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18-01-19 작가노트- 작가는 외부세계와의 만남을 탁월한 예술적 감각으로 세상에 선보여야 할 시대적 의무가 있다

작가는 외부세계와의 만남을 탁월한 예술적 감각으로 세상에 선보여야 할 시대적 의무가 있다. 나는 작품을 통해 공존 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만남’이라는 시도를 통해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며 화면에 존재하게 함으로써 소통시키는 공존을 추구한다. 외적으로는 구상과 추상, 일상의 구상적인 오브제, 안료의 물성에서 오는 드로잉의 흔적과 강한 마티에르 등의 개별성에서 드러나는 공존과, 내적으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 현실과 이상, 삶과 죽음, 등 무의식의 내면까지 아우르는 공존이다. 
단일한 평면의 화면위에 사실적인 형상과 작가의 언어로 재해석된 추상적 형태가 나란히 나타나는 현상은 다른 각각의 세계가 그 독특한 고유성질을 유지하면서 서로 중재하고 협력하는 공존의 방식을 연구한 흔적들로서, 각각의 형이나 색이 서로 용납하고 인정함으로서 모든 형과 색이 한 화면에 함께 발현되어있는 것이다. 

나는 예술의 출발점을 현실적 삶의 일상으로 규정한다. 일상 속에서의 공존의 의미를 중요시하여 작품에서 현실의 모티브가 되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세계를 중첩적으로 표현하여 시각화한다. 즉,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끝없는 공존에 대한 갈망과 거기서 오는 갈등과 번민 등 의식과 무의식의 카테고리가 자연 친화적인 모티브들을 통해 작품 속에 표현됨으로서 결국 대립과 분리를 극복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1. 역동적(力動的) 측면에서의 공존
역동적 측면은 화면에 드로잉 된 곡선의 율동적인 시각적 움직임과 선의 경사와 굴곡, 유기적인 형태의 순환으로 표현된다. 
물감의 두께로 표현되어진 다이내믹한 드로잉 선을 통해 이미지를 추상적인 형태로 변형하고 왜곡시키거나 반복적으로 조형화시킨다. 아른하임은 이러한 “시각적 재현의 힘이 일차적으로는 대상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에서 나오고, 이차적으로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 특성들이 암시하는 지각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직선은 계층의 분리를 통한 인간의 단절을,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은 어떠한 차별과 분리도 없는 조화로운 삶, 공존하는 삶을 함의하고 있다.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선의 역동성은 캠퍼스가 끝난 이후에도 존재하는 어떤 영역에까지 비집고 들어간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고유한 영역으로 침범해 오는 어떤 존재가 불청객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위배되거나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는 존재인 경우에는 그 반감이 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를 인정하고 성숙하게 수용할 때 아름다운 공존은 이뤄질 수 있다. 따라서 본인 작품 속 역동적인 곡선들은 조화와 공존을 향한 작가 의식의 흔적이다.
튜브에 들어 있는 섬유용 물감으로 그려진 두께감이 있는 드로잉 선과 본인이 직접 배합한 물감의 양을 조절하여서 만들어 낸 양감의 다이내믹한 변화는 화면의 공간성을 더 확장시켜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고, 일상적인 선에 운동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이는 물감의 물성에 가장 가까이 가고자 하는 본인의 의도로서 화면에 변화와 다양성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강약 조절을 통해 드러난 깊이 있는 형들은 선적 요소와 함께 면의 역할까지도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 이는 재료의 본질적인 기능을 충분하게 발휘하게 하는 힘이요, 인위적인 행위가 가해지지 않은 순수한 물성의 특성을 의식적으로 존중해 나가는 겸손이 아닐까 한다. 즉, 작품 안에 본인만의 고유한 행위인 선적이면서 마티에르를 지니고 있는 물감의 드로잉 선은 화면을 재탄생시키는 역할로서 시도된 것이다. 특히 이 드로잉 선은 추상과 구상사이의 중재적 공존을 이루어 주는 요소이며,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가능성을 회화적으로 실현케 하는 또 다른 공존의 한 양식인 것이다. 물감의 두께가 만들어 내는 의도하지 않은 또 다른 다양한 드로잉 선은 본인의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역동적으로 넘나든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작업에서 일상에서 보아왔던 색들의 이미지를 되새기며  색의 순간적인 효과들을 이용하여 내면의 색을 끌어내는 시도를 하였다. 자연의 색채에서 주로 색의 영감을 찾아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데, 자연의 색은  순색으로만 구성된 경우가 거의 없다. 원색의 강렬하고도 정렬적인 색들은 반드시 채도가 낮은 색들이 함께 어우러짐으로서 가장 자연다운 색이 된다. 이는 대자연의 이치처럼 홀로된 개인으로는 삶을 지탱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만 하는 절실함을 내포하는 것이다. 
본인의 작품에서도 색은 이런 의미로 대변되고 있다. 색 자체로서 중첩된 이미지들은 본인의 내면의 심상을 이끌어 내고, 촉각적 반복행위를 거쳐 형성된 흔적은 다시 나다움의 상태로 존재를 복원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 공간적(空簡的) 측면에서의 공존
공간적 측면은 선과 색층의 중첩된 효과, 이분법과 대칭구조에 의한 시각적 교체와 착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루돌프 아른하임의 시지각적 사고의 특성 중 시지각의 기본 성격인 능동적 선택성과 관련지어 나타나는 중첩된 효과와 그에 따른 깊이, 빛에 의한 명암과 그림자 등 여러 조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하학적 당초 문양의 조형미를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틀을 제공해주는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작품에서 사용된 재료들은 표현적 상호 작용을 통하여 소통한다. 인간의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타인과의 교류와 소통이 필수적인 것처럼 작품의 모든 형태도 상대성을 지니고 다른 대상과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중첩’이란 계속적인 시각 개념으로부터 벗어난 변화를 창조해내는 중요한 방편중의 하나로서, 본인 작업의 화면 속에서 입체감과 공간감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아른하임은 “중첩은 단축과 함께 한 대상의 통일감, 유기적인 성격, 견고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거나 더 강조 된다. 이때 요구되는 지각요건은 투영의 효과에 의해서 서로 연접한 단위들이 서로 구분되고 동시에 다른 평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첩은 보다 통일된 패턴 안에서 집중됨으로써, 그 형태 관계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중첩된 화면이미지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한 긁힘이나 번짐 등의 마티에르의 표현으로서, 표현의 결과를 상상하여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표현은 본인내면에서 표출되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마티에르의 중첩적인 화면 위에 무의식의 진정한 확장을 위해서 두껍고도 무거운 질감을 그대로 살려서 무한한 공간 영역임을 암시한 공간구성과, 중첩되지 않은 단색의 부드러운 화면의 재질감을 가진 의식공간의 요소가 서로 공존하면서 통합되는 화면의 재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빛은 지각적 속성을 지니며, 공간에 통일감과 질서를 강화하거나 소멸시키는 효과를 준다. “과거의 미술에서 빛은 그림에 통일감을 주고 물질성을 강조하는데 쓰인 반면, 현대 미술에서는 빛이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긴장과 갈등을 표현하는 요소로  많이 쓰인다“는 아른하임의 말처럼 작품에서도 빛의 영역으로 등장하는 화면은 입체적 형상을 뚜렷하게 드러나게 하고, 화면의 통일감과 질서를 더욱 강화시키거나 소멸 시키게 하며, 물감의 두께로 인한 낮은 그림자의 효과는 화면에, 공간감과 통일감을 더욱 깊이 있게 연출해 내는 효과를 가지게 한다.

