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박하고 고졸한 감성으로 빚은 조형언어의 프리즘_권숙자 (안젤리 미술관 관장) | |
질박하고 고졸한 감성으로 빚은 조형언어의 프리즘
- 권숙자 (안젤리 미술관 관장)
스펙트럼이 넓고 깊은 조형언어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오성만. ‘오성만’하면 먼저 두 가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빨래판 작가, 또는 재료와 매체에 대해 부단한 실험과 연구를 해오면서 오브제를 능숙하고 자유롭게 다루면서 화면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선보는 개인전에서는 빨래판의 미학이란 주제와 현대미술의 진수인 오브제를 이용한 추상미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적인 본질을 파악하고 지나친 조작을 멀리하며, 고졸하고 단아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말하자면 조작적인 기교(技巧)와 교졸(巧拙)함을 걷어내고 소박하고 질박한 고졸(古拙)미를 추구하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재료는 작업 내용의 메시지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의 한 부분으로, 그의 작품 속에서 내면의 정신성을 나타내고 있고, 표현된 조형언어는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적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컴바인 페인팅은 2차원 혹은 3차원적 물질을 회화(繪畵)에 도입한 작품을 말한다. 캔버스나 종이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보편적인 표현 방식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사물과 물질을 도입하여 표현하기 때문에 일종의 확대된 오브제 혹은 콜라주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확대된 오브제는 작업에 도입되면서 늘 보아왔던 사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은 작가의 관심과 상상력에 따라 특별한 조형언어로 태어난다.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사물이 갖는 보편적인 이미지나 역할에서 일탈시켜 다른 화면에 놓는 것이 오브제의 첫 번째 조건이라면, 오성만의 오브제 표현 방법은 다른 사물들과 결합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주위의 어떤 사물들이 그에게 주어지면, 화면에 차용된 재료는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전체 구성 요소와 조화를 이루면서 질박하고 고졸한 표현 방식으로 신선한 감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성만의 질박하고 고졸한 감성으로 빚은 조형언어의 프리즘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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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관조의 감성으로 빚은 질박한 조형언어의 프리즘_오성만의 작품세계와 작업태도 | |
사유와 관조의 감성으로 빚은 질박한 조형언어의 프리즘
Ⅰ. 오성만의 작품세계와 작업태도
잠을 자지 않고도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창조활동은 잠을 자지 않고도 꿈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술가만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오성만 작가는 작업을 하는 동안 꿈속에서 달콤한 상상의 몰입에 빠져 자신을 잊고, 시간을 잊고 그저 그곳에 풍덩 빠져 무아지경의 즐거움에 행복해 하는 작가이다.
오성만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신선하며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리고 욕심 없이 소박하다. 이와 같은 점은 부지런하고 건강한 그의 삶의 출발점으로 미술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찾아 땀 흘리는 진지한 모습과 그 열정이 그의 예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마치 마이더스의 손처럼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작품이 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 속엔 그림이 되는 것과 그림이 아닌 것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평면과 입체가 따로 없이 그의 삶에 스치는 어떤 것들도 형상화되어 따뜻한 생명으로 태어난다. 이것은 늘 새롭고 참신한 조형언어로 미술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작업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막힘없는 조형적 언어와 미적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좋은 그림은 이해하기 전에 느낌으로 다가온다.
예술가의 삶에 있어서 창작의 전제조건은 작가의 내면세계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관조한 사물에 대한 미의식과 교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자신의 경험 속에서 작품에 투영되는 관심의 대상과 창조적인 작업과정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미적 감흥을 조형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미술은 시각언어로 빚은 그릇이다. 그 그릇에 작가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것이 창조의 결과물이다. 그것에는 사용된 재료들이 작가의 내면세계와 어우러져 풍기는 정취와 형식을 드러내는 이미지와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다.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 조형미를 추구하며, 어느 한 장르에 갇히지 않고 모든 조형적 요소를 보여주는 점이 놀랍다.
