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서양화가 선종선 | LAYER ± LAYER, 회화적 앙장브망(Enjambement)

서양화가 선종선 | LAYER ± LAYER, 회화적 앙장브망(Enjambement)

 

 

부조화에서 오는 상상을 그려보는 전시, 서양화가 선종선의 수십여 년간 앙장브망 회화적 모색을 담은 전시에 초대합니다.

한해 동안 힘들었던 일상을 벗어나 현실 너머 저 밖의 또 다른 세계, 피안의 풍경을 만나는 회화성이 눈부시도록 특별한 전시이며, 연말연시에 인생의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의미가 큰 전시임을 자부합니다. 특히 강남권에 위치 한국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는 아트뮤제 갤러리가 전체 전시기간 중 휴무일(연말 31일과 신정)만을 제외하고 매일 작품관람이 가능하며, 상시 도슨트가 상주하고 있어 앙장브망에 대한 작가의 철학, 작품설명 등을 지원합니다. 꼭 방문하시어 큰 희망 만드시길 바랍니다. 

 

낯설게하기

아트뮤제 전시에서 선보이는 선종선 작가의 ‘Layer Series’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병치시킴으로써 드러나는 낮설음에서 오는 ‘회화적 앙장브망’을 추구하고 있으며, 관람객이 작품 속 상충된 풍경들을 보며 관계성 내지는 낮설음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한 회화적 긴장감을 의도합니다. 작가의 작품형식인 앙장브망을 주목하는 이유는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던 시 창작기법 중 하나인 앙장브망(Enjambement)의 유래와 함께하며, 의도적으로 시행을 바꿈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낯설음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시적 효과를 달성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앙장브망의 출발점을 엿볼 수 있는 초기작(1976년작) Layer Series가 자리하고 있는데 캔버스의 상단에는 1976년 당시의 광고물들, 버스, 택시들이 가득찬 도심 이미지가 하단에는 평화로운 농촌의 풍경을 배치함으로서 낮설음을 표현하였으며, 추구하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포기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에서 보면 회화적 앙장브망 48년차라 할 수 있으니 한국미술사에서 평생을 걸어온 앙장브망의 대표작가라 할 것입니다.

 

이번 아트뮤제에서 선보이는 선종선 작가의 앙장브망 경향의 작품들 20여점은 캔버스 화면에 전혀 다른 시공간을 병치시킴으로 발생하는 낮설음이 가득합니다. 무채색 바다풍경과 여명의 숲을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 대비시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찢겨진 캔버스 자락과 실오라기까지의 현실적 이미지들과 여명의 숲이며 밀려오는 파도까지 마치 들여다보듯한 구도의 비현실적 이미지들이 발견됩니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구도들의 다양한 형상화, 미세한 캔버스 천의 리얼함을 극대화시킴으로서 현실을 더 현실적이게 하는 극사실적 묘사까지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작가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천으로 닫히고 가려져 있는 ‘장막’인데, 마치 평생 걷어내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처럼 각인시키는 장막을 캔버스 전면에다 할애하고, 걷어내기 어렵도록 가득 채운 듯합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찢겨진 캔버스 구멍 밖으로 현실 너머 저 밖의 또다른 세계인 피안의 풍경을 마주하도록 하고 있는데, 즉 상충된 풍경들의 병치가 주는 긴장감을 서사적 회화미로 극대화시켜 더욱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얼마전 화려하고 섬세한 붓터치와 엔터테인먼트적 활동이 성공작가의 기준인 것처럼 가볍기만 했던 최근의 미술시장의 현황들이 답답하기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전시는 화가 선종선의 그침 없는 탐구와 진정성 그리고 진지함을 느껴볼 수 있는 예술을 만나게 되며, 부조화에서 오는 색다르고 깊은 철학을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예술을 논하는 모든 이에게 온고지신의 역발상에 도전해보시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아트뮤제 문정희 대표

 

 

>>전시개요

아티스트 : 서양화가 선종선 

전시주제 : LAYER ± LAYER

전시기간 : 2023.12.20 ~ 2024.01.16.

휴무(2일) : 23년12/31, 24년 1/1

전시주최 : 아트뮤제 갤러리 

전시장소 :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09-3

전시문의 : 무료 개방, 02-543-6151

 

 

내러티브로서의 일상

내러티브로서의 일상

 

나이 먹는다는 것은 어느 한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가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그린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 알 것 같다. 과거 얼마나 많은 관념적 사유와 틀에 나를 옭아매고 스스로의 예술을 부정하고 의심했던가!

