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5 | Korean | 석창우의 선과 묵과 누드의 세계 - 이중섭의 열정을 화폭에 담다 |
의수화가 석창우 28회 초대 개인전(2010 장애인 문화예술향수 지원 사업) “석창우의 선과 묵과 누드의 세계 - 이중섭의 열정을 화폭에 담다” ○ 전시회 개요 - 전시기간 : 2010.10.27(수) ~ 11.2(화) - 오 프 닝 : 2010.10.27(수) 17:00 · 이영희 선생의 아름다운 찻자리 Tea Art 연화차 시음 · 세미 서수옥 선생의 이생진님의 시 '이중섭의 독백’ 낭송 · 석창우 가야금 연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이수자 정정아선생의 창우향과 정정아 선생의 가야금 병창 · 연극 ‘길 떠나는 가족’ 출연 배우들의 공연과 석창우 시연회 - 관람 시간 : 평일·토·일 10시~19시, 화요일 10시~12시, 무료입장 - 전시장소 : 부남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63-4번지 B1, (02-720-0369) - 주 최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10월 27일, 우리나라 제1호 의수화가 석창우(본명; 석순기)가 2010 장애인 문화예술향수 지원 사업으로 제28회 초대 개인전 ‘석창우의 선과 묵과 누드의 세계 - 이중섭의 열정을 화폭에 담다’를 인사동의 부남미술관에서 연다. ○ 석창우(본명; 석순기)는 고압전류(22,900V)에 감전돼 두 팔을 잃고 의수로 작업하며, 동양의 정신이 깃든 ‘서예’와 서양의 ‘크로키’ 기법을 결합한 ‘서예크로키’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하며 두 팔 없는 신체적인 장애를 창의적인 예술로 극복한 성공적인 화가로 우뚝 서 제3회 장애인문화예술대상을 수상하였다. ○ 이번 전시회는 제30회 서울 연극제 폐막작으로 우리 민족의 대표 화가 이중섭의 삶과 그림 그리고 열정을 담은 <길 떠나는 가족>(연출 임형택)의 공연 한 달 전부터 석창우가 연습장면과 공연 모습을 현장에서 서예크로키로 그렸으며, 공연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출연진이 몸으로 표현한 이중섭의 대표작 '소'를 석창우 화백이 모든 관람객이 지켜본 가운데 '서예크로키'(140*240cm 화선지)로 직접 시연한 작품 등이 전시되며,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시작부터 마지막 '소' 표현 부분까지 '수묵크로키'로 담은 작품을 순차적 구성 방식으로 전시하여 누구나 전시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을 감상 할 수 있고 나아가, 이중섭의 삶을 조명코자 한다. ○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의 연출자 임형택 교수는 현시대에 이중섭과 같은 열정으로 작업하는 작가로 뜨거운 가슴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의수화가 석창우'를 대비해 연극과 미술의 통섭예술을 기획하였으며, 석창우 또한,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만으로 눈부신 작품을 일군 이중섭을 새로 조명함으로써 현시대에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순수한 열정'이 무엇인지, 나아가 당신도 열정 속에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자 “석창우의 선과 묵과 누드의 세계 - 이중섭의 열정을 화폭에 담다” 개인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 전시회의 오프닝에는 석창우의 가야금 연주로 무형문화제 제23호 이수자 정정아선생의 창우향 창에 이어 가야금 병창과 연극 <길 떠나는 가족>에 출연 했던 배우들이 연극 당시 마지막 포즈인 이중섭의 대표작<소>의 형상을 하면 석창우가 현장에서 수묵크로키로 시연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 이번 전시로 열정의 천재화가'이중섭'을 부활시킴으로써 잊혀져있던 이중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나아가 경제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좌절하는 이들에게 불운한 삶 속에서도 열정의 꽃을 피운 이중섭과 두 팔을 잃고 비로소 새로운 꿈을 일구었다는 석창우 화백의 작품을 통해 뜨거운 열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이 됨으로써 그들에게 잠재된 열정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가 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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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 Korean | [석창우 28회 개인전 서문]아기의 얼굴, 동물의 몸짓 |