Ⅱ. 오성만의 창작행위의 힘은 어떤 것이고 또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1. 오성만 작업의 세 가지 얼개
(1) 빨래판의 미학 세탁기의 대중화로 설 자리를 잃은 빨래판에 삶의 이야기를 담아 조형적 언어로 예술의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그의 작품이 이채롭다. 또한,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빨래판에 독특한 조형미가 있음을 발견하고, 현대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은 오성만은 우선 발상의 새로움으로 시선을 모은다.
그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재료의 특수성도 있지만 이러한 오브제를 자신만의 언어로 은유적 표현에 집중하여 조형적 탐구를 지속적이며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동일한 재료를 파고들며, 조형적 탐구에 몰두해 왔다는 점이 오성만의 작품을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일 것이다.
표현이 자유로운 종이나 캔버스가 아닌, 빨래판이라는 한정된 재료에 이미지를 형성해나가는 작업은 고민에 찬 성찰과 극도의 인내심을 요구하며, 지극히 힘든 예술적 노동과 땀의 결실로 이루어지는 성실한 작업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주변에서 단순하게 지금까지 보아왔던 막연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는????인간의 삶????을 빨래판에 조명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빨래판이라는 물성을 사용하면서도 성숙한 조형성과 회화성 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빨래판을 오브제로 하여 탁월한 감각에 의한 새로움의 세계를 열어 간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어쨌든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정서를 빨래판에 삶의 단상을 조형적 언어로 풀어 보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2) 오브제를 활용한 표현기법과 정신성 ① 현대 미술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론적인 시도 가운데 가장 관심을 둔 것은 재료와 매체의 확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오성만 작가가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삶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하찮은 물질에서 가치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반추하며 자신만의 숙성(熟成)된 조형언어로 풀어내어 고졸(古拙)한 느낌을 띄고 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항상 새롭다.
②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물질이 갖는 보편적인 이미지나 역할에서 일탈시켜 다른 화면에 놓는 것이 오브제의 첫 번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오성만의 오브제 표현 방법은 단순히 화면의 한 요소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들과 융합하고 결합하면서 전혀 새로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주위의 사물들을 임의로 선택해서 화면에 차용되지만 오브제는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전체 구성요소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조형효과를 실증하고, 다양한 표현방법의 모색과 더불어 새로운 리얼리티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 역시 주목을 받는다.
③ 오성만 작업에서의 재료는 작가의 메시지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의 한 부분이다. 그가 작품 속에서 내면의 정신성을 나타나기 위한 조형언어는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적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컴바인 페인팅은 2차원 혹은 3차원적 물질을 회화(繪畵)에 도입한 작품을 말한다. 캔버스나 종이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보편적인 표현방식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사물과 물질을 도입하기 때문에 일종의 확대된 오브제 혹은 콜라주라 할 수 있다.
④ 세상에서 더 이상 쓸모없을 것 같은 많은 소재들, 이러한 소재들이 오성만 작가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즉, 삶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하찮은 물질에서 가치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반추하며 자신만의 숙성(熟成)된 조형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성만 작가는 평면과 입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표현양식과 실험을 통해 조형의 현대적 변용을 다채롭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일반적인 재료에서 벗어나 개성 넘치는 소재를 활용한 작품들은 늘 우리의 눈길을 끈다.
⑤ 낡고 버려진 물건과 물질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하여 이미지를 형성해나가는 작업은 고민에 찬 성찰과 극도의 인내심을 요구하며, 지극히 힘든 예술적 노동과 땀의 결실로 이루어지는 성실한 작업의 결과물인 것이다.
⑥ 미술의 양식(樣式)을 구분 지어 본다면 技法(기법), 形態(형태), 材料(재료)와 素材(소재)에 따른 방법이 있다. 이 네 가지 미술양식 늘 새롭고 참신한 조형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3) 숙성(熟成)된 고졸미(古拙美)를 추구한다.
