 


약 40년에 이르는 이한우의 화력을 되돌아보면 몇 차례의 변화가 발견 된다. 그것을 편의적으로 묶어보면, 65년에서 75년에 이르는 약 10년간 1기, 76년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약 5년간 2기, 그리고 80년대 초에서 최근까지가 3기가 된다.  

1기에 해당되는 65년에서 75년경은 그가 국전을 중심으로 주로 아카데믹 한 화풍을 유지했던 시점이 된다. 또한 이 시기는 작가로서의 이한우의 형성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국전에서 잇따른 특선과 입선을 거듭하 면서 추천작가로서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그의 작품은 주로 토기와 목기 등 고풍한 기물과 과일, 채소, 책 등과 같은 일상적 사물이 어우러진 정물이나 화병에 가득 꽃이 담겨있 는 정물 등을 주로 다루면서 대상의 정치한 묘사에 치중되었다. 신라토기 와 마른 해바라기가 놓여있는 정물과 때로 정물의 배경을 아라베스크 문 양으로 추상화한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이들 작품들이 한결같이 건삽한 분위기와 약간 의외로운 기미를 보이는 것은 회고적 취향과 전혀 이질한 사물끼리의 만남이 주는 위화감에 기인한다. 신라 토기와 조선시대 목기 가 중심이 되면서 그 주변에 늘려있는 현대적 소재들은 과거와 현대를 공존시키면서 시각적 긴장감을 유도해 주기에 충분하다. 대상을 파고 드는 시각은 더없이 치열하다. 그것은 대상이 지니는 물질감을 극명히 들어나게 한다. 한 동안 국전에선 이 같은 전시대의 기물을 모티브로한 작품들이 심심치 않게 출품되었었다. 대체로 이들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 점은 옛것에 대한 아련한 감정을 일깨우는 회고적 취향이 지배적이었다. 정 물적 소재로서 과거의 유물은 그 나름의 정취를 지니면서 소재적 선택 자 체가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지향한 것이었다. 그러한 소재 자체에 대한 탐닉이 제작의 동기를 대변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한우의 초기작품에서도 이같은 인상을 다분히 받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이 다른 작가들의 그 것과 차별성을 지닌다면 회고취가 일시적 기호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항상 성으로 이어져 왔음에도 찾을 수 있다. 그의 최근 작품에 농후하게 들어 나는 회고취가 이미 초기에서부터 지속되어 왔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2기에 해당되는 70년대 후반은 대상을 정치하게 접근하는 방법과는 반대 로 대상을 몽환적인 채널로 바라보려는 새로운 조형방법을 구사해 보였던 시대로 파악된다. 치밀한 묘사 대신 자연을 커다란 매스로서 처리하는 한 편, 화사하면서도 깊은 색채를 구사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소재도 전 기의 태반이 정물인 점에 비해 2기의 대부분은 자연풍경이 차지하고 있다. 풍경은 해안풍경과 농촌풍경으로 대별된다. 어느 것이나 산이 있고 산자 락에 밭이 있고 마을이 점경되는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들이다. 그러나, 현실의 풍경이라기보다는 꿈꾸는 풍경, 꿈에서 만나는 몽환적 풍경이라고 해야 어울릴 듯하다. 산과 나무와 들녁이 한결같이 뭉글뭉글하게 피어오 르는 구름을 닮았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같이 유연하게 휘어지는 곡면은 끝없이 이어지면서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현실을 모티브로 한 풍경이 면서도 이미 현실이 아닌 꿈속의 풍경 또는 피안의 풍경이 된다. 이는 작 가가 현실을 꿈이라는 채널을 통해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연유하는 결과 에 다름아니다. 현실을 현실로 접근하지 않고 꿈이란 색안경을 통해 바라 본다는 것은 현실을 꿈으로 치환하려는 작가의 독특한 의식의 결정물이다. 대부분의 초현실적 방법이 기괴하고 음산스러운 반면, 이하우의 화면은 밝고 명랑하다. 리드미칼한 선조의 형상화와 화사한 색조는 화면 전체에 꿈꾸는 듯한 몽환의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밝고 낙천적 인 꿈의 풍경이 나오게된 배경은 무엇일까. 유독 해안풍경이 많고 섬과 선박이 등장하는 풍경이 많은 것은 아마도 그가 통영 출신이기 때문에 연 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꿈꾸는 듯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실제 로 풍광이 아름다운 남해안 통영의 풍경을 앞에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가 선택하고 있는 밝고도 깊은 색조는 통영 앞바다와 하늘의 색깔을 그대 로 옮겨온 느낌을 받는다. 예술가와 그가 태어나 자란 자연환경은 대단히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자연적 조건이 풍요로운 환경일수록 자연 은 인간과 깊은 친화관계를 형성한다. 인간은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고 자 연을 노래 부른다. 보링거의 논지가 아니더라도 남쪽지역 출신의 작가들 작품이 유독 밝고 화사함은 남쪽지방의 풍요로운 자연이 준 혜택이다. 남 쪽지방 가운데서도 청정해역으로 꼽히는 통영은 그 자연적 조건이 어느 지역보다도 빼어난 편이다. 이 지방에서 많은 예술가가 배출되었다는 것 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호수와 같은 바다, 굴곡이 많은 해안, 무수히 나타 나는 작은 섬들이 만드는 변화는 이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어 풍부한 예술적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3기인 80년대 초에서 최근까지의 작품은 2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변화를 보인다. 소재는 여전히 해안과 농촌의 풍경이다. 그러나 2기의 풍경들이 몽환적인 풍경이었다면 3기인 80년대 이후는 굵은 흑선에 의해 대상의 윤곽이 선명하게 잡히고 있다. 윤곽선이 없고 색채에 의해 대상이 구분되 001-029 2012.7.10 3:11 PM 페이지10 11 었던 2기의 것에 비하면 3기는 선에 의해 모든 대상이 구획되고 있다. 막연히 꿈꾸는 정경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형상이 따른 묘법의 풍경 이다. 굵고 검은 선획은 마치 혈맥이나 주름살 같은 뚜렷하고 힘찬 모습을 보인다. 이 골기(骨器)가 강인한 풍경은 마치 칼날로 대상을 묘파하는 목판의 그것을 연상시키듯 선명하면서도 날카롭다.  