석창우 28회 개인전 서문 아기의 얼굴, 동물의 몸짓 -석창우 선생의 그림 전시회를 위해- 임형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교수 극단 서울공장 예술감독 아가의 얼굴, 동물의 몸짓. 석창우 선생의 얼굴,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언뜻 떠오르는 단어이다. 아산방조제 인근의 조개구이집이었다. 약주를 좋아하시던 화백이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쉴 새 없이 안주를 집어드리던 여자배우에게 선생이 화를 낸다. 숨쉴 틈을 달라고. 그래도 난 화를 내는 선생의 얼굴에서 까다로운 어른의 그것이 아닌 응석부리는 아가의 얼굴을 본다. 한 여름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한 참을 땀을 흘리고 있을 때, 선생이 먹이를 발견한 암사자 마냥 붓을 내갈긴다. 그림에는 배우들의 화려한 몸짓, 얼굴 표정의 디테일은 오간데 없이 뼈와 살만이 남아 뒹군다. 아직은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정글의 동물들이다. 화려한 의상이 아닌 땀과 피가 뒤범벅이 된 몸짓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이후 난 석창우 화백이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것을 그려내는 그의 몸짓을 보면 동물의 섬뜩이는 본능을 본다. 그림은 그 본능을 그대로 드러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척이 없다. 잘난 척도 못난 척도 없다. 그의 그림은 알몸이다. 그의 그림은 가장 동물적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본능을 일깨워준다. 그의 그림은 순간이다. 순간이기에 장식을 할 시간이 없다. 그저 순간이기에 진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흔적이다. 그 흔적에는 세월과 아픔을 이겨 낸 그의 고뇌가 긍정의 힘으로 서려 있다. 그래서 선생에게 막 시작하려던 우리 연극만들기 집단의 이름을 써주시길 부탁드렸다. ‘극단 서울공장’ 화려한 장식을 걷어 내고 알몸과 날소리의 진실만이 존재하는 연극만들기를 염원하였기에... 그리고 선생에게 또 부탁하였다. 극단 서울공장이 연극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중섭 화백의 <길 떠나는 가족>을 그려주십사하고. 중섭의 눈에 비친 소가 하얀 뼈였듯이 석창우의 눈과 몸은 소가 걸친 가죽, 털, 인상 등을 그릴 여유가 없다. 그에게 남는 것은 소의 자국, 흔적일 뿐... 혼이 남아있을 뿐 절규의 소리만이 들릴 뿐 석창우 화백과 인연을 맺은 게 그럭저럭 7년이 넘어간다. 극단 서울공장의 창단 공연을 준비하면서 뵈었으니 극단의 삶을 온통 같이 한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선생이 흑백의 그림에 색깔을 추가하기 시작했을 때 적지않이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수식인가? 설명인가? 그건 우려였다. 그의 그림에 덧입혀지는 색깔은 수사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획득한 우리 맘의 색깔이라는 것을... 그가 이제는 올림픽도 그리고 김연아도 담고 자전거 바퀴도 담고... 세상을 주유한다. 옛 선비들은 나비가 노닐고 학이 뛰노는 모양새를 붓을 놀려 그림에 담고 글에 담았다. 그러고 보면 석창우 화백의 그림은 그림을 귀로 듣고 말을 움직임으로 볼 줄 알았던 시인이자 가객의 그림이다. ‘그림은 손의 잔재주가 아닌 혼의 흔적이요. 그림은 보는게 아니라 듣는거요.’라고 외치는 선생이 우리의 연인, 시인, 광인으로 늘 잔잔히 남아 계시기를... 2010. 09.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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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 Korean | 신심의 표리일체, 그 여백 아래 휘도는 자유로움 |
신심의 표리일체, 그 여백 아래 휘도는 자유로움 -작가 석창우 작품에 대한 소론 홍경한(미술평론가, 경향 article 편집장) 여백, 그 틈새마다 감동이 새겨진다. 일획으로 가로지어가는 붓질 사이엔 신념이 자리를 부여받고, 채움과 비움의 이치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나드는 순간 장애 화가라는 세속적 편견마저 허물어진다. 그뿐이랴, 리듬을 타고 도는 그의 동세엔 되레 즐거움이 쌓이니, 그야말로 생명은 명상의 길에 있음이요, 언제나 괴롭지 않고 즐거움이 채워지면 곧 깨달음에 이른다는 선정(禪定)과 맞닿는 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만큼 일궈짐에 관한 환희와 희열이 집적되며 공유되고 또한 순환된다. 이처럼 석창우의 작품엔 순환이 놓이며, 그 순환은 특정한 띠 없이도 타자와 화자를 잇는다. 그러나 결국 그의 그림들은 삶에 대한 순응이요, 탈바꿈이자 다시 태어남을 올곧이 새기는 심필(心筆)에서 비롯된다. 주지하다시피 석창우의 그림엔 지필묵(紙筆墨) 혹은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한국화의 테두리 내에서 규정되지 않는다. 한지에 먹을 주로 사용하는 장르에서 자주 발견되는 묵법과 필법, 준법이나 농담 효과 등이 우세하기보단 인체의 균형과 움직임, 입체감, 구조성, 형태의 특징 등을 단시간에 재빨리 포착해서 그리는 서구의 크로키(croquis) 화법과 행위예술에 버금가는 양태가 주로 목도된다. 