3. 반복, 연속적 측면에서의 공존 

작품속에서 유사한 형들이 가까운 위치에서 반복적,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지각됨으로, 단순하고 통일된 하나의 패턴을 구성하게 된다. 화면에서 보이는 연속성은 보는 이의 시각을 한곳에 고정시켜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며, 지속적인 이동을 유도하여 보여주는 이미지를 본인의 의도에 맞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 한다. 이와 관련하여 루돌프 아른하임은 시지각은 감각 자극이 인지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며, 복잡한 자극일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정되고 정교해져서 단순한 구조로 지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이내믹한 곡선들의 반복, 연속적인 배열의 집단화로서 전체적인 시각적 흐름을 유도하고 있으며, 복잡한 화면의 시각적인 구성을 단순화시켜 지각하게 함으로써 전체 작품의 통일감과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준다. 이러한 화면표현은 공간 내에서의 불필요한 시각적인 요소들을 제거시켜 주고, 본인이 원하는 통일된 형상으로 인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즉, “하나의 시각 대상은 색채, 밝기, 속도, 운동방향 등의 여러 요인들이 통일되고 유사하면 할수록 더욱 통일되고, 유사한 대상으로 지각될 것이다”는 아른하임의 주장처럼 유사한 형들이 가까운 위치에서 연속적으로 비슷한 방향성을 가짐으로서 지각의 단순화와 함께 통일감과 균형감을 느끼도록 보는 이를 안내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그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자의 존재를 개시한다. 나는 반복적인 작업의 패턴으로서 매일 작품과의 대화를 즐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화가의 노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 하면서 화가의 모방을 창조로 변화하게 하는 노동의 힘을 강조했다. “노동에 의해 인간은 존재 이상의 생성으로서의 가치를 표현하고, 모든 위대한 작품은 상상력과 의지의 결합으로서 노동의 역사, 물질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내포한다. 화가는 노동자이며 이 노동자는 기호의 영역을 넘어서 의미하는 의지와 결합한다. 화가는 모방한다는 의미에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다. 그는 창조하는 힘을 표현한다.” 
나의 작업은 반복적인 촉각적 표현 행위로 풀어 나가는데, 반복적인 행위에 의한 물감의 흔적의 중첩효과로 만들어진 질감이 화면 속에 드러나며, 서로 공존하게 되는데, 이는 작품에 중요한 생명언어로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감이 마르는 것을 단절시킨 흔적을 그대로 표현함으로서, 그 위에 나만의 조형 언어로 찾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흔적은 실제로 살아 있지만 죽은, 그리고 삶을 위장하며 간직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표기이다. 순간의 시간성을 담아내는 사진과는 전혀 다른 회화만이 가진 색채와 흔적의 쌓기가 만들어낸 평면 안에서의 질감은 지속적인 시간성의 표현으로서 깊이 있게 내면의 세계로 다가가도록 인도한다. 

- 미술학박사학위 논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