80년대의 작품들은 풍경을 이루는 요체로서의 선획과 대상이 팽팽한 긴 장을 유지해 주었다. 대상과 이를 형상화 해가는 방법으로서의 선획이 별 개로 인식된 정도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 지적된다. 90년대에 이르 러서야 이같은 팽팽한 관계가 서로를 보완하는 화해의 장으로 진행되고 있다. 선에 의해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동양화적 발상이다. 서양화가 색채의 겹침에 의해 선이 유도되는 것과는 달리 동양화는 선으 로 시작하고 선으로 마무리 짓는다. 특히 산수를 그릴 때 준법(遵法)은 대상을 주름살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동양화를 선의 예술로 칭함은 여기 에 기인한다. 선은 단순한 윤곽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형상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주름살은 윤곽은 물론이려니와 입체 감을 구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명암에 의해 사물의 입체감을 구현하는 서양화와는 달리 선의 강약에 의해 명암이 암시된다. 이처럼 준법은 단순 한 터치나 선묘라고 하기 곤란한,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는 요체라 할 수 있다. 이한우의 선에 의한 사물의 윤곽 묘출은 그러나 동양화의 준법에 바 로 비견할 수 없다. 그에게 선은 준법이 지니는 사물의 실체 파악의 요체 이긴 하지만 동시에 경계로서의 윤곽선이기 때문이다. 대상은 선으로 구 획된다. 대상은 어떤 풍경적 내용을 지니든 아라베스크한 선조의 조직으 로 먼저 떠오른다. 촘촘하게 엮어지는 선조의 구성은 자연이 지니는 혈맥 과 같이 박동치는 느낌을 준다. 혈맥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화면엔 잔 잔하나 활기찬 선조의 유동으로 인해 실재하는 생명감을 연상시키기에 충 분하다. 초기의 굵고 힘찬 선이 90년대로 오면서 섬세한 가는 선으로 바 뀌고 있다.   

