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양대만의 ‘살아있는 현재’ _황선영(미술치료학 박사)
양대만의 ‘살아있는 현재’


황선영/미술치료학 박사


“거리의 풍경이 지나간다. 한 순간이 포착된다. 이를 인지하는 지금 순간을 나는 과연 현재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나에게 감각된 한 순간은 이미 지나갔지만, 나는 계속 그 안에 머물고 있다. 풍경은 내면으로 들어와 마음속의 재료들과 합쳐진다. 그리고는 내 안에서 새로운 풍경으로 다시금 지각된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모호한 느낌...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풍경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선상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양대만의 작품에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차와 거리의 풍경이 등장한다. 차와 거리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그에 의하면, 이것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양대만에게는 지금 자신 앞에 놓여있는 대상이 가장 중요하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자신에게 친숙한 대상들과의 대화에 익숙하다. 이들과의 대화는 양대만 자신, 즉 ‘나’를 의식하게 해 준다. 

양대만이 ‘무엇인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대상에 대한 의식’이다. 의식은 대상의식 속에서 대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바로 현상학적 개념을 정립한 후설 (Edmund Husserl, 1859~1938)의 ‘지향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후설은 대상을 대상이게끔 하고 또 이를 통하여 감정 작용, 욕구 작용 등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을 표상작용(다시 말해 객관화 작용)이라 하였다. 만일 의식이 이런 표상작용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의식에 대해서 대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후설은 감각된 외부 대상이 이와 유사한 표상작용과 결합하여 내적으로 의미가 만들어지는 연상 작용을 여러 가지 지향성 중 하나의 작용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그가 탐구하고자 했던 것은 자연적 시간이 아니라 의식진행의 내재적 시간이다. 그것은 현실적 공간이 아닌 현상학적 공간이며, 그럼으로써 현재적 관점에서 ‘살아있는 현재’가 되는 것이다. 

양대만은 실제 보고 있는 대상과 이를 의식하는 자신 사이에서 무엇이 현실이며, 또 언제가 지금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이에 대해 후설은 시간의식의 객관적 시간 배제에서 감각과 지각을 구분하고, 지각이 좀 더 근원적인 시간을 구성하는 작용임을 설명한다. 감각된 것은 지각된 것에 의해 구성되며 또한 지각된 것의 현상학적 자료이다. 지각된 것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의식 내재적 시간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후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자루의 분필에 주목해 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또 떠보자. 이 때 우리는 두 가지 지각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일한 분필을 두 번 본다고 말한다. 이 경우 우리는 시간적으로 분리된 지각의 내용들을 갖게 된다. 그리고 현상학적으로 시간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즉 간격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대상에는 어떠한 분리도 없으며, 대상은 동일하다. 말하자면 대상 속에는 지속이, 현상 속에는 변화가 있게 되는 것이다.”
감각이 직접적으로 경험될 때 그 감각의 여운은 일정 시간 남아있게 되는데, 그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그 감각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 변양되기 때문이다. 후설에 의하면 감각이 상상으로 이행되는 경우, 항상 변화되는 시간적 성격을 유지하고 내용도 각각의 순간마다 점차 뒤로 밀려 후퇴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변양은 더 이상 감각의 일이 아니며, 자극을 통해 야기되는 것도 아니다. 자극은 현재의 감각내용을 산출하게 된다. 자극이 사라져버리면 감각 또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감각은 그 자체로 창조적이 된다. 즉 감각은 내용적으로 같거나 혹은 거의 같은 내재된 상상표상과 시간적 성격에 의해 풍부하게 변모되어 새로운 상상표상을 스스로 산출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은 또다시 부착되어 있는 새로운 표상을 일깨운다. 내부로 인지된 감각은 차나 거리 등 외부대상이 없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감각들 혹은 그 이전에 표상된 것이 실마리가 되어 또 하나의 상상표상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변양을 통해서이며 또한 지속됨으로써 유지된다. 후설의 이론과 연관되어 생각해 보자면 양대만의 작업은 외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시작했지만 주어진 것들을 현상학적 문제로 삼아 심적 흐름에 대한 의식의 층들을 분석하며 자연적 경험을 넘어서는 토대를 찾고자 한다. 

양대만은 말한다.
“나는 왜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까? 혹시 이제까지의 경험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동경하거나, 찾아보거나, 혹은 도피하고자 하는 것들이 모두.”
사람들은 세상과 교류하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아 가면 갈수록 누구에게도 온전히 의존할 수 없고, 요구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세상 속에서 스스로 ‘내가 어떤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만함을 깨달아 간다. 여기서 의식이 지니는 지향성은 구체적인 경험적 자아가 체험한 총체이기도 하고, 내적 지각의 반성적 의식을 의미하기도 하며, 또한 대상에 대한 의식을 뜻하기도 한다. 후설은 다양한 감각내용이 해석되면서 자기 동일적 대상과의 의식적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파악 또는 통각이라 하였다. 지향성은 파악작용과 감각내용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파악 내지 통각에 의해 자기 통일적인 구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흐름이 경과되면, 그 흐름을 회고할 수 있으며, 그 흐름은 그것이 나타나는 바와 같이 기억 속에서 통일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도 역시 명확하게 그 의식 속에서 통일성으로서 구성된다.”
양대만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대상은 마치 차 속에서 움직이며 한 순간 감각했던 바깥 풍경을 포착한 듯 보인다. 이 순간은 현상학적 시간으로 시간객체에 의한 통일적인 통각작용 뿐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시간의 공간을 의식 내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객체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을 구성하는 흐름은 단지 흘러가기만 하고 변화하기만 하는 흐름이 아니라 양대만에 의해 감각되며 변양되어 다시 현재적 관점에서 지각되고 변양된 ‘지금’으로서 나타나는 대상성이다. 이는 후설의 과거 지향적 통일성의 구성으로  ‘순간적-동시에 있음’을 뛰어 넘어 항상 새로운 것을 추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객관적 대상에 대한 시선이 생겨나며 구성된 통일성으로서 언제나 흐름 속에 있는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양대만이 처음에 궁금해 했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풍경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선상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현상학자 헬트(K. Held)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살아있는 현재’는 ‘지금’ 시간이라고 할 수 있기 이전의 모든 시간성 자체의 근원점이요, 반성이 시작되는 근본 현상이다. 후설에 의하면 근원적인 의식 변양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순수자아에서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