 

그림은 그리는 것이다. 아무리 효과적인 테크놀로지를 차용하고 개념과 개념을 교배해서 한 관념으로 짜 맞춘다 하더라도 거개는 요설(妖說)에 지나지 않았다. 삶의 구체성에 기인한 내용과 정수(精髓)를 고갈시킬 만큼의 순수한 육체적 노동에 의한 예술이 아니라면 그 진정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나의 주변 모든 일상은 장엄한 경전이다. 일상적 주변을 일상 그 이상으로 볼 수 없을 때 삶은 부박해진다. 지는 노을이나 식탁에 놓인 빈 술잔이나 모두 경전이다.

 

 

‘너’와 ‘나’가 분절된 낱낱의 존재라면 우주는 무의미다. 신화도 없고 종교도 없고 따라서 당연히 삶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 한줄기, 작은 풀씨하나 그리고 내 한숨과 너의 웃음이 촘촘한 인드라(Indra)의 구슬로 맞닿아 비추고 있으니 그 촘촘한 그물코의 연계성이 바로 경전이 되고 우주적인 서사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 경전은 독경(讀經)이 아닌 간경(看經)으로 읽어내야 한다.

 

나의 예술은 그 경전에 대한 간경 후기라 해도 틀리지 않다. 모든 일상이 은폐하고 있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한 서사적 구조. 이것이야말로 나의 예술에 있어서 외부로부터의 미학적 관념, 지식 따위들을 일순에 파기시키고 유유자적하게 하는 원천이며 내 생명이 부지되고 있는 동안의 시간을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라 할 것이다.

선종선 작가와의 대화_서사적 일상과 말걸기 그리고 자유의 확장

[권동철의 그림살롱 111회]서사적 일상과 말걸기 그리고 자유의 확장

 

- 선종선 작가와의 대화

 

대개의 경우 어떤 풍경들을 뚫어지게 응시하다 보면 그것이 전혀 다른 낯선 풍경으로 변환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텐데 그때 주변 사물들과 시·공간적으로 긴밀히 유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고(思考)는 그것들을 통해 체험된 자료의 축적물이다. 작가는 일상적 사물이, 개개의 의미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사물, 사건과 연계된 인과(因果)관계의 서사구조에 주목한다.

 

밀려오는 파도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혹은 억새 하나를 응시하면서 ‘나무의 이야기를 나무의 서사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무채색 계통이지만 관점을 불필요하게 분산시키는 것을 경계한 무채색이 아닌 그만의 고유한 색으로 작품세계 의미를 펼친다. 여기에 탄탄한 인식토대에서 창조되는 작품들은 일상 뒤에 숨어 있는 은유적 풍경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일상 속에 널려진 무수히 진부한 사물과 사건에 숨겨진 또 다른 실체, 곧 그것들의 이미지로서의 서사구조를 읽어내려 하지요. 사물의 원시적 관찰과 의심을 통해 나무 하나, 풀 한포기라도 모든 것을 최초로 마주하듯 일상적 요소에 처녀성을 부여하고 전혀 새로운 문맥으로 그 일상을 읽어내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일상에 대한 말 걸기, ‘현재’와 나(我)와 주변과의 의미를 연동하고 존재의 폭과 자유를 확장해가는 작업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화가 선종선 작가는 중앙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코벤갤러리(밴쿠버, 캐나다), 현대아트갤러리(서울), 백송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11회 가졌다.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

선종선 작가의 작품세계

Layerd landscape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작가의 섬세하고도 농익은 필력에 절로 감탄이 나오며, 캔버스위 캔버스를 그리고 중첩된 이미지의 형상이 초현실주의와도 같은 화풍을 자아낸다.

 

캔버스천 너머로 보이는 여명의 숲,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눈에 거슬리도록 찢겨진 캔버스 자락과 실오라기까지…. 더 찢기고 없어져버리기라도 할 듯 아슬아슬한 가벼움이 현실을 사는 우리네 인생같기도 한 캔버스를 뚫고 당장이라도 이상향으로 건너가고픈 현대인의 고달픔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환한 화면에서 멀리 긴 호흡하듯 어렴풋이 보이는 미래와도 같은 숲길과 수평선이 긴 바다와 파도들까지 긴장감 넘치는 화면이 있어 신비로움이 극대화된다.

서양화가 선종선 | 冥想속 나를 통해본 드맑은 彼岸의 바다_이코노믹리뷰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서양화가 선종선 | 冥想속 나를 통해본 드맑은 彼岸의 바다

권동철의 그림살롱 111회 | 서양화가 선종선…‘앎 가운데에’ 연작

 

 

하룻밤사이 생겨나다니, 물방울이여. 조는 듯 안개 걷히니 막 파랑(波浪)에 떨어지려는 덧없는 편력(遍歷)이여. 아, 불쑥 눈물이 날 듯 기꺼워라.

