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내면속의 풍경

이상현의 조각

- 내면속의 풍경

 

마음속에 자연이 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풍경이 된다. 

기쁨과 슬픔, 설렘과 두려움, 희망과 상실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산맥처럼 겹겹이 이어지며 우리만의 내면을 만들어 간다. 

그 풍경들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형성된 또 다른 이미지다.

기억은 안개처럼 마음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때로는 선명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기억들은 산의 능선과 같이 흐릿한 여운이 되어 삶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어 준다. 

내면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같은 사람조차도 시간과 감정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다.

산수를 품은 백자는 이러한 마음의 풍경을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이다. 

작품의 재료는 도자가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되었다. 

단단한 금속을 백자의 형상으로 구현한 것은 눈에 보이는 부드러움과 내면에 존재하는 강인함을 함께 담아보았다. 

우리는 연약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중 이고, 삶의 무게를 품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존재이다. 작품의 재료로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변하지 않는 견고함과 지속성을 상징하며, 마감재료로 사용한 자동차용 페인트 도장은 백자의 맑고 절제된 미감을 현대적 재료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전통의 형식과 현대의 물성이 만나 과거와 현재, 외면과 내면을 하나의 조형 언어로 사용하였다.

백자의 비움은 단순한 공허함이 아니라 새로운 감정과 기억을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며, 그 안에 그려진 산수는 평온과 불안, 희망과 그리움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감정의 결을 표현하였다.

다양한 색상의 농담은 감정의 깊이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였고, 멀어질수록 옅어지는 산의 능선은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짙고 선명한 산은 지금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감정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색과 층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은 삶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 속 산수는 특정한 장소를 재현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형성된 내면의 기억인 동시에, 작품을 마주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도 존재하는 풍경이다. 

관람자는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투영하게 되고, 각자의 기억은 작품과 만나 또 다른 풍경들을 만들어 낸다. 

작품을 마주한 누군가는 평온한 휴식을, 누군가는 그리움이나 위로를,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자연을 묘사하기 위한 산수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산수이다. 전통적인 백자의 형상을 빌리되 현대적 산업의 대표 재료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여 시대가 달라져도 사람의 내면은 여전히 기억과 감정을 품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나는 자연의 형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을 항아리에 담아내고 섬세한 내면의 풍경을 항아리표면에 표현하였다. 

관람자들이 작품 앞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풍경과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을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그때 작품은 비로소 작가의 풍경을 넘어, 관람자 각자의 '내면 속의 풍경'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