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유인수, 고독한 현대를 관통하는 휴머니즘-류석우
고독한 현대를 관통하는 휴머니즘

류석우/시인 미술시대대표

  도시와 사람, 흔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이 주제가 화가 유인수의 오랜 화두였다. 왜 그는 모더니즘 약식의 이런 조형을 오랫동안 보여준 것일까? 
  연령으로나 작가적 위상으로나 중진의 반열에 들어선 그가 체험하고 느껴온 시대의 풍경들을 그는 그림이라는 언어로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황량하고 고독한 도시, 거기에 은닉되듯 들어서 있는 사람들, 빛 보다는 어둠, 희망적이기 보다는 절망적인, 따스한 여유보다는 쓸쓸한 절박함이 그의 전작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우리시대의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복합건물 같은 그 도시의 집들과 그 안이나 밖의 인간들은 온갖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흡사 인생이라는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건물들 역시 명료하지 않은 것처럼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실사 적이지 않다. 드로잉처럼 가볍게 터치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표현을 통하여 그는 인간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다 하고 있다. 보는 이가 다 알아들을 수 있게끔 그는 어떤 분위기를 절묘하게 묘사하여 전달해내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 자와 꿈을 잃은 자의 표정, 욕망과 절망의 몸짓, 편안과 불안의 교착, 그런 모습들을 통하여 유인수는 현대인의 고독, 현대인의 소외, 절망, 욕망, 허무를 표현해낸 것이다. 어찌 보면 그의 전작들은 인생에 대한 긍정적 시각 보다는 부정적 인, 냉소적인, 비관적인 의식을 투영해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그의 내면적 성품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온화하고 지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조형에 천착하게 된 것은 모더니스트로서의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감각과 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50여년 살아온 그의 생애는 우리나라의 음습하고, 황량하고, 부조리한 시대와 맞물려 잇는 세월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는 그런 시대상을 모더니즘 수법의 풍경화로 재현해냈던 것이다.
  사람들 영혼을 점유하고 잇던 고통과 절망,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에의 탐닉, 그래서 다시 되풀이되는 절망과 허무는 그의 화면처럼 절박한 몸짓의 군장들로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그러한 시대상을 도덕적이고 윤리적 의식이 강한 그의 시각은 결ㄹ코 긍정적으로 껴안을 수 없었으리라. 그런 작업들을 할 때의 그는 인생을 관조하고 넉넉하게 껴안을 만큼의 연륜이 아니었으므로 그런 그의 작품 경향이 변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의 ‘일상적 이미지’ 시리즈부터이다. 객관적 대상들이 주관적 혹은 자전적인 것으로 바뀌면서 그의 작업에선 인간주의적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작 일련의 C, 번호로 표기되는 작품들에서 확실하간 변화의 풍경을 보여준다. 지천명을 넘어 이순을 앞둔 연륜 탓이라고 할 까. 웃음을 자아낼 만큼 해학적이고 온유한, 그래서 정감에 와 닿는 화면들이 보여 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지금의 그는 인생 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루었고 많은 것을 가졌다. 서울대학교 미술대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서울과 L. A에서 열두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상명대에서 예체능대학 학장을 역임한 후 현재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상파울로 비엔날레 참가, 까뉴국제회화제, 한국현대 미술제를 비롯하여, 로라, 파리, 나고야, 후쿠오카, 타이페이, 싱가폴, 마닐라, 상파울로 L. A등의 국립과 시립미술관과 유수의 갤러리를 비롯하여 국내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초대를 비롯하여 수 백회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국전심사위원을 비롯하여 주요 공모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그만큼 그는 작가로서 누릴 영예를 다 누린 우리 미술계의 중진작가이다. 이런 작가적 위상이 인간적인 금도를 지니게 되어 작품역시 정감적인 경향으로 변화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대상에 대한 시니컬한 비판 의식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 마저 피식 웃을 만큼 친화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그만큼 모든 화면이 따스하고 여유로워졌다. 등장하는 익명의 인간들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즉 자신과 주변의 자전적인 삶의 이야기로서 꾸며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조형 화면이 얕아지고 가벼워졌다는 말은 아니다. 그만 이 보여줄 수 있는 인생의 무게, 깊이는 변함이 없다. 다만 엄격한 고형이 부드러운 선율로 변화 했다는 것이다. 인생이 어둡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제 화면에 표현할 만큼 여유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그의 근작들은 대변하고 있다.

