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구름천사

구름천사

어린 시절을 말바우(서방) 일대의 산과 밭두렁에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 두둥실 구름이 토끼가 되기도 하고 코끼리가 되기도 했다.

 

그럭저럭 한 모양에다 약간의 상상력이 보태지면 안 되는 형상이 없었다. 그렇게 구름을 거치고 하늘을 도화지 삼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언제 떠올려도 가슴 찡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어린 시절은 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나는 어릴 적 하늘에다 그림을 무척이나 많이도 그렸다.

아마 내가 공기 좋은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이 그랬을 것이다.

나의 그림에는 많은 구름 천사들이 하늘에 떠 있다.

 

어느 구름은 선명하게, 어느 구름은 가물가물하게 나타남으로써 내가 원근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깨끗한 구름은 언제 보아도 바래지 않은 채 날마다 산뜻한 하얀색을 유지하고 하늘의 푸르름과 어울려서 나의 머릿속 화폭은 그지없이 밝고 화려했다.

 

하늘 한쪽에는 작은 구름 하나, 둘, 셋 ···

겹치듯 포개져 곡선을 그리며 하늘 멀리 미끄러지고 그중에서 제일 이쁜 구름은 친한 여자친구 같고 해는 막 중천에 뜨고 흰구름, 천사구름 얼굴에 눈, 코, 입 그리고 연지를 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람은 구름에 기대어서 낮잠이 들었을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구름과 놀고 있을까?

저 파란 하늘과 구름은 근심도 걱정도 없어 보였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1학년~5학년이 되어도 계속 연필도, 크레용도 필요 없는 하늘에다 나만의 그림을 그렸다.

 

내가 아는 모든 형상을 순이, 영희 그리고 나의 소망도 그렸다.

저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곳, 천사들이 사는 곳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나는 되도록 먼 곳을 보고 싶었다.

멀리 보면 볼수록 신비한 천사의 나라가 있으리라.

생각을 많이도 했다.


고향의 향수로 조형된 나의 작품세계

고향의 향수로 조형된 나의 작품세계

- 글/그림 노의웅

 

향수(鄕愁)는 내 그림의 본향(本鄕)이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 개천을 따라서 고무신으로 물을 퍼 올려 미꾸라지랑 피라미를 잡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500여 년을 줄곧 살아온 이곳이 내 고향인데, 고향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후한 인심(人心)을 가진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나 혼자서만 못나게(?)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동네의 이름도, 풍경도, 그 맑고 상쾌하던 공기마저도 모두 변해 버렸다.

 

그러나 다시금 나의 뇌리에서 고향이 살아 숨 쉬고, 고향의 자취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지금은 고층 건물의 숲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는 끊임없이 고향의 자연과 삶의 이상향을 그림 속에서 만나게 한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자연,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를 무언(無言)의 교훈으로 가르쳐 주는 신실(信實)한 자연, 그것은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다.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삼라만상이 저마다의 때깔과 향기로 어우러져 스며든 고향의 자연 앞에서 나는 세상의 허물과 아집의 찌꺼기를 훌훌 벗어 던지고 진정한 자아 발견의 찬연한 꿈에 잠기곤 한다.

 

내 고향은 광주의 ‘서방’이다. 또는 ‘말바우’라고도 한다. 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나 지금의 ‘우산동’, ‘풍향동’ 일대의 상가를 중심으로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까? 하기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1년이면 아니 한 달이면 변하고 마는 게 요즘 세태(世態)가 아닌가. 변하여도 이렇게나 변할 수 있을까? 자꾸만 자연 속에 뒹굴고 자연의 품에 안겨 살던 때가 해가 갈수록 그리움을 더해간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없지 않다. 잘 손질된 아스팔트 길도, 옹립(擁立)하는 빌딩도, 아파트 숲도,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물질문명의 대명사인 상가도, 혼탁함으로 가득 찬 도시의 소음도, 끝이 없이 긴 차량 행렬도 없어 좋았다.

 

명거미가 질 무렵 지금의 대인시장에서 서방까지 밤길을 혼자 걷노라면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호랑이 이야기이며 귀신은 또 왜 그리 많았던가. 종류도 다양한 귀신들이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호젓하고 쓸쓸한, 거기에 괴기스러움마저 감돌던 그때의 밤 풍경은 내 젊은 날의 감성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었다. 내 고향은 무등산 경호원을 방불케 하는 소나무가 뒷산의 포근함을 더해주고, 실개천은 마을을 휘감아 광주 희치금의 시청 부근으로 흐르는 전원적 풍경이었다. 봄이면 개천을 따라 마을 아이들과 피라미를 잡고, 물장구도 치며 뛰놀고, 가을이 오면 맑은 하늘이 나의 무대, 내 공상, 환상의 무한한 공간이며, 여기에 내 감성의 응어리들을 모아 구름에 실어 흘려보냈다.

 

황금 물결이 출렁이는 결실의 들을 바라보며 추석이면 동산에 떠오르는 중추 명월에 슬며시 자리를 내주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차라리 고요하고 아담한 산수화 한 폭이다. 특히 지금은 전설처럼 남아있는 태봉산(지금의 광주역)을 옆으로 끼고 증기 기관차가 덜컹덜컹 숲속으로 미끄러질 때면 차라리 서글퍼진다. ‘국(國)과 극(極)은 통한다’고 했던가!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에 차라리 울고 싶어졌던 것 이리라. ‘서방’ 마을이 없어지고 복잡한 상가로 변모했다. 정말이지 그 안타까운 심정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고향의 상실(喪失)에 대한 비해(悲哀)’는 나에게 조속(速?)한 답답증을 선사했고, 끝이 없는 고향에의 그리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작가의 작품세계는 성장 과정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수십 년을 ‘서양화’라는 재료를 가지고 그려왔지만 고향의 향수를 재산목록 1호쯤이나 소중하게 포장하여 가슴에 묻은 채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한다는 것이 결국은 개천을 따라 피라미 잡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오히려 감사하기만 하다. 내 그림 속의 주요 소재인 산의 모습, 구름, 초가, 자연은 모두가 그때의 풍경들이다. 그 풍경들과 정감을 그림 속에서나마 만날 수 있는 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자연 속에 관념의 소재로 머물지 않는 진실한 삶의 여망을 담은 상징물로서 한 칸 초옥을 짓고 싶다. 거기 아득한 마음을 앉히고 자연의 호흡 속에서 한 점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살고 싶다. 나의 작품세계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노의웅의 작품에서는 동시대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향과 서정성이 나타나고 있다. 큰 산과 강 그리고 학이 나타내는 신마을과 강마을의 서정성, 우리가 아무런 걱정 없이 조용하게 살아가고 싶은 이상향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속에서는 우리 삶의 안식처가 있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으며, 편안하게 보이는 시각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 또한 내가 성장하고 살아온 고향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되어진다.

 

내 고향 ‘서방’ 마을의 놀이터에 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연한 자태로 버티고 서서 인고(忍苦)의 아픔을 이겨내던 나목(裸木)들이 푸르름에 대한 기대감으로 꽉 차 있다.

 

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안타까워 견딜 수 없을 때 붓을 들고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향수와 서로 교감한다. 내 고향의 향수를 나만의 감성적 색채로 표현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고, 거기서 누릴 수 있음에 또한 감사한다. 나는 오늘도 이 땅에 태어난 기쁨으로 화폭에 내 고향의 환상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