90년대 후반에 오면서 그는 스케일이 큰 화면 속에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담아가고 있다. 이전의 화면에서 보이던 단면적인 풍경이 아니라 병풍처럼 펼쳐지는 풍경이다. 화면 속엔 촛점이 없다. 이는 한 지점으로 눈길을 모으는 방식의 구도가 아니다. 풍경은 시점을 이동해 가면서 보게 되어 있다. 시점의 균일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점의 균일화 현상은 원근에도 작용하여 색채에 의한 멀고 가까움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사물의 크기에 따라 원근이 인지될 뿐이다. 화면은 대개 아래 쪽 에서 위로 오르면서 근경에서 원경으로 이어진다. 아래쪽은 근경인 셈이고 위쪽은 원경인 셈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경이란 약간 높은 위치에서 바 라보는 시점에서 가능하다. 아래에서 위로 치켜본다든가 위에서 내려다본 다든가 하는 가파른 시점은 변화가 많은 만큼 긴장감이 강한 반면, 수평 시로 바라보는 시점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한우의 화면도 그지 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화면이 우리들의 시각에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은 화면속의 정경이 고향의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먼 객지를 떠돌아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이 고개마루턱에서 고향의 마을과 들녁을 한눈으로 바라보는 정경을 상상해 보라. 꿈에 그리던 고향이 발아 래 펼쳐질 때의 그 반가움이란 어디에 비길 것인가. 저기쯤 동구의 느티 나무가 보이고 그 너머로 누구네 집이, 그리고 그 앞으로 황금들녁이 펼쳐 지면서 어느덧 눈길은 산자락의 자기 옛집에 닿게 될 것이다. 들녁엔 마을 사람들이 나와 밭일을 하고 있는 것이, 가까운 마을의 집마당엔 몇몇 마을 사람과 닭들이 한가롭게 어우러져 있는 정경이 들어온다. 소리치면 곧 들릴 것 같은 거리이다. 생각같으면 한숨에 달려가겠지만 귀향객은 지긋하게 이 광경을 더 음미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구석구석을 따라가면서 옛일을 떠올릴 것이다. 얼마나 그리던 고향인가.   

이한우의 대폭의 화면은 이렇듯 우리들의 옛고향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경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더욱 애틋하게 한다. 빠른 변화가 진행되는 우리 주변의 상황은 끝내는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고 향의 산천까지를 하루 아침에 파괴해 버린다.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산천 도 급속히 바뀌고 있는 세상이다. 이한우의 화면이 우리들에게 더욱 절실 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이렇듯 없어져가는 우리의 고향을 붙들어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그리던 고향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한우의 화면속엔 우리가 그리던 고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옛날 모습대로 남아 있다. 또 하나 그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주는 감동 은 서양의 매재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각적 문법을 지니는 데 있다. 그의 작품은 분류상 서양화라고 하지만 단지 매재만 서양의 것이지 그 속에 담긴 정서나 방식은 그야말로 토착적인 한국의 정서요 방법이다. 서양화 의 토착화라는 방법이 여러 측면에서 논구되고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한우 의 작업이야말로 뛰어난 토착화의 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미술의 정체성 세계화-파트리스 들라 페리에르
한국미술의 정체성 세계화  