위선과 왜곡의 도시 이야기

  어둑해지는 인사동 길에서 우연히 만난 유인수는 쓸쓸해 보인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대학 교수로 잇고, 작가로서도 양명한 그가 현실적으로 쓸쓸해 보일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곰곰이 이유를 따져 보면 아마 그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 때문일 것이다.
  요즘 작품보다도 전의 작품들에서 받은 인산은(사실 나는 작가보다 작품을 훨씬 먼저 보았다)그를 고독한 밤의 방랑처럼 느끼게 했다.
  사실 접해 본 그는 소탈하고 따듯한 사람이다. 조금은 은자 같은 느낌을 줄 만큼 고즈넉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겉모습 뿐 일지 모른다. 그가 속으로 지닌 고독과 회한이 있다면 어찌 그 깊은 속을 내가 알 수 있으랴.
  나는 작품을 통하여 작가를 알아가고 이해한다. 나이 들수록 나오는 작품들은 거의가 자전적 이야기들이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이야기들이 독백처럼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진면목인지 모른다. 내가 유인수의 작품을 통하여 받은 인상은 그런 것 들이었다. 그의 도시는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아무리 높은 고층 건물이라 해도.
  거기에 사람들은 온갖 모습으로 배치되어 잇다. 그는 평범하게 ‘일상의 이야기’라고 명제 했지만 그 일상의 풍경은 웬지슬프고 쓸쓸하다. 그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삶에서 느끼는 그의 진정인지 모른다. 또 하나 그 작업의 포인트는 도시의 음습한 위선에 대한 시니컬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좌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왜곡된 현대인을 상징하고, 벗은 연인들은 가식과 허물을 벗은 진실의 실체를 상징한다. 세상이 헛된말과, 웃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 현대에 그는 순수한 인간에로의 회귀를 염원하는 것이다.
  구체성을 띤 조형들은 작가 의 의식적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단순하게 화면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 사유, 느낌, 깨달음을 조형이라는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유인수의 작업은 그런 쪽에 맥락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이 시대 사람들의 본령에 대한 추구이자 그가 앞으로도 주제로 삼을 과제일 것이다.


유화백의 화실 엿보기-윤태수
유화백의 화실 엿보기

윤태수(시인, 상명대 명예교수) 

나는 그림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발견과 깨달음의 감동을 표현한 것이라면 나 역시 그림을 통하여 무엇인가 나름대로의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같은 기대가 나로 하여금 유화백의 화실을 오랫동안 엿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80년대 였던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유화백의 그림에서 나는 도무지 이완시키거나 해체시킬 수 없는 선들의 조합을 보았다. 그 선들은 때로는 광물성 혹은 식물성으로 때로는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등등의 성격으로 유추 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개개의 선이 개별적으로 상징하는 의미에 있다기 보다는 그것들이 너무 견고하게 직조되어 나와 무엇인가의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막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 점이었다.
답답하였다. 그리고 그 답답함을 현대의 고독이나 단절 또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벽과의 마주침 쯤으로 이해하며 스스로 긍정의 고개짓을 하였다. 참으로 알량하기 짝이 없는 자의적 감상이며 해석이었다는 부끄러움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 후 90년대가 되면서 나의 유화백 화실 엿보기는 좀 더 색다른 재미를 얻기 시작 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무렵부터 그의 화폭에는 그토록 치밀하고 견고하게 구조되었던 선들의 틈새를 비집고 흠사 벌집과도 같은 무수한 기하학적 입체 공간이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저마다의 한정된 공간 속에서 곡마단의 어릿광대처럼 기기묘묘한 자세로 파닥거리고 있는 익명의 사람들, 나는 그들을 통해 나태도 갈망도 절망도 보았고, 고통과 경이와 쾌락도 보았다. 매달림도 기어오름도 흔들림도 보았고, 뒤집힘과 포개짐과 떨어짐도 보았다. 그리고 가끔은 그 모든 삶들이 나 자신의 삶으로 겹쳐지는 당혹한 거북함도 피할수는 없었지만 고성능 투시경을 눈에다 얹은 듯 훔쳐보는 재미를 한껏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욕망이 들끓는 거대 도시(세계)와 일탈의 자유를 얻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 유화백의 주된 관심사였다면 처참한 생선의 잔해와 한 마리 새의 등장으로 대비되는 아이러니야 말로 이제까지 그가 견지해 왔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자 태도에 해당될 것이라고,

