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그림은 그리움의 결과이자, 그 그리움의 형상적 표현의 결정
화가 백성흠의 군말

세번째 개인전 "빛과 형.색의 만남 전"에 부쳐


 그림은 그리움의 결과이자, 그 그리움의 형상적 표현의 결정이다.
가슴 사무치도록 아려오는 아픔과, 뜨거운 눈물로 대신되는 기쁨과,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끼"는 그리움을 만들어 내고, 그것은 또 그림쟁이의 흔적이 되어 켄버스 안에서 춤추고 노래한다.  화가는 지성과 감성의 두 날개를 가지고 칼날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말을 빌려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림을 대하는 내 마음은 충실히 그것을 따르려 애쓰고 있다.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의 많은 고통은, 그 이후의 고통을 줄여준다고 믿는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제작한 작품 중 세 번째 개인전에 얼굴을 내미는 작품 50여 점은 내 화실에서 그렇게 나의 고통이자 즐거움이요, 땀이자 결과로 태어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첫 개인전인 "심상의 풍경 전"을 시작으로, 두 번째 개인전은 "형.색.감의 재해석 전"을 가졌고 이제 세 번째 그림마당인 "빛과 형색의 만남 전"을 펼치려 한다.  도식적이고 틀에 갇힌 듯 한 "습관적 조형의 재현"이 아닌 "형"과 "색"이 빛을 만나는 순간의 변화와 반응, 느낌과 상황, 현상과 분위기 등의 변수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나는 그것을 또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그리고 또 지우고, 지우고 또 그리면서 화실에서의 새벽을 친한 친구처럼 맞아왔다.
 묘사력 없는 구상의 완성을 기대할 수 없고, 조화로움 없는 추상의 예술성을 강변 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시작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고, 비어있음은 채울 수 있음의 기대치이지 않은가?!  추상은 추상만이 아니요, 구상은 구상만이 아닌 것이다.

 구상적 요소가 추상의 완성에 바탕이 되고, 추상적 요소가 구상의 동반자가 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상대를 없애지 못하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살육의 논리가 아니라 "네"가 있음으로 인해 "내"가 존재한다는 동반의 논리이자 공생의 논리요, 화합의 논리이자 합일의 논리인 것이다.
 구상과 추상이 독립된 요소로서의 역할과 조화를 이끌어 내는 작업이 아니라 구상은 추상 속에 녹아들고 추상은 구상의 바탕이 되어 형으로, 색으로 하얀 평면 위에서 세상과 인간과 
자연을 노래하는 "합일주의"적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이다.
 초는 자신을 태워 촛불을 피우고 그 불은 또 세상을 밝힌다.  이는 결국 자신은 태워져 없어지지만, 또 다른 탄생을 만들어 내고, 그 탄생은 빛으로 세상에 남는다.
 인간과 자연, 자연과 인간 그것은 결국 하나이지 않은가?  시작과 끝이 결국은 맞닿아 있듯이, 너는 내가되고 나는 네가 되는 그런 세상을 빛으로 해석해 가는, 나의 작업의 끝이 어디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한가지는 있다.  얼마나 잘 그려낼 것인가를 염려하기보다는, 얼마나 덜 후회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가고 난 그 후에도 내 삶의 흔적들은, 세상 속에 남아 세상을 노래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림쟁이는 "네 가지의 눈"을 가져야 한다. 
첫째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하는 소재를 보는 눈이고, 둘째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사고하는 눈이다.  그리고 셋째는 가슴으로 바라보는 느낌의 눈이고, 마지막 넷째는 그 모든 것을 그려낼 수 있는 손이라는 도구로서의 눈이다.  이중 어느 한가지라도 빠져 있을 경우 그림은 그만큼 비어있게 될 것이다. 속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세상은 더 빨리 눈치를 챈다.
 아니 세상을 운 좋게 속여 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솔한 자세를 바탕으로 노력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은 돌아서고, 나를 아는 모든 것이 내 곁을 떠나가도 땀으로, 열정으로 흘린 노력은 배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창 밖이 여명으로 물들어 온다.
 이젠 나의 친구가 된 "새벽"이란 녀석이 내 화실을 찾아오는 모양이다.  그 녀석이 구경할 그림을 이젤에 걸어 두고 난 눈 좀 붙여야겠다.
 깨어 보면 흔적도 없이 가버리고 없지만, 난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2003년 4월에 화실에서  화가 백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