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riticism
자연의 기운을 포착하는 선_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자연의 기운을 포착하는 선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작가의 화면은 가늘고 구불거리는 선들이 캔버스 밑변에서부터 일정한 굵기로 차오르다가 서서히 상단에서는 잦아드는 조밀한 선의 촘촘한 궤적이다. 물결처럼 흔들리고 유동하는 선의 구불거리는 맛이 그림의 내용을 대신하고 선의 촉각적인 떨림이 흡사 수면의 파동이나 물결의 자취, 바람의 이동이나 빛의 파장과도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작가는 선의 교차, 겹침으로 작은 면들을 무수히 산개시키는데,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그림의 시작과 끝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그 주어진 화면의 조건을 부단히 의식하는 선의 흐름으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셀 수 없는 선들이 출렁거리며 그 흔들림, 떨림이 작가의 감정, 마음을 투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래서 캔버스의 화면은 오로지 선으로만 이루어진 추상적인 화면이자 동시에 부단히 외부세계의 풍경을 환영처럼 떠올려주기도 하고 작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의 형상화로도 보인다. 선으로만 이루어진 이 그림은 우리의 인생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날줄과 씨줄로 직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시키는데, 이는 다분히 모더니즘적인 회화 인식이다.

 

화면은 몇 개의 중층적인 요인을 한 몸 안에 거느리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가는 선과 혹은 동양화의 준법을 연상시키는 선의 굴곡진 놀림으로 형성된다. 본래 수묵화의 준법이란 자연의 절대적 체험을 표현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대상의 원칙적인 형태’를 파악하여 붓으로 옮기는 것, 이른바 기운생동의 가시화다. 그리고 이는 문인화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그림이란 문인 화가들의 내적 자아가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인식과 맞물려 개별 화가의 필치, 세련된 붓질 즉 화가의 손이 매우 중요시되면서 가능해진 것이 이른바 준법인 셈이다. 작가의 작품은 역시 본인의 마음의 결, 심리적 흐름을 반영하는 차원에서의 선, 이른바 준법의 새로운 번안으로 보이는 그 선들이 물결같이 충만하고 안개처럼 자욱하다. 더불어 그것은 색실로 짜인 정교한 태피스트리와도 같은 효과를 발산한다. 

 

동양화의 준법과 태피스트리, 모더니즘 추상회화가 서로 얽혀 이룬 그림! 여기서 핵심은 준법으로서의 선의 새로운 가능성, 마음의 굴곡과 여운,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선, 자연의 기운을 생생히 포착하는, 바로 그 선에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매우 얇은 선들을 빼곡히 채워가면서 화면 전체를 장악했다. 온통 선으로만 충만한 화면은 풋풋하면서도 온화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양모 직물이 자연스러운 흐름과 촉각을 자극하는 오브제로 활용되기도 한다. 양모의 개입은 손으로/붓으로 그어 나간 선과 함께 얽혀서 환영의 맛과 실재감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그려진 선과 실제 선이 공존하고 그려진 그림과 오브제가 함께 하는 화면은 자연풍경에서 가져온 기운과 시간의 흐름을 생생히 반영한다. 

 

한편 미묘한 흔들림을 동반한 선으로 채워진 화면 중간중간에 원형, 사각형의 덩어리들이 평면 위에서 솟아올라 섬이나 돌처럼 놓여 있다. 잔잔한, 선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에 이 부조로 튀어 올라와 존재하는 물질은 선의 흐름, 색의 흐름에 특정한 상황성을 안겨준다. 마치 위에서 내려다본 물가 풍경이자 그 안에 놓인 몇 개의 징검다리나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 인간 삶의 흔적인 생활공간(건물) 등을 암시하고 있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풍경의 환영이 형성되거나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 특정 풍경으로 이입하게 한다. 아울러 잔잔하고 평면적인 화면의 살/피부에 은연중 솟아올라 부푼 덩어리는 선의 일률적인 흐름에 관여하고 그 선과 얽히면서 방향, 흐름에 미묘한 기운과 변화를 주고 있다. 동시에 얇은 선과 대조적으로 두툼한 물성이 바닥에서 자연스레 솟아올라 이룬 이 묘한 형태감은 평면적인 화면에 공간감, 깊이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특정 자연풍경을 통해 받은 인상과 감흥을 색채와 선으로만 환원시키는 추상화 전략, 그리고 그 자연에 내재하는 기운을 운율적인 선의 파동으로 시각화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적인 화면을 상당히 유동적이고 생동적인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흐름을 연출한다. 이 흐름은 특정 풍경을 연상시켜주기도 하고 작가의 내밀한 감정의 순간을 이미지화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화면이 공존한다. 