그러나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을 비롯한 최근의 작품들을 훔펴본 나도 또 한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따뜻하였다. 잘 달구어진 벽난로가 있는 실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이 편안한 느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이제까지 예각이 강조되었던 모든 선들은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고, 가늘고 딱딱함 대신에 굵고 투박하며 스폰지의 쿠션같은 탄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유화백의 그림은 대상과 작가와의 거리가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언제나 대상(세계)를 보여주기만 할 뿐 자신을 대상 속에 투신하거나 대상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대상과 작가가 소통하고 있었다. 대상의 형상과 몸짓에 변함이 없는데도 냉기가 사라지고 따뜻함이 배어난다는 것은 거부 보다는 수용을 부정 보다는 이해와 긍정의 자세로 대상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리라.
문명으로 가득 찬 도시의 한 복판에서 사람과 승용차와 호랑이와 새가 함께 어우러져 웃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 것만 해도 사람과 자연, 존재와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따라서 최그느이 유화백은 세계를, 세계속의 모든 존재와 속성들을, 그 속성의 변화와 갈등까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학호 사랑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승적 개안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믿어 좋을 듯 하다.
이번의 전시가 따지고 구분하며 이름붙이기 좋아하는 촌스러운 나의 발상법을 무너뜨리는 좋은 기회였다는 말씀을 덧붙이며 유화백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한 모더니스트의 회화적 조크-이인범
한 모더니스트의 회화적 조크

