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예의 새로운 장르 개척_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 대표) | |
한국 도예의 새로운 장르 개척 - 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 대표) Ⅰ. 도예는 유익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삶의 원동력으로서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철학적·미학적 가치마저 지닌 심도 있는 예술이다. 근래의 도예는 순수 감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성의 추구 면에서 더욱 치밀해지며, 다양한 제작 방법과 수준 높은 예술성으로 조형성과 세계성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 도예가 임진호는 40여 년간 변함없이 흙과 함께하면서 흙을 통해 현대성, 생명성, 한국성 등을 추구하며 깊은 사색과 큰 노력으로 흙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그는 단지 기교적인 도예 예술이 아닌 새로운 조형 세계를 펼치면서 도자 영역의 새로운 확장과 전통의 현대화 및 정신성 구현 등 한국 도예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 도예의 아방가르드적 영역 확장과 정통성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으며, 날이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 사회의 갈증을 덜어주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흙으로 빚은 도예를 통해 펼쳐지는 그의 작품에는 실용성과 현대적 감각의 예술성과 정신성, 한국성, 세계성 등이 혼재한다. 이는 현대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조형적 사고와 행위, 그리고 문화적 이질성과 동질성이 교차할 뿐 아니라 후기 모더니즘적인 일치성(Conformity)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세계화를 향한 열의를 지닌 도예가 임진호는 조선의 분청 기법을 토대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작업을 추구한다. 보들레르(C.Baudelaire)의 이론에 비추어 본다면, 절반은 영원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으며, 절반은 적어도 순수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의 예술 작품에 관하여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표현을 조선 시대 분청 기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재료 실험을 통해 전체적으로 조화를 꾀하는 데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담은 세계화된 도자 예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한국성과 아방가르드적 실험성’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대인의 삶의 단면에 관해 고민하며 새로운 생명성을 도출해내고자 고심해왔다. 그리고 기존의 도예와 실험성 짙은 현대 도예의 경계와 영역에 대해 고민하고, 기존 도예의 기능적·기술적인 속성에서 탈피하여 그 흔적과 고정 관념을 지우는 데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새로운 도예의 영역 확장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나의 작품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그것을 기억으로부터 나오는 부산물로 간주한다. 이것은 라캉(Jacques Lacan)의 이중 의식과도 직간접적으로 상통하는 바가 있다. 라캉(Jacques Lacan)은 욕망을 주체와 연결해 주체의 문제를 새롭게 탐구하면서 주체의 의식을 작가가 이야기하는 ‘두 얼굴’처럼 이중적으로 파악한다. 하나는 자신을 의식하는 주체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타인에 의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주체는 같은 격을 지닌 주체이며,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임이 함께하는 두 얼굴처럼 이중적인 특성을 보인다. 라캉의 견해처럼 작가의 작품에는 능동적으로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수동적으로 보인다는 이중적 미적 개념이 잠재한다. 이러한 미적 개념은 생명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는 ‘조합’이라는 상당히 실험적인 미적 개념을 도출하여 도자 조형의 미적 영역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왔다. 이 ‘조합’의 근저에는 우연성과 확장성, 자연성 등이 깔려있다. 이러한 모티브에는 아방가르드적이고 실험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으며, 작품에 생명력을 지닌 독창성과 창의적 정신성이 내재한다. Ⅱ. 기법적으로 보면 그의 작품은 조선 시대 분청 기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점토와 분장통의 대조적인 성질이 두드러진다. 잘 다듬어진 흙에 인화문 기법과 조화문 기법으로 떡살 문양이나 와당 문양, 조화문 등을 찍거나 주물러 만든 후 이를 다양한 각도로 쭉쭉 늘린다. 확장성, 우연성, 자연성이 내재한 흙 판들을 조합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형상들이 담긴 독특한 조형의 도자를 만든다. 평면과 입체의 조합 또는 색이 있는 화장토와 무채색 흙의 조합 혹은 늘려서 우연히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 등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일치된 조형성을 확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밑그림처럼 활용하고 있는 달항아리 위에서 형성된 우연적인 형태들이 항아리 표면에 우연히 늘린 상태로 붙여지고 다듬어져 다양성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자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생명체로 탄생한다. 