 

작가의 선은 구체적인 특정 형상을 지시하지 않으며 다만 방향을 달리하면서, 유사한 색조끼리 어울려 모종의 커다란 흐름을 만든다. 그 선들의 틈은 자연스레 작은 면들을 무수히 파종한다. 동시에 간격이 다른 선들, 불규칙적으로 그어 나간 선의 궤적이 만든 흐름의 형태는 자연계의 현상과 닮아있다. 청색과 붉은색 위주의 단색으로 물든 화면은 얼핏 노을 진 하늘, 단풍이 가득한 산, 계곡물에 투영된 바닥, 출렁이는 푸른 바다나 밤하늘의 별자리, 은하의 흐름, 또는 오래된 나무의 등걸, 산과 하늘이 공존하는 풍경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잠기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지극히 추상적인 그림이다. 미묘한 선의 흐름과 저마다 다른 굵기, 그리고 그 선들이 불가피하게 만든 면들이 어우러져 있는 형국은 마치 자연 스스로가 만든 여러 자취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을 조심스레 따라가 보는 작가의 시선과 마음의 경로 또한 흥미롭게 보여준다. 


선과 색의 연속적인 율동감의 환영_오마 우란치멕, 큐레이터 겸 미술평론가(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 미술사 박사)

선과 색의 연속적인 율동감의 환영

 - 오마 우란치멕, 큐레이터 겸 미술평론가  (버클리 캘리포니아 주립대 미술사 박사)

 

작가가 선에 집착하고 선을 겹겹이 쌓는 방식을 씀으로써 작품 속 색채의 스펙트럼을 고양하고 다양화한다. 뿐만 아니라 그 기법은 작품 속에 두터운 질감과 삼차원의 세계가 나타나게 하고 그리하여 우아하면서도 정지되지 않은, 연속적인 율동감의 환영을 보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 선들은 베 짜기와 태피스트리(tapestry)가 연상되어 이 작품들이 섬세한 여성의 손길이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한다.

 

전반적으로 율동적이고 질서 정연한 구도 속에 물감을 과감하게 흩날린 듯한 기법은  그것이 없었다면 지나치게 획일적이 될 뻔한 구도에 돌발적인 의외성(意外性)을 부여하였다. 두 종류의 추상 기법이 다양하게 조합되어 재미를 더한다.

색채, 질감 그리고 빛의 교감_인희 아이리스 문 (뉴욕활동 큐레이터)

색채, 질감 그리고 빛의 교감

- 인희 아이리스 문 (뉴욕활동 큐레이터)

 

채성숙 작가는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 보다는 캔버스 위의 전체적 분위기의 완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래서 색채가 그의 기분과 감응(센스빌리티)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정말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채색된 표면 위를 덮은, 빛의 조각인 게 아닐까. 계속 변화하는, 흐트러진 빛으로 둘러싸인 것 같은 느낌이 있고, 이것은 양모 직물의 효과인, 신비스럽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캔버스에 양모를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채색화 위에 엷은 양털 직물의 장막은 물결 같은 파장을 만들어 그 아래의 회화적 요소를 부드럽게 감춘다. 이 얇은 직물은 빛을 반사하여 부드러운 흐릿함을 가져, 마치 꿈 속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손으로 한올 한올 짠, 한 폭의 이름다운 태피스트리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 왔다. 

 

엷은 안개가 낀 늦은 봄날 아침 같은 느낌의 부드러운 장막을 가졌다.                                


시적 형태의 공간 속 경치- 채성숙 작가의 회화_쉬언춘 (중국 수도사범대 교수, 미술평론가)

시적 형태의 공간 속 경치 - 채성숙 작가의 회화

- 쉬언춘 (중국 수도사범대 교수, 미술 평론가)

 

한국 여성화가 채성숙은 성숙한 회화 인지 능력으로 개성이 뚜렷한 회화 스타일과 시각적 효과를 창출하였다. 예술 작품들은 본질적인 것과 규율적인 것에 더욱 근접했다는 평을 받는다.

 

채성숙 화가가 그림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물질 세계의 풍경과 현상이 아니라 영혼의 이미지와 정신적인 흔적들이며 더욱 순수하고 내면적인 예술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화가는 여성의 시각에서 이 세상을 관찰하고 표현한다. 동적인 작품이든 정적인 작품이든 모두 부드러운 분위기와 따뜻한 기운을 엿볼 수 있다. 화면에 대한 터치감 역시 밝고 참신하여 자연의 무한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채성숙 화가의 회화는 주제가 내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붓 끝에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기호들에서 짙은 인문적인 숨결이 느껴진다. 이는 자연 경관의 재현이 아니라 화가의 주관적인 표현이고 자유이다. 작품마다 특유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는 삼차원을 초월한 그리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을 초월한 새로운 접근이고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사람과 세계가 하나로 어우러져 영혼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범속을 초월한 순수미와 영원을 예시하고 있다.

 

채성숙 화가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누구나 모두 영혼의 안식처를 찾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품의 추상적인 형식과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자아를 찾을 수 있다. 화가의 시간적 공간적 접근 방식과 공간 경치를 표현하는 방식은 현대인의 정신적 갈망과 심미적 요구에 더욱 근접해있다.

 

채성숙 화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위로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