파트리스 들라 페리에르 미술평론가 

내가 이한우 화백의 재능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목격한 곳은 한국이었다. 벌써 수년 전쯤인 2001년도의 세종 문화회관에서 작가는 대형 전시장의 사면을 끝을 이어가면서 둘러싼 거대 한 크기의 한국 풍경벽화들이라는 인상 깊은 작품들을 그려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인상깊은 장면 앞에서 경이로운 탄성을 지르던 관중들을 기억한다.   
여기서 나는 한 거장과 함께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하였고 차후에 그의 경력 을 지켜보면서 이 확신에 대하여 한 번도 의심을 갖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이한우 화백은 잘 알려져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역사적으로 다양한 살롱전 에 참가하였고 파리의 저명한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져왔다. 각 전시마다 관객들은 넘쳐났고 놀라움과 감동에 가득한 시선으로 작가의 매우 강한 개성과 가능성을 인지하였던 것이다. 그가 지난번에 파리에 모습을 나타내 었을 때는 그의 화가 경력에 있어서 최고 절정에 이르렀다. 다름 아니라, 프랑스 상원의 초대를 받아 훌륭한 룩셈부르그 궁전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2005년에 거행되었던 특별전시회이다.  
이한우 화백의 화풍은 동양의 아름다운 시를 염색해 놓은 듯하지만, 마치 반 고흐가 동양미술에 영감을 받은 그의 몇몇 작품들, 특히‘꽃핀 아몬드나 무 가지’를 거울처럼 반영하여 작가만의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한우 화백의 작품들이 다음과 같이 응답하는 듯하다. 단순한 화선을 찾기 위한 연구노력과 다른 작가들과 거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고유성에 의해서 이 한국인 작가가 그의 조국 풍경을 마침내 가장 효율적으 로 드러낸 대표작가의 반열에 들게 되었던 것이라고. 신비에 가까운 빛으로 가득한 섬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남쪽 해안 끝에 자리 잡은 촌인 통영에서 태어난 이한우 작가는 틀림없이 이 추억을 그의 장엄하고도 특별한 화폭에 반영시켰을 것이고 이는 작가의 진지하고 진실한 시각에 담겨 단순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창조력을 발산시킨 결과인 것이다.   
이한우 화백은 그의 예술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미적 감각을 조화롭게 보충하여 한층 풍부함을 더한 예술로 승화시켰다. 실제로, 양국은 지난 120년 동안 깊고도 감격적이며 슬기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여 왔다. 이한우 화백의 작품들은 스스로 내재한 근원적인 가치를 인식하면서도 다른 거대한 문화의 풍습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잃지 않음 으로써 모든 면에서 강렬한 개성을 드러내어 그만의 특이한 균형감 있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한우 화백이 회화에 입문한 초기에는 매우 아카데 믹한 유형으로 과거의 향수에 가득한 정물들을 주로 그렸는데, 이는 그가 심력을 기울여 여러 차례에 걸쳐 수상한 바 있었던‘국전’을 준비하기 위한 시도에 기인한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그가 미친 듯이 몰두하였던 미술작업 과 명예욕으로 점철된 일종의 수업 단계였다고 판단된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이한우 화백은 새로운 인식기에 도달하는데, 이는 그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접근으로써 현실에서 떠나 좀 더 몽상적인 시각을 도입하여 이때부터 풍경을 주로 그리게 된다. 따라서 그는 농촌과 어촌 풍경을 시간 이 정지된 화면에 담아 고요하게 표현한다.   
이 시기 이후부터 상상력은 현실감을 추월하게 되며 따뜻한 색채를 화폭에 가라앉히며 갈색 혹은 황금색 또는 적색 계통의 느낌을 주는 동시에 매우 드물게는 짙은 청색으로 떠올리는 검은색의 테두리 선 덕분에 매우 개성 있는 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의 전통미에서 영감 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한우 화백의 작품들은 풍경을 자의적으로 시적인 서사 풍으로 변조되고 거의 비장감마저 서려있는 화풍으로 변화된다. 따라 서 우리들은 18세기 동양 병풍을 대하는 느낌을 주면서도 혹은 안개같이 피어오른 연꽃으로 대변되는 반추상적인 작품을 남긴 끌로드 모네에 의하 여 발명된 벽화풍의 화면을 연상시켜준다. 사실, 이런 식으로 우리들은 이한 우 화백의 서사적인 - 간혹 십여 미터가 넘는 듯한 - 세계로 산보할 수 있 는데 마치 무한대의 공간처럼 언덕의 둥그런 면과 분홍색 혹은 보라색조의 꽃들이 활짝 핀 가로수가 심겨진 오솔길을 따라가면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작가가 그의 화면구도 속에 상징적인 동물들을 그려 넣기도 하는데, 이는 전통적 섬유 위에 수를 놓은 섬세함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백조, 나비, 사슴, 영양, 거북, 불사조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른 새들 이 기하학적인 형상의 식물들의 모티브 사이를 세련되고 완벽한 자태로 달 리고 있다. 마치 대형벽화를 보고 있는 듯 강렬한 느낌을‘관객’들에게 선사 하면서 수년 전부터 작품의 대형화에 몰두하고 있는 이한우 화백의 선택은 상상의 세계를 둘러싼 경계선으로부터 탈출시켜주는 감을 준다.
그가 발명한 이러한 기법들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통해서, 서술적인 유형 을 선호하는 우리들에게 시각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감동 의 크기만큼 작가의 풍성한 회화 어휘를 감지시켜 준다. 검은 테두리 선은 - 각 색채의 경계지역을 구분 짓는 - 납 구조로 된 카톨릭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상기시켜 주면서 우리가 지니고 있던 선입감을 말끔히 지워준다. 이 영구적인 테두리 선들은 화면에 담긴 색채들의 분위기를 건축하면서, 마치 들판과 꽃밭 사이를 누비는 시냇물 줄기처럼 작품들을 더욱 역동적으 로 만들어 준다.      이한우 화백은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는 기법을, 예를 들면‘몽셀-미셀’이나 ‘파리의 노트르담’등의 화폭이나 도자기 화면 위에 담아 자연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이 근본적인 흔적들은 다음과 같은 영원한 차원으로 표현된다. 그가 다루는 미적인 모든 주제들은 보여지는 것 들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유지시킨다. 이한우 화백은 그의 예술을 완벽하게 다스림으로써, 관객들에게 초과된 생각만을 야기할 수도 있는 위험성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력에 기인하는 그의 작품 유형과 시적인 추상성을 자유 롭게 방출시킴으로써 현대 미술계에 시간의 정착성을 가져다준다. 회화세계에서 이렇게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작가를 따라간다는 자체가 마치 종교적인 순례 처럼 예술세계에 있어서도 결코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며 또한, 작가의 영혼의 가치를 정열로 연결하면서 우리의 감성과 감각에 불꽃을 당기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한우 화백-타데우시래핀스키
이한우 화백 