작가의 기억과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우연성을 지닌 도자 작품은 시공의 경계를 넘어 완성된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상당히 창의적이면서도 실험적이라 평가된다. 여느 달항아리는 매끈하고 원형의 모습에 가깝지만 비균제와 늘리는 기법으로 이루어진 임진호의 달항아리는 전혀 매끈하지 않을뿐더러 무의식적·무소유적인 느낌, 은근하면서도 인간적인 아름다움, 담아한 한국의 조형성을 감지하게 한다. 여기에는 라캉의 응시(凝視)와 같은 것이 내재하는데 이 응시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 주체는 무화(無化)되고 응시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연성과 순간성을 토대로 한 늘리는 기법에 따라 미세함과 잔잔함, 담아한 아름다움이 조형적 형태로 승화되어 상상력과 상징성을 담아내는 임진호만의 달항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본다. 작가는 다양성에서 비롯된 조합 다시 말해 혼재나 복합성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데에 관심을 둬왔다. 여기에 기능성과 실용성을 가미시키며 우리의 정체성을 지닌 실험성 높은 현대 도자를 창출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아름다운 하늘과 자연을 회상하며 흙으로 빚은 분청에 떡살 무늬나 물고기 형태 등을 활용하고 늘리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형태를 달항아리 모양의 도자에 하나하나 붙여가며 우연성과 자연성 그리고 현대성이 내재한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실험성 짙은 현대 도자 작품을 창출한다. 그의 이러한 창작열은 늘리는 기법을 1999년에 세계 최초로 창조해내면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런 전무후무한 기법에 따라 별똥별 등을 소재로 한 우주쇼를 창작하였고, <Landscape in Memory>라는 평면 작업에 이르기까지 입체와 평면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특히 우주쇼를 내용으로 한 최근의 작품은 자연의 빛과 형상을 살려 조금은 이국적인 성향으로 이미지화한 것인데, 자연의 위대함과 우주의 생명력을 함의하여 주목된다. 마치 빛의 속성처럼 자율성과 우연성, 순간성이 내재하여 늘리는 기법으로 창작한 우주에 관한 형상적 표출은 각박한 삶의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오늘의 위기의 삶에서 비롯된 상실감이나 고독감, 소외감, 고립감, 자기방어, 공격성 등을 흙으로써 정화한다. 도예가 임진호의 일련의 작품들은 라캉이 말하는 또 하나의 얼굴이 될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생명성을 지닌 존재로서 각박해져만 가는 우리들의 삶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스스로 형성된 자기 정체성과 생명력을 지닌 정신성이 빛을 발한다. 임진호의 도자 세계에서는 대상과 조망 점으로부터 드러나는 이미지가 예술적인 경계를 넘어 관계들을 설정하며, 그 속에서 흙 판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연계되고, 기존의 도자 작업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비 형상적인 매개체가 새롭게 설정되어 조합과 융합의 조화 속에서 조형적 긴장감을 더욱 높여준다. 이러한 미적 긴장감이 높아질 때 작품의 의미심장함은 더해지며, 자연스럽게 생명력이나 상징성, 상상력이 표출되어 투박하면서도 구수한 한국적 감흥과 교융하면서 새로운 한국성을 창출한다. 작가가 그동안 꾸준하게 추구해 온 담아하고 투박한 한국성을 담은 늘린 기법의 달항아리에는 가마솥의 구수한 누룽지나 텁텁한 막걸리 같은 맛이 담겼으며, 인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형태미가 존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자와 요소들로 이루어진 구수한 큰 맛을 지닌 그의 작품들은 뛰어난 예술성과 더불어 마치 숨을 쉬는 듯한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작가 정신이 투철한 도예가 임진호는 이제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타고난 조형적인 감각과 더불어 실용성과 기능성이 결합한 독특하고 조형적 가치가 있는 생명력을 지닌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가 고민하며 전개해온 창작은 한국성과 독창성 그리고 현대적 실험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한평생 몸담은 강남대학교의 손때묻은 연구실과 인근의 작업실에서 창작한 생명력을 지닌 또 다른 얼굴들이 그의 예술가적 열정과 그동안의 노고에 위로와 격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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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곁 지키는 동반자로 다가가다 | |
사람 곁 지키는 동반자로 다가가다
많은 미술 분야 중 우리도 모르는 사이 생활에서 늘 함께하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공예’다. 음식을 담는 그릇부터 타일, 문손잡이 등 언제 어디서나 실용적인 공예품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임진호 작가의 작품은 돋보인다. 임 작가는 한국적인 전통성을 살리되 현대적인 감각이 공존하는 공예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서로 다른 시간을 한 작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개발한 새로운 분청기법의 힘이 컸다.