따라서 그의 그림들 다수는 시각적 외견에 더해 한층 단순화되고 요약된 화풍의 발원, 그 형과 의미와 감성의 교류와 호흡에 의의가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 실제로 추상성과 상징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완성되는 그의 작품들은 대개 표피적인 반추상의 인체 형상들로 나타나고,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잠시 정적에 휩싸이게 할 정도의 생동감과 더불어 화면 밖으로까지 이어지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흘리거나 무의식적으로 그어진 붓 자국들(소위 물파(物派)적인-행위적 개입)은 석창우 작품만의 강한 아우라가 되어 타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만든다. 특히 수성 잔뜩 머금다 이내 날아가 버린 수묵의 흔적들은 회화의 물성을 한껏 내뿜고,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는 선(형태가 있든 없던)과, 인체를 비롯한 유무형질의 각종 자연물들은 화면을 누비는 에너지와 어우러지면서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로 언급하는 먹과 서예의 접목(추상성을 지닌 문자), 동작의 신기함과 감탄, 형세의 이면(裏面)에 존재하는 표현의 갈망과 생의 즐거움을 노래하려는 아름다운 마음에 있으며, 연필을 갈고리에 끼우고 연습하던 시절부터 간직해온 예술적 신념이 포착된다는 데 있다. 즉, 그의 많은 그림들 속엔 과거 전기 사고로 인한 작은 비극적 여운이 심층부 어느 지점에 안착되어 있지만, 낙관적이며 수용적인 작가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예술에 관한 신심(信心)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표리일체(表裏一體)로, 가시적인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힘찬 필세와 그것이 천명임에 순종(順從)하는 작가적 태도로 나타난다. 또한 예술은 행복이고 즐거움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누구나 인식 가능한 사물과 인체를 화면에 부분적으로 배치하여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 반면, 또 다른 부분엔 추상적 질서의식을 투입함으로서 자연스러운 중간계를 형성시킨다. 이것이 비록 그의 그림에서 온전히 목도되는 것은 아니나, 그 역할은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엔 추상과 구상, 생명의 운율(韻律)이 녹아 있으며, 그 자체로 세상이치와 만물의 주관과 객관이라는 양자 공간성이 심어지는 분동(分銅)이 얹혀 있다. 나아가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로움이 모두 이곳에서 발현될 뿐만 아니라,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지펴낸 여러 수작들이 형과 상, 선과 색이라는 혼돈을 융합한 채 그 중간계 속에서 구현된다. 석창우는 언제나 형태만으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구조적인 현장감을 체험하게 하는 프로세스에 인색하지 않으며, 질서와 혼돈이 은유적으로 숨어 든 화면의 중심에 인지적 사물을 그려 넣음으로써 재차 질서의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공유를 이끈다. 이것은 석창우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알고리즘(algorithm)이 되는데, 즉 1차적인 형상은 지극히 지각적인 구상이지만 그의 정신과 기법은 추상이 되고, 추상인가 하면 자연형태를 무시하지 않은 비구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음이다. 이 가운데, 화면의 분할과 주제의 재구성, 공간의 확산과 수축 등 모든 조형적인 방면에서 이뤄진 평면감각은 강한 물성의 오브제를 배치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묵 크로키’ 자체로 구성의 탄탄함을 갖게 한다. 그 탄탄함은 이어 마치 구원을 갈망하듯 화가로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의 실존적 상황이라는 필터를 통해 고뇌와 어둠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극한에서 그 역으로서 빛의 세계로 향하며 감각을 포용한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쩌면 연민의 시선이며 번뇌와 아픔을 잊거나 혹은 대리하는 이가 지닌 사랑의 눈길이 회화적 메타포를 통해 복선처럼 내재된 채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갤러리 빈'에서의 이번 전시도 그의 이러한 특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대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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