한국인의 정서적의 본질을 파악하고 지나친 조작을 멀리하며 고졸하고 단아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말하자면 조작적인 기교(技巧)와 교졸(巧拙)함을 걷어내고 소박하고 질박한 고졸(古拙)미를 추구 하고 있다. 따라서 오성만의 작품은 기교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오성만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재료의 특수성도 있지만 이러한 오브제를 자신만의 언어로 은유적 표현에 집중하여 조형적 탐구를 지속적이며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성만 작품은 대교약졸(大巧若拙)과 내교외졸(內巧外卒)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맑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를테면 대교약졸(大巧若拙)과 내교외졸(內巧外卒)이란 처음에는 서툴고 소박하다. 이것이 바로 졸(拙)의 단계다. 그러다가 점차 나름대로 기교를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교(巧)의 단계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큰 기교에 이르게 되면 다시 졸(拙)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교약졸의 졸이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환 논리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巧)를 알고 난 뒤에 다시 돌아온 졸(拙)은 교(巧)를 알기 전의 졸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이 졸(拙)은 겉으로 졸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 교(巧)를 담고 있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졸(拙)은 성숙의 졸로서 교(巧)가 내재된 졸이다. 즉 내교외졸(內巧外卒)의 졸이다. 이차원적인 평면에서는 순환과 발전은 서로 만날 수가 없다. 그러나 삼차원적인 입체에서는 순환과 발전이 서로 통합될 수 있다. 노자의 논리구조는 바로 입체적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우주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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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의 미학_이점원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 |
빨래판의 미학 이점원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오성만의 작품세계는 언제나 신선하며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리고 욕심 없이 소박하다. 이와 같은 점은 부지런하고 건강한 그의 삶의 출발점으로 미술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찾아 땀 흘리는 진지한 모습과 그 열정이 그의 예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마치 마이더스의 손처럼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작품이 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 속엔 그림이 되는 것과 그림이 아닌 것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평면과 입체가 따로 없이 그의 삶에 스치는 어떤 것들도 형상화되어 따뜻한 생명으로 태어난다. 이것은 늘 새롭고 참신한 조형언어로 미술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작업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막힘없는 조형적 언어와 미적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좋은 그림은 이해하기 전에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성만의 그림이 그러하다.
세탁기의 대중화로 설 자리를 잃은 빨래판에 삶의 이야기를 담아 조형적 언어로 예술의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그의 작품이 이채롭다. 또한,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빨래판에 독특한 조형미가 있음을 발견하고, 현대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은 오성만은 우선 발상의 새로움으로 시선을 모은다.
그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재료의 특수성도 있지만 이러한 오브제를 자신만의 언어로 은유적 표현에 집중하여 조형적 탐구를 지속적이며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동일한 재료를 파고들며, 조형적 탐구에 몰두해 왔다는 점이 오성만의 작품을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일 것이다.
표현이 자유로운 종이나 캔버스가 아닌, 빨래판이라는 한정된 재료에 이미지를 형성해나가는 작업은 고민에 찬 성찰과 극도의 인내심을 요구하며, 지극히 힘든 예술적 노동과 땀의 결실로 이루어지는 성실한 작업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주변에서 단순하게 지금까지 보아왔던 막연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는????인간의 삶????을 빨래판에 조명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빨래판이라는 물성을 사용하면서도 성숙한 조형성과 회화성 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빨래판을 오브제로 하여 탁월한 감각에 의한 새로움의 세계를 열어 간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어쨌든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정서를 빨래판에 삶의 단상을 조형적 언어로 풀어 보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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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낡은 것으로부터의 예술_빨래판 작가 오성만 | |
가장 낡은 것으로부터의 예술 빨래판 작가 오성만
아티스트가 작품에 불어넣는 개성적이면서도 고유한 본질을 ????아우라????라고 말한다. 빨래판 작가 오성만은 사라져가는 재료를 예술로 승화하며 자신만의 아우라를 찾았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족의 때 묻은 옷가지들을 빨래판에 두드리고 문질러 깨끗하게 빨아냈다. 적어도 세탁기가 생기기 전엔 말이다. 지금은 애써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 이 빨래판을, 작가 오성만은 예술적 재료로 승화했다.
