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2024-01-11 선 (Lines)_작가노트

선 (Lines)

 

작가는 매우 얇은 선들을 빼곡히 채워가면서 화면 전체를 장악했다. 온통 선으로만 충만한 화면은 풋풋하면서도 온화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조밀한 선의 촘촘한 궤적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유동하면서 구불거리는 맛이 그림의 내용을 대신한다, 선의 촉각적인 떨림이 흡사 수면의 파동이나 물결의 자취, 바람의 이동이나 빛의 파장과도 같은 이미지를 준다. 그것은 작가 본인의 마음의 결, 심리적 흐름을 반영하여, 물결같이 충만하고 안개처럼 자욱하다. 그리고 양모가 자연스러운 흐름과 촉각을 자극하는 오브제로 활용되기도 한다. 양모의 개입은 손으로/붓으로 그어 나간 선과 함께 얽혀서 환영의 맛과 실재감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선으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화면은 부단히 외부세계의 풍경을 환영처럼 떠올려주기도 하고 작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의 형상화로도 보인다. 또한 화면 위의 선은 우리의 인생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날줄과 씨줄로 직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시킨다. 선의 굴곡진 놀림인 동양화의 준법과 모더니즘 추상회화가 서로 얽혀 이룬 그림! 여기서 핵심은 준법으로서의 선의 새로운 가능성, 마음의 굴곡과 여운,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선, 자연의 기운과 시간의 흐름을 생생히 포착하는 바로 그 선에 있다.

2024-01-11 마음이 머무는 곳 _작가노트

마음이 머무는 곳  

 

한 겹 한 겹 쌓아 우려 낸 색채와 형상의 조화.                                                             

그것은 세상에 펼쳐진 자연,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꿈이다.

 

겹겹이 쌓아 우려 낸 세월의 흔적.

선으로 이어진 추억의 편린.

색으로 피어난 계절, 그 은은한 향기.

 

계절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변화 무상한 자연. 서로 다른 듯 같다.

세월이 지나면서 표현 방식이 익어 간다.

색과 선으로 형태를 잡아가고 전체를 만들어 나간다.

혼이 담긴 그림. 자연을 그리되 향기까지 베어 나오는 그림을 꿈꾸다

 

영국. 하나 하나 정제된 아름다움의 자연과 제국 역사를 통해 형성된 웅장한 문화를 만났다.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과 꾸미지 않은 듯 꾸며 낸, 은은한 실내 장식, 로제티의 유미주의, 주관적 정서의 시적 정착, 이사벨라 가든에 흐드러진 철쭉 꽃망울이고, 히스 무리 황량한 무어 위를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호수위 잔잔한 물결이며 하이랜드 언덕에 풍경처럼 놓인 돌집 한 채이며 능선을 한가로이 거니는 양떼이다,   

 

천오백년 고도 이스탄불. 고성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물길은 보스포러스. 앙카라 박물관의 히타이트 토기는 피카소와 닮아 있다. 산길을 돌면 탁 트인 자락에 마주치는 에게해. 연안에 점점 흩어진 돌섬. 초저녁 하늘에 길게 걸린 노을이고, 그 아래 펼쳐진 고즈넉한 산골 마을이다. 혹은 길섶 발치에 수줍게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이다. 그리고 카파도키아 동굴 교회 속 프레스코다.

 

 

 

마음이 머무는 곳  II

 

푸른 하늘을 날라온 빛. 개울가 버들개비에 맺혀 생명을 빚어낸다.

우주로부터 스며든 소리. 차랑차랑 흐르는 개울물에 적시어 있다.

물방울 하나가 떠나는 여행. 구비구비 달려가 다다른 대양.

수만년을 돌고 돌면, 까마득히 돌다가 마침내 제자리.  

 

맑은 하늘에 눈 부신 햇살.  환하게 열려 대지를 비춘다.

따뜻한 기운. 생명을 키워내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산길을 돌면 탁 트인 자락에 마주친 에게해.

연안에 점점이 흩어진 돌 섬. 초저녁 하늘에 길게 걸린 노을.

 

소나무 울창한 산마루. 기슭에 내려 앉아 고즈늑한 마을이 된다.

화톳불을 끼고 아랫목에 나란히 앉은 부부. 두런두런 이야기가 정겹다.

길섶 발치에 이름 없는 들꽃. 밤이면 하늘에 올라 별이 된다.

계절이 지나가는 길목 마다 향기 배인 색깔이 영근다.