타데우시래핀스키 메릴랜드 대학교 미술 교수  

이한우 화백에 의해 창조되는 예술 작품들은 그 독창성뿐만 아니라 믿기 어려울 정도의 섬세한 터치까지 리얼리티를 초월한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풍부하게 간직한 한국의 풍경과 자연을 마치 한폭의 삽화를 그려 넣은듯 이 화폭에 담아 놓음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직접 그림속의 그곳을 방문해 보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나는’평화’를 주제로 워싱턴 소재 주미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 열린“4인 초대전”에서 이한우 화백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처음 본 이한우 화백은 오래 알아온 듯 매우 친근한 느낌을 주었으며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작가 이한우는 나에게 자신의 그림과 관련한 소재와 기법에 대하여 정성껏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이한우 화백을 전통을 그린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적표현을 만들어 내는 면에서 창조자로 생각했다. 이한우 화백은 자신의 그림의 세세한 부분으로 나를 초대하고 있는듯 했고 한 권의 아름답게 그려진 책을 읽는 것같은 즐거움을 나에게 주었다.  
이화백의 화풍에서도 나는 재미있는 사항을 발견했다. 이한우 화백의 그림에서 나오는 영감의 원천이 세밀한 형태의 등고선으로 그려진 풍경과 자연들을 강렬한 색깔로 표현한 풍경들을 이한우 화백이 독창적인 모자이크 형태의 기법을 통해 훌륭하게 재구성 해냄으로써 한국의 자연이 간직 하고 있는 천혜의 아름다움과 한국사람들의 아름다운 생활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적인 면에서도 이한우 화백의 화풍은 작가 개인의 뛰어난 예술적 우수성에 대한 접근뿐 아니라 그자체로 동양적인 특성을 갖춘, 중국이나 일본 미술과는 다른 세계적인 새로운 화풍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예술가들은‘이한우 예술 작품’을 작가 자신이 창조해 낸 또 다른 원조 진품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의 구상주의적인 비전과 표현주의적인 기술은 유럽 혹은 다른 나라 예술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또한 활동적이라고 느낀다. 나는 그들의 스타일이 서양 예술과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서방 세계에서의 한국작가들의 예술관련 출판 활동이나 전시활동이 이한우 화백과 같은 최고 수준의 중요하고 훌륭한 작품뿐 만 아니라 한국의 또 다른 훌륭한 작가들의 독창성과 예술적 기교와 관련한 예술적 지식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이 될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文化 遺傳子를 깨우는 繪畵의 사투리-이어령
우리 文化 遺傳子를 깨우는 繪畵의 사투리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한우 화백의 그림 앞에 서면 피가 웅성거린다. 잠들어 있던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Meme)를 깨우는 황토 빛이 그 주조색을 이루고 있기 때문 인가 보다. 옛날 한국의 산과 길이 그러했고, 벽사의 제례로 올리던 빛깔들이 모두 그러했다. 그것이 초록색이든 분홍색이든 관계없다. 그림 속의 모든 색채들은 황토색의 자력을 띠고 있어서 우리들의 마음을 그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다. 황토 흙에 배어 있는 것처럼 이 화백의 그림 속에도 우리 울음과 웃음이 한데 섞여 있다.   