이인범(미학예술학, 상명대교수)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필자에게 화가 유인수는 거침없이 자신의 작업이 지닌 우리 화단 내 위치를 모더니스트로 자리 매긴다. 이러한 자기 확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러한 언급들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정작 그가 추구해 왔던 작품세계를 훑어보면 오히려 더 선명하지 않게 다가선다. 화면을 간략한 선에 의해 만화같이 여러 칸 구획 짓고, 그 나뉘어진 틀들 안에서 따뜻한 수사법과 구상적 형태들을 통해 전개시키는 그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보면, 왜 애써 스스로를 모도니스트로 규정 지으려는지 조금은 의아스럽기조차 하다. 최근 그의 작업 세계가 내러티브를 극도로 절제하고 미술이라는 형식 자체의 자기비판을 극단으로까지 몰고 갔던 모더니즘 회화의 전형들과는 상상한 거리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구현해내고 있는 에피소트같은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모더니즘 미술이 지금까지 간과해 온 삶의 이야기를 다시 불러내어 전면에 배치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그 맞은편의 세계로 향하고 있는 거시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래서 작가의 이러한 자기규정을 통해서 우리는 다만 필시 그 자신이 그 동안 걸어온 길과 그리고 그가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 사이에 어떠한 틈이 벌어져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더니즘 회화가 보여 왔던 윤리의식과 냉엄한 엄숙주의에 대한 동경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두 세계 사이의 틈새야말로 평생 동안 그가 자신의 예술적 관심사를 일깨우는 모종의 강력한 동인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13회째라고 하는 적지 않은 개인전과 여러 기획전들에 출품하며 한 평생 전개해 온 유인수의 작품세계의 성격은 그만한 분량의 폭넓은 변주가 있어 왔다. 예컨대, 올오버 페인팅의 성격을 보여주는 <도시 이미지> 연작에서부터 때로느 sdka호나 혹은 해독불가능한 문자 같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니르바나> 시리즈,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하면서도 기호화된 구상적인 형상들로 무엇인가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지난 십 수 년간 지속된 <일상적 이미지> 연작들은 그러한 변화의 폭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그러한 변주의 폭만큼이나 그의 작업들 안에서 일어나는 이질성들이 공존하며 동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질성은 한 작가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것인데,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확연하게 읽혀지는 것은 한편에서는 인간이란 삶의 현존이 지닌 한계 상황에 대한 실존적인 자기자각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와 달리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예술의욕과 무관하게 화면과 그 구성요소로서의 선과 색채를 향한 순수한 열망이 동시에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심사들은 서로 배척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야기시키는 아노미 현상은 삶은 삶대로 예술 형식은 형식대로 긴장감 있게 자신을 가능케 하는 존립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런 점에서 그 두 이질적인 세계는 유인수의 작품세계를 이끄는 쌍두마차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초기의 <도시 이미지> 연작에서 확인되는 형식적 순수성의 성취는 다름 아니라 삶의 현존에 대한 긴장감 있는 부정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도달한 장소이자 미학적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후기의 <일상적 이미지> 연작들은 삶에 대한 서사를 과제로 삼으면서 모더니즘적 형식주의의 와해를 불사함으로써 일궈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렇듯이 그의 작품세계는 뜨거운 삶에의 지향성과 차가운 모더니즘의 형식 논리 혹은 윤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적 상호 지양을 통해 상승해 왔다는 것이 필자가 본 작가 유인수의 세계이다.
그의 작업을 조망하는 재미가 그 안에서 들끓고 있는 아노미 현상을 훔쳐보는 것이고 그 갈등과 번민이 어떤 모습으로 현상되는지를 살피는데로 쏠리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발생론적으로 추적해 보면 그러한 성격이 그의 성장배경과 문관하지 않다. 그는 6.25 한국전쟁의 참화와 그로 인해 이어지니 폐허와 궁핌의 시절에 성장기를 거쳤고, 4.19, 5.16 등으로 이어지는 각종 정변들을 배경으로 인생의 덧없음과 전후 실존주의적 징후들을 몸으로 살아낸 세대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를 모더니즘 회화의 맥락안에 위치시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작가적 형성은 앵포르멜운동 이래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의 성립기와 겹쳐지고 있다. 그러니 한 인간 존재로서 삶의 현실을 향한 내용적 관심과 서구 모더니즘의 모본 텍스트에 따라 예술은 예술로서 구현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작가로서의 입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이 만만치 않으리란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그동안의 작품편력은 그가 끌어안아야 했던 근본적인 과제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니라 그러한 이율배반의 해소였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에서 작가적 가능성도 어려움도 발생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컨대, 이른 시기에 시도된 <도시 이미지>, <니르바나> 연작들은 모더니스트로서의 윤리의식이 구현되고 있으나 작가 본인의 실존적 사태와 격리되는 그 무엇으로,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일상적 이미지> 연작들은 자신의 삶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구현해내고 있으나 ‘모더니스트’로서의 미학적 성취하는 그의 작가적 이상과 유리되고 있다는 아쉬움으로 다가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인전이 지닌 의미는 주목할 만하다. 화단의 중진 작가로서 혹은 인생을 살만큼 산 한 원숙한 경험의 소유자로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어떠한 달관의 경지이다. 무엇보다도 선으로 구획되고 있는 수없이 많은 작은 방들은 이제 그에게 단지 존재를 조건지우고 한계지우는 그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현실을 관용하고 너그럽게 감싸는 유희의 터전이다. 그래서 어느덧 그 안에 갇혀 포박된 듯이 그려지는 인간들은 실존적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그 한계상황들마저 따듯함과 유머로 즐기는 향유자로서 다가선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먼 거리에서 단지 차가운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존재의 덫에 걸린듯 한, 그래서 단지 뜨거운 세상을 기호적 사태들로 도해하며 국외자로 밀폐되어 있던 이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다. 거기서는 이미 화면의 형식적 결에 대한 모더니스트적 집착이나 경직된 윤리의식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의 무겁고 어두웠던 화면은 밝아지고,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있는 정객들, 몸을 파는 거리의 여자들, 그 밖의 허명을 향해 질주하는 이 시대의 온갖 인간군상들마저 그가 그려내는 도상들은 이제 지긋지긋한 존재의 덫이 아니라 단지 삶의 다양한 양태들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형상들에는 한층 더 구체성과 명로성이 더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 모두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입, 사랑과 관조에서 흘러나오는 유머와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것은 화가로서의 연륜의 두께가 그에게 선물한 자연주의의 선물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그래도 그가 모더니스트이길 고집한다면, 한 마디 덧붙여 조크를 즐길 둘 아는 모더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주간한국]서양화가 유인수, <천의 얼굴-서울> 초대전
혼돈과 절실함 도시의 속살