숙성된 재료, 맛있는 미술 오성만은 경남 의령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동네 빨래터의 풍경은 항상 그의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이 아련한 기억 때문에 그는 빨래판 빗살문늬에서 느낄 수 있는 세월의 질감을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토속적 정서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금 특별한 재료인 빨래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성만은 새 빨래판을 구입하여 고향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이 쓰면서 낡아버린 빨래판을 다시 가져와 작업한다. 물과 비누가 덧칠되고 마르기를 반복한 빨래판은 벌레조차 먹지 않는 견고한 나무가 된다. 그는 빨래판 위에 생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오브제로 도입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의 작업 과정은 마치 요리와도 같다. 요리사만의 감각으로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며 음식을 만들 듯 오성만 또한 자신의 본능적인 심미안에 충실했다. 그는 생활 속에서 습득한 하찮은 미술 재료뿐만 아니라 좋은 문구가 있으면 적어 놓는다. 하찮은 재료와 마음속에 품어왔던 단어 이미지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쯤이면 어느새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 막힘 없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오성만은 이러한 과정을 스스로 ????재밌는 미술???? ????맛있는 미술????이라고 표현한다. 빨래판이 ????맛있다????라는 공감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건 아마도 표현이 한정된 재료에 다채로운 이미지가 중첩되어서다. 그의 빨래판은 일상적인 재료를 오브제로 도입하여 평면, 입체, 정형과 비정형이 자유롭게 조화를 이룬다. 그림과 조각이 분리되지도 않는, 문자 그대로 ????조형(造形)????인 셈이다.
빨래판의 미학 오성만 작가의 기하학적 질서는 자유롭다. 보편적인 질서나 조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철저히 우연성과 즉흥성으로 작업한다. 선과 면, 점과 원이 빨래판에 자유로운 배열을 이룬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읽히는 일관된 정서가 있다. 바로 ????한국적 색채????다. 자연 형태의 단순화, 부드러운 원색의 강조 등 한국 추상미술의 조형적 특성이었던 요소들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국적 정서와 부합한 오방색 계통의 회화적 요소도 빨래판 위에서 조형적 언어로 펼쳐진다. 토속적 정취 때문일까, 그의 작품은 어렵지만 친밀하다. 이를 두고 평론을 한 이점원 교수는 ????좋은 그림은 이해하기 전에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성만 그림이 그러하다.????라고 극찬한다. 그의 미적 감성은 빨래판의 형태뿐만 아니라 질감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성만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늘 새로운 재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인고의 과정을 거쳐 깎고 다듬은 나무 위에 즉흥적으로 조각을 붙이거나 칠한다. 이때 빨래판은 오성만의 회화를 받쳐주는 든든한 배경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이렇게 그는 고졸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을 생성한다. 빨래판 나무에 박힌 오브제들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변화무쌍을 선보인다. 막연하고 관념적인 이미지들이 빨래판이라는 틀에서 재구성된 것은 오성만이 집요하게 조형적 재료를 탐구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는 자기만의 아우라를 추구한다. 빨래판이라는 낡은 재료의 한계성에 얽매이지 않고 참신한 조형언어를 찾고자 끊임없이 파고든다. 그의 작품 중 ????놀이터????나 ????응축된 희망???? ????좌선????등 그가 제작한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극도의 고민과 노력을 빨래판에 쏟아부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작업실에 도시락으로 해결하면서 하루에 열 시간씩 작업에 몰두할 정도로 성실하게 예술적 노동에 매달린다. 그럼에도 그의 빨래판에선 어떠한 욕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박하고 따뜻할 뿐이다. 몬드리안의 절제된 질서보다는 전통 조각보의 비례에 가깝다. 세탁기의 대중화로 사람들에게 잊혀가고 있는 빨래판, 이는 오성만이 살아온 따뜻한 세월, 그가 오랫동안 품어온 아릿한 향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물성이 아닐까. 빨래판은 작가의 그리움을 비춰주는 시간의 거울이자 대중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기억의 매개다. 그리움을 채 느낄 여유도 없이 모든 것이 점점 빨리 변해버리기에, 오성만이 전하는 빨래판의 미학이 더욱 신선하고 아름답다.
