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덜어낼수록 빛나는 여백의 미 - 대전일보 최신웅 기자
덜어낼수록 빛나는 여백의 미


작가는 완결무결함을 지향한다. 극도로 세련된 간결한 묘사와 과감한 생략과 무한한 확장, 부드러움과 투박함 같은 조형어법이 만들어내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은 그가 얼마나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작가는 돌, 흙, 브론즈, 나무, 쇠, 스테인리스와 같은 다양한 재료들을 잘 다루는 작가로 평가된다. 특히 이탈리아 까라라(Carrara)국립미술학교를 나온 유학파 답게 대리석, 화강석, 자연석, 오석과 같은 다양한 형질(形質)의 돌을 다루는 능숙함은 더욱 뛰어나다.다양한 재료와 돌을 이용해 발표한 작품의 시리즈들을 살펴보면 고향인 충북 옥천군 청산면의 따뜻하고 정감 어린 이미지를 부드러운 선과 입체감을 통해 자연과 상생하는 인간의 삶을 소박하게 돌에 담아낸 '청산송 시리즈', 생명 잉태의 근원인 대지(大地)를 심도 있게 표현한 '테라(Terra) 시리즈', 꽃봉오리나 인체를 기반으로 나비를 결합시켜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 '호접몽(胡蝶夢) 시리즈' 등 다양한 작품군을 보여준다.

일련의 시리즈들은 다양한 재료의 질료적(質料的) 특성과 부합(符合)되는 실험을 통해 조각의 태생적 한계인 표현 방식의 극복과 함께 작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돌과 브론즈를 결합시켜 표현한 '산수 시리즈'와 투박하고 토속적인 서정성으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낸 '청산송 시리즈'가 한층 심화된 모습으로 선보인다.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슴, 대지 위에 고매(高邁)하게 피어난 매화(梅花)와 고양이의 농염(濃艶)한 자태, 우물가에 앉아 상념(想念)에 빠진 듯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여인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구상계열 조각가들이 인체 위주로 작업의 주제를 삼았던 것에 반해, 작가의 작업은 자연의 이치와 교감을 주제로 생명 예찬과 순환을 기저(基底)로 삼아 자연의 순리(順理)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서사구조(敍事構造)를 취하고 있다. 또 작가는 과감한 생략과 무한한 확장과 같은 회화적 표현방식의 특징들을 입체 조형에 적극적으로 수용(受容)해 구사함으로써 여백의 미를 통한 사유(思惟)의 폭을 확장 시킴은 물론 여운(餘韻)을 남김으로써 작품에 대한 잔상(殘像)이 오래 가도록 유도(誘導)한다. 바로 이런 장치들은 작가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큰 특징 중 하나이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構築)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제 원숙기에 접어든 중견작가로서 조각계를 위해서나 작가 개인을 위해서나 작가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은 무겁고 길은 험난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작가의 행보가 더욱더 궁금해지고 기대된다.

한남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까라라국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작가는 1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3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2006년 제1회 한국미술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대전일보 최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