한국인만이 아닐 것이다. 구석기 시대 인류가 처음으로 그린 동굴화는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황색과 갈색으로 되어 있다. 가까이에 있는 암석과 흙을 색재(色材)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여전히 고분들의 벽화를 보면 똑같은 색채가 기조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한우 화백의 자장(磁 場)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한 감동의 공간을 형성한다. 그의 명성이 프랑스에서 더욱 빛나고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색채만이 아니다. 이 화백의 그림을 보면 쇠뿔을 얇게 오려붙인 어머니의 화각(畵角) 장롱이 생각난다. 십장생이거나 길상의 무늬이거나 섬세하면 서도 힘찬, 부드러우면서도 각진 그의 선은 남녀 그 어느 것도 아닌 양성구유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독특한 한국적 선의 문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선만이 아니다. 사물의 형태가 원형질에 가깝게 단순화되어 있다. 화목도 가옥도 산이나 사람들도 하나의 세포로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뇌관이 노출된 포탄처럼 만지면 금새 폭발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그러면서도 평면화한 그 형태들은 수면처럼 잔잔한 파동을 띄고 보는 이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그러나 이 화백이 그리는 그림은 색채도 윤곽의 선도 그리고 형태도 아니다. 그는 물을 그리지 않고 물결을 그리고, 숨을 고르지 않고 숨결을 고르고, 살과 마음을 그리지 않고 살결과 마음결을 그린다. 결을 따라 구름이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다. 생명이 아니다. 풍경이 아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 풍토의 결을 그리는 작가이다.  

이한우 화백이 그리는 그림은 표준어가 아니다. 소박한 사투리, 정다운 사투리, 분명 가슴이 찡한 내 고향 사투리 같은 그림이다. 그래서 이한우 화백의 그림 앞에 서면 어디선가 두렁거리는 사람 소리가 들려온다. 대낮의 밝음 속에서 한밤의 어둠 속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태어날 손자가 남몰래 주고받는 말 혹은 세련된 프랑스 말과 투박한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가 한데 섞인 세계의 사투리가 들려온다. 

영성이 깃든 풍경화-김윤수
영성이 깃든 풍경화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한국의 국토는 7할이 산이다. 높은 산과 강 그리고 크고 작은 들판이 어우러져 있는 그 곳에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경작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 왔다. 이것이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풍경이며 옛 그림에는 그러한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대다수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의 기억 속에는 그러한 이미지가 하나의 원형(archetype)으로 남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화가 이한우는 한국의 남단 다도해가 내다보이는 통영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고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고장이기 도하다. 이한우는 산과 바다 그리고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풍경을 보며 성장하였고 그 풍경은 어느 듯 그의 회화의 중심 모티프가 되었다. 초기에는 섬세한 자연주의적 회화를, 중년에는 굵은 선과 강열한 색채의 표현주의 화풍으로 그렸으나, 후기에 접어들면서 일종의 상징주의적인 회화로 심화 되어 갔다. 그는 산과 바다와 섬들을 에테르(ether)로 가득한 영성의 세계로, 다시 말해 먼 산들이 마을을 감싸 안고 지켜주는 몽환적인 풍경으로 그 리며 그 형상과 색채를 한국 전래의 민화(民畵) (la peinture folklore)에서 영감을 얻는다.   
온갖 문화가 교류하는 이 혼성의 시대에 이한우는 흔들림 없이 한국 민족 고유의 감성과 에토스를 추구하고 발현시키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리하 여 장대한 화면에 펼쳐지는‘아름다운 우리 강산’연작은 토속적인 정취가 짙게 풍기는 가장 한국적인 회화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 가 프랑스인들에게 다른 문화, 곧 한국인의 감성과 정서와 아키타잎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전시회의 성공을 빌어마지 않는다.  