“젖은 태양이 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을 지녀. 눈물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러운 그대 눈 같아.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세월에 닦여 반들거리는 가구가 우리 방을 장식하리;(중략) 보라, 저 운하 위에 잠자는 배들을. 떠도는 것이 그들의 기질;그대의 아무리 사소한 욕망도 가득 채우기 위해 그들은 세상 끝으로부터 온다. ”<여행으로의 초대(L’INVITATION AU VOYAGE),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詩, 윤영애 옮김, 문학과 지성사>

홍조 띤 얼굴처럼 황혼이 오후의 도시를 물들인다. 들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되고 하나 둘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환락과 의혹, 소통의 유연성, 연대와 불확실성이 뒤섞인 예측불가능의 이곳엔 정적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말쑥한 정장의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다 갑자기 홱 돌아섰다. 영문도 모른 채 전 속력으로 달려가던, 거리를 배회하던 개 한 마리가 순간 황당하게 멈춰야만 했다.

그때 창(窓)을 통해 ‘허황된 그리고 무엇이 진실이고 허상인가’라는 의문의 지라시가 허공에 맴돌다 지상으로 흩어졌다. 그때였다. 도시를 역동의 생성공간으로 전환시킨 것은 뜻밖에도 부유하는 부조리한 오염의 입자를 정화하며 창밖으로 뻗어나가는 연록의 식물줄기였다. 그가 속도위반으로 지나가며 일순 본 것도 바로 그 푸름이었다. 그리고 명백해졌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과 대비되는 자연계의 강인한 융합의 질서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인간중심을 향하는 예술
전시명제 ‘천의 얼굴-서울’은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함의한다. 하나는 화려함 속 고독이다. 또 하나는 니체(Nietzsche) 허무주의와 19세기후반 인상주의 화파 영향을 받은 작가가 이 패러다임을 관통한 후 21세기 기술과 정보가 집약된 새로운 과학문명 속, 숨 가쁜 현대도시의 라이프 사이클에 주목하는데 서구영향을 받은 서울도 동일선상에서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면은 탐욕과 절제를 다스리는 것들을 총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의식과 관계된 동력에 대한 물음을 독창적형상의 담론으로 펼쳐내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성을 발현해내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교시절 가사가 기울어 산동네서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 나태해지다가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여기서 졸고 있으면 안 되지’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작업의 원동력은 고난이 본바탕이다”라고 토로했다.

화백은 1980년 문예진흥원예술회관에서 당시 산업화되어가는 아파트중심의 도시를 소재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8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내 안의 나’를 찾기 위한 잠재의식을 낙서로 다뤄 한국대표로 출품,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1987~1989년간 프랑스 디 종 국립미술학교를 수학했다. 그는 “당시 작품 속엔 생의 절실함이 반드시 농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 심미적 경향에서 1990년대 이후 절박함이 두드러지는 내면세계를 펼쳐오고 있는데 늘 나는 우연과 필연, 감성과 지성 등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엇갈리는 세계가 두루 만나 제3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주의 깊게 살피려 한다”라고 밝혔다.
유인수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상명대학교 예체능대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창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 열아홉 번째 개인전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1층, 세브란스 아트 스페이스(Severance Art Space)에서 2017년 1월5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한편 지난여름 경기도 이천의 작업실 방문이후 오랜만에 인사동 찻집에서 화백을 만났는데 화업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탐미주의자는 예술작품 주위를 맴돌고 진정한 예술가는 인간중심을 향한다고 한다. 잠시 동안이라도 화폭에 기대어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헛된 환상을 꿰뚫어 천(千)의 도시얼굴을 그려본다. 억압적 현실 속 유희와 치유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방황하기도 하고 순간 스쳐가는 일상의 파편들을 고뇌하면서 꿰매어보기도 한다.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되는 긴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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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12월19일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의 얼굴을 그리다