(정인호 기자) <Wood planet-W36 art & people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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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에 밀린 빨래판 부처님 가르침을 담다 | |
세탁기에 밀린 빨래판 부처님 가르침을 담다 - 불교신문
그림은 종이에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라. 오성만 작가의 예술무대가 된 공간은 빨래판이다.궂은 일만 하며 물이 마를 날이 없는 빨래판. 얼마전만해도 집집마다 있는 당연한 생활용품이었지만 지금은 세탁기에 밀려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빨래판이 예술로 승화됐다. 게다가 부처님의 가르침까지 담고 있다면 그저 그런 ‘빨래판’이라고 부르기 어렵다.화가 오성만 씨는 현대적 시각으로 빨래판에 독특하고 이색적이며 불교적 색채 농후한 작품을 선보인다. 재료가 특별하기도 하지만 특이한 재료에 예술적 가치를 구현해낸 것은 오롯이 작가의 창의성이 발현된 것이다.이같은 작가의 예술성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소개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을 보면 오 작가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알 수 있다. 작품 ‘삶의 조응’은 삶과 죽음은 길처럼 연결돼 흐르는 하나의 의미라는 것을 보여준다.또 다른 작품인 ‘오래된 욕망’에서 작가는 탐진치,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욕망으로 인한 번뇌를 버려야 극락정토로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좌선’<사진> ‘만나라 판타지’ ‘윤회’ 등 제목만 봐도 불교의 향기 가득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오성만 작가의 ‘빨래판의 미학’ 전시회는 오는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불교신문3058호/2014년11월15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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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만 작품의 얼개 | |
그림은 작가를 닮는다. 오성만의 작업이 보여주는 맛이 그와 꼭 닮았다. 그의 그림은 맑고 따스하다. 그리고 곰삭은 음식처럼 맛이 깊고 정갈하다. 자신의 내면에서 숙성된 맛과 질박한 느낌 속에서 한국성의 포근함이 담겨있다. 이처럼 미적 가치가 내면으로부터 깊이 우러나고 발효된 맛이 추구됐기에 그가 보여주는 한지 조형 작업은 미적인 면으로만 머물지 않고, 인간 본연의 내면과 마음의 향기를 담아낸다. 마치 마음의 골방에서 뽑아낸 듯 맑고 투명한 오성만의 작업에는 특별한 맛과 느낌이 있다.
작가가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한지와 종이를 주재료로 작업한 30여 점이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오성만은 줄곧 한지와 종이 부조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선보이는 작품 역시 보기만 해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유년 시절 고즈넉한 한옥 문살로 동녘에서 햇살이 엷게 창호지를 밀어내며 온기를 품은 채, 들어오는 아늑함과 화사함을 잊지 못하며 그 진한 기억의 파편이 지금 하는 한지 작업과 연결돼 마주하고 있다고 한다.
오성만은 말한다. “나는 늘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추구한다. 기존 방식에서 해각(解角)하기 위해 종이 한 장을 놓고 고민에 빠질 때가 부지기수이다.” 대한민국 한지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오성만은 19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경기미술인상과 용인시문화상을 수상하고 경기미술대전 등 각종 공모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미술협회, 경기미술협회, 용인미술협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작가다. 11일부터 22일까지 인천시 중구 도든아트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다. ☎032-777-5446.