공간 기하적인 무늬의 조련사 이한우 화백-마리 크리스틴 뷔르기요
공간 기하적인 무늬의 조련사 이한우 화백 

마리 크리스틴 뷔르기요 미술평론가  

이한우 화백은 우리들에게 그의 수정 같은 맑은 시각과 생명의 공간을 지휘하는 손을 통하여 생명력이 넘치고 장중한 색채로 사계절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한우 화백은 기하적인 공간 안에 그만의 자연을 끊임없이 끌어들인다. 아라베스크한 무늬 같은 형상들을 그 자신만이 정한 규칙을 통해 서 배치한 두터운 테두리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그의 눈에 풍경의 모든 요소인 계곡, 산, 들판, 나무, 개울, 친근한 부락과 맞닿은 하늘과 땅 등이 다 흡수되는 것이다. 자연의 요소, 즉 나뭇가지와 구비구비 펼쳐진 산들의 부조, 개울, 오솔길, 들판과 강 그리고 그 주변의 인근 부락들은 작가가 공간에 기하학적인 무늬로 그려내는 데 꼭 필요하며 그만의 구상을 통해서 실제의 자연 풍경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회화적인 움직임은 일종의 구조물이 되어 우리들에게 일체성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들에게 는 것을 증빙해주며 풍경 속에 펼쳐지는 각 요소는 그 주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상생한다. 이한우 화백은 그 자신이 정신적인 질서의 증인이다. 그는 산과 들판 작게 드러난 길 그리고 이웃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부락들을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형상를 재창조하듯이 회화로 표현한다. 이렇게 형상들을 굵직한 선의 기둥으로써 두름으로써 우리들에게 답답한 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일체성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반대적인 효과가 드러난다. 그는 주제를 다양성의 벽 안에 가두면서도 주제를 일체성에 도달시키기 위하여 자잘하게 다듬어 화려하게 승화시킨다. 이 일체성의 효과는 색채들이 채워짐으로써 그의 작품들에 빛을 부여하고 고요의 세계로 몰아간다. 이 번득이면서 살아 있으며 평화스런 즐거움을 주는 색채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아무런 음영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매우 구조적인 에 좀더 강력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하늘과 강 속에 담긴 것들을 평면으로 짓눌러서 침묵의 공간을 창조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2005년 파리의 상원초대전을 통하여 우리 시대에 알려진 그의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는 내 자신이 기꺼이 명명한 을 창조하기 위하여 기하학적인 배경과 형상을 그의 매력적인 손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 그가 단 한 평의 풍경을 경작할 때, 우리에게는 분명하게 그의 작품이 완전히 추상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그는 구상과 추상 미술세계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이다. 그는 이 구상과 추상이라는 두 회화기법을 하나의 화면에 동참시킨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대하였을 무렵에는, 마치 그의 작품들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킨다고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내 감상으로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성스러운 종교적 예를 올리는 것과 다름 없었고 그 작품으로 인해서 자연환경도 성스러운 분위기로 변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그는 우리들에게 그의 작품 속의 자연이 그의 구상작업의 노력이 어떠한 상태로 펼쳐졌던지 간에 숭고하게 느껴지게 한다. 그는 자연에 등록된 기하학적인 무늬를 분명하게 재생시키며 이를 그의 구상작업에서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한우 화백은, 존엄한 요소로서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 뗄래야 뗄 수 없는, 자연이 바로 제자리에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그는 배경과 형상 그리고 색채와 구상의 스승으로서 이 근본적인 메시지를 생명력과 고품격을 간직하여 실천한다. 이한우 선생은 정신세계를 그리는 위대한 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