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8 | 2018 깊은심심함 <깊은 심심함 : 530>에 대하여 |
<깊은 심심함 : 530>에 대하여
모든 작품 재료는 압축발포 PVC의 한 종류인 포멕스다. 목재나 지류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포멕스는 내구성이 강하며 표면에 기포가 없이 매끈하다. 광고물 제작이나 실내 인테리어, 가구소품 등에 활용되는 재료이기도 하다. 본 작업은 뾰족한 연필과 색연필, 커터칼을 주로 사용했다. 이번 전시에서 메인이 되는 Line A 2018, Line B 2018은 ‘자’ 없이 색연필로 선을 긋거나, 색연필 끝을 물에 적셨다가 선을 그어 완성했다. 지난 2015년 전시와 마찬가지로 ‘사물을 재현한다’는 절대적 권위에 순종하듯, 순진하고 소심한 그리기와 하찮은 감각적 디테일에 몰두하고 덧없는 시간 낭비를 즐기는 태도는 여전하다. 더불어 반복적 실행에 대한 몰입을 즐기려는 노력 역시 유효하다. 빠르고 어수선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조적인 태도나 사색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느끼는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긋고, 또다시 긋는다. 시간의 아름다운 흐름을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530(오삼공)은 5월 30일에 전시가 시작되어서… 발음할 때 오월삼십일과 오월삼십일(일)이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어 정했으나 아우라 함량이 너무 적은 듯하다.
깊은 심심함에 대해서 생각해보다. (시대 착오) 미술 전시가 엑스포나 놀이동산 같은 수준인 요즘에 평면에 줄이나 긋는다니… 진지하게 시대 착오는 아닐까 심하게 의심해본다. 그러나세계적인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킨포크라이프>의 발행인도 옛 사람인 임어당(린위탕, 1895~1976년)의 <생활의 발견>을 즐겨 읽는다니, 시대착오도 나름 아닐지. 지금 우리는 ‘Next big thing’이 무엇일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바람을 보고 돛을 조정할 능력까지는 갖추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 위안) 좋은 글은 독자를 덜 외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설가 - 미리 녹음 방송을 끝내고 라디오를 통해 듣는 음악이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난 것처럼 더욱 감성적일 뿐만 아니라 목소리조차 낯설게 들렸다고 한다. 방송하는 그는 현실과 달리 고민도 없고 평온한 사람 같아서 결국 ‘내가 나를 위로한 셈’이라고 말하는 심야 음악 방송 진행자 - 내게는 그들의 말들이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덜 외롭게 또는 위로하는 역할을 자임할 수 있다면… 그러나 현실은 ‘어림없다’에 더 가까울 것 같고 분명한건 ‘자기 위안’이 맞다.
(반복은 노잼하지 않다) 삶이 단순하고 규칙적이면 뇌가 쓸데없는 선택에 에너지를 안 써서 뇌가 비슷한 것들 속에서 놀랄 만큼 색다른 ‘다른 것’을 찾아낸다 한다. 비가 종일 오는 날, 나는 반복되는 빗방울 소리에서 아래아래층 노부부가 열심히 가꾼 정원의 데크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초록초록하게 돋아난 잔디에 스미는 그것을 구별할 수 있다. 작업에서도 반복은 깊은 심심함과 리듬을 주며, 아무 생각 없는 몰입, 평안함, 균형잡힌 정서를 준다. 손 끝에 주의를 집중하는 몰입, 영혼의 속도가 일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반응하면 새롭게 열리는 그 무엇도 있을 것이다.
* 각주구검(刻舟求劍) :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젊은이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지날 때 지니고 있던 칼을 놓치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 즉 판단력이 둔하고 융통성이 없고 어리석다는 뜻으로 시대의 변화도 모르고 옛것만 고집하는 완고한 사람 또는 눈 앞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변통을 부리지 못하는 처사를 이른다. * 노잼 : 노(no) + 재미, 재미가 없다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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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 2015 버티고개전 |
2015.12.23(수) ~ 2015.12.28(월) 가나 아트 스페이스 1F, 제1전시장 Lee Jung Ran Station. Beotigogae
Karl Blossfeldt와 포맥스(압축발포 PVC의 브랜드네임)의 만남 지난2008년 아트북 출판사 타센에서 나온 Karl Blossfeldt(칼 블로스 펠트)의 사진집은 그만의 소박하면서 도 우아한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텍스처가 살아있는 그 완벽한 이미지들은 데포르마시옹과 개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회화주의적 사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차분함, 그리고 평정심이 존재했다. 압축발포 PVC의 한 종류인 ‘포맥 스’는 두꺼운 종이보다 내구성이 강하면서도 표면에 기포가 없다. 또한, 매끈한 표면은 극도로 섬세해 뾰족한 연필심 끝에 제 살이 베어 나갈 정도다. 사각사각, 찌이익. 나는 어느새 블로스펠트가 안내해준 이미지의 세계를 포멕스판에 옮기고 있었다.
깊은 심심함 긋는다. 겹친다. 그린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려야 하기에 선을 긋고, 꽃을 묘사한다. 사물을 재현한다는 절대 적 권위에 순종하고, 순진하고도 소심한 그림 그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업은 고되고 집중이 필요 했다. 고의적인 평상 상태를 얻을 수 있음과 촉각적인 심도 표현은 덤이다. 고상한 진지함에 비해서 어떤, 성실한 진지함은 촌스럽다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선을 저기서 여기까지 집중해서 긋는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느리게나마 꾸준히, 조금씩, 시간을 실천하고 실존적 감 각을 획득하고자 한다. 하찮은 감각적 디테일에 몰두하는 태도는 쾌락도, 공허함에 대한 감각도, 덧 없는 시간 낭비의 과정들일 망 정… 이 모든 것들을 수용함으로써 강제 몰입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한병철은 그의 책에서 “시간의 아름다운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것”, “한가로움은 기분전환이 아 니라 집중을 돕고, 머무름은 감각의 집중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사색하는 능력, 사색적 삶만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라 했다. 맞는 말이다. 교훈에 지치고 빨라도 너무나도 빠른 삶의 속도에 휘청이는 현대인들에게 ‘느린것’, ‘긴것’, ‘평온’이란 단어들은 갈구하는 대상이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느리면서도 평온한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몸의 몰입을 통해 심리적 위안을 얻어낸다. 무릇, 인간이 정신적 존재임은 신체를 통해서 실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정거장, 버티고개 몹시 뜨거운 여름날 작업실에 가기 위해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에 서 있었다. 쏟아지는 햇살과 찌는 듯한 열 기로 잠시 아득해졌다. 낙타가 저 멀리서 날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회색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문득 든 생각, 욕조의 달팽이는 바다에 갈 수 있을까? 낙타도 바다를 건널 수 있을거야. 연결되지 않은 생각의 타래들이 떠올랐다 가 또 사라진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정신과 의사 김혜남은 말했다. 버틴다는 것은 말 없이 순종만 하는 수 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내면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되고, 외부에서 주어 진 기대에 날 맞추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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