[ 경기신문 / 인천 = 최태용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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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자유함을 내재한 빨래판의 명상과 관조-장준석(미술평론가) | |
미적 자유함을 내재한 빨래판의 명상과 관조 장준석(미술평론가) 최근의 한국 미술은 참으로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나 부산비엔날레와 같은 설치 미술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등 여러 형태의 미술들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미술이 다양하게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염려스러운 것은 한국 현대 미술에 외국의 작품들과 유사한 작품들이 주저 없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작품들은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닌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작가들은 세계화를 운운하고 있을지라도 작품의 예술성과 독창성 측면에서 볼 때 일단 작가로서의 함량에 미달된다고 할 수 있다. 남의 것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과의 예술적 싸움이 부단히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필자는 작가 오성만의 작품 세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오성만은 빨래판 작가로 알려져 있다. 빨래판은 우리 삶의 향수를 독특한 이미지로 담고 있는 생활필수품이라 하겠다. 오성만은 이 빨래판에 새로운 미적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수년간에 걸쳐 전개시키고 있다. 이는 빨래판에 여러 이미지들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쉽지 않은 까닭은 단단한 나무 재질을 깎고 다듬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성만은 빨래판 하나하나에 많은 시간을 쏟아 새로운 형상과 이미지를 담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힘든 예술적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가적 창작 행위는 적당히 시각적인 효과만을 노리고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는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이처럼 작가가 힘든 작업을 꾸준하게 전개시키고 있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작품 창작에 있어서의 진지함이라고 할 수 있다. 빨래판이라는 쉽지 않은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이미지화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단한 노력에 의한 것이다. 빨래판이 지니는 한국인의 서민적인 삶의 정서가 훼손되지 않고 미적으로 승화되어 어딘지 모르게 우리들의 삶의 일부분인 듯한 공존의 존재감이 드러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기에 오성만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막걸리의 투박한 맛과도 같은 텁텁한 이미지들을 담고 있어서 한국적이며, 거기에는 남다른 순수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조형감이 함께 하고 있다. 빨래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질을 미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면서도 오브제의 재질감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보는 이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정형과 비정형이 한데 조화를 이루면서도, 반추상적인 형과 기하학적인 형상들이 한국화 되어 물질의 본성을 살리면서도 은근하다. 작품 속에는 마치 온돌방이 주는 듯한 따스함과 평온함, 친밀함, 포근함 등이 담겨져 있으므로 마음 깊숙한 곳에 흐르는 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이러한 미적 감성은 특히 오성만의 기하적인 형태 속에서 잘 드러난다. 빨래판을 바탕으로 구성된 요소들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자유자재로 배열되고 표현된다는 점에서 매우 상황적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서와 부합된 오방색 계통의 조화를 통해 색다른 회화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빨래판 안에 공존하는 주걱 형태의 이미지는 형상과 비형상의 자연스러운 조화로서, 작가의 손에 의해 무한히 변화가 가능하다. 부드러움과 딱딱함이 조우하기도 하고, 선과 면 그리고 점과 원이 빨래판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이루며 변화되는 상황적인 틀은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할 수 있는 오메가이자 알파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좀처럼 반복될 수 없을 듯이 나무 사이에 단단하게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또한 무수하게 변화될 수 있는 무한의 운동자가 되기도 한다. 빨래판이 지니는 물결의 일루젼 속에서, 혹은 하나의 붉은 점 속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마음의 환상이자 환영이라 할 수 있다. 대화중에 오성만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듯이, 그의 손은 마치 마이더스의 손처럼 닿기만 하면 작품이 되는 듯하며, 그만큼 그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평면과 입체가 따로 없이 그의 삶에 스치는 어떤 것들도 형상화 될 수 있으며 따뜻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늘 새로운 조형언어는 미적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의 진지한 작업태도에서 비롯된다. 빨래판에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를 세월의 흔적과 함께 담아내는 그의 예술세계는 독특하다. 화면 전체에는, 풍부한 감성이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되는 자유로움이 있으면서도 빨래판과 같은 소박함마저 담겨있다. 이는 주변에서 보아왔듯이 단순하면서도 막연한 관념의 작품이 아니라, 빨래판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새롭게 인식하고 해석하며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기에 오성만의 작품세계는 소박하고 흥미로우며 욕심 없는 자유함을 내재하고 있다. 그의 예술적인 원동력은, 부지런하고 건강한 예술적 삶을 출발점으로 하여 새로움을 찾아 고민하는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
ARTIST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