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는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이다. 다리파의 창립 회원 중의 한 사람이다.

키르히너는 대학에서 건축학 공부를 했지만, 1905년 '다리파' 집단을 결성했으며, 이 시기에 인상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화가에서 벗어나서 표현주의 화가로 발전했다. 초기 창작 시기에 키르히너는 주로 나체화, 초상화, 서커스와 무대 장면을 작업했다. 1911년까지 드레스덴에 살았고, 그 이후로 베를린으로 이주했다.베를린에서 작업 특징은 둥근 형태가 좀 더 날카로와졌고, 선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색채가 지닌 광채가 줄어들었고, 거리의 풍경이 나타나게 되었다. 거리의 풍경은 오늘날 가장 사랑을 받는 그의 그림이 되었다. 그 이외에도 키르히너는 페마른 섬에 머물면서, 그 섬의 해안 풍경들을 묘사한 많은 작품들을 창작했다.
1914년 이후부터 키르히너는 보토 그레프와 에버하르트 그리제바흐가 주관하는 예나 예술가 협회의 전시회를 통해서 일반인에게 작품을 선보였다. 1917년 키르히너는 예나에 있는 그레페 기념 재단에 34점의 동판화, 83점의 목판화와 125점의 석판화를 기중했다. 

1차 세계 대전, 1915년에는 신경 쇄약으로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1916년 여름 납화 기법으로 제작된 벽화 연작 5점을 그렸다. 가난한 미술가의 첫 번째 요양원 경비는 박물관 관계자와 그의 작품에 주목을 하게 된 미술품 수집가들에 의해서 충당되었다.

키르히너의 미술이 20년대 이후부터 현대 미술에 개방적인 무리들 사이에서 확고한 인정을 누렸지만, 자신의 미술이 미술 비평가들에게는 충분하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925년 말 키르히너는 9년만에 처음으로 스위스를 떠나서, 프랑크푸르트, 켐니츠, 드레스덴을 거쳐서 베를린으로 향했다. 거의 3달에 걸친 이 여행에서 그는 상당한 인정을 받고 독일에서 그에게 교수자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