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화풍
에두아르 마네의 화풍과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프랑스 화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세련된 도시적 감각의 소유자로 주위의 활기 있는 현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필력에서는 유례 없는 화가였다. 종래의 어두운 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중개역을 수행한 점에서 공적이 크다.
○ 프랑스 파리의 일상 속 인물이나 풍경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원근법과 입체감을 없애고 빛의 강약으로 표현한 새로운 화법은 인상파 화가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 비를 머금은 듯 우수에 잠긴 듯한 색조감을 느낄 수 있다.
에두아르 마네 작품세계

 

프랑스 화가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풀밭위의 점심' '올랭비아'로 데뷔 초기부터 화단에 이슈가 되었다. 

전통적 어두운 회화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는 후에 많은 영향력을 남겼다.

에두아르 마네는 19세기 현대적인 삶의 모습에 접근하려 했던 화가들 중의 하나로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전환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초기작인 <풀밭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는 엄청난 비난을 불러 일으켰으나, 반면에 수많은 젊은 화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들을 주변에 불러모으는 힘이 되었다. 이들이 후에 인상주의를 창조하였다. 이때의 그림들이 현대미술을 창시한 분수령이 된다. 마네 화풍의 특색은 단순한 선 처리와 강한 필치, 풍부한 색채감 등에 있다.

에두아르 마네는 1832년에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외교관이었고, 할아버지가 스웨덴의 왕자인 샤를 베르나도트(현 스웨덴 왕가의 시조)였다. 아버지인 오귀스트 마네는 프랑스의 법관이었는데 아들인 마네가 법조계에서 직업을 갖기를 바랬다. 삼촌인 샤를 푸니에르는 어린 마네를 종종 루브르 박물관에 데려갔으며, 1845년에 삼촌의 도움으로 미술 교육과정을 수강하였는데 이곳에서 미래의 예술부 장관이자 그의 평생의 친구인 앙토닌 프루스트를 만난다. 

1848년에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리우데 자네이루로 항해하는 배에 올라 항해를 하기도 하였다. 해군에 지원해서 두번이나 시험에서 떨어지자 마네를 딱하게 여긴 아버지는 마네가 예술 교육을 받도록 허락한다. 마네는 1850년에서 1856년까지 아카데미파로서 커다란 역사화를 그린 토마스 쿠튀르르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남는 시간에 루브르의 걸작들을 모사하였다. 1853년에서 1856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네덜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와 스페인의 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의 영향을 받는다. 

1856년에는 전속 화랑을 열었다. 이 시기에 그는 중간 톤을 억제한 간결한 톤을 구사하였다. 1858에서 1859년 사이에는 당시의 사실주의 화풍을 받아들여 현실적인 주제들인 거지나 가수들, 집시, 카페 손님 등에 대해 그렸다. 이후로는 종교나 신화 또는 역사적인 주제에 대해 거의 그리지 않았다. 마네의 주변에 모네를 비롯하여 많은 젊은 화가들이 모임에 따라서 인상파 화풍이 형성되었다. 만년에는 병이 들어 손발이 마비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51세에 세상을 뜬다.

주요 작품으로는 <풀밭 위의 점심>, <피리 부는 소년>, <페르 라튀유 가게에서>, <올랭피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