Introduction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의 얼굴을 통해 현실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작가 유인수의 개인전 『천의 얼굴』이 오는 1월 5일부터 30일까지 세브란스 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의 디종 국립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현 상명대학교 명예교수였던 작가는 1980년 첫 개인전을 필두로 미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 『천의 얼굴』 전시에서는 삶의 다채로운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의 얼굴을 표현하고 있다. 천태만상 각자의 다양한 삶 속에서 부닥치는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유희와 치유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나타내고 있다. 작가의 인생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삶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그림 속에 던지고 있다. 작품 속 정형화 되어 있지 않은 도시 개체의 모습은 제각기 하나의 생명체로써 움직이고 호흡하는 것과 같은 형상을 띠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순간의 스쳐가는 일상의 파편들을 서로 이어놓고, 하나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전체모습을 통해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숙고한다. 삶의 역동성에 대해 말하지만, 역동적 움직임 보다는 화려한 색감과 딱딱하게 구획된 화면의 구성이 돋보이고, 정지되어 있는 화면이지만 화면 속 도시들은 살아 숨쉬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이미지들은 작가 개인의 감성과 정서를 바탕으로 삶과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여 나타낸 것으로, 작가 고유의 독특한 예술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 도시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유희와 삶에 대한 경외심을 전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따뜻한 감성과 긍정의 에너지를 느끼고 흥미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다.

유인수, 천의 얼굴-서울展, 왜곡된 진실에 대한 진실의 갈증

화가 유인수 초대전, 1월5~30일, 세브란스아트스페이스

‘천의 얼굴-서울’展, 왜곡된 진실에 대한 진실의 갈증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 kdc@econovill.com | 승인 2017.01.03 13:56:36

 

크고 작은 조금은 경사진 곳을 다독이며 올라간 건물과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의 집들 그리고 간간히 드러나는 골목길이다. 그리고 뭔가 분주하고 바쁜 듯 인기척이 순간 지나가고 다시 냉정을 찾은 견고하게 서 있는, 도시(Urban)다.

화면을 찬찬히 음미해보면 플라스틱처럼 딱딱하게 느껴짐도 초콜릿처럼 달콤함도 있다. 낮과 밤의, 치열한 생존의 흔적이 햇빛 속 적나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의미를 확인하는 욕망의 덫이 끈적끈적 군데군데 자국을 남긴 듯 하다.

그곳에 초록의 식물이 유연하게 곡선을 그리며 미덕처럼 여유를 안긴다. 그러한 생명성은 창과 벽을 타고 도시의 일원으로 자리하는 가운데 묘한 대비의 색채감, 잠잠히 투영된 채 아른거리는 어떤 은닉과 또 미묘한 절박감이 팽팽한 어떤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찬의 창문사이 커피향이 바람결에 흘러나오고 경쾌한 리듬과 세련된 옷들로 단장한 식탁위로 후드득 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가늘게 인상을 찌푸리지만 습관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이전에 기록해둔 잊어버린 메모를 상기한다. 소외와 불안의 발견은 일련의 아노미(anomie) 부른다.

허무주의와 도회적 감각을 저변으로 하는 20세기 초 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작가의 발자취를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부조리와 왜곡에 대한 진실의 갈증에 주목해 온 조형어법은 디지털 문명과 미디어발달의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유인수 작가는 “보들레르의 시를 좋아하고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귀족사회의 꿈을 꾸는 목수아들을 ‘나’라고 느끼며 스스로 위로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와 소설을 읽으며 인문학적 생명력으로 청춘의 절실함을 다독였던 때였다. 삶의 동력이 떨어지면 책을 구하여 읽고 다시 엔진이 가동되었었다”라고 모더니스트적인 젊은 날을 회상했다.

한편 서양화가 유인수(YOO IN SOO)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상명대학교 예체능대학장을 역임했다. 이번 초대전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1층, 세브란스 아트 스페이스(Severance Art Space)에서 1월5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