 

빛나는 찬사처럼 균등한 약속처럼 파란 물결이 밀려오던 아침. 꿈을 실어 나르는 달팽이는 그 느린 걸음에도 어떻게 심해(深海) 고래의 전설을 전했을까. 어린 손등처럼 뽀얀 결로 다가와 청정한 양식을 한량없이 전하는 파도여! 바람을 다스리는 풍륜(風輪)이 나를 휘감다 지나갔다.

 

나(個我)는 바람이다. 누구나 꿈을 꾸듯, 지나던 사문(沙門)이 허리가 깊게 패인 자작나무의 위태로운 상처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픔은 아물 것이라 위로했다. 낯섦. 이채로움의 풍경. 일상적 관념의 해체…. 사문은 몇 개의 나무의미를 강화시키고 홀연 사라졌다. 모름지기 ‘뒤바뀐 생각이 곧 오염이니 뒤바뀐 생각이 없는 것이 본성’이라는 유마경(維摩經)의 글귀도 함께 남기고서.

 

 

나무가 본 것은 무엇일까. 아니 무얼 말하려는가. 견고한 믿음처럼 한 곳에 서서 저 푸른 바다 속 그리움처럼 불현 듯 불쑥 솟아나는 산, 고래, 달과 태양, 어떤 꿈을 기다리는 것인가.

 

유리알처럼 반질반질한 조약돌. 맨발로 걸을 때마다 짜그락짜그락하는 발자국 소리에 ‘바보스럽지만 너다웠어. 난 그런 것이 맘에 들어’라던 젊은 날 시린 풋사랑의 올망졸망한 언어들이 팝콘처럼 돌 틈 사이 톡톡 튀어 올랐다. “그대 철없어 내 입안엔 신 살구내음만 가득하고 몸은 파계한 젊은 중 같아 신열이 오르니 그립다고 그립다고 몸써리치랴/오 빌어먹을,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두고 온 사내”

<김사인 詩, 예래 바다에 묻다>

 

 

동틀 무렵, 연잎에 구르는 동그란 집착

편평한 대지의 끝, 하늘 맞닿은 지평선. 저 멀리 미묘한 곡선의 정적으로 남겨둔 장엄한 산. 길 위에 미망(迷妄)의 걸음이 여명의 공기를 가른다. 누가 보고 싶어, 무엇에 반해 새벽 잠 깨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첩첩산중으로 가는 산언덕 길목 뿌옇게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안개가 걷힐 때 ‘누구나 자신의 뒷모습을 못 보는 것’이라며 무리지어 핀 진분홍 백일홍이 일러 주었다.

 

산이 뿜는 신선하고도 차가운 공기, 다함없는 배품의 회향(廻向)이 역설의 신비를 일깨워 준다. 그 갈래를 따라 들어가면 필연의 근원을 만날까. 명징한 해답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명료한 것은 없는데 존재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오오, 무명(無明)의 집착을 녹여줄 저 떠오르는 태양의 불길 속으로 “멀리멀리 가는 나의 한숨/길이여 누설된 신비여.”<정현종 詩, 길의 神秘>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

서양화가 선종선|은유적 풍경

서양화가 선종선|‘은유적 풍경’ 초대전

 

 

여명(黎明)의 숲,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한 자리…. 화면은 깊은 단잠처럼 고요하다. 발자국 보다 긴 그림자. 새들도 아직은, 곤하게 꿈결을 헤매는 시각. 의자는 비어있다. 아니 빈 의자에 앉기나 했던 것인가.

 

젖은 발목이 낮은 의자 때문은 아니었듯 바지 끝이 마른 것 역시 밀려간 파도의 배려만은 아니다. 이것이 고백(告白)이다. 하루도 수없이 오가는 마음의 파랑(波浪)!

 

이번 선종선 화백의 ‘은유적 풍경(Metaphorical Landscape)’ 기획초대전은 거친 물살을 헤치고 드디어 생(生)의 의자 하나에 앉아 가슴으로 노래 부르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는 자리다. 그리고 왜 선종선 작가가 화단의 주목을 받는지 하여 관람자가 평온한 표정과 차분한 걸음으로 삶이라는 그 향연(饗宴)의 길목으로 한걸음씩 걸어가는지 확인하는 전시다.

 

27일부터 4월9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74번지 갤러리 통큰(Gallery Tongkeun)에서 열린다. (02)732-3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