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임영주가 그리는 행복의 도상화_김정연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임영주가 그리는 행복의 도상화                         

- 김정연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저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찾고 있다. 서양 고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했듯 행복하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감당할 수 있는 대로 감정을 느끼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작가 임영주가 그리는 모든 이미지는 행복하기를 바라는 염원의 도상화다.

그의 작품에는 동물, 식물, 인간 등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림의 재료가 되고 상상의 소재가 된다. 삶에 녹아든 생각, 친근한 형상, 재미있던 순간, 결코 우리 인생과 결별할 수 없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임영주의 그림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단순하게 보여준다. 캔버스 가득 풍만한 곡선으로 채워진 자연물은 무심히 나열한 듯하지만 색감과 붓 터치의 정교함으로 몰입의 여지를 준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올망졸망한 동그란 형상이 촘촘히 붙어 있다. 형상 곳곳에 맑은 천진함과 명랑함으로 반짝인다. 나아가 그의 붓 터치는 나이테같이 규칙적인 색의 띠 배열을 만든다. 이는 자발적이지만 절대적으로 수행하는 질서 잡힌 놀이의 한 형식처럼 보인다. 이것이 임영주의 회화다. 대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하여 고정관념에 가두지 않고 개인의 감각으로 치밀하게 표현한다. 

 

작가의 작품에 내재된 또 하나의 핵심은 '즐거움'이다. 

작가는 자신이 즐거웠던 박제된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 놀이하듯 붓질하는 것 같다. 통념상 놀이 안에 즐거움이 있다. '즐거움'이란, 타인에게 피해 입히지 않는 범위 안에서 느끼는 성취감이나 기쁨 등의 건강한 상태를 말한다. 인간의 삶은 유희를 영위하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놀이에 주목해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라고 했다. 그는 “문명이 놀이 속에서 발생하고 전개되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인류가 놀이를 통해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놀이가 자발적인 행위라는 데 있다.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 어땠는지 한번 돌이켜보자! 아무런 제약 없이 다양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생겼고 호기심에서 파생된 상상력은 전혀 구속받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상상력 없이는 놀이도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온갖 상상력을 끌어모아 표현했고 즐거워했다. 어렵지 않았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다란 선물을 받았어. 너무나 아름답고 커다란 꽃다발이었지.

나에겐 너무나 과분하고 아름다운 꽃다발이어서 눈물이 날 뻔했어.

내일이 되면 시들어버리는 꽃다발이 아니야. 매일 매일 새로운 꽃다발이야. 시들 일은 없어. 그래서 더욱 감사해. (작가노트 <선물 같은 오늘> 중에서)

 

작가 임영주가 그림 속에서 놀이하고 상상하는 것은 그의 작가노트처럼 보는 이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그의 그림처럼 쉬운 것도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예술이 너무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부터 예술을 무거운 무게로 학습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관습의 눈은 예술을 쉽게 바라보게 하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는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사유마저 일정한 방식에 길들어져 어린 시절의 활발했던 상상을 유치하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가장 쉽고 단순한 형태를 통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시각적인 놀이의 계기를 마련한다. 

 

미국의 작가 키스 해링(Keith Haring) 은 “예술은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사람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아마 이 말에서 임영주 작업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상상한 작품에 ‘즐거운 상상’, ‘선물 같은 오늘’이란 제목을 달았다. 

임영주의 그림은 자연과 교감하고 생명에 대한 감사를 가시화한다. 커다란 나무나 꽃다발, 웃고 있는 동물의 얼굴, 잡초처럼 보이는 소소한 이파리들을 조화시키며 누구나 같은 일상 안에 함께 있음을 알린다. 거창한 진리를 추구하거나 무거운 명제를 꺼내 질문하지 않는다. 또한 모든 생명체가 활력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조화를 이루길 바란다. 그리하여 노래하고 약동하며 행복하길 바라는 삶의 기원을 반복한다. 

 

즐겁게 삶을 추구하는 그의 작업에서 작가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동화( 同化) : 페르소나의 풍경

동화( 同化) : 페르소나의 풍경

 

우리는 누구나 동화(童話)속 주인공을 꿈꾸며 자라지만, 어른이 된 후 마주하는 현실은 사회라는 거대한 체계속에 나를 녹여내는 '동화( 同化)'의 과정이다.

이번 작업은 그 치열한 적응의 과정 속에서 피어난 우리들의 얼굴, 즉 '페르소나'에 관한 기록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무성한 식물들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이자 관계의 숲이다. 생명력 넘치는 밝은 빛으로 가득한 이 숲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개인의 존재를 집어삼킬듯 견고하다.

잎사귀 사이에 숨어 배경의 색채를 닮아가는 동물들은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쓴 우리의 자화상이다. 타인에게 색을 맞추는 행위는 안온한 소속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유한 빛깔이 흐릿해지는 위장이 되기도 한다.

하늘이 노랗게 타오를 때, 나 또한 노란 꽃이 되어 그 빛에 응답한다. 배경 속에 녹아드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의 일부가 되어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 동화의 숲 한가운데, 동물의 형상을 빌린 본연의 자아는 물방울처럼 투명하게 존재한다.

이 투명함은 주변의 모든 빛을 투과하고 반사하며 순수함을 유지하려는 의지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아슬아슬하게 맺힌 물방울은 주변의 색을 머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맑은 형태로 자신을 드러낸다.

찬란한 색채의 물결 속에서 빛나는 이 작은 숨결은, 우리가 세상을 닮아가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자아의 증거다.

 

가면은 거짓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지도와 같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묻고 싶다. 우리는 환경에 동화되어 사라지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투명하게 빛나며 공존하는 존재인가. 우리는 사회에 녹아듦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투명하게 빛남으로써 비로소 각자의 '동화'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화사한 색채 뒤에 숨겨진 동화의 양면성을 통해, 가면 너머에서 숨 쉬고 있는 진실한 자아의 궤적을 쫓아본다.

 

 

"우리는 사회에 동화(同化)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투명하게 빛남으로써 비로소 각자의 동화(童話)를 완성해 나갑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다정한 일상과 우리를 꿈꾸게 하는 찬란한 기적, 삶은 그 두 가지 색이 석여 완성되는 하나의 동화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가면은 어쩌면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행운과 소중한 행복이 다치지 않게 지켜주는 따듯한 울타리일지도 모릅니다.

* 밝은 빛깔 속에 숨어 있는 동물들과 클로버를 찾으며, 당신의 가면이 품고있는 진짜 미소를 만나보세요

 

- 026 마루아트센터 개인전_임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