임 작가는 조선시대 분청기법에 대한 다양한 실험 과정을 거쳐 ‘분청 늘림 기법’이라는 자신만의 기법을 만들어냈다. 문양을 찍은 후 여러 각도로 늘려 작품에 붙이는 이 기법은 특유의 소박한 멋스러움이 특징이다. 늘림 기법의 기본은 다양한 전통 분청기법에서 온 것이기에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그럼에도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임 작가만의 현대적인 감각을 첨가해 전통과 현대가 한 작품에서 교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정 모양으로 찍힌 문양은 작가의 의도대로 방향과 힘에 따라 늘어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한 가지 문양일지라도 어떻게 늘리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과 무늬를 만드는 셈이다. 덕분에 김 작가의 모든 작품은 같은 게 없다. 각각 다른 운명과 삶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히스토리 2013’ 시리즈는 늘림 기법의 끝없는 다양성을 증명한 시리즈다. 2013년 ‘늘림으로 새로움을 보다’라는 주제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국제아트페어’ 공개 당시 미술계는 그의 새로운 기법에 주목했다. 마치 누더기 천을 덧댄 듯 무심하게 겹겹이 쌓은 문양들은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분청의 새로운 멋을 느끼게 해줬다. 뉴질랜드 국립박물관인 오클랜드 뮤지엄 큐레이터가 그의 작품을 한눈에 알아보고 한국관에 현대 도예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소장을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적이면서도 철저히 한국적인 작품의 매력을 인정한 것이다.
늘림 기법으로 다양한 무늬를 입힌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회귀’ 시리즈도 임진호 작가의 대표작이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픈 다양한 인간사를 연어와 늘림 기법을 통해 표현했다.
2월 말까지 서울 청담동 아트뮤제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임 작가의 개인전 ‘따뜻한 등잔 하나 겨울나기’에선 다양한 ‘도자등잔’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한국 전통 등잔을 임진호 작가의 해석으로 재창조한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300여점의 각기 다른 등잔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곡선의 달항아리 모양을 본뜬 ‘호형’부터 기존 곡선형태의 등잔에서 현대 모던함을 가미한 ‘원통형’, 전통등잔의 기본 형태로 우리에게 익숙한 ‘물방울형’까지 모양이 다양하다. 여기에 하나하나 다른 표현기법과 백자와 청자, 옻칠 등 작업을 가미하다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임 작가가 2년여 간 준비해 만들어낸 수많은 작품들은 그러나 단순히 다양함을 넘어서서 단아함과 담백함으로 새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등잔 끝에 붙은 작은 불꽃은 어려운 시기 희망을 말하듯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공예는 예술작품이기에 앞서 사람들 곁에 가까이 존재하는 동반자여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다.
“인간이 흙을 가지고 누려야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고 싶어요.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때로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역할까지 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일 겁니다.”
출처 : 용인시민신문(https://www.yongin21.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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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回歸) _기억.상상을 만나다 | |
회귀(回歸) _기억.상상을 만나다 -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픈
작가의 늘림 기법으로 다양한 무늬를 입힌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회귀’ 시리즈는 임진호 작가의 대표작이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픈 다양한 인간사를 연어와 늘림 기법을 통해 표현했다. 고귀한 물고기 연어.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다시 돌아와 알을 낳는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을 갖고 있는 연어. 광활한 바다에서, 고대의 본능에 이끌려 강 상류로 돌아온다. 임진호 작가의 연어 작품의 표면은 슬림기법과 드리핑 기법으로 화려한 색감을 연출하였으며, 표현이 자유롭고 과감한 추상회화적인 느낌과 빛의 감각을 나타낸다. 작품 속 연어는 도자와 회화에서 옛부터 다양하게 실험정신과 조형언어로 표현되어져 온 존재이다. 한국의 현대도예는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기반으로 실용성과 모던함, 실험적인 현대감각의 예술성과 조형성을 겸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방식의 연어 작품은 현대도자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
ARTIST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